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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또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말이 찾아왔다.
"이번 여름 지나면 휴학도 끝이겠구나."
아침 일찍 일어난 너는 화창한 아침 날씨를 보며 말했다.
그 와중에도 졸림이 밀려와 큰 하품을 하곤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어제 장 본 음식들이 보기 좋게 놓여져있었다.
저거 들고 오려고 별 짓을 다한 걸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는 너였다.
방에 들어가 평소 잘 안쓰던 모자를 꺼냈다.
아직 4월이라 제법 아침 날씨가 쌀쌀했다.
대충 따뜻하게 입을 옷을 고르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처럼 길 몰라서 바보 같이 구는 것은 딱 싫어하는 너였기에
하루 날을 딱 잡아 지리를 외울 생각이였다.
이 근처에 다니는 대학교가 있긴 하지만 집이 들어서 있는 동네 지리는
모를 수 밖에 없으니까.
간단하게 물병 하나만 들고 나온 너는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며 무작정 걸었다.
대학교 근처 조금 큰 공원이 있는데 오늘은 거기까지 나가볼 생각이다.
"어?"
집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이재환을 발견한 너였다.
이재환도 너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었다.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새삼 키가 크다는 걸 느꼈다.
"어디 가요?"
"이재환 씨는 어디 갔다 오는 길인데요?"
"아, 친구랑 만나기로 했었는데 취소 됬어요."
무슨 친구길래 한껏 꾸민걸까,
평소와 다르게 머리에도 힘을 준 이재환의 모습이었다.
"여자 만난 건 아닌데."
"네? 그런 눈으로 보였으면 미안해요. 그냥 이쁘게 입은 것 같아서.."
너가 손사래를 치며 흔들자 이재환은 농담이라며 웃고 넘겼다.
이쁘게 봐줘서 고맙다는 등 얘기를 나누며 너를 졸졸 쫓아왔다.
"계속 올거면 저랑 어디 갈래요?"
"어디요?"
"여기 저 근처 공원이요."
"아, 거기~"
이재환은 알았다는 뜻으로 오케이 모양으로 손을 올렸다.
너는 내심 단 둘이서 공원을 걷는다는 생각에 순간 복잡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이 뭘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았다.
뭐라고 같이 가자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 걸까,
'맛있게 먹어요.'
불쑥 어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빈말일 수도 있는 그 말 때문에 너는 열심히 준비한 저녁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이건 미친게 틀림없다.
"공원은 왜 가는 지 물어봐도 돼요?"
"어, 아, 네?"
한참 너가 생각하고 있을때 질문이 갑자기 들어왔다.
너는 잠시 혼이 빠져나간 듯 있다 질문을 되물어봤다.
이재환은 얼굴을 숙이며 한숨을 내쉈다.
"아니, 이 시간에 공원엔 왜 가냐구요~"
"아, 아하하, 난 또.."
그래, 넌 또 바보같이 설레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너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여기 근처 길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이재환은 너의 말에 미소가 번지더니
"그런 거면 제가 꼭 필요하겠네요!"
라고, 외쳤다.
너는 그런 그의 말에 픽 웃음을 치며 말했다.
"혼자도 갈 수 있어요."
"어, 여긴 공원 가는 길 아닌데?"
너가 웃다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재환은 역시 그럴줄 알았다면서 너의 팔을 낚아채고 반대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는 그런 이재환의 등을 보며 어린아이 같이 끌려갔다.
주위 길이라곤 하나도 안 보이고 그저 재환의 뒤태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요, 아이스티."
"고마워요."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이재환에게 너가 음료수를 건넸다.
이재환은 너에게 벤치 바닥을 탁탁 치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너는 멈칫하다 조심히 옆자리에 앉았다.
"아침이라 공기는 좋네요."
음료수를 따서 콸콸 목에 붓는 이재환이었다.
삼킬 때 마다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역시 미친게 틀림없다.
왜 이런 것만 보이는 건데.
계속 이재환이 말을 걸어왔지만 너는 차마 얼굴을 보면서는 얘기할 수 없었다.
창문 사이로 보는 것과 옆에 앉아서 얘기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너의 이상한 감정도 한 몫 했다.
"아침에 뭐 먹었어요?"
"아침에 먹은 건 없고 집 나오면서 먹은 빵이 전부예요."
"입가에 묻었어요."
옆에서 이재환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럴 줄 알았다, 쪽팔리게 왜 같이 공원에 오자곤 한건지.
너는 공원 중앙에서 농구하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입 주위를 마구 비볐다.
"안 묻었는데."
"아니, 오른쪽에요."
"안 묻었어요!"
"여기 묻었잖.."
순간 홧김에 이재환을 쳐다본 게 잘못이었다.
그 코가 너 코에 닿을 만큼 얼굴이 가까이 와있었다.
이재환이 코로 숨쉬는 게 너에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가까이 붙었던 것이다.
너와 이재환은 서로 바보같이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둘 다 바로 상체를 뒤로 당기며 아까는 없었던 일인듯 태연하게 행동했다.
"흠흠."
"아, 이거 봐요. 묻었잖아요."
너의 옆으로 빵가루가 묻은 이재환의 검지가 보였다.
너는 검지의 묻은 빵가루를 털었다. 물론 계속 멀리 응시한 체로.
"여기 공원은 많이 와봤어요?"
너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이재환은 네, 당연하죠.. 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할 말도 사라졌다는 걸 느낀 순간 어색한 공기가 손 끝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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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늦어지는 올리는 시간...^^....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 여러분은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