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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선] 우리에게 끝은 없다 0 0 | 인스티즈

 

 

 




훼손

 

part 2




 

 


 







 여직원의 눈에서 갑작스럽게 눈물이 넘쳐 뺨에 흘렀다. 김주영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흐르는 눈물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여직원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주혜야 그만 가… ”

 

  

 그러나 여직원은 사납게 뻗대며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간 김주영의 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여직원의 긴 손톱이 김주영의 얼굴을 스쳤다. 김주영의 눈 밑에 경련이 일어났다. 상처에서 이내 피가 배어 올라왔다. 나는 여직원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욕설이라도 한바탕 내뱉고 싶었다.

 


 “ 이제 보니, 너 웃기는 애구나. 여기선 안 돼. 여기선 안 된다는걸 정말 몰라? 잠을 자든 섹스를 하든, 네 정신 나간 오빠랑은 모텔가서 해. ”

 

  

 나는 신문이라도 읽는 것처럼 높낮이 없이 말했지만 내 음성은 어찌나 떨리던지 흐느껴 우는 것 같았다. 나는 김주영을 향해서도 말했다.

 

 

 “ 오빠라니, 구역질 나. 그러면 더 재밌어? ”

 

 

 김주영은 손으로 상처를 누른 채 머뭇거리다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따라 마시고 허둥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여직원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나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 내가 오빠를 통째로 빨아당긴대. 내가 조이는 그 순간을 오빠는 영원히 못 잊을 거라고 했어. ”

“ 정신병자들 ”

“ 내가 얼마나 이 집에 와보고 싶었는지 알아? 당신을 꼭 한 번 보고 싶어한 내 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어? 내가 얼마나 당신을 때려주고 싶었는지 알아? ”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서슬에 눌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재단된 게 아니야. 당신만은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지? 그런 일은 없어. 그러기엔 나같이 불행하게 떠도는 여자들이 너무 많거든. ”

“ 정말 무례하네. 넌, 나한테 이러는거. 미안하지도 않아? ”

“ 내가 아기를 긁어내고 마취에서 깨어날 동안 오빤 꼼짝 않고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렸어. 우린 장난을 한 게 아니야. 오빤 나를 분명히 사랑했어. 당신 같은 안전주의자가 평생을 나누어도 못 나눌 양의 사랑을 우린 나누었어. 넌 나에게 가라고 하면 안 돼. 미안하지않냐고? 천만에. 전혀. 나에게도 너만큼의 권리는 있어. ”

  

 

 아기라니…. 아기라는 말 때문에 나는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 여직원이 나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서서 말하고 있는데도 벙긋벙긋 열렸다가 닫히는 입만 보일 뿐 아무말도 들리지가 않았다. 입이 열리고 닫힐 때 마다 여직원의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어느 순간 나는 여직원을 힘껏 밀쳤다. 여직원의 등이 찬장 모서리에 세게 부딪친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였다. 여직원은 찬장 위에 놓인 붉은 봉투를 집어들고 나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다시 한번 더 가격이 이어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머릿속에 암회색 구름 먼지가 지욱하게 일어났다. 마치 화살이 머리를 뚫고 들어와 표적에 박혀 진동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김주영이 달려나와 여직원의 손에 들린 붉은 봉투를 뺏고 나에게 괜찮은지 묻는 것 같았다.나는 입을 벌린 채 김주영의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몰랐다고 변명하는 공포에 질린 여직원의 얼굴이 언뜻 보인 것 같았다. 그 봉투 속엔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온 김주영의 친구가 준 선물이 들어 있었다. 스위스제 접는 칼 세트. 그 봉투 속에 칼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그저 흥분한 나머지 아무것이나, 찬장 위에 올려져 있던 붉은 종이 봉투를 휘둘렀을 것이다.


 

 “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오빠. 때려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세게 때리려고 한 건 아니었어. 칼인 줄 정말 몰랐어. ”

  

 

 여직원은 와들와들 떨며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자꾸만 중얼거렸다. 여직원이 자꾸만 오빠,오빠, 하는 소리가 달궈진 양철처럼 뜨거운 두피를 두드렸다. 김주영은 여직원을 현관 쪽으로 밀치고 갔다.

 

 

“ 오빠… 오빠… ”

 

  

 여직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며 오빠라고만 중얼거렸다.

 

  

“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다시는. ”

 

  

 김주영은 여직원을 난폭하게 바깥으로 밀어냈다. 여직원의 마지막 눈빛 속엔 공포가 깃들여 있었다.


