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올 게 뭐야. 이것들은. 분위기 좋았는데. 이호원에게 끌려가면서 입을 삐죽였다.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서 벌써 저만치 가있는 이성열을 보고는 괜히 천천히 가라고 짜증을 냈다. 내 짜증 내는 말투에 이성열은 개구지게 웃으면서 우리 성규 오래 기다리게 해서 삐쳤느냐며 장난을 걸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 다시 볼멘소리를 내뱉자 이젠 이호원이 끼어들었다.
"그 새 뭔 일 있었냐? 아까 남우현네 반 보고 있던데. 뭐 걔 보기라도 했어?"
"…."
"쯧쯧, 새끼 사랑문제 였구만."
"…."
"야 좀 있으면 걔네 라인이다."
이호원. 쓸데없는 데에서만 눈치가 빨랐다. 내가 남우현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같이 그 애 때문에 울고, 웃고 해준 이호원이다. 내가 남우현을 좋아하고 나서부터는 급식을 먹을 때 남우현의 교실이 있는 통로를 일부러 지나가는 루트를 통해 급식실에 갔다. 급식실에 갈 때마다 행여나 남우현과 마주칠까 마주치면 어떻게 할까.하고 항상 생각해보지만 정작 마주치는 날은 많지 않았다. 설령 마주친다 해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만큼의 시간적 여유도 없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방학 보충이라 그런지 학교에는 고3밖에 없고 그나마 고3 중에도 야자는 안 하는 사람이 많기에 항상 저녁 시간은 고요 속에 묻혀있다. 이 복도만 지나면 남우현의 교실이 있는 통로가 나온다. 볼 수 있을까? 다른 때와는 왠지 무게가 다른 긴장감에 호원이의 손을 꽉 잡았다.
걸음이 느려졌다. 호원이도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지 내게 걸음을 맞춰주었고 천천히 천천히 남우현의 교실이 보이는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아까 교실에 있었으니 양치라도 하러 나오지 않을까. 하는 들뜬 마음을 품고 남우현네 반 쪽으로 완전히 고개를 돌리고 통로를 지나갔다. 너와 내가 마주칠 수 있는 자리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어서. 내 딴에는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통로를 지나가는 순간은 한순간이었다. 아주 짧은, 1초나 될까 싶은 아주 짧은 순간.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속에서 남우현을 보았다. 온전히 나를 보고 있는. 밖에 나올 일이 있어서 어쩌다 마주친 남우현이 아닌,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복도 한가운데 서 있는 남우현을. 내 걸음을 따라서 시선을 나에게 옮기던 남우현을.
남우현과 그렇게 눈이 마주치고 나서 한동안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돌아가 있던 고개도 앞으로 원위치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그저 호원이의 손에 끌려 발걸음을 옮겨 걸었다.
내가 마침내 차근차근 상황정리를 마치고 그 자리에 우뚝 서자 호원이 가다 말고 멈춘 나를 돌아보았다.
"또 왜."
"호원아…."
"못봤어? 걔 없었어? 왜 또 울상이야. 못 만난 게 하루 이틀이냐…."
호원이가 한숨을 푹 쉬고는 내 앞에 마주 섰다.
"그게 아니고, 봤어. 있었어. 나 보면서. 나 기다렸다는 듯이. 복도 한가운데에."
기쁜건지, 슬픈건지 뭔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말이 뚝뚝 끊겼다. 내가 문장을 온전히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좋아해야지 표정이 왜 그래."
나도 모르겠어. 좋은데. 진짜 좋은데. 싫어. 그냥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뿐인데, 애초에 기대 같은 거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걔가 이렇게 나오니까 희망이 생기잖아. 걔도 날 신경 쓰는 것 같고 걔도 날 좋아하는 것 같고…. 이런 쓸데없는 희망. 이런 희망고문 하는 걔가 싫어져. 그런데 좋아. 자꾸 보고 싶고, 그런 희망고문이라고 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내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횡설수설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었다. 호원이는 내 앞에서 묵묵히 내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내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이자 호원이 말없이 그저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줬다.
호원이의 묵묵한 손길에 위로를 받으며 한참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벌써 안 보일 정도로 앞서 간 이성열이 빨리 오라며 난리난리를 피우는 문자이지 싶었다. 고개를 들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호원이에게 가자고 하고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안녕? 김성규.
+) 열린결말 하고 싶었는데 닫힌결말 할래 |
낯선 번호였다. 뭐지 나 최근에 번호 누구한테 준 적 없는데…. 안 그래도 기분 싱숭생숭한데 이건 또 뭐냐. 주먹 쥔 왼손을 관자놀이에 갔다 댔다.
"누구야?"
그럴까…. 관자놀이에 갔다 댔던 왼손을 핸드폰으로 옮겨 두 손으로 죄송한데 누구시냐고 정중하게 답장을 보냈다. 전송완료를 확인하고 앞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호원이를 뒤따라 갔다. 아까 그 복잡했던 마음이 이 낯선 문자 덕에 조금은 묻힌 거 같아서 뜬금없이 이 문자를 보낸 사람에게 고마워졌다.
그런데 답장은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뭐지? 내가 몰라서 충격먹었나? 서운했나? 마음 한구석에 박혀있던 소심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면 어떡하지…. 아우…. 양치질을 하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양치질을 끝내고 물로 입을 헹굴 때 즈음 다시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까 그 사람인가 싶어서 재빠르게 입을 다 헹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알림창에 찍혀있는 익숙한 낯선 번호에 하마 타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교실로 돌아가면서 알림창에 뜬 문자를 눌렀는데 MMS를 수신하려면 4G를 켜라나 뭐라나 하는 핸드폰님에 말씀에 4G를 켜고 수신을 기다렸다.
수신을 마친 문자의 첫 줄을 읽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
문자를 다 읽자마자 또 오는 문자 한 통.
-너를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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ㄸㄹㄹ.. |
얘네도 커플이야....또르르... 얘넨 해피엔딩 왜 난 안해피엔딩? 사실 이거 내 실화야 엔딩 빼고... 현실은 새드엔딩이었어...ㄸㄹㄹ 첫사랑의 추억을 이렇게 되새겨보고싶은 마음에 이런 똥손으로 글을 썼지요
석류님, 프라푸치노님 고마워요~.~ 이런 글 좋아해줘서잉^3^♥ 원래 글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요!! 허헣 그래두 님들 내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