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글쎄, 그렇게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ㅡ나.
ㅡ내가 보냈으니까.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13.
ㅡ네?
ㅡ농담이야. 포장지 있어? 포장지가 있어야 추적이 쉽거든.
ㅡ……여기요.
ㅡ다음 주쯤이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때 만나. 외출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
분명 농담이라고 했지만 자꾸만 답답한 게 속이 쓰리다. 이게 아리송한 민윤기의 태도 때문인지, 교장선생님 덕에 한꺼번에 알게 된 여러 이야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집중 해.”
시험기간이라 그런 건지.
도서관은 시험공부 하는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아마 연회장도 마찬가지일 테다. 밥 먹는 곳에서 뭐하는 짓거린가 싶기도 하지만, 시험이 2주도 안 남았으니.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차라리 방에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난 방에 있으면 공부 안 되던데. 가고 싶으면 가도 돼.”
“어, 음. 아냐. 나도 여기 있을게.”
어제 다이애건 앨리에 다녀온 후 나는 거의 기절하듯 잠들었다. 여기 입학 한 뒤부터 생각해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았는데. 하나둘씩 답을 들을 때마다 또 의문점이 생기고, 또 신경 쓸 일이 생기니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더라.
저녁도 안 먹고 푹 잔 덕에 일찍 일어난 일요일 아침. 이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싶어 책을 찾는데 ‘마법의 역사’ 책이 없었다. 지난번에 책을 두고 왔나 싶어 교실에 다녀오는 길에 전정국을 만났다. 내 손에 들린 책을 보더니 공부하러 가냐 묻는데, 맞는 말이긴 해서 고개를 끄덕이니 도서관은 이쪽이라며 저만치 가는 게 아닌가.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자 뒤 돌아 본 전정국이 안 가냐며 고갯짓을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도서관에 왔다.
래번클로에 온 이상 성적과 더불어 기숙사 상점을 신경 써야 한다며, 전정국은 자리를 잡은 뒤로 고개 한 번 안 들고 공부했다. 엄청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들은 터라 생각정리 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럴 틈도 없구만.
“그런데, 상점이 많으면 뭐가 좋아?”
“연말에 상점, 벌점을 합쳐서 1등 기숙사를 뽑아.”
“1등하면 뭐가 좋은데?”
“글쎄, 기분?”
그때 우리 옆에 호석 선배가 앉으며 대답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 자리가 없어서 여기 앉을게. 괜찮지?”
주위를 둘러보니 군데군데 빈자리는 꽤 있었지만 후플푸프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랑 앉는 게 편하긴 하겠지.
“네, 그럼요. 근데 정말…… 기분만…… 좋아요? 박수갈채와 명예, 뭐 이런 것만 얻는 거예요?”
“거의? 그래도 1등한 기숙사에서 상점 상위 10% 학생들에게는 적지만 장학금을 줘.”
“헐…… 정말 그게 다라면 너무 맥 빠지는데요.”
“그래도 몇 년째 1, 2등을 다투고 있는 기숙사라면, 신경 쓰일 만하지.”
“래번클로가요?”
“래번클로랑 슬리데린. 몇 십 년째 번갈아가면서 우승 중이야. 그리고 우승한 기숙사에서 1등 학생한텐, 호그와트에서 소원을 하나 들어줘.”
호석 선배는 소원 이야기에서 더욱 속삭이며 말했다.
“와, 그럼 매년 학생 한 명한테 소원을 들어주는 거네요.”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 그냥 1등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애초에 1등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조건인데 뭐가 더 있는 거지? 인상을 쓰고 머리를 굴리는데 전정국이 말했다.
“최대상점을 받아야 해.”
“맞아. 역시 아네. 복학해서 그런가?”
“…….”
“아, 둘이 아는 사이였어요?”
전정국은 다시 책에 시선을 뒀고, 호석 선배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여기 사람들은 다들 표현이 모호해서 갑갑하단 말이지.
“그래서 최대상점이 뭔데요?”
“1년에 받을 수 있는 상점의 최대치. 몇 점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일단 전 과목 만점부터 먹고 들어가야 어느 정도 해 볼 수 있다는 거지.”
“그게 말이 돼요? 그냥 소원을 안 들어주겠다는 거잖아요. 소원을 쓴 사람이 있긴 해요?”
“있어. 딱 한 명.”
전정국이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김태형.”
“…….”
“김태형이면 그…… 이름 부르면 안 되는 사람?”
