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생 연하 남친 06
w.누 나
평소보다 아침에 30분이나 늦게 일어나 정신없이 머리를 감고 간단한 메이크업을 한 후 학교로 잽싸게 달려갔다. 그나마 지각한 강의가 하마터면 강제 결석이 될 뻔했다. 경영학과를 전공하는 나로서는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 과제들 때문에 매일 밤을 뜬 눈으로 보내느라 잠이 턱 없이 부족했다. 강의 내내 졸지 않기 위해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고, 강의가 끝난 후에 교수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김별빛”
강의가 끝났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강의실에서 나가지도 않고 앉아 있는 나의 등 뒤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남자의 부름에 깜짝 놀라 정신을 번쩍 차리며 뒤를 돌아보니 나의 동기들 중 한명인 이재환이었다.
“또 잠 못 잤어? 눈이 반은 감기네.”
“그동안 미룬 과제들 다 끝내느라-”
“아까 뒤에서 보니까 교수님한테 계속 인사하고 있더라”
강의 때 내가 졸면서 고개를 꾸벅이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며 나를 계속해서 놀리는 그였다. 한쪽 눈썹을 올리며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그의 명치를 주먹으로 퍽 치며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나와 이재환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MT도 갔다 오고 동기생들과 친해지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생긴 건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나쁘지 않은 외모를 가진 건장한 20대 남자 성인이지만, 하는 행동은 완전 애기다. 심지어 김원식보다 더. 툭하면 짧아지는 혀에 먹는 음식들도 완전 애기 입맛, 그리고 동기생들한테 치근덕 대서 귀찮게 하는 것마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린애 같은 놈이다. 다른 남자 동기들을 놔두고 굳이 나랑 다니려고 하는 그의 모습에 한때는 ‘얘가 날 좋아하나?’ 라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다른 여자들에게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니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착각임을 알게 됐다.
“왜 자꾸 따라와?”
“너 어차피 이제부터 쭉 공강이잖아”
“넌 다음 강의 있잖아”
“오늘 휴강인데?”
“그래서 나랑 계속 같이 다닐 거야?”
“응. 싫어?”
“싫은 건 아니고. 근데 나 내 남친 보러 갈 건데?”
“아, 김원식?”
“응. 오늘 농구 게임 있다고 꼭 보러 오랬거든”
“할 것도 없는데 나도 가지 뭐. 보다가 다음 강의 들어가면 되겠다.”
“그러시든가”
제 동기생들과 농구 경기가 있다며 며칠 전부터 꼭 와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김원식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맛있는 도시락을 싸주는 거였지만, 도시락은 무슨. 옆에서 쫑알대는 이재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시원한 이온 음료 한 병을 사 들고 김원식이 있는 경기장으로 갔다. 관중석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차 있었고 이재환과 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겨우 자리를 잡아 경기장과는 꽤 먼 좌석에 앉게 되었다. 멀리서 그를 지켜보며 혹시나 그가 다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였다.
중간중간 관중석을 올려다보며 누구를 찾는 것 같은 그의 모습이 내 눈에 간간이 들어왔다. 그가 날 찾을 수 있도록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보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보아도 그 수만은 관객들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은 꽤 힘들었나 보다. 경기가 거의 끝나 감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지 못하는 그에 괜히 서운함이 들어 입술을 삐죽이고 있는데 갑작스레 나의 아랫입술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실실 웃으며 나의 입술을 잡아당기고 있는 이재환의 손을 쳐내고 위아래로 쳐다보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 하냐 너”
“관중석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쟤가 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뭐래. 야, 너 강의 늦겠다”
“알았어, 나 간다. 김원식이랑 데이트 잘 하고-”
“넌 교수님이랑 데이트나 잘 해”
이재환은 휴강이라는 달콤한 휴식시간 내내 내 옆에서 경기 중계를 해주었고, 다음 강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천천히 일어나며 자리를 떴다. 끊임없이 떠드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다가 이재환이 옆에서 없어지자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경기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이 나는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대충 한 메이크업을 수정하였다. 삐뚤빼뚤한 아이라인 위로 똑바르게 덧칠하였고, 다 빠진 입술을 분홍색 빛이 도는 틴트로 색을 입혔다. 화장을 마무리 짓고 다시 경기장을 바라보자마자 넘어지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함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나는 그였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서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관중들은 벌 때처럼 관객석에서 빠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김원식은 관중석을 올려다보며 열심히 나를 찾고 있었다. 결국 한참 후에야 그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고, 나를 찾자마자 나를 보며 활짝 웃어 주었다.
좌석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그에게 다가가 둘러싸며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들이 옆에서 말을 걸어와도, 음료수를 건네주어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음료수를 받지도 않고 내 쪽을 바라보며 그 여자들을 뒤로 한 채 나에게로 다가왔다. 김원식은 과 안에서도, 학교 안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아는 여우 같은 여자들도 그 앞에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해댔다. 그런 수많은 여자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나만 바라보는 그가 너무 고마웠다.
“경기 잘 봤어?”
“잘 하더라, 오랜만에 멋있었어.”
땀에 흠뻑 젖은 그에게 음료수를 건네주며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음료수를 따서 마시는 사이 혹시나 다친 구석이 없나 그의 몸을 훑어보는데, 아까 넘어져서인지 쓸려서 빨갛게 되어 버린 그의 무릎에 인상을 썼다.
“왜 다쳐 임마”
“별거 아니야, 며칠만 지나면 다 없어져”
“쓰라리지 않아? 아프겠다.”
“나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하지, 그럼 걱정 안되겠냐?”
