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또라이
글 ; 노랑의자
오늘은 황민현과 등교를 같이 하길 은근히 바랐는데,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번호라도 있으면 언제 가냐고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씩씩하게 걸어 학교로 향했다. 황민현은 오늘 먼저 와 있었다. 김재환도 물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얘도 은근 학교 빨리 온단 말이지.
"야."
"어, 왔냐?"
"너 학교 언제와? 맨날 나보다 빨리오네."
"니가 늦게 오는 건 아니고?"
유연하게도 휘어지는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장난을 걸어대는 김재환을 그대로 무시해주고 가방을 풀었다. 아, 맞다. 후드티 안 가져왔네. 집 들어가기 전에 주면 되겠지? 조심스레 쳐다본 황민현은 후드 집업 하나를 벗어 놓고 있었다. 진짜 감기걸리게 할 뻔 했네.
그나저나, 일 교시부터 수학이라니. 일주일 마다 돌아오는 요일이지만, 그래도 싫은 건 여전했다. 김재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수학쌤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쉰다. 느릿 느릿 수능특강을 꺼내는 게, 하기 싫다고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 딱딱하기만 한 의자 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댔다.
"다음 주에 문제 풀이 발표 시킬거니까, 세네명 씩 조 정해라."
내가 지금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건가.. 조별 과제라니요. 더욱 절망스러운 마음에 멍하게 앞만 보는데, 다들 조를 짜기 시작한건지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앞 친구를 툭툭 치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린다. 누구랑 하던지 아무 의미 없다, 하고 의욕 없이 있었는데 그런 나를 정신차리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야 짝꿍. 나랑 민현이랑 너랑 셋이. 콜?"
"오케 콜."
"야 민현아! 우리 셋이 하자."
맞다. 나는 황민현이랑 같은 반이었다. 같은 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급속도로 행복해져 온 얼굴에 기대를 담고 황민현을 쳐다보았다. 김재환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 황민현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별로 모여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황민현이 내 뒷자리로 와서 앉았다. 아, 좋다 딱좋다. 만족스러운 조원에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는데, 교실 앞쪽에서 여우같은 여자애가 다가와 황민현의 옆에 살짝 앉으며 묻는다.
"민현아, 나도 여기 조 해도 돼?"
저번에 황민현과 짝피구를 했던 그 여자애였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눈웃음까지 치며 묻는다. 아니, 조원이 황민현 밖에 없니? 왜 우리한테는 묻지도 않고 황민현만 쳐다보고 있냐. 난감하고 황당한 건 황민현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를 번갈아보며 답을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질투나서 쟤랑 조 하기 싫다고 그러기도 애매하고, 김재환은 얘가 황민현 좋아하는 걸 모를거고, 황민현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 완전 망했네.
"..어. 그래."
"진짜? 고마워!"
아니, 우리한테는 안 고마운가? 그리고 고마운데 황민현 팔은 또 왜 은근슬쩍 잡는 거지? 주체 못하고 얼굴이 굳어지는데,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팔을 빼내는 황민현에 속으로 나이스샷!을 외쳤다. 아주 좋아, 저런 철벽. 그러던지 말던지 여우는 황민현을 보며 싱글벙글이다.
"문제는 두 문제고, 꽤 어려울 테니까 틈틈히 머리 맞대고 풀어봐."
우리 조에게 부여된 문제들은, 긴 풀이가 필요한 까다로운 문제였다. 이 문제들을 푸는 건 둘째치고, 발표를 어떻게 할지도 문제다. 발표라곤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 지목 당해서 지문을 몇 번 읽은 게 다인데. 문제 풀이는 틈틈이 하기로 했고, 발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를 했다.
"발표는 몇 명이 할까?"
"두 명이 나을 것 같은데."
"에이, 무슨 복잡하게 두 명이나 해. 한 명이 깔끔하게 끝내자."
뭐지, 말투가 완전 어머, 얘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니~ 하고 비웃는 뉘앙스다. 그러고선 입으로 손을 가리고 작게 웃는다. 억지로 눈웃음 짓지 마. 너 눈 다 보이게 웃는 거 다 알거든 여우야. 아까부터 밉살스럽게만 행동하는 여우의 모습에 언짢아진다.
"내 생각엔.. 두 명이 나을 것 같아. 너는?"
"나도 둘이 하는 게 나을 듯."
"아..하하, 그럼 두 명이 하자! 한 명이 하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그치?"
두 명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황민현과 김재환의 반응에 잠시 당황한 것 같던 여우는 금세 태도를 바꾼다. 태세전환 좀 보소..
그렇게 발표 방법은 대충 정하고, 수업 시간이 오 분 정도 남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여우가 황민현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덕분에 김재환이랑만 신나게 떠들었지만.
