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지려고요 W. 워너워너
옹성우는 누가봐도 아주 잘 생겼고 거기에 공부까지 잘 한다. 체력은 약하지만 운동도 잘하는 편이다. 선생님들은 성우보고 연예인이나 하라고 부추겼고, 그의 주위에는 항상 이쁜 여자아이들로 가득했다. 아, 생각해보니까 여자애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그를 좋아했던 거 같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강다니엘과 옹성우는 학교에서 나름 유명인사였고, 그만큼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그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건 나 혼자밖에 없었다. “ㅇㅇ야, 성우 괜찮지 않아?” 이런 말을 여자친구인 나에게 서슴지않고 물어오는 사람부터 “이거 성우한테 전해줘라. 너 걔랑 친하잖아.” 라며 나에게 선물을 대신 전해달라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했다. 뭔가 성우가 나만의 애인이 아니라 만인의 연인이 된 거 같아 혼자 공허함을 느꼈다. 그에 비해 나는 하찮고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감없는 아이니까. 그저 평범한 보통의 아이니까. “집에 가자” 매일 밤 10시, 야자가 끝난 시간 쯤이면 성우는 우리 교실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성우를 보며 나만 알고있을 쓸쓸함을 애써 묻어 두었다. 그래, 남들 눈은 신경 쓰지말자. 하루는 성우 반 종례가 늦어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느릿느릿 가방을 챙겨 여유롭게 교실 문을 나섰다. 그때 내 어깨를 잡아 나를 불러 세우는 여자 아이들 무리. 흔히 노는 애들 이라고 불리우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ㅇㅇ야” “어?” “너 오늘도 성우랑 같이 가?” “응” “그럼 오늘만 내가 성우랑 가면 안 될까?” 뭐지 이 년은? 그녀의 말은 부탁도 아닌 강요였고 명령이었다. 얼굴도 예뻐 다른 학교 남자 애들까지 이 친구를 보러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정도로 이쁘게 생겼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 친구를 보니 내가 옹성우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더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응. 안돼” 이 낯선 무리 속에서 흐르는 묘한 신경전에서 나 대신 대답해준건 다름아닌 옹성우였다. 성우는 마이를 다 입지도 못한 채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방금 나왔구나 “난 얘랑 가는게 좋은데” “저기, 성우야 왜이리 ㅇㅇ를 아껴? 뭐 사귀기라도 하나?” 빈정거림이었다. 겨우 너 따위가? 이런 어조였다.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가시 박힌 진심이. 그 빈정거림에 그녀의 친구들은 피식거리며 웃었고, 그 바람빠진 웃음들은 나에게 창이 되어 돌아왔다. “아, 몰랐어? 우리 사귀는 거.” 성우의 어두운 목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고, 나를 둘러싸던 그 무리들의 웃음소리가 한 순간에 멈췄다. 뭐? 그녀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고 성우는 또다시 침착하게 되말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했고 그래서 사귀는데. 문제있어?” 없지? 그럼 우리는 갈게. 옹성우는 나의 어깨를 감싸며 발걸음을 돌렸고 나는 아무 말없이 그와 걸음을 맞췄다.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된 기분. 아마 너는 평생 내 마음 모르겠지. 평소와 똑같이 버스를 탔고, 평소와 똑같이 맨 뒷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들리는건 어느 정류장인지 알려주는 안내음 소리였는데, 어느 순간 성우가 내 팔목을 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왜? 여기 다음이 우리 집인데” “그니까 여기서 내리자고” 나를 향해 내뱉은 성우의 말에서 느꼈다. 얘 지금 나한테 뭔가 화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구나. 근데 지가 왜 화가 나? 내가 더 화나는거 아니냐. 내가 평소 내리는 정류장의 전 정류장에서 내려 우리 둘은 또 그저 묵묵히 걸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이번에는 나였다. “할 말이 뭔데” 뭔 말을 하려고 10분 가량을 같이 걷자는 거야.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ㅇㅇ야, 넌 나 만나는게 싫어?”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당황스럽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옹성우를 올려다 보았다. 얜 또 뭔 소리인가. “아니.. 