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on
9. 참을 인 세 번이면 호구다.
아침부터 이제노 이름 들먹인 신애리 때문에 기분 저기압. 이제노한테 신애리 아냐고 물어보긴 해야 하는데 내가 쟤한테 무슨 수로 말을 걸어. 존나 처참하게 차였는데.. 어떻게 말 걸지 생각하다가 오전 수업 다 지나버린다. 그 와중에 신애리가 점심시간에 이동혁이랑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면서 데려가고. 진짜 최악이다 오늘. 아무튼.. 어찌어찌 5교시 수업 끝나고 짜기라도 한 듯이 반 전체가 엎드려 자고 있길래 이때다 싶어서 이제노한테 갔음. 깨울까 말까 고민 백 번 하고 곤히 자고 있던 이제노 책상 똑똑 두드렸다. 움찔 놀라서 일어나더니 내가 깨운 거 알고 더 놀랐는지 동공확장되는 이제노. 반이 너무 조용해서 복도로 불러냈다.
"그.. 갑자기 불러서 미안"
"아냐. 뭐 물어보려고?"
"누구 아나 싶어서. 너 신애리라는 애 알아?"
쉬는 시간 복도가 조용할 리가 있나. 초등학생마냥 공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남자애들 덕분에 내 목소리 묻히고 이제노 못 들어서 뭐라고? 한다. 너 5반 신애리 알아? 한 번 더 말해도 못 들었는지 무릎 구부리길래 귓속말로 말해줬음.
"어 알긴 아는데 왜?"
"아.. 혹시 걔한테 내 얘기 하거나, 뭐.. 그런 적 있어?"
내가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는지 그 얘긴 아무한테도 안 했어. 한다. 안 말했다니 다행이긴 한데, 그럼 신애리는 무슨 근거로 이제노랑 서로 좋아한다고 말한 거야..? 혼돈의 카오스인데 하필 이제노랑 귓속말하고 있을 때 신애리 이동혁 옆에 딱 붙어서 짜잔 나타난다.
"여주 안녕!! 봐봐 동혁아 내가 뭐랬어-"
뭐가 반가운지 활짝 웃으면서 나한테 인사하는데 옆에 이동혁 신경 쓰여서 대답 못했다. 니가 뭐랬는데? 물어보니까 아 내가 동혁이한테 너희 둘이 잘 어울린다고 그랬거든- 하면서 헤헤 웃는데 진짜 황인준 소환하고 싶었음.. 그럼 나 대신 욕 한 바가지 해줄 텐데.
"마저 얘기해, 우린 비켜줄게 여주야"
표정관리를 할래야 할 수가 없어서 무표정으로 쳐다보니까 신애리는 이동혁 손목 잡고 가버린다. 근데 동혁아 쟤가 손목 잡는데 왜 안 뿌리쳐? 뭔가 무표정한 이동혁 표정 읽기도 어렵고 지금 상황이 너무 뭐같아서 가만히 서있는데 이제노가 무슨 일 있어? 묻는다. 아니, 귀찮게 물어봐서 미안해. 하고 반에 들어갔음.
-
저번 일 이후로 이동혁 혼자 뭘 그렇게 생각하는지 갑자기 말수도 적어졌다. 원래는 눈 마주치면 눈웃음짓고, 지나가다 마주치면 쫄레쫄레 와서 장난도 쳤는데 요샌 무슨 동태 눈깔처럼 눈에 힘도 없고 자꾸 알 수 없는 웃음만 짓고.. 얘가 아픈 건지 그냥 내가 싫은 건지 알 수가 없으니까 답답해 죽을 것 같음. 게다가 신애리는 몇 주째 우리랑 같이 등하교하고 내가 이동혁한테 말 걸 틈도 없이 이과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졸지에 병풍 신세 됐다고.
"동혁아 우리 기벡 숙제 뭐더라?"
"모의고사 오답"
"아- 근데 동혁아, 오늘 화학 선생님 진짜 웃겼지, 오늘 이민형 진짜 재밌었는데"
"...응"
의미 없는 대화만 하다가 신애리 가고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에서도 이동혁이랑 아무 말도 안 한다. 나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고, 이동혁은 그냥.. 걱정이 많아 보여서. 그리고 그 걱정이 왠지 나 때문일 것 같아서.
10. 여주는 호구다.