“그럼 나 뽀뽀해줘”
“됐네요-”
“아, 아파- 나 죽을 것 같아”
제 볼을 가리키며 뽀뽀를 요구했지만 내가 단칼에 거절하자 제 무릎을 잡으며 아픈 척을 하는 그였다.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워 차마 넘어갈 수 없어서 그의 두 볼을 양손으로 잡고 입술을 붕어같이 만든 후 짧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눈이 휘어지도록 눈웃음을 치며 나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려 빈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많은 인파로 꽉 차있었던 경기장이 어느새 텅 비어 오로지 나와 그만 남아있게 되었다.
“누나, 나 땀에 흘리니까 섹시하지 않아?”
“뭐야,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응? 섹시하지 않아?”
“...뭐, 좀?”
“오늘 밤에도 보고 싶지 않아? 딱 누나 앞에서만.”
“응,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에이, 진짜 안 보고 싶어?”
“어, 진짜 안 보고 싶어.”
“누나, 솔직히 우리 최근 들어서 너무 안 한 것 같지 않아?”
“그런 건 꼭 안 해도 돼. 그리고, 그런 걸 왜 이런대서 얘기해?”
“뭐 어때, 우리밖에 없는데.”
“됐고, 나 요즘 과제 폭탄이라서 잠 잘 시간도 없단 말이야.”
“그래서 오늘도 안 할 거야? 나 너무 기다리게 하면 나중에 누나만 힘들지도 모르는데.”
“하나도 안 무섭네요. 넌 다음 강의 언제야?”
“몰라. 그리고 누나 아까 또 재환이 형이랑 같이 있었지?”
“뭐야, 봤어? 못 본 줄 알았는데.”
“그 형 걸어 나가는 거 봤어. 그 형은 왜 자꾸 누나 옆에 있어?”
“그냥, 친구니까. 우리 원식이 질투해요?”
“아 몰라. 다음부터 같이 다니지 마”
나와 친구 이상인 것처럼 보일 만큼 친한 이재환의 존재를 확실히 아는 김원식은 누구보다 그를 경계하였고, 내가 그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질투를 하였다.
100일, 101일, 102일 이후에 몇 번 더 관계를 갖긴 했지만, 최근 들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져 그와 함께 할 시간마저 줄어들었다. 그와 관계를 맺지 않은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고, 그런 그는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우리의 관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언제 할 거냐고, 자기 기다리게 하다가 죽일 셈이냐고.
*
[누나 오늘도 못 만나?]
응ㅠㅠ 미안해
[얼굴이라도 좀 보자..]
나도 우리 원식이 보고싶다
[밥 거르고 다니지 말고]
[만났을 때 살 빠져있으면 화낼거야]
걱정마 하루에 삼시 세 끼 다 챙겨먹고 있으니까
쌓여만 가는 과제들 틈에 죽음의 조별 과제라는 것마저 더해져 나에게는 잠시라도 앉아서 쉴 틈도, 그를 만날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일주일째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어쩔 수 없이 그의 데이트를 거절해야만 했었다. 학점관리가 특히 필요한 4학년인 만큼 나에게는 농땡이를 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별빛아, 우리 좀 쉬었다 할래?”
“그럴까?”
수많은 과 동기생들 중 하필이면 이재환이랑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오늘, 다른 조원들이 각자의 일이 생겨 나와 이재환밖에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조원들도 없겠다, 쉬엄쉬엄하자며 근처 카페로 끌고 가 과제를 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조사도 하고 피피티도 만들면서 과제를 하는 거에만 집중을 하던 와중, 잠깐 쉬자는 이재환의 말에 안 그래도 힘이 딸린 터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재환이 사온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를 쭉쭉 들이키며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또 잔다- 그러게 평소에 학점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
“아 말 시키지 마”
“잠 좀 깰 겸 잠깐 나가서 걷고 올래?”
“빨리 끝내고 집 가서 잘래”
“어차피 오늘 다 못 끝내”
“...그럼 조금만 걷다 오자”
현재의 정신으로는 툭 치면 쓰러져서 잠들 것 같았기에 잠깐 걸으면서 잠 좀 깨자는 그의 말에 알았다고 하며 대충 짐을 싸 들고 먼저 카페를 나갔다. 뒤에서 이재환이 빠른 걸음으로 쫓아와 내 옆에 딱 붙으며 내 핸드폰을 손에 쥐어줬다. 정신 차리고 다녀, 핸드폰을 두고 나오냐.라고 잔소리를 하며 나의 귀에 딱따구리마냥 따박따박 쏘아댔다. 피곤함이 가득 찬 나의 모습에 그는 나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고, 그대로 한참을 걷는데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징-징- 울리기 시작했다.
“어 식아 왜?”
“너 지금 누구랑 있냐?”
“나 그냥 친구랑 있는데? 왜?”
“왜 그 새끼가 네 옆에 있냐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새끼라니”
“나 만날 시간은 없으면서 그 새끼 만날 시간은 있나 봐?”
“...뭐야 너 어딨어?”
누군가에 의해 손목이 우악스럽게 잡혀 걷고 있던 방향이 틀어지게 되었고, 내 눈앞에는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 표정이 굳어있는 김원식이 서 있었다.
*
순둥한 김원식이 남자로 변하는 순간!! 일까요 아닐까요 ㅇㅅaㅇ
그리고 새로운 인물이 한 명 더 생겼죠? 이재환. 재환이의 활약도 많이 개대해주세요
항상 말하는 거지만, 포로리님 귤님 택구나님 보일라님 당근님 안녕님 배꼽님 피노키오님 사랑님 윤슬님 그리고 모든 독자님들 다 정말 감사해요♥
빅스 컴백이 이제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빅스가 이번 활동을 아무 탈 없이 잘 마칠 수 있길 희망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