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과 옆집과 옆집
[옆,옆,옆]
[01]
"아, 상쾌한 아침."
기지개를 피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충 쓸어내린 여주가 밝게 외쳤다. 물론, 표정은 전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꿀맛 같은 휴일이건만 주말 알바 녀석이 같잖지도 않은 이유로 도망간 덕분에 여주가 대타를 뛰게 되었다. 오랫동안 봐오고 그동안 여주에게 이것저것 잘 챙겨주신 사장님의 간절한 부탁을 오지랖 넓은 그녀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착잡한 감정에 제 손바닥에다가 얼굴을 묻고 이불을 발로 두어 번 걷어찼다.
내 주말! 나도 꽃 보러 가고 싶어! 꽃! 주말! 꽃! 주말!
여주의 발악은 얼마 안가 멈췄다.
아, 맞다. 제일 중요한 남자친구가 없지? 그래... 일이나 가자. 돈이라도 왕창 벌어야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여주가 비척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새끼. 길거리에서 만나면 반 죽여놔야지.
도망친 주말 알바생의 등골이 오싹해질 법한 다짐을 내리며 말이다.
.
.
.
힐끗-
"......"
힐끗-
"......"
힐끗-
"보스 아까부터 계속... 집중 안 하십니까?"
정국이 책상 위에다가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짜증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지민을 노려봤다.
언제부터였지. 내가 부산에 갔다 와서부터였으니까...
그래, 삼일전. 그때부터 그가 모시는 보스의 상태가 이상했다. 하루 온종일 자신의 손바닥만 내려다보질 않나. 허구한 날 휴대폰을 쳐다보며 끙끙거리질 않나.
힐끗-
바로 저렇게!!!
참고로 지민은 휴대폰을 폼으로 들고 다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전화를 열다섯 번 하면 한 번 받을까 말까 하는 그였기에 정국의 속을 썩인 적이 꽤 많았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보스의 권한이 꼭 필요하니 제발 좀 전화를 받아달라고 서열 따위 다 버리며 지민을 위협했지만, 그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대신 지민은 정국에게 황당한 소리를 했다지.
'그럼 너도 보스해.'
'네?'
'자, 오늘부터 우리 정국이는 B 조직의 부보스다. 내가 없을 때 정국이가 보스의 권한을 가지는 거야.'
'잠시만요.'
'불만 있는 새끼들은 불만 있다고 나한테 말해. 친절히 상담해줄 테니까. 물론, 지금 말하기 귀찮으니까 몸으로 찰지게 대화를 나눠보자.'
'저 불만 있는데요.'
'에이, 정국이는 예외지. 예외."
지민의 미소에 정국이 정색으로 화답했다.
'저도 B 조직의 새끼인데 왜 안되는데요.'
'우리 정국이가 왜 새끼야? 내가 최고로 아끼는 동생이지.'
'저는 보스 같은 형 필요 없는데요.'
'쑥스러워하기는. 요, 깍쟁이.'
시발. 정국은 저절로 떠오르는 끔찍한 기억에 지난날 지민이 꼬집었던 제 볼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냈다. 원하지도 않은 권력을 하루아침에. 그것도 일사천리로 얻게 된 정국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지민 대신 모든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지.
아무튼, 휴대폰과의 인연이 먼 저 인간이 지금 회의 시간에 고철 덩어리만 바라봐?! 다른 조직을 무너트릴 중요한 계획을 짜고 있는 이 시간에? 누구는 그것 때문에 고통이란 고통은 다 받았는데!
우득. 주먹을 꽉 쥔 정국의 손등에 핏줄이 살벌하게 튀어나왔다. 정국의 속에서 천불이 나고 있는 반면에 그 원흉의 주인공인 지민은 현재 잔뜩 우울했다.
왜 연락이 안 오지? 이럴 줄 알았으면 여주씨 번호도 받아올걸.
지민이 우중충한 제 속을 숨기며 정국을 향해 웃어 보였다.
"아, 미안미안. 뭐라고 했지? 결투장을 보내자고?"
"유치하게 결투장은 무슨... 우리가 너희 조직 무너트리러 간다고 광고합니까? 몰래 잠입해서 빠르게 치자고요."
"음, 뭐하러 그렇게 해? 귀찮잖아."
"그럼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정국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꺼버리고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정국의 모습에 죽어나는 건 옆에 앉아있던 조직원들이었다.
부보스님, 또 화나셨어. 손등에 핏줄 봐. 오늘 단련 시간 때 죽어나겠구나.
자신들의 앞날을 눈빛으로 주고받던 조직원들이 동시에 눈물을 삼켰다.
"있지, 그럼. 그냥 정면 돌파하자. 뭐하러 그딴 조직에 회의까지 하면서 정성을 들여."
"미치셨습니까?"
"아하하, 우리 정국이도 참. 애정 표현을 너무 귀엽게 해."
"......"
이걸 애정 표현으로 보다니.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조직을 다른 곳으로 바꿔야 하나.
정국은 조직 이전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 시작했다가 곧이어 들려오는 제 보스의 목소리에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우리가 이겨, 정국아."
지민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띄었다.
그래, 저 자신감. 그리고 실제로 지민의 말은 허세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정국은 저가 어렸을 적, 조직에 들어가서 처음 지민을 마주했던 날을 떠올려봤다. 한숨을 깊게 내 쉰 정국이 계획이라는 단어를 국에다가 말아버린 제 보스를 대신해 안전하고 신속하게 상대 조직을 칠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해산해."
"네!"
대충 각을 잡은 정국이 아직도 멀뚱히 앉아서 보스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조직원들에게 손짓했다. 우렁차게 외친 조직원들이 가시방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문은 지민의 발길질로 인해 도로 닫혀버렸다.