 

 



 나는 머리를 두 손으로 싸안고 침착하게 침실로 가서 누웠다. 나의 얼굴 한쪽은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정확히 왼쪽 귀 윗부분에 두번의 타격이 있었다. 김주영이 손을 뻗자 나는 거세게 뿌리쳤다.

 

  

“ 나가. ”

 

 

 입을 벌린 순간에 눈물이 터져나왔다. 김주영은 나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쥐고 부풀어오르는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그 순간에도 왼쪽 머리와 얼굴 한쪽이 무서운 속도로 부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일어나, 병원가자. ”

 

  

 김주영은 나를 일으켜 앉혔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서서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 얼굴 반쪽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완전히 뒤틀려버린 모습이었다. 사람 얼굴이 그렇게 순간순간 변하는 물질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어버렸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집 안의 유리 문들이 다 깨어지는 듯한 끔찍하고 긴 비명소리가 나의 목구멍에서 뽑혀나왔고, 눈물이 마구 넘쳤다. 눈물이라기보다는 외상으로 인해 몸 속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 변명을 해봐. 이렇게 묻는 건 지금뿐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을 해. ”

 

 

  나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물었다. 입이 움직일 때마다 얼굴이 깨어지는 듯 아팠다. 김주영을 고개를 저었다. 목이 몹시 뻣뻣해 보였다.

 

  

“ 가능한 한 자세히 말해. ”

“ …구 개월쯤 전부터야. 최근에 분명하게 끝을 냈었어. 주혜가 다니던 지업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 인쇄소에 들어오고 싶어했지만 내가 거절했었어. 그 때문에 최근에 자주 전화를 걸어 애원도 하고 협박도 했지만 만나주지 않았어. 나도 그런 관계를 오래 지속하긴 힘드니까. 처음부터 좀 이상한 애였어. 나에게 접근하려고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우리 사무실에 드나들었던 것 같아. 울 사무실 여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내서 늘 점심을 함께 먹었어. 애가 도시락을 먹음직스럽게 싸오곤 했어.”

  

 

 김주영이 말을 멈추자 나는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 자세히 말할 거 없어. 정신이 불안정한 애야. 몇 번 자살 기도도 했었다고 들었어. 나를 자기 이종사촌 오빠와 혼동하는 도착증세에 빠져있어. 큰 이모가 죽은 후 주혜 어머니가 조카를 데려다 키운 모양인데 어릴 때부터 둘이 신체 접촉을 가졌던 것 같아. 이종사촌 오빠와 약혼했던 여자는 군대갔던 기간까지 합쳐서 육 년 동안이나 사귄 사이였는데 결혼식 전날 자살했다더라. 신혼 살림을 차려놓은 아파트의 욕조에 두 사람이 맨몸으로 얽혀 있는 걸 본 거야. 그 후 이종사촌 오빠는 카이로로 가버렸대. ”

 

  

 그는 숨이 차오르는지 잠시 호흡을 골랐다.

 

  

“ 그 앤 지업사에서 나를 본 첫날부터 접근했어. 제 이종사촌 오빠에 대한 감정을 나에게 이입시킨 거야. 내가 방신한 사이에, 일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이 지내던 때라, 아차 하는 순간에 저질러진 일이었어. 그 앤 처음부터 용의주도하게 접근해왔고 난 너무 방심했고… 미안해. 관계를 끊으려고 주혜를 달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냉담하게도 다했지만 잘 안되더라. ”

 

  

 김주영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나는 얼굴을 가린 두 손을 내렸다.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화장대의 거울을 힐끗 쳐다보았다. 왼쪽 눈은 부풀어오른 피부에 덮여버렸고 오른쪽 눈만 보였다.

  

 

“ 병원에 가자. ”

 

  

 김주영은 나를 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웅얼거리더니 나의 어깨를 붙들었다.

 

 

“ 아이는? 진짜 있었던 일이야? ”

  


 김주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의문과 걷잡을 수 없이 떠밀려오는 기억의 범람에 짓눌리는 표정이었다.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잡아떼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너를 소중히 여기는데 네가 이럴수가 있어.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김주영의 팔을 있는 힘을 다해 후려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두 팔을 휘저으며 김주영의 가슴과 어깨, 얼굴을 때렸다. 김주영은 뒤로 물러섰다. 나는 분명한 발음으로 내뱉었다.

 

  

“ 넌 이제 내 남편이 아니야. 내게 손 대지 마.”