“소문으론 그렇대.”
선배의 말에 전정국이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 지 30분도 채 안 됐는데 뭔가 싶어 올려다보면 먼저 간다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떠난다. 나 뭐 잘못했나?
“우리가 좀 방해됐나 보네. 우리도 이제 공부할까?”
“네…… 아, 선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그럼.”
“그 사람은, 소원을 어디에다 썼대요?”
“……못 썼대.”
“네? 왜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나저나 너 저 친구랑 친해?”
“누구요? 아, 전정국이요?”
“응. 거의 매일 붙어 다니길래.”
우리가 그랬나…… 생각해 보면 조별과제에 꽤나 심혈을 기울인 터라 자주 만났던 것도 같다.
“복학생인 건 알지?”
“아, 네.”
“사람들이 너네한테 관심이 되게 많아.”
선배가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누가요?”
“다들. 모두가.”
“……왜요?”
“종적을 감췄다가 갑자기 나타난 복학생이랑 보류판정 받았던 신입생이잖아. 게다가 기숙사도 같아졌고.”
아, 전정국을 보거나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정말 둘 다를 보는 거였구나. 그제야 함께 연회장에 들어갈 때마다 꽂혔던 시선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한국고 교복 안 입어도 쳐다보더라.
“선배도 그래요?”
“……어?”
“전정국이랑 저랑 붙어 다니는 게 이상해요?”
“안 이상해. 이상하게 본다는 말은 안 했는데……. 혹시 내가 신경 쓰일 말 한 건가?”
“음…… 딱히요. 오히려 궁금증이 풀렸어요.”
내 말에 선배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너 진짜 신기하다.”
“칭찬이죠?”
“응. 칭찬이야.”
그러다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데 그제야 기숙사 특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막, 성향 같은 거.
“선배는 정말 후플푸프 같네요.”
“……내가?”
“네. 웃을 때 기숙사 이름이 이마에 써지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갖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 뭐든 간에 사람을 분류하는 건 썩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지은 선배도 그렇고 호석 선배도 그렇고, 웃을 때 그 분위기가 딱 후플푸프 느낌이다.
“후플푸프니까.”
선배가 노란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 사람 되게 잘 보네.”
“그런가요?”
“너도 래번클로 같아.”
“그래요?”
“응. 특히 웃을 때.”
느낌이 나네. 선배가 웃으며 펜을 고쳐 잡았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서 래번클로의 위상을 높여 봐.”
선배…… 잘 가다가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새는 거죠……. 차라리 그냥 나를 부드럽게 죽여줘…….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거야?”
래번클로 기숙사 2층. 아무도 쓰지 않는 방 맨 끝 방에서 시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래번클로는 2층은 남자, 3층은 여자로 방을 나눠 쓰는데, 그 중 2층 끝 방은 복도 끝에서 양 갈래로 나뉘는 길 중 왼쪽에 위치해 있다. 다른 방들과 거리도 꽤 있어서 복도 끝까지 굳이 오지 않는 이상 졸업할 때까지 이 방이 있는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이 방을 현재 호그와트에서 아는 학생은 세 명 뿐인데, 래번클로 학사장인 남준과, 마찬가지로 래번클로인 시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빗자루 네가 준 거 맞아?”
“맞아.”
“그런데 아니라고 했고.”
“응.”
“그럼 그 애한텐 뭐라고 말 할 건데?”
“생각해 봐야지.”
슬리데린인 윤기. 초록빛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윤기가 대답했다. 어딘지 모르게 지친 기색은 머글이 봤으면 몇 달 동안 야근에 시달린 직장인의 모습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마법이나 이론 공부, 과제에 치여 사는 학생의 얼굴이 아니라는 소리다.
“며칠 전엔 왜 사라졌는데? 어딜 또 다녀온 거야?”
“그린고트.”
“왜?”
“호크룩스 때문에. 알잖아.”
“그러니까, 네가 왜 그 일을 하고 있냐고.”
“…….”
시완은 화난 것 같으면서도 갑갑한 표정으로 탁자에 손을 얹었다.
“네가 자꾸 거짓말만 하면 나도 널 도와주기 힘들어.”
“난 한 번도 너한테 거짓말 한 적 없어.”
“그래. 하지만 피한 대답은 많지.”
시완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낡은 매트릭스가 쇳소리를 내며 작게 오르내렸다.
“말해 봐. 너, 왜 그 일을 하고 있는 건데.”