"신애리가 이동혁한테 무슨 말 했나 보네"
"무슨 말?"
"뭐 이동혁 약점이라도 잡았나 보지. 안 그럼 이동혁이 그럴 리가 없어"
"근데.. 진짜 만약에, 이동혁이 그냥 나 싫어하는 거면?"
"와하.. 개애소리야 또-. 이동혁 너 엄청 좋아하는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
하도 답답해서 이민형이랑 황인준한테 털어놓았다. 내 말에 황인준 한숨 푹 쉰다. 그래도 아니면.. 하니까 옆에서 거들던 이민형도 고개 끄덕이면서 진짜야, 한다. 위로는 고맙지만 그런다고 내가 걱정이 안될 리가.. 이동혁이랑 나 때문에 고구마 100개 먹은 듯 답답하다는 황인준은 결국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겠다면서 오늘 pc방 가자고 약속 잡았다. 이민형이랑 자기는 중간에 빠지겠다면서. 장소가 하필 pc방이라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황인준한테 고맙다고 백번 말했음.
수업 마치고 그래도 오랜만에 조금 들떠서 황인준이랑 같이 이동혁 기다리고 있는데 황인준이 갑자기 그냥 가자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이동혁한테 문자 온 거 보여준다.
[나 오늘 화학 조별 과제 때문에 못 가겠다 미안. 아 그리고 나 오늘 집에 늦게 가니까 김여주 밥 먹여 꼭]
"아.. 그럼 우리끼리 가자"
조금 실망했지만(사실 많이 실망함) 그래도 이번 주말에 내 생일이라 이동혁이랑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뭐. 아무튼 pc방 가려는데 황인준이 옵치 잘하는 애 있다고 한 명만 더 데리고 가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는데 그 한 명이 이제노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 황인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이제노랑 나랑 무슨 일 있었는지 모르는 거임. 아ㅎ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근데 뭐 때문인지 게임 집중 1도 안돼서 에임 하나도 안 맞고 빠대 뛰는데 계속 죽는다. 야 김여주 거기서 궁을 왜 쓰냐!! 아- 여주 한조 오바.
"아 안 할래. 나 간다"
"야야 잠깐만. 30분이나 남았잖아"
"재미없어.. 갈래"
"아 이동혁이 너 밥먹이랬는데"
됐어 내가 애냐. 가방 싸고 가려는데 이제노도 같이 일어난다. 야 제노야 넌 왜 가? 나 학원 가야 돼. 잠깐만뇨 그럼 이제노랑 나랑 둘이 가야 한다는 거잖아요. 기억상 이제노 학원 우리 아파트 근처인데.. 다시 앉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같이 pc방 나와버림. 적당한 간격 두고 가다가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이제노가 말건다. 밥 안 먹어? 아, 먹어야지.. 이제노가 잠깐만, 하고는 가방 뒤적뒤적거리더니 매점 치즈빵 하나 꺼내준다.
"먹을래? 너 밥 먹이랬다며"
"어? 아니.. 그거 너 먹으려고 산 거 아니야?"
"다른 거 먹지 뭐"
"괜찮아. 집에 밥 있을걸.."
그럼 후식으로 먹어. 손에 라이언 치즈빵 쥐여준다. 다시 건네주려는데 어허- 하면서 안 받으려고 손 숨기고 용을 쓰길래 결국 받아버렸다. 고마워, 잘 가. 이제노한테 손인사하고 가려는데 손에 유인물 한가득 들고 있는 이동혁이랑 신애리 마주침. 조별 과제 한다면서 왜 둘이 오는지.
"여주야 다 봤어- 제노랑 데이트하고 왔지!"
신나서 떠드는 신애리 옆에서 이동혁 무표정으로 나 내려다본다. 이제노랑 있던 게 죄도 아닌데 왠지 마음이 조금 무거웠음.
"아니 데이트 안 했어"
"거짓말하지 마~ 방금 너한테 빵 주는 것도 다 봤어"
"그런거 아니야 진짜"
"뭐야~ 여주 부끄러워하는 거봐. 오래가 여주야~"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걸 느끼고 그냥 한숨 쉬고 지나갔다. 일부러 이제노랑 엮는 신애리도 화나는데 옆에서 아무 말 안 하는 이동혁에 더 화났음. 넌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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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초록글 감사합니다ㅜㅜ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