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JR - Daybreak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황민현 上
"민현아! 오늘 날씨 많이 춥지!"
"..."
"나 지금 카페 갈건데, 따뜻한 커피라도 사다줄까? 마실래?"
"아니."
"치, 사다주면 마실거면서! 그럴줄 알고 사왔지, 자 여기!"
민현이는 이럴줄 알았다는 듯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내 커피를 받아든다. 그마저도 너무 멋있어.. 설레...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오지.. 오늘 비 올지도 모른다구 하던데. 우산있어?"
"아니."
"비는 싫은데. 차라리 눈오면 좋겠다. 그치?"
"글쎄."
"나 2교시 공강인데, 너는? 혹시 수업없으면,"
"저기,"
"어, 응!"
"비켜줄래."
"응?"
"나 약속있는데."
약속이 있다는 말과 함께 시선을 옮기는 민현이. 그 시선을 따라가보면,
"역시, 황민현 껌딱지! 오늘도 있네-"
못말린다는 듯이 나와 황민현을 쳐다보며 개구지게 웃는 옹성우가 보였다.
"아, 약속있었구나! 미안해, 바쁜데 내가 귀찮게해서,"
"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지나쳐 옹성우에게 걸어가는 민현이.
그런 민현이에게 서운하다가도 민현이 손에 들린 커피를 보니 또 베시시 웃음이 나온다.
멀어져가는 민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를 탁- 친다.
"아씨!"
"아씨?"
"아이씨.. 아, 왜때려!"
"야, 쟤한테 하는거 반만이라도 나한테 좀 해봐라."
"내가 민현이한테 하는걸 너한테 왜하냐?"
"백날 커피 갖다바쳐봐라- 쟤가 너한테 커피한번 사주나."
"알지도 못하는게.. 가만히 있어."
"너도 그만해, 징그럽다 이제"
"징그럽긴.. 모르면 조용히 있어. 열번 찍어서 안넘어가는 나무 없거든?"
열번은 무슨... 백번은 더 찍은것 같네
"야야 솔직히 얼굴만보면 내가 좀 더 낫지 않냐? 진짜로"
"...너가 제일 징그럽다 진짜."
"오케오케 인정-"
친구들이 늘 하는말이다. 백날 그렇게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 그렇다. 민현이만 졸졸 따라다녔지만 달라진건 없었다.
선물 공세가 필요한걸까, 해서 민현이를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매일같이 커피를 사다 바쳤지만 민현이는 한결 같았다.
덕분에 카페 쿠폰만 두세장이 훌쩍 넘어가고.. 민현이와 나 사이는 발전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유, 어쩌다 저렇게 됐냐 김여주. 어느 날 갑자기 좋다고 따라다니기 시작해서는 아주,"
.. 그러게. 어쩌다 이렇게 됐냐.
궁시렁 거리는 김재환을 목소리를 들으니 또 한번 그날이 떠올랐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난 그날이.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황민현
"가위, 바위, 보!"
"..."
"..."
"오케오케! 김여주 빨리 갔다와"
"...아 재환,"
"응 안돼- 얼른 갔다와"
아씨, 비도 오는게 귀찮게 뭐야 이게.
비오는날 동아리방에서 과제를 하며 수다를 떨땐 따뜻한 커피만큼 좋은게 없지만, 또 그만큼 귀찮은게 학교 앞 카페까지 갔다오는거다.
김재환이랑 가위바위보를 하는게 아니었어.. 가위바위보도 못하는게 괜히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토독- 톡, 톡,
1층 로비를 나서 유리문을 열자 보슬보슬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정도는.. 맞고 가도 되겠지? 바로 요 앞인데 뭐.
요사이 비가 왔다, 안왔다 하늘이 변덕을 부려 걱정되긴 했지만 갔다오는사이에 많이 와봤자 얼마나 많이 오겠어.
대충 후드티 모자를 덮어쓰고 종종걸음으로 교문 쪽으로 뛰어가자 바로앞에 있는 횡단보도에 타이밍 좋게 초록불이 켜졌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안경을 적셔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카페까지 뛰어갔다.
-
"주문하시겠어요?"
"카페모카 따뜻한걸로 두잔이요."
안경을 벗어 옷으로 닦아 대충 후드 주머니에 넣어두고 비에 살짝 젖은 옷을 털었다. 아 장마가 언제 끝나려나.. 날씨는 벌써 초가을인데.
안경이 없어 흐릿하게 보이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울리는 진동벨에 커피 두잔을 건네받고 카페문을 열고 나왔다.
쏴아-
음? 소리가 아까랑 좀 다른데.
카페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 커피를 잠시 놓아두고 주머니에 넣어놨던 안경을 쓰자, 입이 떠억 벌어졌다.
분명히 10분 전만 해도 보슬보슬 오고 있던 비가 아주 세차게 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다.
"소나기겠지..?"
그칠때까지 조금만 앉아있다가 갈까, 하는 순간
카톡-
「김짼 : 커피를 사오랬지 만들어오랬냐」
아유, 김재환 이 망할.
비가 오는데 걱정은 못해줄 망정.
「야 비와. 우산 좀 들고와봐」
「김짼 : 그럼 가위바위보 한 의미가 없잖아. 누가 우산 안들고가랬냐~ 엡벱베ㅔ ㅃㄹㅇ」
아오 진짜 그냥 아우 그냥 이새끼를.
욕이 입안을 맴돌았다. 약올라죽겠네.
그나마 희망이었던 김재환은 전혀 데리러 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대로 비 그치길 기다렸다간 김재환의 재촉에 속만 터질 것 같았다.
아몰라, 그냥 눈 딱감고 뛰어가야지.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카페 테라스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우산 하나가 씌워졌다.
"..."
아이들이 종종 언급하던 과탑. 우리과의 황민현이었다.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릴때부터 얼굴을 몇번 봐왔고, 반반한 외모라고 생각해왔던 아이다.
그저 그 뿐이었다. 그저 나에겐 우리과 과탑. 잘생긴 아이. 그것 뿐인 아이었다. 그런데,
"어... 나 괜찮은데."
"받아."
..진짜 잘생겼다.
"아.. 아니야. 정말 괜찮은데"
"..."
"저... 저기!"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자 던지다시피 내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 본인은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학교로 뛰어간다.
친하지도않았고, 이렇게 가까이서 본것도 처음인것같은데..
묘했다. 나에게 쥐어진 우산의 손잡이에는 황민현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무심해 보였지만 손잡이의 온기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3개월전 그 때. 그 날. 그 순간. 그렇게, 난 너에게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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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황민현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