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김정우/이태용] 모순의 정의
김정우의 열일곱은 우울했다. 아버지의 외도, 가정 불화의 시초였다. 아버지가 하시던 작은 사업은 위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어머니는 가출을 했다. 의무교육이 아닌 탓에 고등학교 등록금까지 내기 어려운 사정에 놓인 김정우는 빠듯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낮부터 저녁까지 불판을 나르고, 새벽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다. 김정우의 아버지는 그가 벌어오는 돈을 흥청망청 쓰기에만 바빴다.
‘정우야, 엄마가 곧 갈게.’
그렇게 김정우의 어머니는 1년을 도망치셨다. 우리 집에서, 김정우의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김정우에게서.
***
김정우의 열아홉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해 여름, 그의 아버지가 목을 매달았다. 불행하게도 그 광경을 목격한 김정우가 그의 아버지를 살렸다.
‘그냥 두지 왜 살렸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한참을 바닥에 쓰러져 누워있던 김정우에게 집을 떠난 어머니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말끔했다. 광이 나는 검은색의 뾰족구두와 천이 고운 원피스, 그리고 안색이 핀 얼굴까지. 어머니는 변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기 전의 모습과도, 많이 달랐다.
‘정우야, 가자.’
김정우의 열아홉에 파장을 일으킨 시작되는 소리였다.
***
“이모, 제가 뭐라고 했어요. 나 쟤랑 겸상 안 한다고 했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직접 시키신 말씀이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럼 저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내려오지라도 않았지.”
“죄송합니다, 아가씨. 다음부터 그러도록 할게ㅇ…”
“아주머니한테 뭐라고 하지 마. 다 알고도 내가 내려온 거니까.”
“…뭐?”
“다 알고 내려온 거라고. 그러니까 넌 그냥 밥 먹어. 내가 올라갈게.”
“뭐? 이게 어디서 오빠 행세야, 역겹게.”
밥상에서 소란스럽게 무슨 짓이야? 아버지가 큰소리를 내시며 내려왔다. 맞은 편에 앉은 정우를 째려보는 제 눈이 무안할 정도로 그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 바로 옆에 앉은 새어머니, 아니 정우의 어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손톱을 입에 물었다. 불안하고 걱정이 많을 때 나오는 습관인 듯 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빠,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침에 우리 네 식구가 같이 밥을 먹는 게 어디 이상한 일이냐?”
“그 말이 아니잖아요. 얘랑 같은 학교 같은 반인 것도 싫은데 밥까지 같이 먹어야 해?”
“그럼 같이 살기까지 하면서 밥은 안 먹을 거냐?”
“아빠 돈 쓰시는 거 좋아하잖아. 차라리 쟤네 엄마랑 쟤, 오피스텔 하나 구해서 보내요, 응?”
“김여주, 말버릇이 그게 뭐야?”
“제 잘못이에요. 제가 원래 아침을 잘 안 먹어서요. 계속 안 먹다가 갑자기 자리에 앉아서 여주가 많이 놀랬나 봐요. 저 먼저 일어날게요.”
정우의 말에 식탁에 찬바람이 쌩 - 하고 맴돌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제 방으로 올라갔다. 그와중에도 가정부 이모에게 인사하는 것을 빼먹지 않고 말이다. 식사하세요, 회장님. 새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겨우 수저를 들으셨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카드 정지시킬 줄 알아, 너. 아버지의 되도 않는 협박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더 이상 아침을 먹을 기분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수저를 내려놓으면 새어머니의 손이 제 손을 살며시 부여잡았다.
“…여주야, 나가서 빵이라도 사먹어.”
어느새 제 손안에 꾸깃꾸깃해진 만 원짜리 지폐가 쥐어져있었다.
***
“야, 천민.”
“…….”
“대답 안 해? 야, 천민”
“김정우.”
“뭐?”
“내 이름 천민 아니고 김정우라고.”
하, 이거 웃기는 새끼네. 태용이 화가 난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천민, 태용과 그의 무리. 그리고 그런 그들을 빨아먹는 아이들이 정우를 이름 대신 부르는, 일종의 별명이었다. 저러다 또 얼마나 두들겨 맞으려고. 정우의 미간을 검지로 툭툭 - 미는 태용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애써 시선을 책으로 돌려봐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제 청각은 사물함 뒤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퍽,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덜컹 - 하는 사물함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태용의 주먹질 소리가 교실 안을 울려댔다. 이래도 말 안 해? 아프다고 해,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천민 새끼야. 얼마나 쥐어 터졌는지 모른다. 설마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 그 모습을 보면 지독하기도 지독한 김정우는 작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이를 꽉 깨문채 참고 있더라.
“이태용.”
“김여주?”
“그만하지. 곧 점심시간 끝나는데.”
“이 새끼가 지금 개기잖…”
“너 이번에 또 걸리면 아버지한테 오토바이 뺏긴다면서.”
“아, 씹...”
“적당히 해. 걔도 얼굴은 들고 다녀야 될 거 아니야. 저게 사람 얼굴이야? 피떡이지.”
손을 탁탁 - 털고 일어난 태용이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정우의 배를 걷어찼다. 교실 뒤편에 대자로 뻗어 누워 숨을 고르는 정우에게 다가갔다. 그의 시선이 교실의 천장에서 나로 옮겨 붙었다.
“일어나.”
“못, 일어, 나….”
“귀찮은 새끼.”
겨드랑이 부근에 손을 비집어 넣어 그의 어깨죽지를 부축했다. 아픈 듯 인상을 찡그린 정우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부측을 하는 건지, 바닥에 질질 끌고 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힘겹게 데리고 온 보건실에는 야속하게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후였다. 어색하리만치 고요한 보건실에 정우의 목소리가 흐트러졌다.
“너 나 싫어하잖아.”
“잘 아네. 나 너 싫어해.”
"근데 왜 그랬어.“
”…불쌍해서 그랬다, 왜.“
“고마워서.”
“…….”
“그래도 나 너무 미워하지는 마.”
“지랄.”
“나는 너 좋아하거든.”
“…….”
“얼른 가 봐. 괜히 다른 애들 오해하겠다.”
“네가 말 안 해도 갈 거였거든?”
“알았어. 미안해.”
시원한 바람이 제 머리를 흩날렸다. 어느새 봄이 가고 초여름이 시작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