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맨 아래에 있는 작가의 말을
길더라도 시간내어 모두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20.
일일이 손을 넣었다 뺐다 하기 귀찮아 탁자 위에 쏟아 부었는데, 이렇게 많이 샀을 줄이야. 탁자 위를 한가득 채우고도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것을 박지민이 주우며 잔소리했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가방 안에 있는데 자꾸 뭐가 떨어져서 식겁했잖아.”
“테라스를 꾸민다는 게…….”
그리고 솔직히, 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이 있어 본 적이 처음이라 조금 신났던 것도 있다. 영원의 집에서 살 때는 다른 아이들처럼 떼를 쓰거나 부탁한다고 해서 용돈을 더 받을 수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 절제도 했지만 구태여 절제할 필요도 없어 물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탁자와 벤치 위를 이만큼 채운 것들을 보니 괜히 머쓱해졌다.
“으윽, 구려.”
“그거 다트 해서 받은 건데.”
“구려.”
“너한텐 안 구린 게 대체 뭐야?”
“네 부엉이 이름이랑 이 이상한 거 빼고 전부.”
“네 이름도 안구려?”
“……이건 포장 돼 있네.”
말 돌리기는. 나는 여러 가지 장식품들을 이곳저곳에 제 자리를 찾아주며 말했다.
“선물 받은 거야.”
“오르골이네.”
“말도 없이 뜯냐?”
“각인 오르골이 아직도 있구나.”
“그게 뭔데?”
오르골을 살 때 주인아저씨가 각인 어쩌고 했던 게 생각나 물었다.
“각인된 건 정해진 음악이 나오는 거고, 각인 안 된 건 직접 음악을 넣을 수 있어.”
“오…… 어떻게?”
“그냥. 직접 노래를 불러도 되고.”
나는 작은 화분들을 난간 위에 놓고는 박지민 손에 들린 오르골을 자세히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오르골과 별만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옆에 손잡이 돌리면서 원하는 음악만 들려주면 돼.”
“헐, 신기하다. 무슨 음악으로 각인하지?”
“그건 네 맘이지.”
박지민은 난간에 털썩 걸터앉더니 팔을 베고 누워버렸다. 나는 이제 누가 난간에 앉아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저기에 앉을 사람은 티랑 박지민(떨어져도 안 다치는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오르골 선물의 의미가 뭔지 알아?”
“그런 것도 있어? 뭔데?”
벤치 위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나는 구겨진 이불을 들고 털다가 그만 난간 아래로 이불을 놓쳐버렸다. 서둘러 침실에 들어가 지팡이를 가져왔는데 어느 샌가 주워온 박지민이 이불을 나한테 던지며 말했다.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을 울리고 싶어요.’”
“악! 주웠으면 곱게 줄 것이지 왜 던지고 난리야!”
“못생겨서.”
“참나. 뭐라고?”
“너 못생겼다고.”
“주인한테 참 좋은 말 해준다. 그거 말고 그 전에. 오르골 선물이 무슨 의미라고?”
박지민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내게 훅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고선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데.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을 울리고 싶어요.”
……진짜 이럴 때마다 박치기해서 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희완아!”
“어, 강리원?”
“오늘 결승전이라서 응원하러 왔어. 대기실에 어떻게 들어가나 했는데 마침 여기 있었네!”
“슬리데린 좌석에서 여기까지 뛰어온 거야……?”
“아니아니, 들어가기 전에 잠시 들렀지. 컨디션은 어때? 괜찮아?”
“으응, 괜찮아. 좋아.”
“다행이다.”
“근데 넌 슬리데린인데……”
“에이, 아무리 상대편이라도 친구니까 응원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아, 난 이제 가 봐야겠다. 그래도 슬리데린이 여기 있는 거 알면 그쪽에서도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니까……. 오늘 경기 잘하구! 파이팅!”
“응. 고마워! 조심히 가!”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에 만난 강리원에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참았던 콧물을 훌쩍였다. 그저께엔 박지민이랑 저녁에 밖을 쏘다니고, 어제 오후 내내 찬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감기가 온 것 같았다.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데 나는 개가 아니라서 걸린 건가. 폼프리 부인에게 감기약을 받아먹었는데 아직 약효가 덜 든 것 같았다. 폼프리 부인 말로는 짧고 굵게 감기증상을 완화 시켜주는 대신 약효가 드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사람마다 그 시간이 다르다는데 밑져야 본전인 만큼 곧바로 삼켰었다.
“감기 걸렸어?”
“아……네.”
“결승전이라 몸이 안 좋으면 힘들 텐데…….”
“목이 좀 따가워서 그렇지 비행하는 덴 아무 문제없어요.”
“목만 아픈 게 아닌 것 같은데? 코도 훌쩍이잖아.”
