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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선] 우리에게 끝은 없다 0 4 | 인스티즈




슬픔과 비슷한 기쁨













 남자가 마치 내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는 듯이 조금 건들거리며 물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죽을 때까지 모르는 남자의 이름 따윈 알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잔디 위에 드문드문 심어진 장미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왜 나는 이렇게도 거만하고 쌀쌀한 태도를 취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미소지으며 내 이름은 OOO이예요. 당신은 누구죠? 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실은 그 순간이란 아무리 부정해도 내 무의식이 내내 상상해온 바로 그 순간이였다. 노래를 지운 빈 테이프를 하루 종일 듣는 것 같은 시골의 생활. 절대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산과 논과 개울과 나무들이 자리잡은 그대로,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버린 듯한 완료형 나날 속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이름을 묻는 순간이란 그 본진을 다시 뒤흔드는 일이었다. 절벽에서 아득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기분, 발 밑이 무너지며 금세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저릿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남자는 다시 시작하자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의 머리가 짧아서 그런지 고집을 부리는 앳된 얼굴이 언뜻 엿보였다.


“ 몇살이예요? 스무살? 서른살? 마흔살? 이름은 뭐예요? 장미? 백합? 진달래? ”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웃음소리가 작은 종을 흔들듯이 아주 맑고 높았다. 뜻밖이었다.


“ 요즘 시골엔 내성적인 여자분이 거의 없어요. ”


 남자는 ‘내성적인’에 밑줄이라도 그으라는 듯 강조하며 우스꽝스럽게 말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침다하는 인상을 주는 건 나 역시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새삼스러웠다. 남자가 다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답답한 표정이였다. 나는 남자가 말을 하기 전에 서둘렀다.


“ 스물 일곱. 이름은 OO이예요”


 남자는 마치 스물 일곱살 먹은 여자는 난생 처음 본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김창수입니다. 85년생이예요. ”


 나는 그의 손등을 궁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 그 손등에 상처… ”
“ 가위로 찍은 자국이예요. ”


 그가 손등을 위로 펴고 새삼스럽다는 듯 두 개의 흉터를 지그시 보았다.


“ 고문이라도 당했어요? ”
“ 청춘은 고문이죠. 나도 네놈들만큼 독하고 강하다는 표지. 남자 애들은 얼굴이나 손이나 피부가 곱게 생긴 녀석들을 우습게 알아요. 놈들 앞에서 손등에 가위를 박은 뒤로는 누구도 더이상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두 달이 흐르자 나도 모르게 무림파의 실세가 되었죠. ”
“ 무림? ”
“ 남자애들 학교엔 그런 게 있어요. ”


 그런 부류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학과 공부와는 다른 궤도의 학교생활을 하다가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늘 걱정스러웠었다.


“ 무림파 애들은 자라서 뭐가 되죠? 건달? 깡패? 연예계 매니저? ”
“ 자라서 기자가 되요. 그리고 사는 게 너무 시시해서 돈 많은 이혼녀와 결혼하고 시골의 우체국장이 되어 건달처럼 사는 거예요. ”


 그의 표정은 무심했다. 나는 오랜만에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내 웃음소리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 우리가 사는 마을 이름이 나비라는거 알아요? ”
“ 처음 마을로 올 때 언뜻 들었어요. ”
“ 옛날엔 그 언덕 위에 열 채도 넘는 집이 있었어요. 산사태가 나 마을이 사라졌다고…. 그 마을 이름이 나비였어요. 나비가 아주 많았는데, 지금도 그 일대는 나비와 나방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실은 우리집 위로 계속 올라가면 산 속에 생물학과 교수의 작은 작업실이 하나 있어요. ”
“ 그 분은 언제 오죠? ”
“ 글쎄요. 아무때나 불쑥불쑥 오니까…. 왜요? ”
“ 나비에 관해 나도 좀 알고 싶어요. ”
“ 이를테면 무엇을? ”
“ 아무거나요. 나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
“ 그러니까, 나비는 삼천만 년 전에 나방에서 나비로 진화했어요. 애벌레인 나비는 미친듯이 풀잎을 먹어치워요. 네번 허물을 벗는 동안 엄청난 에너지로 엄청난 양의 잎사귀들을 먹죠. 탐욕스럽게 느껴질 정도지만 알고보면 징그러운 벌레로부터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기 위한 숭고하고 끔찍한 노역이예요. 나비는 자기 몸에서 나온 비단으로 자신을 가두고 그 속에 들어앉아요. 겨울에 나뭇가지에 오그라진 나뭇잎처럼 달려있는게 아니라 고치죠. 수개월 동안 밀폐되어 있다가 드디어 나비로 변신하게 되는데 나비가 되고 나면 이제 풀잎은 먹지 않아요. 꽃즙이나 거북이의 눈물, 사람의 땀을 먹죠.”


 빠르게 말을 쏟아낸 그의 눈 속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가득 차 올랐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 됐어요? ”
“ 기억력이 굉장하네요. ”
“ 경우에 따라 달라요. 기억도 선택해서 한다잖아요. ”


 이번에는 내 눈 속에도 웃음이 차올랐다.


