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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소중한 추억도 어느 새 5년이 지났다.
세월도 참 빠르지. 그게 벌써 5년 전이라니.
이젠 그의 얼굴도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어 참 씁쓸해졌다.
소중했던 추억들이 이렇게 무뎌져 가버리고 일상에 치이고 바빠 그와의 추억을 떠올릴 틈도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아직 그가 남긴 것들은 그대로 내 사물함 안에 보물단지 모시듯 귀하게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가끔씩 비가 내리거나 벚꽃이 흩날릴 때 그의 생각이 나면 꺼내 편지를 읽어보기도 하고 그의 영상편지를 수십번씩 돌려보기도 한다.
그래. 잘 생각해보니 아직은 그가 내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생각해보면 그에게 받은 것들도 많다. 그가 남긴 편지는 사물함 한칸을 꽉채울 정도 였고 옛날의 '내'가 받은 선물들도
버리지 않고..보관해두었다면 사물한 한칸은 무슨 두칸도 꽉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난 어느새 옛날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고 쾌활한 사람이 되었다.
낯선 사람과도 잘 웃으며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 많은 곳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먼저 찾아나설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것 또한 그의 선물이었겠지. 그를 만난 뒤로부터 나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바뀌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그와의 마지막 꿈을 꾸고 난뒤 나는 며칠동안 멍해있었다.
하루 이틀은 실감이 나지 않아 멍했고 그 뒤로는 삶에서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던 그가 사라져버리니 마음 한구석에 뻥뚫려버린 것같이 허전해 멍해있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억지로 참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지. 한번 울음을 터트렸다간 끝도 없을것 같았다.
그랬다간 그가 좋은곳으로 가지 못하고 그의 발목을 잡는 것 같았기에.
그 후유증인지 그 뒤 며칠동안은 드러누워 끙끙 앓아대야 했지만.
5년 뒤인 지금.
나는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소질을 찾아 열심히 자기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5년 전. 마지못해 들었던 소묘부.
처음엔 흥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갈수록 실력이 붙는 재미에 나는 더더욱 열심히 했고 고3 중반쯤 본격적으로 그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당히 미대에 붙었고 지금은 졸업을 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처음부터 정해진 길이었는지 알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 주위 사람들의 근황이다.
첫번째로는 택운이.
중학교때부터 꾸준히 축구부였다는 택운이. 그 결과인지 택운이는 축구선수가 되어 요즘 정말 행복해보인다.
해외와 국내를 들락날락거리느라 얼굴 볼 틈없이 바쁘지만 택운이는 자기의 꿈을 이뤄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술자리에서 그랬다.
나와 택운이가 이런 이야기를 술없이 할리는 만무하다. 택운이는 분명히 오글거린다고 자리를 피할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이건 며칠 전에 있던 일이다.
자취를 하고있는 나는 우연히 티비를 돌리다 광고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하지만 제대로 얼굴은 나오지 않고 자꾸 공을 차는 모습만 보여주길래
설마설마 하며 그냥 과자를 씹으며 대충 얼핏얼핏 보고있었다.
"...!!!커억..컥!!! 뭐..뭐야!! "
나는 깜짝 놀래 씹고 있던 과자가 목에 걸려 격한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눈은 티비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정말 내 예상이 들어맞았고 지금 티비에서 에너지드링크 광고를 하고있는 건
택운이었다.
' 마시기만 해도 힘이 불끈. '
" 풉!!! "
가녀린 목소리로 어울리지도 않는 멘트를 마구 뱉어내는 택운이.
나는 당장이라도 터져나올것같은 웃음을 꾹 참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광고가 끝날때까지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그 광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광고가 끝난 뒤 나는 배를 잡고 방을 떼굴떼굴 굴러다니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나 웃었으면 눈에 눈물까지 고일 지경이었다. 택운이답지 않은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잔뜩 띄워놓고
평소에 들을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멘트들을 마구 늘어놓고 있는데 택운이의 지인이라면 누가 웃지 않으랴.
나는 정말 거짓말하나 보태지 않고 5분가량을 숨이 넘어갈듯이 웃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을 찾아해맸다.
그 와중에도 페에 바람이 들어간듯 실실 쪼개고 있었다. 핸드폰을 찾은 나는 당장 번호를 눌러 택운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운이가 지금 바쁘든 안 바쁘던 그건 내게 중요치 않다. 이런 좋은 놀림감을 두고 지나칠 수 없으니까. 이건 한 십년 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놀림감이다.
' ...여보세요. '
자고 있었는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응답하는 택운이. 택운이의 목소리를 듣자 겨우 진정됬던 웃음이 다시 튀어나왔다.
그래서 상대방에서 여보세요를 남발하던 말던 일단 배가 찢어져라 웃어재꼈다. 결국 택운이는 기분 나쁜지 욕설을 내뱉고 내 전화를 거칠게 끊어버렸다.