내 앞에서 고민하는 회장과 남준 선배에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밥도 먹었고, 약도 먹었고, 컨디션도 좋아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너무 무리하진 마. 우린 월드컵 경기에 참가한 게 아니기 때문에 너한텐 네 몸 챙기는 게 더 중요하니까.”
남준 선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대기 신호가 떨어졌다. 지난번처럼 줄을 서는데 바깥의 함성 때문에 머리가 울렸다. 이거…… 점점 약효가 드는 게 아니라 감기에 걸리는 중인 것 같은데……. 선수 입장 소리가 들리고 대기실 밖을 나가는데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마른 코만 훌쩍이는 것을 보니 뜬금없지만 약효가 들기 시작했나 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파이어볼트에 올라탔다.
래번클로와 슬리데린은 각각의 관중석을 옆에다 두고 일렬로 섰다. 푸른색과 푸른색의 대결. 함성이 점점 커지고, 마침내 퀘이플이 높게 솟아올랐다.
나는 지난번과는 달리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퀘이플보다 더 높게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퀘이플과 블러져, 그리고 스니치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어제 슬리데린 몰이꾼들을 본 결과, 블러져를 대체로 왼쪽으로 보내는 것에 탁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몰이꾼들의 동태를 함께 살피며 되도록 그들의 오른쪽에 치우쳐 있도록 했다. 덕분에 블러져는 내게 올 생각도 안했지만 스니치도 내 눈앞에 나타날 생각을 안 했다. 조금 지루해지려는 찰나, 기지개를 펴는 내 손에 닿는 무언가.
“……아!”
스니치였다.
꼭 이럴 때 나타나지. 스니치를 보자마자 기지개를 펴다 말고 잡으려 했지만 역시나 쉽게 잡히지 않았다. 빗자루에서 떨어질 뻔한 몸을 추스르는 동안 스니치는 내 주위를 맴돌더니 이내 경기장으로 향해버린다. 아니, 저번엔 밖으로 나가더니!
“아, 말씀드리는 순간! 스니치를 잡기 위해 래번클로 수색꾼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장을 누구보다 빠르게 배회하는데요! 과연 우리는 스니치를 잡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까요!”
스니치는 해설자 말대로 정말 이곳저곳 배회했다. 퀘이플이 슬리데린 쪽으로 간다 싶으면 슬리데린 골대로, 래번클로 쪽으로 간다 싶으면 래번클로 골대로 가는 통에 나는 블러져와 다른 선수들을 피하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숲으로 가지 말랬지 아예 경기장으로 들어오라 그랬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해서 소리치는데 슬리데린 파수꾼과 부딪칠 뻔했다. 다행히(?) 퀘이플은 래번클로 쪽을 향해 있었다. 선수들이 이쪽으로 몰려오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스니치는 래번클로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자 슬슬 슬리데린 몰이꾼들이 스니치의 경로를 파악한 것인지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야단났네.
“한 명이…… 어디 갔지.”
그리고 나를 따라다니던 몰이꾼 한 명이 사라져 불안해하던 차에 또 눈앞을 알짱거리는 스니치에 직진했다. 그런데 금색 동그라미 뒤로 검은 동그라미가 점점 커지는 게 아닌가. 저게 뭐지, 하다가도 그 모양이 명확해지자 나는 방향을 곧장 위로 틀었다. 파이어 볼트 끄트머리에 스친 블러져가 반대편으로 무서운 속도를 내며 날아갔다. 저거에 맞았으면 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도로 뱉을 뻔했다. 반대편으로 날아간 블러져가 곧장 내 쪽으로 빠르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으악! 이거 왜 이래!”
“뭐야, 저거 왜 저래?”
“블러져가 저렇게까지 한 사람을 따라다닌다고?”
그리고 블러져는 계속 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블러져는 대부분 몰이꾼의 방망이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되는데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타깃을 따라다닌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향을 틀 생각은 않고 자꾸 내 뒤꽁무니만 따라다녀서 블러져가 ‘앞’에만 안 나타나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만 된다면 블러져가 우리 팀을 공격할 일이 없으니 득점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대로만 된다면 내가 굳이 스니치를 잡지 않아도 경기가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스니치는 일말의 희망의 끈을 매단 채로 약 올리기에 선수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자꾸만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스니치에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나는 우리 팀에게서 블러져만 안 가게 할 생각으로 경기장 주위를 빙빙 돌다가도 스니치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스니치와 나, 그리고 블러져가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경기장 구석구석을 날아다녔다. 보는 사람마저도 구역질 날 정도로. 이 장면을 회장이 봐야 하는데!
그리고 어느 순간 블러져가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스니치는 다시 경기장 밖으로 솟아올랐다. 따라 올라가면서도 뒤를 힐끔거렸지만 블러져는 다시 몰이꾼들의 손에 가 있었다.
“이상하네…….”
