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의연애 3
나 일 그만 뒀다고 말 안 했어?
우진이는 대답 대신 두 조각 겹친 피자를 크게 베어물었다. 내 말이 피자냐? 우진이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물어봐도 으으음, 거리기만 한다. 지 친구들이랑 피자도 안 먹나. 피자를 두 개씩 겹쳐서 우걱우걱 먹더니 결국엔 한 판을 혼자 다 해치웠다. 피자 조각이 작긴 했는데 8조각이 배에 들어 갈 정도도 아니라는 거.
"우진아. 배에 거지 들었어?"
"요즘은 1인 1판이 유행이야."
"무슨 그런 게 유행이래."
"누난 늙어서 몰라. 피자집 사장님이 우리 이름도 기억하고, 콜라도 계속 준다고."
"늙어서 모른다는 말은 꼭 해야겠어?"
우진이의 장점은 침착함이다. 침착하게 할 말 하고, 침착하게 행동하고, 침착하게 까분다. 어깨를 한 번 으쓱 한 우진이가 빈백에 드러누웠다.
"야, 터져. 나와."
내 말에 바로 빈백에서 데구르르 구르더니 바닥에 엎어진다. 그래도 말은 잘 들어서 화는 덜 난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우리 엄마 아들 죽이고싶다;','우리집 개새끼 말도 한다.' 같은 글들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말 안 듣던데 우진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 한 번 우진이한테 물어 본 적이 있었다.〈우진아 넌 왜 누나한테 말대꾸 안 해?>,〈안 하는 게 정상이니까.> 그렇긴 하지.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가. 중얼거리며 뒤를 도는 나를 우진이가 이상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근데 누나."
"응?"
"옆 집에 아는 사람이야?"
물을 마시다 목에 살짝 걸려서 헛기침을 몇 번 해주고 대답했다. 어.왜? 우진이는 엎어진 상태로 쫑알쫑알 얘기했다.
아니, 내가 들어가려는데 옆집에서 사람이 나오더라고, 근데 그 사람이 나 보고 진짜 엄청 놀란 표정으로 여기 여자 혼자 사는데 누구냐고 물어보길래 동생이라고 했지. 만약에 누나가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몰래 누나 관찰하는 스토커같은 사람이었을까봐. 근데 아는 사람이면 뭐. 괜찮은 형이네.
우진이 뒤통수에 대고 몰래 웃었다. 원래 1년 정도 살면 옆 집에 누가 사는 지는 당연히 알지, 우진아. 웃음 서린 목소리로 얘기하니 아 그런가? 한다. 당황하는 우진이의 표정도, 놀란 옹성우의 표정도, 그 상황이 눈에 훤하게 보였다.
"누나 그리고 비밀번호 좀 바꿔."
"왜."
"무슨 19년동안 비밀번호가 죄다 엄마 차 번호야."
"뭐 어때."
"그냥 바꿔. 안전불감증이야?"
알았어. 가끔 우진이가 무섭게 말 할 때면 나는 8년 차이의 자존심을 뛰어넘어 꼬리를 내린다. 우진이가 무섭긴 했지만 비밀번호 보안 상태는 내가 봐도 심각한 수준이긴 했다. 핸드폰 비밀번호, 학교 사물함 자물쇠 번호, 카드 비밀번호, 인터넷 비밀번호 등등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같은 번호였으니, 한 번 털리면 끝장날 수도 있겠지만 기억하기도 쉬웠고 나름 박여주 고유번호라고 생각했는데. 괜히 눈썹만 긁적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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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자는 우진이를 깨워 침대로 보냈더니 꽤 오래 잔다. 지금 쯤 배고플 시간일텐데. 10시 반이 다 되어가는 시계를 보며 밥은 뭘 해주나 고민하는데, 죽은 듯이 자던 우진이가 퍼드득 일어난다. 누나, 지금 몇 시야?
"열시 반 다 됐지."
“나 가야겠다.”
“지금 간다고?”
“응. 왜?”
“어떻게 지금 가. 위험해. 아침에 가.”
“남잔데 뭐가 위험해.”
“학생이잖아. 피시방도 열시 넘으면 못 가면서 무슨.”
자기는 건장한 고등학생이라며 소매를 걷어 팔근육을 과시 해도 가소롭기만 했다. 아, 나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왔어. 애들이랑 논다고 했다고. 라며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결국 알겠다고 했다.
핸드폰을 챙기며 일어서는 우진이에게 10만원을 건네주니 오! 하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땡큐. 돈을 차곡차곡 접어 주머니에 쏙 넣더니 헤헤 소리를 내며 웃는다.
“간다.”
“아, 불안한데.”
“안 위험하다니까?”
“배웅이야. 배웅.”
"아니, 뭔."
누나가 더 위험한 거 아니냐는 우진이의 말을 무시하고 옷을 대충 갈아입었다. 그 새에 우진이는 신발까지 다 신고 문을 열었다. 기다려 박우진! 현관으로 오도도 달려가 신발에 발을 우겨넣고 재빨리 나왔다.
“근데 왜 엄마한테 말 안 하고 나왔어?”
“누나 방해된다고 가지 말라 할 까봐.”
“알긴 아네.”
“일도 안 하잖아.”
“그렇긴 하지.”