하지만 택운이 따위 만만해진지 오래.
' 야ㅋ 마시기만 해도 힘이 불끈 솟는 그 음료 나도 좀 주라. '
나는 조롱이 잔뜩 섞인 문자를 택운이에게 보냈다. 문자를 보내는 와중에도 웃음은 멈출줄 몰랐다.
하지만 그 뒤로 택운이에게 답장은 없었다지....
엄청나게 쇼킹한 일이라 나는 아직도 이일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는 아직도 그 광고가 저장되있다.
우울한 일이 있거나 기분이 찝찝할 때 그 광고를 보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며칠 전 택운이가 그걸 발견하고 목숨이 오락가락 할 뻔했지만..
두번째로는 원식이.
원식이는 여전히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 아니. 이제 전문가가 됬다는 말이 맞으려나.
원식이는 어느새 작곡가가 되어 이 아이돌 저 아이돌의 노래를 프로듀싱 해주고 있다. 최근에 맡은 빅스?..라는 아이돌들의 노래를 작곡해 요즘 수입이 짭짤하다는데..
통 뭘 쏜적은 없어 그말에 신뢰는 가질 않는다. 번 만큼 써야할텐데 번만큼 쓰는 돈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 하다.
쪼잔한 자식..
그리고 몇달 전 원식이네 개 흥식이가 새끼를 낳았다. 어찌나 귀엽던지 그냥 솜뭉치들이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총 5마리를 낳았는데 그 애비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식이는 애비를 꼭 찾아내서 흥식이 과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길강아지인지
지가 무슨 수로 알아내겠는가. 순수한건지 멍청한건지.
흥식이가 새끼를 낳고나자 택운이는 원식이네 집에서 며칠동안 거의 살다시피 했다. 평소 잘 보지 못했던 이를 들어내는 웃음들이 마구 쏟아졌다.
'우쭈쭈' 거리며 강아지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처음보는 다정한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에 왠지 괴리감을 느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지..
근데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귀여운 아이들이긴 했다. 원식이는 흥식이가 새끼를 낳고나자 더욱더 사랑으로 흥식이를 보살폈고
다섯마리의 새끼를 주위사람들에게 분양해주었다. 독립한 원식이가 6마리를 다 키우기에는 너무 벅차긴 하다.
' 별빛아. 너 강아지 키울래? '
' 응? 강아지? 흥식이가 낳은거? '
' 응..처음엔 내가 다 키워보려고 했는데...너무 힘들다. 나 좀 살려주라..'
' 왜? 행복해보이더만. '
' 지금도 얘네가 내 피아노 악보 다 찢어놓..야!!! 투식이!!!!! 그거 먹는거 아니라고!!!! '
' .....'
' 별빛아. 잠깐만. 야!!! 삼식이!!!!! 누가 거기에다 볼일보래!!!!! 그게 얼마짜린 줄 알아?!!! '
' 나 끊는다..'
' 야. 잠깐만. 별빛아!! 한마리만 데려가!!! 난 흥식이로도 충분...!! 투식아!!!!! 그니까 그걸 왜 먹어!!! '
'....힘쇼..'
전화로만 들은거지만 그 아비규환은 내게도 생생히 느껴졌다. 그런 원식이가 너무 애잔해 어쩔 수 없이 지금 내 집에는 흥식이의 새끼 한마리가 거주중이다.
그리고 원식이가 지어놓은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 새로운 이름 하나 더 지어주었다.
'콩'
이라는. 아주 깜찍하고 깨물어주고 싶은 그런 이름이다.
솔직히 원식이는 작사 좀 한다는 놈이 어찌 그리 작명센스가 없는지. 지 이름을 따서 다섯마리에게
투식이, 삼식이, 사식이, 오식이
투식이만 영어인 이유는 그냥 뭐 이식이는 어감이 별로라나..뭐라나... 하여간 얘도 정택운이나 다를 거 없는 이상한 놈이다.
나에게 온 것은 투식이. 그래 지금의 콩이.
" 콩아- 너도 그딴 이름 버리게 돼서 기분좋지? - "
" 왕! "
" 언니. 잠깐 친구 만나고 올게- "
이제 제법 큰 콩이가 현관에 있는 내게 달려오며 꼬리친다. 어찌 이리 귀여운지.
나는 약속 때문에 신발을 신다가 콩이를 안아올려 볼을 맞대고 부볐다. 그래 너같은 애가 원식이같은 놈한테 있기는 너무 아까워.
삼식이는 학연이에게 분양갔고 사식이는 빅스 멤버 중 라비? 라는 사람에게 분양갔다고 한다. 원식이는 자기와 똑 닮은 사람이 사식이를 데려가줘서 안심이란다.
거울도 안보고 사나보지.