"오늘 점심 뭔 줄 아냐?"
"너 너무한거 아니야?"
"왜왜. 설마 고기?"
"닭강정."
"와, 대박."
닭강정 하나에 금세 신이 난 김재환에 덩달아 나도 들떠서 웃었다. 그러던 중, 마침 후드티가 생각나 황민현을 톡톡 불러 말했다.
"맞아. 나 후드티 진짜 가져?"
"아.."
내가 꺼낸 후드티 얘기에 어제의 일이 생각난 듯 고개를 푹 숙이는 황민현이다. 금세 빨개진 귀도 한 몫 했다. 아, 귀여워. 확실히 놀리는 맛이 있다. 더 친해지면 엄청 놀려야지.
"깜빡하고 안 가져왔어. 이따 집 가기 전에 줄게."
"응."
"너네 집 같이 가?"
"응."
"왜?"
왜냐니. 앞집 사니까요.. 아니 굳이 집이 가깝지 않더라도 방향이 같으면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대체 왜? 하는 느낌의 물음이다. 아, 정말 정이 안 가네 정이.
"앞 집 살아, 우리."
내 팔자주름이 띠꺼움으로 깊어지고 있던 중, 사이다 같은 황민현의 대답에 팔자주름은 펴지고 광대가 올라갔다. 우리래, 대박. 게다가 나와 황민현이 이웃이라는 소리에 여우는 좀 놀랐는지 진짜? 하고 꽤 큰 목소리로 묻는다. 놀랄 만 하지,음.
뭐랄까, 예전에는 여우가 그저 같은 반인데 별로 안 친한 애들 중 하나였는데 황민현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자꾸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저 여우짓만 좀 안하면 내가 그냥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할텐데 말이야.. 여우에 대한 생각을 막 하고있을 때 쯤,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고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아, 당 떨어져.
#
"아 대박 배고팠어 나."
"왜? 아침 안 먹음?"
"아니 진짜 조금 먹어서 무슨 에피타이져인줄."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자고 있던 김재환의 등을 팍 쳐서 깨우고선 옆 반에 있는 친구와 팔짱을 끼고 급식실로 향했다. 배고파 배고파, 노래를 불러댔더니 친구가 옆에서 시끄럽다고 입을 막아버린다. 일찍 온 편이라 많이 남은 자리 중 한 군데를 골라 마주 보고 앉았다. 완전 배고팠는데 마침 반찬도 닭강정이라니.
"야. 너 요즘 보면 완전 황민현이랑 러브러브 할 삘이더라?"
"아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니가 하도 밤마다 카톡으로 떠들어대서 이제 더 들을 얘기도 없다."
오늘 이런 게 설렜다, 저런 게 설렜다, 들어줄 사람이 친구 뿐이라 매일 카톡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 싶어 조금 미안해졌다. 그래도, 친구 썸탈 때도 내가 얘기 제일 잘 들어줬는데.. 장난으로 친구를 흘겨보자 밥이나 먹어. 하고 닭강정을 젓가락으로 푹 찔러 먹는다. 아, 황민현이랑 같은 조라니.. 대학도 같은 데 가면 진짜 좋겠다. 자연스레 떠오른 황민현 생각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니, 친구가 앞에서 가지가지 한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좋냐?"
"뭐가 좋아?"
"아, 깜짝이야."
"나 앉는다? 앉아도 되지?"
"안녕."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김재환이 뭐가 좋냐고 묻는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다가온 황민현이 내 옆에 식판을 내려놓고 안녕, 한다. 아.. 점심시간에도 이렇게 옆에 있어주면 나 좀 행복한데.. 언제나 느끼지만 웃는 거 진짜 예쁘다. 나는 스윗하다. 를 온 얼굴로 표출하는 느낌이다.
"아, 성이름 친구야?"
"안녕."
"오, 짝꿍 친구도 있었어?"
"닭강정 전부 훔쳐가기 전에 얌전히 밥 먹어라."
진지한 말투로 말했는데도, 윙크를 해대며 장난장난~ 한다. 난 황민현 윙크 말고는 보고싶지 않은데. 어쩌라고. 의 표정을 보여주자 에이 각박하다, 하며 내 친구와 금세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하여간 친화력은 쓸데 없이 좋아가지고.
"민현아."
"응."
"너 너블대 갈거지?"
"갑자기 왜?"
"그냥.."
너랑 같은 대학교 가고싶어서지 임마!!!
마음 속 소리는 절대 내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며 닭강정을 하나 찍어 먹었다. 잠시 말이 없던 황민현은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하고 다정하게도 대답한다. 아, 나 너블대는 아마 아슬아슬 할 것 같은데.. 으, 벌써 스트레스다. 머릿 속을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저번에 황민현이 우유를 먹던 게 생각났다.
