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또라이
글 ; 노랑의자
황민현은 원래부터가 유명했다. 잘생겼고, 키도 컸고, 목소리도 좋았으며 공부까지 잘 하는 그야말로 엄친아의 정석이었으니. 다만 여자라곤 관심을 일절 보이지 않는 탓에 입학하고 2년 동안 관심이 좀 사그라듯 것이지, 그래도 남몰래 황민현을 짝사랑하는 여자들은 꽤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너 황민현이랑 사귀어??"
저 말을, 복도 한 번 지날 때 마다 세 번은 듣고 있으니. 하루만에 밝혀버린 게 잠깐 후회되기도 했지만, 교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곤 방긋 웃어주는 황민현을 보면 나도 사르르 녹아버린다. 여우는, 나를 탐탁지 않게 (눈을 흘기며) 쳐다보곤 하지만 황민현에게 직접적으로 무슨 행동을 한다던가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그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벌써 공부해?"
저녁을 먹고 이를 닦자마자, 핸드크림을 바르며 자리에 앉았다. 아직 야자가 시작하려면 20분이나 남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황민현이 내 남자친구인걸 우리 학교 모두가 알지만,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버리면 불안해서 공부가 되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펴고 이제 세 문제 쯤 풀었을까, 황민현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응. 나 진짜 열심히 할거야."
"갑자기 동기부여가 된 거야? 뭐 때문에?"
"나 너랑 같은 학교 갈거야."
굳은 의지가 담긴 내 말에 황민현은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로.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 눈빛.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다정하게 바라보는 저 눈빛이 너무 좋다. 그러다 조금 쑥쓰러워져 입에 꾹꾹 힘을 주며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떨리는 건 사귀기 전 보다 더해서, 더 보고 있다간 정말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
"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지..?"
"그럼. 나 말고 누구한테 물어보게."
"음.. 재환이?"
장난스레 김재환의 이름을 대자, 쓰다듬던 손을 멈춘 황민현이 씁. 하고 입소리를 낸다. 곧이어 들리는 안돼. 나한테만 물어봐. 하는 단호한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혼내는 듯 한 표정을 짓던 황민현이 내 끄덕거림을 보고서야 아까처럼 웃는다.
"야야. 나와나와나와."
"야 엉덩이로 왜 쳐!"
"어쭈. 남친이라고 편드냐?"
"그래!"
"오랜만에 함 붙어?"
야자시간이 다가오자 김재환이 황민현을 엉덩이로 툭툭 치며 나오라고 한다. 내가 황민현의 어깨를 감싸며 따지자, 김재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민현이, 가드를 올리고 주먹을 툭툭 맞대는 나와 김재환을 보고 재밌다는 듯 소리내어 웃는다. 하하하하. 어떻게 웃음소리도 설레냐. 진짜 병인가 이거..
*
야자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열 한시를 넘어선 늦은 밤에는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다. 우리가 잠시 말이 없을 때 마다 작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아까 아침의 일이 떠올라 휙 황민현을 돌아봤다.
"야."
"어?"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떡해! 우리 사귄다고."
뭐, 결과적으로 엄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사실 반은 농담이었다. 괜히 장난치고 싶어서. 야, 라고 부르는 호칭과 따지는 듯한 내 말에 황민현은 잠시 당황한 듯 눈만 깜빡, 깜빡 했다. 뭐지, 로딩 중인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
"응? 뭐가."
"니가 질투하는 거."
아니.. 이렇게 또 훅 들어오시면..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어서, 나도 준비되지 않은 리액션을 보였다. 누가봐도 나 지금 심쿵당해서 당황스러워요.. 하는 표정이 온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나도 아까 전의 황민현처럼 눈만 깜빡 깜빡 거렸다.
".. 너 앞으로 엄청 시달릴 수도 있는데.."
"그래도,"
"..."
"난 좋은데."
난 황민현이 받을 수도 있는 잔소리가 걱정되는데, 황민현은 그런 나를 보더니 손을 잡아온다. 미친, 손이요? 내 손?? 지금만큼은 황민현의 큰 손에 잡혀있는 내 손이 나의 몸이 아닌 것 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심장 너무 빨리 뛰어서 손에서도 맥박 다 느껴질 것 같은데. 게다가, 난 좋은데. 하며 내가 죽고못사는 그 예쁜 미소를 보인다.
"있잖아, 이름아."
"..응."
간질간질.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듯 한 설렘에 온 몸이 간질거렸다. 황민현에게 잡힌 내 손도,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내 귀도, 같이 맞춰 걷고 있는 내 발까지도.
"너한테 너무 고마워."
"뭐가?"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나한테 거는 기대가 엄청 많았어. 아마 좋은 성적을 받다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어떨 때는 나한테 되게 버겁더라고. 부모님이 압박을 주거나, 큰 걸 바라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잘 해야돼, 하는 강박 같은거?"
"..."