하여간 원식이는 흥식이와 오식이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세번째로는 학연이!
그 일이 있는 뒤로 학연이는 차츰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가끔씩 튀어나오려는 그런모습들을 억누르려고 많이 노력했고 지금은 아예 그런 모습들이 싹 사라진 듯했다.
뭐 내가 모르는 모습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예전 같은 싸이코스러운 모습들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모습들이 사라진 학연이는 오히려 나에게 여자친구들보다 더 편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함께 쇼핑을 가서 섬세하게 옷을 골라주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생긴 갈등의 대한 고민들도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었다.
학연이가 그런 아이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택운이와 원식이보다 더 연락을 많이하는 사람은 학연이다.
그때 만약 학연이를 용서하지않았다면 이런 친구도 없을거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푹푹 내쉬곤 한다.
현재 학연이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현대무용과로 들어갔고 군대도 갔다오고 재수를 하는 바람에 지금은 대학교 2학년이다.
학연이는 대학로 앞에서 뮤지컬 같은 곳에 참여하며 짬짬히 돈을 벌고 있었고 큰 댄스대회에 나가 대상은 밥먹듯이 따오기도 했다.
그만큼 춤 실력이 아주 뛰어나 지금 여기저기서 캐스팅도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학연이는 전부 거절했다.
" 야. 요즘 아이돌 되면 돈 잘 번다던데. 왜 비싸게 굴어. 나도 아이돌 친구 한번 둬 보자. "
" 아 싫어. 난 전문댄서가 될거야. 그런 것들이랑은 차원이 다르게. "
" 어휴. 저러다 길바닥에 나앉아봐야 정신 차리지. "
" 뭐래냐. 옷이나 골라! 너 소개팅 있다며. "
" 야. 뭐 옷까지 사. 내가 원해서 가는 것도 아닌데.."
" 여자애가 왜이래! 홍빈이가 너 이런 모습 보면 왜 좋아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한다. "
" 홍빈이는 나란 사람 자체에서 흘러나온 매력에 반한거고 - "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홍빈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만큼 이제 무뎌지고 받아들였단 거겠지.
지금은 학연이와 시내에 나와 옷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니 쇼핑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별로 원하던 소개팅이 아니라 아무거나 주워입고 가려고 했지만 여자보다 더 섬세한 차학연은 날 기어코 옷가게로 끌고 들어왔다.
차학연은 내가 평생 입어보지도 않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들을 갖다대었고 내가 질색을 하던 말던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직원을 불러 계산을 한다.
" 이걸로 주세요 "
" 네 - "
" 야!...이..이거 비싸다고.. "
" 괜찮아! "
차학연이 자신있게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들었다. 차학연 카드인가 싶어 왜이렇게 무리하냐고 당황해하며 물었지만
역시나 본인의 카드가 아닌 원식이의 카드였다.
" 걔 저작권료가 얼만데. 너 옷 한벌은 거뜬히 사주겠지. 일단 반정도는 허락맡았으니까 괜찮을거야. "
반정도 허락을 맡은건 무슨소리냔 말인가.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카드를 긁고 있는 차학연을 노려보았다. 괜히 불똥이 나한테까지 튀면 어쩌냔 말이다.
하지만 차학연은 아랑곳않고 계산한 원피스를 나에게 던져주었고 당장 입고나오라고 나를 탈의실까지 밀었다.
나는 투덜투덜 거리며 탈의실에 들어가 원피스를 입고 나왔고 차학연은 조금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말한다.
" 몸매가 빈약해 좀..."
" 야!!!!!!!!!!!! "
네번째로는 상혁이.
상혁이는 현재 군대를 가있는 상태다...아..
대한민국의 건아로써 할일을 하고있지만...가끔씩 휴가를 나와 빡빡 민 머리를 볼때마다 왜이리 마음이 아픈지.
상혁이는 그림에 흥미를 보이다가 나중에 짜게 식었는지 그냥 자신의 성적에 맞는 과를 다니다가 돌연 군대로 가버렸다.
내가 다니던 대학 후배였는데 누나들한테 참 인기 많기로 소문이 났다. 그럴만도 하지. 애교도 많고 잘생긴 연하남인데 어떤 누나가 싫어하랴.
상혁이가 군대를 간다고 했을때 그 과의 누나들이 전부 대성통곡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 소개팅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상혁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도 상혁이는 내게 마음이 남아있는지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해 무한애정표현을 한다. 군인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을정도로 말이다.
" 상혁아..누나 지금 만날 사람이 있는데.. "
' 네? 누구요! 누구 만나요! 안돼! 나 군대 갔다고 지금 저 버리는거에요? '
나름 민간인 말투를 쓴다고 하는거 같은데 군대의 그 딱딱한 말투가 어느새 배어버린 상혁이었다.