“ 실은 그 생물과 교수한테서 들은 이야기예요. ”
“ 아… ”
“ 이제 생물학과 교수를 만날 일은 없는 거죠? ”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 그 사람이 미남이라 불안해서 말이예요. ”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도 상당한 미남 축이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윗입술을 약간 말아올리며 짧게 웃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후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후를 애선의 집에 내려놓은 뒤 나의 차문이 고쳐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갓진 어촌의 한 슈퍼에서 지렁이 상자를 샀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널따란 공터를 낀 산기슭에 있는 버려진 선착장이었다. 한때는 멸치막이었던 것 같은 널따란 공터엔 여름 풀들이 뒤엉켜 자라고 있었고 목조 창고 세 채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서 있었다. 마침 산그림자가 선착장을 덮어 그늘에서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었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그곳으로만 불어와 공터에 서 있는 세 그루 플라타너스의 나뭇잎이 소리를 내었다.

 나는 물고기를 공중 높이 들어올릴 때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물고기가 바늘 깊숙이 물어 찌를 흔들 때 낚싯대를 재빠르게 걷어올리면, 내 몸 깊은 곳이 물고기의 입에 와드득 물어뜯기는 듯, 혈관 속에 소스라치는 진동이 일어났다. 내가 비명을 지를 때면 그는 긴장된 얼굴로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물고기의 입을 열어 바늘을 뽑아냈다. 바늘을 너무 깊이 삼켰을 때는 천을 찢을 때처럼 물고기의 살이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 기분이 이상해요. ”
“ 물고기 한 마리가 바늘을 물 때 우주를 함께 진동해요. 사람의 감각은 각자의 뇌가 통제하지만, 식물이나 물고기 같은 것은 우주의 한가운데 통제 센터가 있다는 설도 있어요.”
“ …처음 듣는 말이예요. ”
“ 어떤 생물학자들은 식물이나 물고기의 정신생활을 믿는 신비주의자이기도 하죠.”
“ 물고기가 이렇게 요동치면, 바늘이 물고기의 살을 더욱 헤집겠죠. ”
“ 내상의 표정이예요. 어때요? 당신과 닮은 것 같지 않아요? ”
“ ……… ”
“ 내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 빈집에서 뛰어나와 손을 들어올려 내 차를 세웠을 때.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


 그가 아직 바늘을 뽑지 않은 물고기를 손바닥 위에 놓았다. 물고기는 더이상 팔딱이지 않았다. 살 속의 바늘이 영혼까지 찢어버린것일까. 물고기는 그저 느리게 아가미를 열었다 닫았다 할 뿐이었다. 통증이 독처럼 살 속으로 퍼지는 것이 보였다. 내 몸 속 아주 깊은 곳에서도 지긋한 통장이 느껴졌다. 그가 돌연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손을 으깨어 즙이라도 짜겠다는 듯 꽉 쥐었다. 이상하게도 엉뚱한 행동 같지가 않았다. 나는 손을 뿌리치는 대신 통증 때문에 입술을 깨물었다. 반지의 장식이 손가락 사이에 끼어 손가락뼈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 아…… ”


 내가 눈을 감으며 신음 소리를 내자 그는 놀란 얼굴로 천천히 손을 열고 나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한쪽 팔을 거세게 끌고 걷고 시작했다. 그는 두리번 거리며 여름 풀이 무성하게 배어 있는 창고들을 지나 좁다랗고 가파른 산글로 들어갔다. 눈앞이 흐려진 채 숨을 잘 쉴 수가 없었고 몸이 너무 가벼워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발목이 찔레덤불에 찔리는데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숲은 빈약했고 어린 잡목들로 얽혀 있었고 송진 냄새와 나뭇잎 마르는 냄새, 그 모든 더위에 지친 습기로 어지러웠다. 그는 우뚝 멈추어 섰다. 

 그의 손이 나의 마음을 떠보듯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의 얼굴은 자석에 끌려가듯 그의 손길이 스치고 간 방향을 따라 기울어졌다. 숨이 차올라 저절로 입이 열렸고 이내 눈물이 솟을 것처럼 감각이 이완되었다. 심장 깊숙이 내 몸의 가난이 느껴졌다. 난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나를 숨길 수도 없었다. 우리는 달리기라도 하는 듯이 호흡이 거칠었다. 그의 몸이 진저리치듯 한 차례 떨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굴에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땀이 눈 속으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난감할 때 생기는 습관인지 그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외로운 눈이었다. 내 몸의 가난처럼 그 남자의 가난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게도 그는 마치 나와 그렇게 마주 서기 위해 줄곧 내달려온 외로운 마라톤 선수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늘 그렇지만 그런일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다시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게 되는 일. 그 영혼을 보아버리는 일. 나는 즉시 그를 통째로 이해해버린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이후에 오는 시간, 요컨대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그 시간이란 오히려 우리가 상대를 재확인하는 낭비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담



항상 쓰고싶은대로 흘러가는대로 쓰는 스타일이라 떠오르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않고 써내려가다보니 오타가 꽤나 많이 있어서

글을 읽으시는데 굉장히 불편하셨을거같네요,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한번 쓴 글은 다시 읽어보지 않는 편이라, 이제 부터 검토를 해야겠네요.

보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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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신알신했더니 바로읽네요ㅠㅠㅠㅠㅠ
작가님 글 재밌게읽고있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한편으론 김쭈와 영영 멀어질까봐,걱정도 됩니다.부부사이가 맞는지..잘읽고 갑니다.
11년 전
독자3
♥♥♥♥♥♥ 하트 드려요 ㅋㅋㅋㅋ
11년 전
독자4
앗, 이런 글을 이제 발견하다니!!! 처음부터 읽으러 갑니다!!!
11년 전
독자5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11년 전
독자6
너무재밌어요이런글써주셔서감사해요사랑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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