내가 너 먼저 좋아하고, 더 많이 좋아하는 건 나도 아는데” 옹성우는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자기딴에는 티를 안 낸다고 노력하고 있지만 표정에서 부터 티나는 그의 감정 변화. “넌 맨날 애들이 나랑 사귀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잖아..” 잔뜩 속상한 얼굴로 나를 향해 몸을 돌리는 성우를 보니 묵혀둔 서운함이 사라지다가도 의아해졌다. 근데 그에 맞는 답변을 찾는건 너무 어려웠다. 왜 가만히 있냐고? 내 입으로 나 자신이 창피하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냐.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대답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거야” 나는 너가 정말 좋아, 근데 가끔 너는 너무 어려워. 내 마음이 확실히 너인데 그게 난 너무 눈치가 보인다고. “왜 못 하는데?” “... 집에 가자” “아니, 왜 못 하냐고” 내가 알고 지내던 성우와는 전혀 다른, 그런 낯선 목소리였다. 어둡고 아주 짙은, 그러면서도 그 안에 잔뜩 서운함이 묻어있는 그런 목소리. “왜 너랑 사귀는지 말 못 하냐고?” “...” “옹성우 이건 네가 이해 못 해.” “그럼 이해하게 해줘.” 성우의 어둠은 처음이었다. 등을 돌려 그를 앞서가려던 나의 팔목을 잡은 성우, 그런 그를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만일 내가 싫은거라면, 너를 억지로 잡아두고 싶지는 않아” “그런거 아니야” 성우도 나를 따라 인상을 찌푸렸고 그런 매서운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눈동자는 안쓰러울 정도로 흔들렸다. 강해보이지만 약한 사람. 완벽해보이지만 허술한 사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사람. 왈칵, 성우의 눈동자를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무언가 묵직한게 목구멍에 꽉 막힌 그런 기분. 내가 뭐라고 너같은 대단한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짓는 거야. “그럼 뭔ㄷ, 어.. 울어?” “안 울어” 아, 존나 쪽팔려. 마감을 하던 카페 알바생도, 지나가던 노부부도 우리 둘을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쳤다. 내 앞에 성우는 아까의 그 삭막함을 싹 거두고선 울먹이는 나를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쩔쩔맸다. 왜 울고 그래..잘 안 우는 애가.. 성우는 허리를 굽혀 내 얼굴을 들여다 보다가 이내 나를 제 품에 안았다. 미안해, 내가 못나서 미안해 그렇게 성우 품에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혼자 묵혀두었던 서러움과 주변 사람들의 날카로운 눈총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고.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싶어서,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너를 피했었다고. 옹성우는 울분을 토해내는 나를 아무말없이 그냥 꽉 안아주었다. 그런 성우의 침묵과 토닥임은 유일하게 나를 잠재울 수 있었다. 내 울먹임이 잦아지자 성우는 그제야 나를 제 품에서 떼어내곤 내 얼굴에 묻어있는 눈물 자국을 조심스레 닦는다. 뒤늦게 쪽팔림이 몰려왔다. 젠장.. “이거나 입어라” 옹성우는 자신의 손에 들고있는 후드집업을 대충 내 어깨에 걸치고는 후드를 내 머리에 씌웠다. 후드 끈을 꽉 조여주는 것도 잊지 않고. “..나 지금 얼굴 가릴만큼 못 생겼냐” “그러겠냐” 내 키에 맞춰 무릎을 굽힌 성우가 내 웅얼거림에 대답하면서 이마를 아프지않게 살짝 쳤다. 추운데 울어서 어떡해. 차가워진 나의 두 볼을 꾹 누르며. 가자, 나에게 내미는 성우의 큰 손을 바라만보다가 그의 부축임에 그 손을 꽉 잡았다. 그래, 나는 결국 잡았다. 너의 손을. “근데 ㅇㅇ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구나-“ “조용히 좀 해줄래?” “근데 나는 그냥 너라서 좋은거야” 무심하게 툭하고 내뱉는 성우의 음성.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싶었을 그 말. “뭘 더 꾸미지 않아도 그냥 너라서 좋아하는 거라고” “알았어” 민망한 기분에 괜히 뚱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눈물을 오억 바가지 흘렸다. 성우는 잡은 내 손을 더 꽉 쥐었고, 나도 그를 따라 세게 손을 잡았다. “그니까 너를 많이 예뻐해 줘.” “...” “내가 좋아하는 애니까 잘 부탁한다고. 알았지?” 나 자신을 예뻐해 주라며 신신당부하는 성우의 목소리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도 무언가에 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꼭 그럴게. 그 날 밤은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성우를 만나왔지만 항상 그가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성우는 어리지 않았다. 오늘도 그렇게 너에게 위로를 받았다.