"아, 맞다. 흰우유에 빨대 많이 꽂아서 먹으면 진짜 잡생각 없어져?"
"어?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김재환이 말해줬어."
"아.. 난 그냥 그런 느낌이더라. 왜? 요즘 스트레스 많아?"
그렇게 다정하게 물어보시면 저는 코피가 날 것 같은데요..
강당에서 감기가 걸릴 것 같다는 헛소리에 걱정 가득히 물어본 그 얼굴이다. 으, 넘 잘생겼어.. 그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아, 아냐. 그냥 궁금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황민현은 내가 자기 얼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벌렁거리는 걸 알기나 할까. 친해지니까 심장이 쪼끔 힘들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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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졸리다.
저녁을 먹자 마자 시작되는 야자시간은 나에게 너무나도 잔인했다. 앉아서는 도저히 집중이 안 돼서 교실 뒤쪽에 있는 키높이 책상에서 하려고 책과 필통을 챙겨 일어났다. 한 책상에 세 명 정도가 서면 딱 적당한 넓이의 책상 왼쪽에 섰다. 졸리는 국어 말고, 머리 써야되는 수학을 먼저 하자.
한 오 분쯤 지났을까, 누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곁눈으로 보여 고개를 들었더니,
안경을 쓴 황민현이 두꺼워 보이는 문제집을 들고 내 오른쪽에 선다. 안경..안..경..안..겨..ㅇ...
잠깐 정신을 놓을 뻔 했다. 무슨 안경이 저렇게 잘 어울리냐.
황민현이 옆에 있어서 아주 조금은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시험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쫓기듯 문제에 집중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잘 안풀리는 문제가 없다. 내가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닌데. 옆에 황민현이 있어서 그런가. 야자 1교시가 거의 끝나갈 때 쯤, 꾸벅꾸벅 조는 것 같았던 김재환도 결국 느릿 느릿 키높이 책상 내 왼쪽에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레 가운데로 가게 된 나는 황민현과 더 가까워졌다.
"야야. 나 이것 좀."
"뭐."
"16번."
원래 김재환이 물어보는 건 조금 반복되는 문제 유형이라 꽤 어렵지 않게 풀어냈었는데, 이번 문제는 좀 어렵다. 주어진 기호는 다 풀어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한 오분 정도 끙끙대던 나와 김재환은, 결국 오른 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느껴졌는지, 집중하여 입도 살짝 나왔던 황민현이 의아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본다.
"이것 좀 알려주라.."
"아. 보여줘."
익숙하게 문제집을 가져가며 안경을 손가락으로 한번 올린다. 손도 예쁘네, 황민현. 잠시 문제를 살펴보더니 설명을 해주려는 듯 한 발짝 가까이 온다. 그 순간 은은히 풍기는 섬유유연제 향기에 심장이 또 꿍, 하고 놀라는 기분이었다. 이내 조곤 조곤 설명을 시작하는 황민현에, 작게 쉼호흡을 하고 집중을 했다. 막 문제 설명을 시작하자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쳤고, 소란스러워진 교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황민현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이렇게, 여기다 치환을 해가지구,"
"어, 너네 조별 문제 풀이해? 나도 같이 할래!"
아, 좋은 분위기 저 여우가 다 깼다. 인정하긴 싫지만 여우도 공부를 꽤 하는 편이여서, 야자시간 내내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 같더니,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황민현 쪽으로 왔다. 분위기도 깨지고, 설명의 맥도 끊기고, 내 기분도 언짢아져 여전히 눈웃음을 쳐대는 여우를 띠껍게 쳐다보며 아니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황민현이 나보다 더 빨랐다.
"아니 그거랑 상관 없는 문제야."
"아..그래?"
"응. 설명 다시 할게. 여기 치환하는 것 까지 이해 돼?"
분명히 목소리는 다정한데, 말투에 단호함이 드러난다. 이것도 능력인가.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어딘가를 또 슬쩍 터치했을 여우가, 표정 관리도 하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간 걸 보면 여우도 느껴졌나보다. 아, 나 이러니까 꼭 나쁜 애 같은데 왜 이렇게 속이 시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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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랑의자입니다 ♡
초록글 ㅠㅠ 너무너무너무너무너ㅜ머누머누머ㅜ너눔 감사드려요 ㅠㅠㅠ ♥♥♥♥♥♥♥♥♥♥
오늘 원래 내용 더 많았는데,, 쓰다보니까 길어져서
혹시 지루해질까봐 끊었어요!
여우가 자꾸 민현이를 건드네요..! (부글부글)
암호닉이에요!
정태풍 ♥
뷔밀병기 ♥
미녀나왜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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