시완은 그 언젠가 부회장직을 사퇴하겠다 말하던 윤기를 떠올렸다. 그때도 이렇게 지친 모습이었다. 일과가 끝나면 종일 기숙사에 틀어박혀 있다가 종종 학생회 회의나 기숙사자치회가 열려야 겨우 얼굴을 내비추던 윤기는 돌연 학생회를 나와 버렸다. 그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시완까지도. 다만 교장과 윤기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으려니 짐작할 뿐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본격적으로 학생회 일이 바빠졌던 시완은 몇 없는 머글 신입생 명단 중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김희완. 17년 전, 볼드모트 뷔의 난으로 부모를 잃었다 했다. 시완은 다시 짐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머글이 입학해서 듣게 될 엄청난 소식들에 대한 동정? 볼드모트 뷔에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예우? 하지만 그 무엇도 매번 머글세계로 내려가 정찰하고, 희완에 대한 정보를 시완에게 일러주며, 부엉이까지 골라주는 윤기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많은 마법사들이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볼드모트 뷔의 호크룩스를 찾는 일에 가담하는 것도.
교장선생님과 윤기의 부탁, 회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친구로서의 의리로 아무것도 묻지 않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완은 지금이야 말로 윤기의 말을 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말해 보라고.”
“그 애, 요즘 전정국이랑 다닌다며?”
“내 말은 다 무시 하겠다?”
“래번클로에 들어갔고 말이야.”
“야, 민윤기.”
“전에도 말했지만 잘 지켜봐줘.”
교장선생님 말씀이야. 윤기가 낡은 탁자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엄지손톱을 긁어내는 모습이 기색에 비해 퍽 평온해 보여 시완은 부아가 치밀었다. 네가 지금 그런 소리나 할 때냐.
“난 그 애가 너에 관한 걸 물어 볼 때마다 살이 떨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뭐라도 말을 해 줘야 적당한 대답으로 둘러댈 거 아냐.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몰라도 돼? 그래도 이 일이 잘 돌아가는 거 맞아? 그러는 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임시완.”
“그래.”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찬 기운은 어느새 가시고 완연한 봄기운이었다. 잿빛 머리칼이 봄기운에 은은하게 흩날렸다.
“그 애가 내 모든 걸 쥐고 있어.”
“…….”
은은한 봄기운 사이에서 파란 타이와 녹색 타이가 어긋난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푸른빛이지만, 둘은 분명 다르다.
“그래서 난 이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이유야.
시완은 어긋난 시선을 맞추다 고개를 저었다.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이 바람에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 하지만 다 집어치우고 묻고 싶기도 했다. 분명 봄인데, 넌 왜 그렇게 메말라 있냐고.
“알았다.”
“…….”
거짓말은 않는다 했으니 그것도 거짓은 아니겠지.
“근데 늦더라도 꼭 말은 해 줘. 이건 전교회장도, 기숙사자치회장도 아닌 민윤기 친구로서 말하는 거야.”
시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낡은 매트릭스는 또 다시 낡은 소리를 내며 작게 오르내렸다.
“창문은 닫고 가라.”
“임시완.”
“왜, 또.”
“……시험 잘 쳐라.”
시완은 방문을 열다 말고 뒤돌아 말했다.
“……너도.”
바스라지지 말아라. 시완은 채 내뱉지 못한 말을 삼키며 문을 닫았다.
와 현생 끝났다 종강이다 파뤼타임
3월까지 모든 시간들을 알차고 게으르게 보낼 생각에 힘이 나네요
이번 화는 정국이랑 호석이 나오는 부분에서 누가 어떤 대사를 쳤는지 잘 생각하면서 읽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면 그냥 읽으면 누구 대산지 모를 것 같아서....ㅎ 제가 그랬어요 (?)
연말에 기숙사 1등하면 뭐가 좋은지 해리포터 덕후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정말 기분만 좋대요.
제가 뭐라고 했더니 야 호그와트 애들은 순수해~~~~~!!~!~!~~! 이러는데 차마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암호닉]
[다람이덕] [김석진잘생김] [자몽해] [몽9]
[우주] [낑깡] [빙구] [잠만보] [파냥]
암호닉 신청은 자유로이 해주세요~
암호닉 글씨에 분홍색 배경 해놨는데 피씨에서는 안 보이고 모바일에서는 보이더라구요 왜 그러는 거죠 화나게시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