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다는 느낌, 마지막에 잠깐 느껴진 뒷 손목을 묶어둔 끈이 손목을 당기는 느낌을 끝으로
아,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학연은 체념적으로 눈을 감았고,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날 왜 죽이려 했을까, 궁금증을 한가득 안고 죽을 준비만 하고있을 찰나, 어깨가 잡아채져 올라왔다.
....!
...왜지?
눈을 번쩍 떴다.
방금 자신을 떨어트리려던 재환이 입술을 물어뜯으며 자신의 어깨를 잡아 창틀 안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젠장..왜 이래. 왜이러는거야.
....
차학연. 왜.
....
너가 뭔데. 내 욕구를 으그러뜨리는데.
주먹을 꽉 쥔 재환이 다시 어깨를 밀었다, 다시 창문 안으로 끌어들였다.
아무리 그렇게 추운 날씨가 아니라한들, 윗도리가 다 벗겨진 상태의 학연은 추울 수밖에 없었다.
오들오들 떨리는 상체를 잡고있던 재환이 눈쌀을 찌푸렸다.
씨발. 왜!!!! 왜!! 떨어지라고! 왜!!!!!
.....
왜.....내 손은...젠장..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린 재환이 거칠게 학연의 몸을 끌어내렸다.
창틀에 매여있는 끈을 풀어 학연을 안아들은 재환이 학연을 침대 위에 눕혔고, 재환은 고민에 빠진 듯 했다.
우읍...으으..
그러나, 그런 모습이 학연에게는 더욱 공포였다.
하나의 고비를 넘겼으나, 그 고비를 눈앞에서 경험해본 먹잇감에게는
제 앞의 맹수가 무엇을 하든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뭐야. 왜 울어.
재환이 학연의 막힌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학연의 까무잡잡한 몸. 울어서 흡사 흥분되어 충혈된 듯해보이는 눈동자.
바깥에 있어서 빨개진 볼과 얼어붙은 상체.
마지막으로 뒤로 묶인 손목.
재환도 남자였기에, 저절로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학연에게 다가가던 재환의 바지춤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아이씨.
뒷머리를 긁으며 휴대폰을 쥔 재환이 신경질적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 ..
귀기울인 학연이 깜짝 놀랐다.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저 통화 속 목소리는.
택운이었다.
무뚝뚝해도 자신을 그리 아껴주던, 유일한 동갑내기 정택운이.
신입이라는 학연에게 툴툴거리면서도 친절히 설명해주던 그 정택운이.
재환에게 자신에 대해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학연은 눈앞의 재환보다, 택운에게 더한 배신감과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재환의 마지막 말이 끝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재환을 바라보다, 학연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쾅쾅-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열어 이재환. 문!!!
젠장, 이래서 정택운한테 말 안하려고 했는데.
정택운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있다는 건, 두가지를 뜻했다.
그놈도 미친놈이거나, 아니면 정택운의 정체를 아예 모르는 순진한 놈이거나.
김원식이 전자일 가능성은.
배재할 수는 없었다.
홍빈은 모든 촉각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자신이 택운에게서 벗어나려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렇게 다시 손아귀로 들어갈 수는 없다.
안돼.....싫어...정택운이라니...안돼...
진정하자. 아닐거야. 홍빈이 정신을 바로잡고 다시 전화번호를 입력,하려다.
자신의 번호를 바꾸어 저장했다.
홍빈씨! 다 저장했어요?
아, 네. 여기요.
그럼 이제 점심먹으러가요!
그러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 홍빈이 원식에게 김치찌개를 먹자고 이야기했다.
자신과 마음이 통했다며 호탕하게 웃는 원식을 보며 홍빈은 확신했다.
원식을 조심해야겠다고.
원식은 상당히 택운의 어렸을 때와 닮아있었다.
홍빈아-
형 왔어?
응 미안. 늦었지?
아니야, 형사 일 힘들다며. 당연하지.
헤헤하고 웃으며 택운에게 팔짱을 낀 홍빈. 둘은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그러는 넌?
응? 아....음 뭐. 나쁘진 않아.
검사되면 더 힘들텐데.
형이랑 같이 일할 수 있을텐데 뭐. 그정도야.
택운과 홍빈. 이때까지는 정말 행복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사이였다.
그때당시 홍빈은 검사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고, 택운은 경찰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형사였다.
나도 홍빈이랑 얼른 같이 일하고 싶다.
일단 일이나 잘 하시죠?
택운이 지금처럼 무뚝뚝하고 말 없는 사람도 아니었고, 홍빈처럼 통통한 볼살을 우그러뜨리며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택운의 소시오패스 기질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단지 사랑하는 홍빈을 위해 그 기질을 숨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그 사건 이후 홍빈은 택운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고시고 검사고 다 때려치고 사라져 택운과의 인연을 끊어버렸고, 택운은 웃음을 잃었다.
그 날 이후 택운에게 홍빈이라는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을 넘어
가져야하는 존재였고, 찾아야하는 존재였다.
소시오패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서슴없이 하며 죄책감따위는 가지지 않는 자.
싸이코패스와는 다르게 그것을 철저히 숨기며 위장을 한다. 게다가 싸이코패스와는 다르게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도 똑같다.
그리고 지금 그런 소시오패스인 택운의 목적은 홍빈이었다.
택운의 목적이 '홍빈'이라는 존재로 바뀐 순간
홍빈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재환이 학연에게 하는 짓은 우스워질정도로.
재환이 택운에게 학연에 대한 협조를 구할 때,
조건은 '홍빈을 택운의 눈앞에 데려오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 재환은 난생 처음으로 소름이 끼친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홍빈, 널 박제해서라도 가질거야.
택운이 한 말이었다.
쓰면 쓸수록 재환이랑 택운이가 무서워요ㅠㅠ 흐엉
근데 점점 내가 재환이화 되가는 느낌.....괜히 막 가만히있다가 씨익 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