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안 와?"
"갑니다 가요"
"어휴 김성규 성질 급한거 보소."
아 진짜. 배고파 돌아가시겠네. 굼벵이들! 여느 때처럼 저녁급식을 먹으려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 먹을 것 욕심이 별로 없는 급식 팸이기에 항상 아이들이 다 급식을 받고 사람이 빠졌을 무렵 느긋하게 밥을 먹으러 간다. 하지만 오늘은 애들이 늑장을 부려도 너무 부린다. 점심도 맛없어서 조금 먹었더니 배고프단 말이야!
이호원, 이성열이 늑장 부리는 꼴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자니 속이 터져서 교실 밖으로 나와 복도 창가에 기댔다. 순간 스치는 생각. 남우현은 밥 먹으러 갔을까? 걔는 엄청나게 빨리 먹고 올라오던데. 벌써 다 먹고 올라왔으려나? 억울하게 구겨진 눈썹과 동시에 답답하고 꿍해 있던 속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를 보면 새삼 느끼게 된다. 내가 남우현을 진짜 좋아하는 게 맞구나. 그냥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구나.
복도 창문에서 보이는 맞은편 건물에 있는 남우현의 교실. 밑져야 본전이지. 확인이나 해보자 싶어서 몸을 뒤로 돌려 남우현의 교실에 시선을 두었다. 있었으면 좋겠다. 있어라, 제발. 눈동자로 교실 앞쪽부터 뒤쪽까지 찬찬히 스캔했다. 커튼이 반쯤 거둬져 있는 교실에 보이는 실루엣이 하나도 없었지만 심박 수가 서서히 올라가고 제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없지만 있을 거 같았고, 없는 걸 두 번 세 번 확인 할수록 내 머릿속은 남우현으로 꽉꽉 채워져 갔다.
진짜로 없나 보다. 힘을 주어 창문을 짚고 있던 손에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할 때였다. 누군가 커튼으로 가려져 안 보였던 부분에서 튀어나와 사물함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사물함 문을 닫고 교실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한 줄기 희망. 희망이라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하루하루 남우현을 보는 낙으로 학교를 오는 나한테는 그랬다. 제발 남우현이기를! 나는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서 창문을 열고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어 눈을 찌푸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창문 쪽으로 와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 실루엣이 거짓말처럼 창문 쪽으로 다가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남우현…인가? 남우현인 거 같은데? 설마…? 아닐 거야… 근데 아무리 봐도, 걔…맞…는거 같잖아. 그 실루엣이 남우현임을 인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남우현임을 확신하고 나서 재빠르게 창문을 닫고 뒤를 돌았다.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빠르게 열이 올랐다. 내 귀가 빨개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애가 맞다면 우린 꽤 오랜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진짜 눈이 선명하게 보인 건 아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남우현이 날 보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지금도.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등지고 있던 창문을 다시 힐끔 돌아보았다. 하지만 남우현에게까지 시선이 닿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우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하루 이틀 쳐다본 것도 아니고 이미 눈치채고 있겠지. 내가 관심 있어 하는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이런, 남우현에 대한 생각. 그리고 어차피 고백할 것도 아니고 앞으로 꾸준히 만날 사이도 아닌데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빤히 쳐다볼까. 보고 싶어. 지금 보고 싶다. 이런, 씁쓸한 생각.
그래, 앞으로 꾸준히 얼굴 대면하는 사이도 아니고, 내가 일방적으로 지켜보는 사이인데. 이럴 때 안 보면 언제 이렇게 마주 볼 수나 있나.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돌아볼 용기가 생겼다. 긴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남우현은 아직 나를 보고 있었다.
1초, 2초, 3초… 1초가 1년 같고 2초가 10년 같고 3초가 100년 같은 시간. 우리는 계속 서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니? 왜 나를 쳐다보고 있어? 이런 내가 어떻게 보여? 내가, 널,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남우현에게는 닿지 못하는 내 마음속의 외침.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너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다가가지 못할까.
"야 김성규 가자. 오래 기다렸냐?"
"뭘 그렇게 봐. 빨리 가자 배고파."
이호원이 내가 보고 있던 쪽을 성의 없이 한 번 바라보더니 금방 시선을 때버리고는 내 손목을 잡고 잡아끌었다. 천년만년 그 자리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던 내 발걸음도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고, 1년, 10년, 100년 같았던 시간은 0.1초, 0.01초, 0.001초처럼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신발장에 가려 남우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 시선은 남우현에게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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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엥 자급자족하끄야ㅠㅠㅠ아ㅣㅜㅏ유아ㅠㅠㅠㅠ잉독방ㅠ아ㅣ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