"그래서 시험 기간 때마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아. 그런데 너랑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뭔가, 내가 생각하는 관점도 달라진 것 같아. 좀 더 긍정적이게 되고, 자주 웃게 되고. 그래서 너무 고마워, 너한테."
조곤 조곤 한 마디씩 이어가는 황민현의 진심 어린 이야기는,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둥둥 심장을 울렸다. 평범하고 또 평범한 내가, 황민현에게만큼은 도움이 되는,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말을 다 마치고, 머쓱해하는 황민현의 모습에 결국 내가 먼저 안겨버렸다. 잠시 놀란 듯 굳어있던 황민현은, 이내 내 머리 위에 턱을 얹고서 나를 꼭 끌어안았다.
#
며칠뒤 야자 시간.
이름이는 저녁을 먹고 나서 분주히 가방을 챙긴다. 옆에서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재환이 그런 이름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마침 교실에 들어오던 민현도 필통을 가방에 집어넣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빨랐던 건, 재환이었다.
"어디 가냐?"
"나 집에!"
"왜? 설마 땡땡이?"
"아니거든! 엄마가 오빠 왔다고 일찍 오라고 해서."
"오빠? 너 오빠 있었어?"
"엄마 친구분 아들! 어렸을 때 부터 친해서."
이름이의 입에서 나온 오빠. 라는 소리에 잠자코 듣고 있던 민현의 표정이 조금 심기불편해진다. 짐을 다 챙기고 가방을 메던 이름이 민현을 보고 웃는다. 금세 달려가선 나 먼저 가야돼 오늘. 하고 민현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
"응, 들었어 방금."
"오늘은 집에 같이 못 가네, 아쉽다."
이름이 시무룩하게 말하자, 민현은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이름을 다정하게 바라본다. 입을 비죽이는 이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히 가야돼. 하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 민현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이름이 집 갈때 심심하면 전화해! 하고 손을 흔들곤 교실을 나선다.
"야 민현아."
"..."
"어..아냐."
잠깐 뭐라도 물어볼까 해서 민현을 부른 재환이, 아무 말 없이 돌아보는 민현의 얼굴을 보고 말을 더듬으며 아무것도 아니라 한다. 그럴 만 한게, 민현은 지금 아까 이름이가 말한 오빠. 오빠가 대체 누군지에 대해 정신이 팔려 자신의 표정이 얼마나 굳어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름이와 가까워지며 부드럽게 풀렸던 인상이, 마치 시험 전 날이라도 되는 양 차갑게 돌아왔다.
#
이름이는 오랜만에 본 지성에 반가움을 한껏 표현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름이의 집에서는, 지성, 이름이의 엄마, 아빠까지 모두 넷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이름이의 엄마는 유독 지성을 예뻐했다. 그 이유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살갑게 대하는 지성의 성격이 한 몫 하는 듯 했다.
"이름이도 많이 컸지, 지성아?"
"네. 저 완전 못 알아 볼 뻔 했어요."
"고삼이라고 젖살도 많이 빠지긴 했지, 우리 딸."
"근데 어릴 때부터 예쁘긴 했죠, 이름이가. 아주 유치원 인기를 싹 다 몰고다녔잖아요."
"맞아! 그걸 기억해? 아직도?"
지성이 꺼낸 이름이의 어릴 적 이야기에 이름이의 엄마는 오랜만이다~ 하며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밥을 먹던 이름이는, 이 시간이 길어지겠구나 하고 예상했다.
#
"조심히 가 지성아~"
밥을 먹고도 과일을 먹으며 세 시간이나 대화를 한 결과, 벌써 열한 시가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오래 대화를 나누어 놓고도 부족한지 1층까지 지성오빠를 배웅했다. 덕분에 나도 옆에 붙어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하던 오빠는 차를 타고 금세 아파트 밖으로 사라졌다.
"야 기지배야."
"왜?"
"지성이 너무 잘 컸지 않니? 얼른 확 꼬셔가지구 시집 가!"
"무슨 벌써 시집이야 엄마!"
내 나이 이제 열 아홉인데 벌써 결혼 얘기부터 꺼내는 엄마다. 그만큼 지성오빠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내가 너무 서두른다고 한 마디 하자마자 집에 들어 갈 생각도 않고 잔소리다. 미리미리 잡아놔야 좋은 남자 안 놓친다, 하는 뭐 이런저런. 계속 듣다 보니 욱 했다. 아니 나는 남친이 있는데?!
"아 엄마 그만!"
"뭘 그만해! 지성이가 어디가 어때서?"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뭐? 누군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황민현이 현관 가까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인 것 같았다. 아, 이렇게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쟤!"
"..?"
황민현은 갑자기 나와 엄마의 시선이 모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엄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황민현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는 엄마의 모습에 속으로 아, 망했다. 하고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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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랑의자입니다 ♡
안녕하세요 귀여운 독자님들!
저번 화도 초록글 너무너무 고마워요 ♡
암호닉 분들에게 제가 완결이 나면 뭘 해드려야 할까요..?
고민입니당..
곧 암호닉 정리할게요!
암호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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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나왜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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