그리고 군대에 가더니 집착?..같은게 생긴거 같기도 하고.. 뭐 그저 내눈에 귀여운 뿐이지만
" 널 버리기 전에 우선..가진적도 없는데.."
' 지금 남자 만나러 가는거죠!!!! '
" 군대 가더니 눈치만 늘었네. 이게. "
' 아!! 안돼요!!! 나 이제 삼개월 남았다고요!! 저 더 멋있어졌다고요!! 삽질만 주구장창하다가 근육도 잔뜩 생기고! '
" 어이구. 그러셨어요. 우리 애기? "
' 진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잡아요 누나. '
" 오구오구. 뭐래냐. 어? 저사람인가. "
'만나지 말라고요! 아아악!!! '
" 어 맞는거 같다. 끊자. 상혁아. 제대하면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
' 누..!! '
내 앞에 보이는 소개팅남으로 추정되는 사람때문에 나는 간절하게 끊지말라는 상혁이의 통화를 가차없이 끊어버렸다.
미안하다. 상혁아.
소개팅남은 뒤돌아 눈처럼 내리고 있는 벚꽃을 감상하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이곳은 5년동안 벚꽃이 필때면 빠짐없이 아이들과 놀러나왔던 그 벚꽃길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추억도 깃들어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하면 빠질 수 없이 생각나는 이 곳. 그가 나에게 그 어처구니 없는 솜사탕을 건넸던 그 곳.
" ..하.."
일상에 치여 그의 생각은 많이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만 오면 그의 생각이 나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5년이나 지난 지금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해졌다. 나도 주책이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등을 돌리고 있는 소개팅남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 저기요.."
그리고 노란색 가디건을 입고있는 그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움찔 하더니 나를 향해 몸을 틀면서 밝게 웃으며 말한다.
" 어? 안녕하세요!! "
꽤나 발랄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생글생글 잘도 웃는 그 사람 때문에 괜히 나도 입가에 웃음이 절로 지어졌고 나도 그사람처럼 한톤 높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그 분 맞으시죠? "
그 사람은 고개를 힘차게 두번 끄덕이고 남들보다 몇배는 활기찬 목소리로 또 대답한다.
" 네! 제가 이재환이에요! "
" 저는 이 별빛이에요! "
" 저랑 성이 같으시네요! 운명인가 ! 히히.."
귀엽게 장난을 쳐오는 재환이에게 나도 히히 웃어보이고 잠시 그 거리를 걷자고 했다.
재환이는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고 나와 재환이는 그와 함께 했던 그 때처럼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걷는다.
그렇게 잠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그 거리를 사람들이 아무 근심없이 행복해보이는 그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잠시 뒤 할말이 다 떨어지고 조금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을 때
우리 앞으로 솜사탕 기계를 끌고가시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 어? 우리 저거 먹어요! "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목적도 있고 무엇보다 그의 생각이 나 오랜만에 먹고싶기도 해서 그랬다.
나는 재환이를 끌고 아주머니 앞으로 달려갔고 아주머니에게 솜사탕 두개를 주문했다.
그러자 재환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고 나는 그저 해맑은 얼굴로 재환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 좀 애같아 보이긴 해도 이게 어쩌다 먹으면 참 맛있어요. "
아주머니는 금방 만든 솜사탕하나를 내게 건넸고 나는 그걸 건네받아 다시 재환이에게 건넸다.
재환이는 처음엔 좀 당황한 눈치였다가 솜사탕을 한입베어물더니 달콤한 맛에 사르르 녹은 것 같다.
아주머니가 또 건네신 솜사탕을 이번엔 내가 받아들고 아주머니께 인사를 한 뒤 다시 그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재환이는 언제 그런 표정 지었냐는 듯이 엄청 맛있게 솜사탕을 챱챱 베어물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직 호감이 가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긴 하지만 남이 내가 준 음식을 잘 먹는 다는 건 뿌듯한 일이지 않는가.
" 맛있죠? "
내가 재환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재환이는 솜사탕에서 입을 떼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입에 머금은 솜사탕을 다 녹인 뒤 겨우 입을 떼고 내게 말한다.
" 저 햄 참 좋아하거든요? "
" 네?.. "
" 햄맛 솜사탕은 없을까.. "
내 귀를 잠시 의심했다.
아무리 우연이라도 이런 황당한 상상을 하는 이가 '그' 말고 또 있었다니..
나는 토끼처럼 커진 눈으로 재환이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도 안되는 상상때문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그런게 있을리가요.."
" 왜요. 맛있을 거 같은데. "
맛있을 거 같다고 말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재환이의 표정이 뭔가 의심스러웠다면 내 착각이었을까.
"...."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아는지 잔잔했던 바람이 세게 일어 벚꽃잎이 더욱 세차게 흩날린다.
여전히 햇살은 따스하게 우릴 내리쬐고 있었고.
아름다운 내 봄은 이렇게 날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