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하루 24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정당화 된다.
“씨발! 안 놔?!”
민석이 다급하게 외치자 루한은 민석의 옷자락을 다시 한 번 붙들었다. 민석은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을 그 아저씨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여동생의 비명소리는 커지고 아저씨의 표정은 점점 더 흥미롭다는 듯 변해갔다. 누런이를 보이며 낄낄 웃더니 여동생의 하얀 뺨을 두툼하고 투박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소름끼치는 감각에 여동생은 눈을 질끈 감고서는 바들바들 떨었다. 바로 눈 앞에서 여동생이 희롱을 다하고 있는데 옷을 잡고 놓지 않는 루한이 답답하고 짜증나 눈물만 몇번 솟구쳤다.
“놔! 씨발 놓으라고!!”
“미친새끼. 아주 제대로 미쳤지”
미친새끼는 너아니야? 하며 톡 쏘아붙히자 루한의 눈이 찡그려졌다. 민석은 점점 더 흥분만 더 해갔다. 아저씨는 여동생의 머리채와 다리를 한쪽 잡더니 질질 끄고 민석의 집으로 나가고 있었다. 민석은 손에 잡히는 어떤거든 아저씨에게 던졌다. 그러다 손에 잡히는 둥근 물체를 잡아들었다. 꽤나 묵직한게 맞으면 치명타겠다 싶은 민석은 어떤 사물인지 확인도 채 하지 않고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민석의 거실이 축축한 물로 범벅이 되었다. 어항. 빨간 물고기 두마리에 유유히 헤엄치고 있던 어항이었다. 이내 여동생은 투박한 손에 이끌려 복도 밖으로 나가버렸고 이미 패닉상태까지 온 민석이 미친듯이 루한의 옷을 잡아뜯었다.
“잡아. 잡으라고!! 저 새끼 잡아 응?!”
“김민석!”
“내,내 동생! 시발! 있는거라곤 쟤밖에 없어! 그런데 저딴 새끼한테 죽으라고?! 씨발 여동생은 죽여도 내가 죽여! 저새끼가 뭔데!!!”
“미친새끼야!!”
민석의 뺨이 힘없이 돌아갔다. 눈이 빨갛게 충렬되서는 루한을 노려보던 민석의 눈에서 결국 눈물 두 줄기가 툭 떨어졌다. 눈 앞에 바로 여동생이 있는데 잡지 못했다는 생각과 지금쯤 민석의 여동생의 상황. 루한은 민석의 팔뚝을 잡고선 침착한 눈으로 민석을 쳐다봤다. 썩은 동태눈알과 같이 민석의 눈은 바둑알을 박아놓은 듯 생기가 없었다.
“정신차려.”
“너라면 차릴 수 있냐.”
“생각이 그렇게나 짧아? 저 아저씨가 니네집을 들어왔다는 건”
민석의 온 몸이 삽시간에 굳었다. 리벤지 데이. 복수하다. 고로 민석 자신에게도 복수심에 불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루한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시원하게 이마가 들어나자 민석은 이를 딱딱 맞추며 루한을 쳐다봤다. 루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입술 밑에 깊게 난 상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민석은 루한의 손목을 잡았다. 뜬금없이 한 행동이라 루한은 화들짝 놀라며 민석을 쳐다보자 민석은 침을 한번 삼켰다.
“김루한. 나 살고 싶어. 나 살래. 살려줘. 응? 나 살고 싶다.”
“......”
민석이 미친 듯 입 안에서 침을 튀겨가며 말을 하자 루한은 자동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여동생을 잃어 죽고싶다는 듯 체념하던 민석이 눈을 부라리며 루한에게 부탁을한다. 살려달라고? 살고싶다고? 루한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자 민석은 입을 닫았다.
“도망가자”
민석이 말을 끝으로 루한을 끌었다. 루한은 민석에게 이끌려 거실을 가로질러가다가 미끄덩 밟은 무언가에 발을 떼어보니 빨간 금붕어 하나가 신발에 붙어있다. 다 터져 하얀 내장이 거실에 짖이겨져있다. 루한은 눈을 잠깐 감았다. 민석이 현관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루한이 빠르게 제지하자 민석이 이빨을 딱딱 부딪혔다. 마치 미친사람처럼. 인간의 최후는 언제나 더럽고 추잡스러웠다. 마치 지금의 민석과 같이.
“누,누가 나를 죽이러 올지 몰라. 안그래? 아까 봐, 죄 없는 동생이, 죽,죽었잖아 그치?”
“니 동생, 아직 안 죽었는데”
민석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나름 위로차 한다고 한 루한의 말이 민석에게는 더욱 더 큰 고통이었나보다. 일종의 희망고문이라고 해야하나. 민석은 입술 사이로 큰 숨을 내뱉었다. 미친 것 같아 김민석. 루한의 말을 끝으로 민석은 현관문 앞에 주저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민석이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눈물을 닦는 사이 금붕어가 죽어 하얗게 내장을 내놓고 있는 거실 창문에서 아침 햇빛이 내리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