 

 


 



 그 이후로 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두통 때문에 병원에 가면 어김없이 컴퓨터 촬영실로 안내되었다. 검은 인조 가죽이 씌어진 좁다란 침대에 누우면, 머리를 작은 틈에 넣어야 하는데 지그시 조이는 느낌이 든다. 의사는 나의 눈에 흰색 가리개를 씌우며 꼼짝하지 말기를 지시한다. 눈이 가려워진 나는 마치 심장이 없는 모형 인간처럼 기계적인 작동에 의해 작은 터널 같은 곳으로 천천히 말려들어간다. 그럴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촬영 기계가 분쇄기처럼 나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으면… 더는 살고싶지 않아. 의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 별달리 문제 될 만한 상처를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에 생긴 크고 단단한 부위는 단지 결절일 뿐입니다. 약을 타가시고 머리 아프며 다시 오세요. ”

“ 전 정말 아파요, 지금도 아프다구요… ”

“ 통증의 원인이 될 만한 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외려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처에 집착하지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

 

 

 나의 두통은 의사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두통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 자신을 잠 속에 유폐시킨 셈이였다. 자는 동안 내 몸은 변해갔다. 가녀리고 투명하고 납작하던 몸이 생크림을 채운 듯 부풀어올랐다. 어깨도 가슴도 팔도 엉덩이와 복부, 허벅지도 모르는 여인의 몸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슬프고 거북하고 참을 수 없도록 부드럽고 낯선 욕망으로 가득 찬 몸. 가끔 낮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면 거울 속의 여인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고, 나는 어디가고 네가 있느냐고…. 그러면 잠과 잠 사이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자주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내 얼굴은 비 내리는 거리의 활짝 펴진 우산같이 젖었다. 우산살이 더러 부러진 우산같이, 균형을 잃고 구부러진 쪽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김주영은 나의 웃는 모습과 걸음걸이에 반했다고 했다. 상대의 마음을 휘감는 웃음이라고 했던가. 나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근 느낌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눈 아래 약간 그늘져 보이게 하는 긴 속눈썹 정도이다. 그리고 걸음걸이…. 김주영의 표현에 따르면 걸을 떄 나의 걸음걸이는 너무 부드러워서 아주 가느다랗고 가볍고 오만해 보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잠깐 걸을 때조차 아주 먼 곳으로 가는 사람같이 걷는다고 했다.

 

 학교는 졸업하고 사립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할 뻔도 했지만 재단에서 요구한 금액이 너무 많아 다른 친구가 들어갔다. 난 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 1월에 결혼을 했고 그 다음에 1월에 아리를 낳았다. 머리를 다치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반에서 열세번째 등수의 아이가 그렇듯, 2남 3녀 중 두번째 딸이 그렇듯, 보호색을 가진 여린 곤충들이 그렇듯 나는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결혼한 뒤 몇 년 동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행복했었다. 어쩌면 김주영과 함께 사니까 행복해야 한다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의 냄새를 사랑했다. 그의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는 세상을 향해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내 인생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스물한 살에 만난 남자가 그의 전 생에 동안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나 또한 단 하나의 남자만을 사랑하며 평생 동안 하나의 생을 온통 함께 산다는 것. 우리의 냄새를 다른 냄새와 뒤섞지 않는 것. 나의 꿈은 그것뿐이었고 그것은 흡사 하나의 이념과 같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가끔 사별한 아내를 쫓아 자살한 남편이나 남편을 뒤쫓아 죽음을 택한 아내의 이야기를 잡지책에서 읽을 때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만약 남편의 여직원이 우리를 방문했던 그해의 크리스마스 전에 김주영이 죽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예상외의 공허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고, 김주영을 잃은 뒤에는 그렇게 죽는 것으로 내 생은 충분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여직원이 온 그 날. 그 일이 일어나자 모든 것이 달라져버렸다. 나를 포함한 그 모든것이 다시는 예전처럼 되어지지 않았다. 만들다가 만 김주영과 후의 트렁크 팬티를 언제까지나 상자속에 구겨져 있었고 단 한 번 사용한 오븐은 다시 열리지 않았으며 식탁의 서랍 속에 있던 시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반납되지 않았다.






사담


두 편은 프롤로그와 같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독자분들입니다.

한 여자의 얘기가 독자분들의 시점으로 흘러 갈것이구요.

지금 여자의 남편은 김주영이지만 새로운 등장인물은 더 있을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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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빙의글이 아니였어도 충분히 좋은 소설같네요. 오랜만에 읽을거라가 생긴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잘 읽고갑니다!
11년 전
독자2
헝좋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3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신알신하고 기다릴게요ㅎㅎ
11년 전
독자4
대화내용이 좀 더 구어체같았다면 실감이 더했을 것 같은데 살짝 아쉽네요 다음글 기다릴게요
11년 전
독자5
진짜 금손bb 잘 보고갑니다!
11년 전
독자6
와 대박....글이 정말 ...우와
11년 전
독자7
금손....bbb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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