가볍게 던진 장난에도 맞는 말만 턱, 하면 괜히 민망해져 할 말이 없어진다. 우진아 혹시 진지충이야? 하고 물어도 그런 말에 ‘충’붙이지 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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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조심해서 가. 도착하면 연락 하고.”
“어. 얼른 가.”
말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말도 조금 하는 애가 있다 없으니 허전하긴 했다.
비밀번호 바꾸랬으니까 집 가자마자 바꿔야겠다. 발에 걸리는 돌을 차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깜깜한 밤에 혼자 걷는 건 무섭지 않았다. 퇴사 전 까지만 해도 지긋하게 걸었던 길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별 생각없이 걷고 있으면,
“여주야!”
내 옆에 하얀 승용차가 부드럽게 선다. 이미 열려져 있던 창문 너머로는 옹성우의 얼굴이 보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옹성우의 운명에 새삼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으면, 집에 가는 중인가? 하며 물어온다.
“네에.”
“가자. 이쪽으로 와요.”
따로 말 하지 않아도 옹성우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신세지는 거 같긴 하지만, 거절하면 서로 머쓱할 것 같으니까. 되도 않는 핑계를 만들며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안전벨트 꼭 메고. 옹성우가 조수석에 있던 자켓을 뒷자석으로 던지며 말 했다. 안전벨트를 당겨서 버클에 꽂으니, 출발 해도 돼? 라며 물어본다. 별 말 없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여주니,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출발했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갔다가 오세요.”
“동생이 집에 놀러왔다가, 집에 간다길래 배웅 해 주려고...”
“어이구, 늦게도 가네.”
“성우씨는,”
“드라이브.”
이 시간에? 정말로 독특한 취미라 생각돼서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허, 하고 헛웃음을 뱉은 옹성우가 그럼요. 한다. 내일 출근인 사람이 안 자고 뭐 한대. 신호를 기다리며 핸들을 두드리는 긴 손가락을 보고 생각했다. 턱을 괴고있는 얼굴을 보면 졸려 보이진 않았다.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니 옹성우의 귀가 빨개져 가는 것이 보였다.
“왜, 지금, 지금 다 보여. 눈은 앞을 봐도, 옆에가 다 보이거든요, 내가.”
“아니….”
안 졸리냐구요. 터진 웃음 때문에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손바닥으로 빨간 귀를 꾹 누르며 말 하는 옹성우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다. 아, 초록불인데, 출발 해야지.
“왜. 왜 그렇게 본 거야.”
“출근하기 까지 열시간도 안 남았는데, 졸린 얼굴이 아니길래.”
“나 월요일날 항상 죽을상이잖아요.”
야밤에 드라이브를 그만두면 될 것을. 말을 속으로 삼키며 창 밖만 바라보았다.
-
“다왔다아.”
“지금 되게 아빠같았다.”
기지개를 쭉 켜고 숨을 뱉으며 말 하는 게, 4시간 걸리는 고향에 도착한 아빠같았다. 나 아빠 같았어? 자기를 가리키며 되묻길래 고개를 끄덕여줬다.
"두고 내린 건 없고?"
그 말에 몸을 더듬어 보지도 않고 네. 했다. 내 대답을 듣고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길래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기울이니.
"없긴 왜 없어."
뒷짐을 풀어 눈 앞으로 내민 손에는 내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핸드폰 좋은 거 쓰네. 내 핸드폰을 들고 괜히 이리저리 돌려가며 둘러보길래 휙 낚아챘다. 진짜 사람 창피하게.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계단까지 먼저 걸어가니, 도도도 쫒아와 내 옆에 선다.
"내가 택시였으면 어쩔 뻔 했어."
"고맙네요."
고맙긴 고마웠다. 정말로 두고 내렸으면 새벽에 옹성우네 집 문을 두드렸거나, 출근 시간까지 문 앞에서 기다려야 했거나, 퇴근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겠지. 상상하기만 해도 민망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몰래 한숨을 돌렸다.
고작 3층이 뭐라고 서로 현관 앞으로 가는 발걸음이 느렸다. 우진이 말대로 늙어서 그런가. 현관 문 앞에 서서 후우, 하고 숨을 몰아 쉬니 옆에 있던 옹성우도 따라서 휴우, 한다. 따라하는 옹성우를 올려다보니 씩 웃는다. 그 모습이 잘생겨서 심장이 내려앉긴 했다.
"가자."
"데려다줘서 고마웠어요."
"고마웠어. 라고 해줘."
"고마웠어."
"오케이."
"…."
"…."
"왜?"
"잘 자라고."
옅게 웃는 얼굴을 하고 빤히 쳐다보는데 심장이 크게 뛰었다. 얼굴이 빨개진 느낌이 들어 신발을 보는 척 하면서 〈왜?> 라고 물어봤다. 그냥 잘생긴 얼굴로 빤히 쳐다봐서 설렜던 거겠지, 3층을 올라오느라 더워서 얼굴이 빨개진 거겠지. 애써 합리화 하며 고개를 들었다. 〈잘 자라고.> 옹성우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끄덕였다. 내가 비밀번호를 치고 먼저 들어갈 때 까지 옹성우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암호닉☺ |
♡틸다♡ 맑음 콩너블 후렌치후라이 헤르지 모카 강낭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