"내가 너희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
"솔직하게 말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
잔뜩 얼어붙은 조직원들의 고개가 삐그덕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당연히 알다마다. 지민은 제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 그렇다. 딱 지민에게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항상 웃으면서 유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민의 겉모습에 속아서 덤비다가 호된 꼴을 당한 사람들이 음지에 흘러넘쳤다. 잔인함으로도 T 조직 보스와 두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바지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가볍게 털어 낸 지민이 제 앞에 서 있는 조직원들의 얼굴을 살펴봤다.
쟤구나. 방금 머리 숙인 새끼.
"다른 조직한테 우리 조직 정보를 야무지게 팔아넘긴 간 큰 새끼. 알아서 튀어나와."
"......"
"응? 얼른."
단정했던 지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졸음이 가득 담긴 윤기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감겼다 떠졌다.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석진의 전화 테러를 받고 이른 시간에 눈을 뜬 윤기가 습관적으로 침대 맡을 더듬거리며 담배를 찾았다. 그렇게 2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현관문을 부실 듯이 두드렸다. 점점 빨라지고 커지는 노크 소리에 윤기가 귀를 틀어막고 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 사이로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누구였더라.
윤기는 석진이 준 빌라 주민 리스트를 기억해 봤다.
아, 옆집. 이름은 김여주.
윤기가 여주의 정보를 알아낸 사이, 그녀가 다시금 그에게 외쳤다.
"제 말 듣고 있는 거 맞아요? 맞으면 고개라도 한 번 끄덕여 보든가요!"
"......"
그녀의 요청에 윤기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그쪽이 피우고 있는 담배 냄새가 저희 집까지 넘어온다고요. 그러니까,"
"나보고 담배 끊으라는 거죠. 지금."
아, 귀찮아. 윤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윤기의 주변에는 이렇게 남의 인생에 참견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집착하고 엉겨 붙는데 그게 어찌나 귀찮고 역겨운지. 그래서 윤기는 제 조직을 뒤집어엎었다. 그 결과. 그의 조직에는 여자란 존재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처음으로 입을 연 윤기의 모습에 놀랐는지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그녀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아니요? 그쪽이 저한테 뭐라도 되나요?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러면 오지랖이죠."
"......"
물론, 그녀는 오지랖이 태평양 급이었지만 이런 자잘한 일에 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다.
"피우시고 싶으면 마음껏 피세요. 그건 상관 안 하는데 옆집으로서 지켜야 할 에티켓은 지키자고요. 에티켓 아시죠? 아시면 고개 끄덕. 모르시면 고개 절레."
끄덕.
"잘했어요. 아무튼, 5시부터 11시까지는 집에서 피우셔도 돼요. 그때 제가 알바때문에 집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만 이곳에서 사는 거 아니니까 웬만하면 밖에서 피우시는 걸 추천해요. 그럼, 즐담!"
그녀가 윤기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엘레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원체 표정 변화가 없는 윤기인데 현재 그의 표정은 당혹으로 물들여 있었다.
특이한 여자. 그런데 즐담이 뭐지.
이마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인 윤기가 지금 막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
.
.
"보스. 보스네 빌라에 B 조직 보스와 T 조직 보스도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짜? 리얼? 확실해?"
"네. 음지 소식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놈이 말해줬으니 확실합니다."
...둘 다 내가 사는 빌라로? 귀차니즘 자식과 결벽증 자식이?
호석은 신중하게 쌓아 올리던 로봇 조립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흐응, 재미있네."
"네?"
"역시 꽃에 향기가 나면 벌레떼가 잔뜩 꼬이는 법이지."
"보스, 무슨 소리입니까?"
"그럼 어디. 내 귀여운 피앙세를 지키러 가 볼까?!"
"에? 잠시, 잠시만요! 곧 중요한 거래가...!"
보스!!!!!! 호석은 조직원의 애타는 부름을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방을 빠져나갔다.
[작가 주저리]
무슨 작품을 연재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제일 많은 표를 받은 옆 옆 옆을 주로 연재하고 옆 옆 옆이 막히면 우짝변을 쓰기로 결정을 내렸어요!
사실 옆 옆 옆 00 편에 애들 이름 위에다가 움짤 넣으려고 했는데 제가 까먹어서 실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암호닉 신청하시는 분들 다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다가 다시 정식으로 신청해주세요!
한눈에 딱 알아보고 딱 팍! 정리 콱! 이렇게 하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왜 저럼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암호닉 신청은 여기다가 다시 받을게요!
기존 암호닉 분들도 다시 신청해주세요!
또... 텍파 드디어 다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왜 아직 안 보내드렸냐면 외전이라고 해야 하나...
텍파 안에만 포함되어 있는 외전을 쓰고 있습니다.
[예: 어쩌다가 얘랑... 지민이 연거푸 술을 들이켜 마시는 정국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여주를 뺀 방탄이들이 모여서 취중 진담 아닌 취중 진담을 하는 외전.
[예:
"또야?"
"미안해, 지민아... 윤기 오빠가 꼭 오라고 해서."
여주의 대답에 지민의 표정이 불퉁하게 변했다.
"가지마. 가지 말고 나랑 있어."
좋은 남자친구니 뭐니. 그딴 거 다 필요 없어. 지민은 결국 여주와 오래가기 프로젝트를 미련 없이 포기했다.]
지민의 질투 외전.
이렇게 들어갈 예정입니다. 현생 때문에 바빠서 다시 자주 못 오고 텍파도 제 예상보다 늦게 보내드릴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완결도 한 번 해봤는데 이것도 못 하겠습니까!? 하ㅏㅏ하ㅏ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럼 전 이만 딥슬립을 하러 사라지겠습니다.
아, 먼저 답글들을 달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