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물이 다른 연애에 '이민형'을 심어드립니다.
1.
이민형. 그러니까 걔가 누구냐면 본교의 물리학과를 씹어먹고 있는 슈스 되시겠음. 그와 더불어
"그래서, 넘어졌는데 좀 아파."
"내가 너 걸을 때 조심하랬잖아, 걷는 폼이 넘어질 것 같다고."
"걷다가 아, 이름이가 이렇게 걷지 말랬는데 하자마자 딱 넘어졌어."
넘어져놓고도 신기하다고 웃는 저 이상한 놈이 제 친구인데요, 그게 말하자면 길고 말을 안 하자니 아까울 정도라 약간의 서사를 풀어보자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고3 때 반톡에 '야 오늘 이과반 누구 전학온다더라' 하길래 고3 때 전학오는 애도 다 있네. 했는데 그게 이민형이었음.
내가 학교 가는 길이 그 시간대에는 나 말고 몇명 없는 길이라 누구랑 같이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날 유난히 누가 따라오는 기분인 거임. 대놓고 확 돌아보긴 뭐해서 지나가다 부동산 유리에 비치는 걸 봤는데 같은 교복 입었길래 아니었구나 했지 나는.
그리고 밀려오는... 쪽팔림... 괜히 의심한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해서 중간에 편의점에 들어가버림;; 절대로 제가 초코우유 때문에 들어간 게 아니라 민망해서, 응. 어쩔 수가 없잖아 먼저 지나가게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거든요. 진짜 그거임 절대로 우유 때문 아님.
존나 웃긴 건 여기부터입니다. 계산 하고 나왔는데 걔가 편의점 앞에서 핸드폰 보고 서 있는 거예요ㅜㅜㅠ 왜 그래ㅠ 솔직히 독심술로 내 생각 읽어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한 상황임. 근데 그럴 가능성이 0...
슬쩍 눈치 보고 가려는데 느낌이 딱 왔어. 내가 가려고 하니까 당연한 것처럼 저도 가려고 하는 그 느낌. 저 촉 되게 좋거든요. 제가 저희 반 무당인데요.
"저기... 혹시 따라오는 거야?"
근데 솔직히 말하면서도 도끼병으로 오해 받을까봐 쫄렸다. 걔가 존나 쪼개면서 내가 널? 이라고 하면 그 길로 뛰어서 학교 갈 생각이었음. 그리고 난 희대의 도끼병 환자가 되겠지... 누구보다 겸손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응."
? 어, 그래 고맙다. 일단 도끼병은 피했네.
"내가 학교 가는 길을 몰라서."
친구 좋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 10분거리를 몰라서 못 가고 있다는데 내가 또 같이 가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같이 가줬는데 가면서 걔 이름부터 시작해서 유학 일대기와 전학 사유까지 전부 듣게 될 줄은 몰랐어. 내가 물어본 것도 있지만 약간 tmi맨의 향이 나고요.
문제는 그렇게 학교 도착해서 교무실에 데려다주고 이제 안녕! 했는데
"...안녕."
반톡에 퍼진 그 전학생이 이민형이었고, 이민형은 아는 애가 나뿐이라 밥을 같이 먹었고, 생각보다 나랑 이민형이 잘 맞았고...
수많은 이유가 나랑 이민형을 붙여둔 덕에 베스트... 프렌드... 찍고 졸업해서
"너 이 학교 넣을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너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고 싶어서."
"어차피 과 다르잖아."
"상관없어."
이상하게 솔직한 이민형과 대학생활까지 함께하고 있다는 겁니다.
2.
그리고 이과에서 수학+물리를 제일 잘한 이민형과 평생을 문과로 살아 국문학과를 재학 중인 제가 얼마나 잘 맞았길래 연애까지 하냐고 물으신다면 이건 세월이 빚어낸 이해와 배려임.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잘 맞았던 것 뿐이니까요?
온갖 한자가 적힌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민형은 더위 먹은 거 아니냐며 내 어깨를 흔들었고 난 뭔 알 수도 없는 기호의 연속인 이민형 전공책을 보며 눈 안 돌아가고 있는게 다행이라고 칭찬을 해줬음.
하긴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다닐 때도 서로 시험 앞두고 알려준다고 난리도 아니였음.
"이건 뭐 왜 씌우는 거야 맨날, 추워서 씌우는 거야?"
"...그건 그냥 루트야."
그러니까 뭐랄까... 음...
"그러니까 이 임이 왕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어떻게 둘이야?"