7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지려고요 오전 수업은 몇 년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늘도 수업 내내 멍하니 교수님의 움직임만 좇다가 정신차리고 필기 따라가고를 반복했다. 아, 나중에 효주 노트나 빌려서 복습해야겠다. 인생..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며 강의실 문을 나서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책상에 처박았다. 피곤해 죽겠네. 마른 세수를 한 번하고, 들고온 에코백에 꾸역꾸역 책과 노트를 구겨 넣고선 어깨에 둘러맸다. 강의실 문을 나서 기지개를 크게 한 번 피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내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나랑 밥 좀 같이 먹어줘라.." "..나?" "어..강다니엘이 나 버렸다구.." 오전 수업이 다 끝나 도서관으로 향하려던 내 발길을 붙잡은 건 다름아닌 옹성우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되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성우다. 비 맞은 강아지 마냥 내 옆으로 쫄래 쫄래 다가와 칭얼거리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허, 강단이 말고 친구는" "없어. 나 아싸야.." 아싸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가 아싸라면 나는 우주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먼지 쯤 되려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성우를 올려다 보았다. 아 근데 덩치 큰 애가 고개를 푹 숙이고 나에게 찡얼 거리는게 좀 귀여운 거 같다. 그래서 결국엔, "뭐 먹을건데" 아주 늦은 생일 선물로 밥이라도 한 끼 사주지. 비록 몇 달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 나 나름대로의 합리화 중인거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자기합리화, 유일하게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맛있는 거 사준다니까 고작 피자?" "왜, 난 여기 좋은데. 우리 옛날에 많이 왔," ".." "..었, 아 뭐래. 아,아이스크림 먹을래?"
옛날부터 성우가 좋아해 자주 왔었던 피자 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였다. 성우는 자신의 말에 당황해하며 시선을 바쁘게 돌렸다. 참나, 귀 끝은 빨개지고. 감정 표현이 지나치게 솔직한 옹성우였다. 당황함이 가득 묻은 채 들어간 아이스크림 집도 결국에는 우리가 자주 갔던 그 집이었다. 집돌이들끼리 옛날에 뭐 이리도 많이 돌아 다녔었는지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놀라우리만큼 추억이 많아서 그때 기억들을 숨기느라 엄청나게 애썼다. 아, 그냥 다른 동네로 가자고 할 걸 그랬나. 대학로는 왜이리 많이 돌아다녔던걸까.
"자, 받아" 이것저것 잡다하게 생각하는데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성우의 손길에 이내 정신을 차렸다. 사이 좋게 하나 씩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늦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거리를 걸었다. 적당한 수의 사람들과 적당한 온도의 거리는 나를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오랜만에 도서관 밖으로 나와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성우는 나를 안쪽으로 두고 자신은 찻길 쪽으로 걸었다. 이제까지 계속해서 받아왔던 배려였지만 오늘은 그 감회가 남달랐다. 요즘들어 나조차도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흔한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옛날 생각이 났다. 김재환과 함께 있을때도 성우 생각이 났다. 재환이의 작은 버릇들이 성우와 너무나 똑같아서, 그래서 그를 쉽게 거부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계속해서 그 버릇을 보고싶어, 사소한 챙김이 그리워서 재환이를 곁에 둔게 아니었을까. 지금 너 뭐하는거야? 내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었고 수 많은 죄책감이 쌓였다. 아직도 나에게는 의문점과 답을 내지 못한 질문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확실한 사실은 정말 엿같게도 옹성우가, "ㅇㅇ야 다 녹는다." 다시 좋아졌다. 아니다. 어쩌면 ‘다시’가 아니라 원래부터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를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염병할, 그 지옥을 맛 보고도? 니 감정에 확신해? 그냥 그건 정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건 오랜 사귄 애인에 대한 정이자 마지막 예의라고. 