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아지가 죽었다. 그리고 너를 만났다.
기다리는 이유
w. 오름
감기 몸살인 듯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고 목은 텁텁 답답하게 막혀왔다. 도통 움직일 힘이 없어 그냥 침대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누워있던 준홍은 인기척을 느끼곤 몸을 한 번 뒤척였다.
" 나 많이 아파요. "
" ……. "
역시나 대답이 없다.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내심 섭섭하다. 그래. 내가 이래 봤자 아저씨는 그냥 애새끼가 칭얼대는 걸로 들리겠지.
" 약, 안에 있잖아. "
" …응. "
뜻밖에 한 박자 느린 용국의 답에 준홍은 힘겹게 손을 뻗어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보지도 않고 손을 주섬주섬 움직이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준홍은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아무것도 없어요. 준홍의 잠긴 목소리에 용국은 얕게 미간을 좁혔다. 왜 갑자기 아프고 지랄이야. 용국의 자그마한 중얼거림을 준홍은 애써 못들은 체하곤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두 번째 서랍 안엔 이미 사용했는지 뜯겨있는 콘돔 껍데기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있었다. 준홍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는 이내 서랍을 닫았다.
" 지금 몇 시에요? "
8시. 용국은 시계를 한 번 쳐다보다 답했고 이내 나갈 채비를 끝냈는지 준홍의 방을 벗어난다. 9시에 편의점 알바 가야 하는데…. 준홍은 찌뿌둥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머리가 핑핑 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한 번 손으로 짚었다가 이내 머리를 짚었다. 어제도 안 갔는데…, 이 상태로는 오늘 알바도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자 준홍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몇 시에 오는…, 준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 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안이 고요해졌다. 아, 나갔네…. 준홍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몸을 떨구었다. 아까 본 콘돔 껍데기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려 가슴이 욱욱 쑤신다. 짜증나 죽겠어. 진짜. 불그스름한 얼굴을 베개에 묻다가 이내 이불을 발로 한 번 차는 준홍.
" …아프다고요. 아프다고. "
준홍은 천장에 대고 혼잣말하는 듯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