"어?"
"여기는 대상이 하나인 것처럼 썼잖아, 그럼 좀 명확해야 되는 거 아닌가."
...동갑내기 환장하기. 그거요.
내가 백 번 이민형을 이해한다고 해도 가끔씩 걔가 보여주는 이과적 모먼트에는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1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먼트가 일상에서 걔도 모르고 나만 알게 아주 조금씩 보일 때가 있음.
예를 들면,
"와 저기 눈 거의 다 녹았다. 봄이 오긴 오나 봐."
"어..."
"왜?"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표현이야."
여러분은 캐나다에서 온 이과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3.
나랑 이민형이 썸~연애까지 가게 된 아주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
걔랑 나랑 그냥 친구였을 때, 평소에 둘이 나누는 대화가 골때려서 그런 건지, 정말 나랑 이민형이 이상하게 보여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주변에서 오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음. 아니 둘이서 친구 할 수도 있지 시도때도 없이 붙어다니면 다 애인입니까? 참 내, 미래를 보셨군요 선생님.
사실 난 몰랐음. 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뜬소문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 난 이민형이 과에서 그렇게까지 슈스인 줄 몰랐...(소근소근)
그 날도 이민형이랑 둘이 여름방학 시작하고 나면 바다 보러 가자고 약속해서 갈만한 곳 찾고 있었는데, 거기가 학교 앞 카페라서 그런가 이민형한테 인사하러 오는 애들이 많더라고요? 그제서야 내가 아, 내 친구가 슈스였구나...했지.
그러다가 안 거임. 나도 모르는 우리의 관계를. 저는 그냥 화장실 갔다가 돌아왔을 뿐이고요? 이민형이 자기 친구랑 얘기하고 있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요.
"민형이 너 시간 있으면 우리 볼링치러 가는데 같이...아, 뭐야. 여자친구랑 있었냐? 방해해서 미안, 간다."
그러더니 친구는 가버리고 이민형은 그 오해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좋은 곳 찾았다고 블로그 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나 혼자만 오잉또잉인 부분...
"쟤가 너랑 나랑 연애하는 줄 알아?"
"그런가 봐."
"근데 왜 아니라고 안 했어?"
그랬더니 이민형이 갑자기 스크롤 내리던 거 멈추고 나를 휙 돌아보는 것임. 솔직히 좀 쫄았다. 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민형과 가장 친한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걔 안 웃는 표정엔 면역이 부족해서요... 돌아와 나의 애옹이...
"기분 나빠? 그런 오해 받는 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 말이 그렇게 돼?"
"그래서 아니라고 안 했어."
"그... 말은 앞뒤 맞춰서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라."
"그런 오해 받는 거 나도 기분 안 나빠서 굳이 아니라는 말 안 했어."
고딩 때 잠깐 있었던 도끼병이 다시 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음. 그 때나 지금이나 이유는 이민형.
4.
그 일로 둘 사이에 분위기 변화를 겪고 연애에 골인 했지만 나는 꽤 최근까지 걱정을 했음. 아니ㅠ 솔직히 문이과 나와서 의견차이로 싸운다거나 하는 거 너무 없어보이고 골 때리고 진짜 다함께 차차차.
"벚꽃잎이 떨어지는 게 진짜 초속 5cm야?"
"왜?"
"어제 영화 봤거든. 근데 그 얘기 들으니까 네 생각 나서... 뭐야, 왜 웃어?"
"아니, 네가 그런 거 보고 내 생각 했다고 하니까 웃겨서."
그렇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내 예상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제 생각보다 이민형이 사랑꾼이더라고요... 행복한데 약간 적응 안 돼서 혼났음.
지금처럼 뭐가 웃긴지 1도 모르겠지만 일단 이민형이 웃으니까 나도 따라 웃고 그럼 결국 둘 다 웃는... 이상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긴해요. 이게 정상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민형이 내가 좋다잖아 그럼 괜찮은 거 아닐까.
"근데,"
"어?"
"아마 그건 아닐 거야. 중력 가속도 때문에 속도가 계속 커져야..."
올해의 목표: 이민형에게 일절만 하는 법 가르치기.
-지극히 제 기준이지만 민형이만 보면 이과생 이미지가 보여요...
-신청 받았던 주제인데 이게 이런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이거 쓴다고 무슨 이과 글 찾아 읽었는데 이해가 1도 안 돼서 힘들었어요...
-암호닉 신청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해주셔가지고 제가 당황했는데 이게 사랑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열심히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