그런데 친구라는 말에 심장이 떨어지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정인가. 나를 아주 좋아해주는 아주 괜찮은 이성의 등장에도 옛 애인이 계속 생각나는게 정이란 말인가. 고개를 내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정이 아닌거 같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좆같다, 이거다. 미련? 후회? 어떤 수식어를 달아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옹성우의 마음도 모른다. 정말로 나를 친구 관계로 다시 만나보고 싶은건지, 아니면 다른 마음이 있는건지.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거 같다. 나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성우에 대해 미숙하다. 언제 가지고 온 건지 매장에 있던 휴지를 내 손에 쥐어주는 옹성우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한 입 덜어주는 옹성우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익숙해있던 성우의 모든 행동들이 처음 그 느낌 그대로 떨렸고 설레이기까지 했다. 젠장, 맞다. 나는 지금 흔들린다. 미쳤어 진짜. 성우의 애매한 행동에 밤잠 못 드는 내 자신이 미웠다.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스스로가 너무 답답했다. "어, 성우야!" 그때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한 여자. 눈을 찡그리며 그 인영을 눈에 담으려고 애썼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성우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 그 여자는 긴 웨이브 머리에 프릴 달린 원피스를 입은.. 그래, 다름아닌 그때 걔. 무용과 이쁜년이다.
어, 어.. 안녕. 성우는 나 한 번, 그리고 그 여자 한 번 이렇게 계속해서 번갈아 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 표정이 엄청나게 굳어져 있기 때문이겠지. "오랜만이다, 정말로! 잘 지냈어? 나는 너 진짜 보고싶었어.." 염병, 나는 나도 모르게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그녀를 쳐다 보았다. 사실 쳐다본게 아니라 노려보았다. 어따대고 꼬리를 치고 지랄이지, 내가 신경 쓸 입장은 아니지만. 착한 성우는 또 그걸 곧이 곧대로 들어주고 있었다. 열불나 죽을 거 같아.. 성우야 쟤는 여우야, 여우. "아, 성우야! 나 휴대폰 바꿔서 번호가 다 날라갔어.. 번호 다시 찍어줘라!" 다..시..? 무용과 이쁜년의 그 얇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앵앵 거렸다. 뭐, 다시? 원래도 알고 있었어? 무의식적으로 한 쪽 눈썹이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허, 근데 쟤는 내가 뭐 안중에도 없나. 이쁘기는 존나 이쁘네.. 아 화장이라도 더 진하게 할 걸.. 오늘 왜 렌즈를 안 꼈지? 혼자 입술을 깨물으며 아까 틴트를 한 번 더 덧바르지 않은 나를 자책하는데, 성우는 그 아이의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멀뚱히 나를 내려다 보았다. 뭐, 왜. 내 유치한 질투가 들켰을까 괜히 겁이 났다.
"나 얘한테 번호 알려줘?" "..뭐?" "나 지금 여기 내 번호 찍냐고" 그 순간 성우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했다.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 어딘가 불안한 그 흔들림. 혼란스러웠다.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성우의 무표정은 여전히 낯설다. 감정표현에 능숙한 성우여도 그 표정에서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가 없으니까. "옆에 여자친구야? 아니지 않아? 아닌 거 같은데 영.. 그니까 빨리 알려줘어-" 무용과 년은 나를 한 번 훑어 보더니 다시 성우에게 앵앵거렸다. 이번에는 성우의 어깨에 작은 터치도 해가며. 그 행동에 자연스럽게 인상이 찌푸려졌고, 성우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뭐, 내가 뭐 어때서. 오늘 나름 추하지 않게 입었는데. 내가 뭐 어때서 그래. 자존심이 상했다. 나도 원피스 입고 나 올걸. 후회도 되었다. 성우의 눈빛은 나에게 무얼 말하고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그를 봐온 사람으로서 하나는 알겠다. "어 여자친구야." 충동적이였다. 대답이 없는 나에게서 한숨을 쉬며 시선을 거두고는 무용과의 핸드폰을 어설프게 쥐던 성우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어, 여자친구 맞으니까 너 이런거 안 했으면 좋겠어. 학교 앞에 찾아 오는 것도 불쾌해. 성우라고 부르는 것도 싫고" ".." "이런 손길도 거슬려. 앞으로는 하지 말아줘." 나는 성우의 손 위에 어설프게 올려진 그 여우같은 손을 살짝 밀치며 말했다. 여우같은 년한테는 보다 더 한 여우짓이 필요하다. 그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선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나를 지나쳤다. 