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파란 미용실
w. 비명
“아, 조금 늦었죠. 죄송,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많이 불편하실텐데 직접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성규는 직감적으로 성열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밑에 있다는 걸 파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앉아있다고 해야할까? 손을 쭉 내밀어보니 자신이 예상한 곳에 테이블이 위치했고 자신이 예상한 곳에 의자가 놓여있었다. '드륵ㅡ' 의자가 빠지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놀랐다. 분명 성열이라는 사람이 일어난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한 거지? 움찔해서는 뒤로 빠진 의자를 잘 잡고 몸을 앉혔다. 오는동안 한껏 긴장이 되어서 근육으로 꽉꽉 뭉친 허리가 풀리면서 욱씬욱씬 아파왔다.
“성규씨, 성규씨? 성규씨 왔어요?”
멀리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에 순간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분명 동우 씨임에 틀림이 없었으니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성열이라는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왜지? 사람이 오면 일어나야 되는 게 예의 아닌가? 성규는 제 앞으로 뻗은 동우의 손을 감지하고 붙잡았다. 일어서서는 동우가 이끄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제서야 뒤에서 발소리가 조금은 들려왔다. 성열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도착을 한 곳은 평소 때나 다름없이 연습실 안이었다. 소리를 내면 조금은 웅웅 울려대는 소리가 신기한 이 곳은 앞을 볼 수 없는 내게 새로운 세계와도 같았다. 어느새 발소리는 저만치 멀리 사라지고 성규는 직감적으로 연습실에 동우 씨와 둘이 남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손에 닿는 벽을 짚고 천천히 벽에 기댄 채로 앉았다. 오늘부터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난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임에 행복했지만,
“성열 씨를 쫓으면서 성열 씨의 소리가 되어주시면 돼요.”
너무나도 추상적인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듣기엔 아름답지만, 생각해보면 성열 씨 대신 내가 노래를 하며 다녀야된단 소리였다. 과연 이게 내가 원한 일일까? 남의 뒤에서 어떤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그저 하대받으면서 평생을 이 남자만의 연예인으로 살아야하는 게 옳은 걸까?
“아뇨, 동우 씨. 말씀은 고맙지만,”
“돈이 좀 세게... 갈 지도 몰라요.”
그렇지. 내가 굳이 음악을 선택하는 이유는 '즐거움'의 목적도 있지만,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돈'은 무시못할 존재였다. 이런 직업이 쉽지 않은 것이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던 내가 미웠다. 이미 떨구어진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만히 '얼마나?'하고 묻자, 동우 씨는 '다섯 개'라고 속삭였다. 다섯 개? 가만히 고개를 들어올리면서 천천히 언성을 높혔다.
“오, 오 백?”
“아뇨, 오 억. 억 대라고요.”
“어, 억이요?”
“성열 씨가 울림그룹 혈연이시거든요.”
그저 내 입에 맴도는 건 '아'하는 감탄사 뿐이었다. 울림그룹이라면, 요즘 그렇게 잘 나간다던? 전기세로 오 만원 내는 것도 아까워서 돈을 호호 불고 내는 내가 울림 그룹 혈연 이성열 씨의 목소리가 되어서 오 억이라는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건가? 충분히 내 목소리 전부를 모두 그에게 바칠만한 가치였다. 그래, 뭐 앞도 안 보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내가 이 사람 평생을 위해서 노래부른다고 나쁠 건 없지. 어리석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성열 씨가 사실 노래가 많이 안 되셔서... 성규 씨가 고생 좀 해줘요. 대신 어려운 거 있으면 내가 뒷바라지 해줄게.”
“아.......”
“성열 씨가 성규 씨 목소리 많이 좋아해. 실력파잖아.”
성규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면서 문이 닫혔다.
“역시 장 선생님. 설득력의 왕. 감사합니다. 곧 데뷔하겠구나.”
“그리고 참고로 성열 씨 진짜 잘생겼다?”
“에이... 무슨.”
현재 대화 내용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무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에 그저 맞장구쳐주며 웃어주었다. 지금은 웃을 수밖에 없다. 김성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넌 힘들 수밖에 없잖아. 벌써부터 어려운 거 티 내지 말자. 딱 오 억이라잖아. 내가 살아봤자 얼마나 길게 살겠냐. 오 억만 받고 생각해보자. 벌써부터 티 내지 말자. 성열이라는 사람도 무지 힘들거야. 나 같은 사람을 어쩌다 만나가지고. 그리고 잘생겼다잖아. 내가 성열 씨에게 목소리를 주는 대신 나는 그의 시야를 가져오고, 그의 인기를 가져오는거야. 직접적으로 느끼진 못 하겠지만...
어느 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코 끝은 이상하게 찡해지고, 눈물이 나는 게 혹시나 걸릴까봐 몸을 툭툭 벽에 부딪혀가면서 화장실까지 겨우 도망쳐나왔다. 철퍽 하고 세면대 위 고인 물에 손을 대었다. 앞에는 거울이 있겠지? 나는 왜 내 얼굴도 못 보는거야. 제발, 내 표정이 어떤 지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내 표정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힘이 든 지 한 번만 보여주세요. 하나님.
성규는 천천히 물을 틀고 눈가를 물로 적셨다. 깨끗하게 물로 닦으면, 내 어두운 앞이 닦여나갈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을 꾹 삼키고 계속 빨개진 눈과 코가 다 씻겨나가도록 닦아대었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늦게 왔죠? 너무 죄송합니다 ㅠ.ㅠ
요즘 너무 바빠서 노트북을 손에도 못 댔다는... 그런 소문이 안 돌던가요? (안 돌았을 듯)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를 기다리셨을 몇몇 분들이 계시기에
너무 죄송스럽고 너무 아... ㅠㅠ 대신 조만간 빠른 시일내로 다음 편을 올리도록 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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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암호닉 독자분들께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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