그 아이가 지나간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고딩때도 안 한 거같은 나의 유치한 대응에 스스로에게 소름이 잔뜩 돋았다. 그래, 사실 오늘 내가 입으로 싼 똥은 처음 그 아이를 학교 앞에서 보았을 때 했어야 할 말이었다. 그니까 성우와 헤어지기 전에. 그때 그렇게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안 감았어도 츄리닝이 잔뜩 늘어났어도 당당하게. 여자친구는 너가 아니라 나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이미 나를 지나쳤고 시간은 벌써 늦었다. 그리고 지금 옹성우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깨지 못 할거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다. 이 민망한 분위기에 그저 두 눈만 꿈뻑거렸다. 성우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나는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쳐다봐, 쪽팔리니까" “왜 그런거야?” “..내가 널 하루이틀 봤냐. 얼굴에 딱 봐도 주기 싫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적혀있는데. 쌩까?” 넌 너무 기분이 표정에 드러나, 그거 조심해야 돼. 괜히 어른인 척 조언까지 해주며 내 무안함을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너도 너인데 나도 참 나다. 내 말에 성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바람빠지는 웃음을 픽, 하고 내뱉고선 나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었다. 하 오늘 일진 참 사납구나. "그런데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안 나쁜데, 그냥 뭐 괜찮은 거 같아." 친구 잘 뒀네 옹성우,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내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꽁다리를 가져가 가까운 쓰레기 통에 버리고 오는 성우다. 아이스크림 꽁다리를 나 대신 버려주는 그의 뒷 모습 속에선 익숙함이 묻어났다. '이 뒷 꽁다리는 눅눅해져서 싫어. 종이 씹는 거 같아.' 성우는 먼 옛날 내가 흘리듯이 한 말을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는 개뿔, 그게 쉽니 너는. 친구라고 칭하는 그의 태도가 저릿하게 아파오면서도 내 감정에 겁이 났다. 너는 그냥 뭐 괜찮은 거 같다고? 근데 나는 지금 하나도 안 괜찮아. 아까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까 왜 내 눈치를 보았는지.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떤건지. 궁금한 거는 너무 많았지만,
"오늘 불금이라 그런가. 사람 진짜 많다." 그냥 "사람 많아서 잃어버릴까봐 잡는 거야. 너 길치잖아." 다음에 물어 보기로 했다. 익숙하게 내 손을 감싸오는 나보다 훨씬 큰 옹성우의 손길에 남몰래 흠칫 놀랐다. 내 손은 여전히 차가웠고 성우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너는 여전히 헷갈렸고,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인파들에 치이지 않게 나를 감싸오는 성우를 올려다 보니 뭐가 그리 신나는 지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다. 허, 신나냐. 뭐가 그리 신나, 응?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이 손을 잡고 있는 순간 확실하게 깨달아버렸다.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세상 끝까지라도 걸어가고 싶었다.
꺼진 줄 알았던 불씨는 불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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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워너워너입니다 !!!! 오늘은 왕창 성우에요 !!!!!!!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렷군요. 역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걸 잃지 말아야죠 ,, 오늘도 이 밤에 , 그리고 언제든지 7년옹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저의 뮤즈인거 알아주세요 ? 날이 많이 추워요. 독감 조심하시고 앞으로의 당신의 나날들도 행복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 독자님 정말루 완전히 레알루 감사합니다?? 매우매우 사랑합니다 ?? 이 시대 최고의 독자님이셔요 . 암호닉은 ㅅㅐ글 파서 조만간 찾아오겠습니당 ! 그때 정리해서 받을게요 ! 사실 암호닉이 뭔지 이번에 처음알아서 매우 어설퍼요 ㅎㅎㅎ... 그냥 독자님 부르는거쟈나여 그쳐..? 하이튼 완결까지 같이 가주세용 ??? bgm; 라디- 그냥 보고싶은 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