아깐 왜 그랬던 거지.
“아앗, 말씀드리는 순간 블러져가 래번클로의 품에서 벗어나는데요! 슬리데린이 기세를 몰아 힘껏…… 경기장 밖으로 칩니다! 수색꾼을 노리는가 본데요! 저렇게 그대로 블러져가 경기장을 나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죠?!”
“만약 저기서 수색꾼이 블러져를 피한다면, 이번 결승전의 후반부는 블러져 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색꾼에겐 더 유리하게 작용될지도 모르는데요!”
“야, 스니치! 너도 들었지! 너 이대로 가다가 그대로 꺾어서 다시 경기장 들어가면 되는 거야! 너도 블러져 귀찮잖아! 맞지!”
스니치가 말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아니라면 그렇게 얄밉게 날아다닐 수가 없다) 나는 팔을 힘껏 뻗으면서 소리도 힘껏 질렀다. 나는 속으로 셋을 샜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거짓말처럼 스니치는 방향을 틀었다. 블러져가 내 옆을 지났고, 지난번 승희의 빗자루처럼 가차 없이 직진하는 것을 보며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스니치와의 싸움이다.
스니치는 그대로 다시 경기장 안으로 향했고, 나는 팔을 뻗은 자세로 스니치 뒤를 따랐다.
“아앗, 말씀드리는 순간 블러져가……아? 어떻게 저럴 수 있죠?!”
“결승전인 만큼 블러져의 활약이 눈이 부십니다! 몰이꾼 없이 방향을 꺾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다니! 이게 가능한 줄도 몰랐는데요!”
해설자들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정말로 저 멀리서 다시 되돌아오는 블러져가 보였다. 아니, 그대로 날아갈 거라며?! 그리고 순간 떠오른 건 포춘쿠키 글귀.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한 번씩 멈춰 서 보세요.’
설마 그게 이런 뜻이었나. 근데 이 경우엔 멈춰 서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내 스니치를 따랐다. 블러져가 오기 전에 잡히기만 하면……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조금 좁혀진 격차에 손을 휘젓자마자 무언가 퍽 하고 내 빗자루를 치더니, 부스러기들이 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 어떻게 쏟아질 수 있었냐면, 내가 빗자루에서 튕겨져 나갔거든.
등은 바닥으로 향한 채, 눈은 하늘을 향한 채로 나는 하강하고 있었다. 슬로우 모션을 건 것처럼 모든 것이 느렸다. 멀어지는 하늘이 그러했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빗자루 조각들이 그러했고, 함성인지 고함인지 모를 관중석의 목소리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렇게, 느리게, 무언가가 지나갔다.
쏟아지는 햇빛 같은 것들. 말 그대로 쏟아지는 햇빛들에 눈을 못 뜨고 있으면 그 사이로 보이는 붉은 머리칼. 낮은 허밍소리. 살랑이는 바람.
“난 알고 있어. 네가 어떻게 래번클로로 오게 됐는지.”
“어떻게 했는데? 궁금하네.”
“속였지? 분류모자를.”
“모자를 어떻게 속여?”
“Je ne regrette rien.”
“…….”
“분류모자에게만 쓸 수 있는 마법이잖아.”
“나는…… 촛불이야.”
“…….”
“그래서 네가 안 싫어.”
“되게 심오하네.”
“…….”
“노을 예쁘다.”
“응.”
“아, 여기 자리가 있네.”
“…….”
“안녕. 여기 앉아도 될까? 안 된다고 해도 들어갈 거라서, 미안.”
“나 너 알아.”
“어?”
“넌 나 몰라?”
“……죽었어요.”
“……이, 죽었어요.”
누군가 죽을 때는 순간적으로 살아온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흘러간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나의 생애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이 뒤죽박죽인 것들이 나의 생애가 아니라고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아리스토 모멘텀(Aresto momentum)!”
“김희완!”
“…….”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스니치…….”
나는 스니치를 회장에게 건넸다.
“수색꾼이 스니치를 잡았군요! 이렇게 해서 이백 대 삼백팔십으로 래번클로의 승리입니다!”
“스니치 말고 너 괜찮냐고!”
해설자와 회장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면서 모든 게 아득해진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온몸에 붙은 모래를 털어냈다.
“조금 어지럽……”
다고 말하려 입을 떼자마자 눈 위로 무언가 주르륵 떨어졌다. 오른쪽 눈을 덜 뜬 채 손으로 더듬으니 손에 묻은 모래가 시뻘겋게 범벅이 됐다. 나는 시뻘겋게 물든 시야와 시뻘겋게 범벅된 손보다, 닳고 닳아 바래버린 그 기억. 기억이 맞는지조차 모르겠는 뒤죽박죽인 그것들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왜 이게 내 것인지도, 내 것이 아닌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냐면.
“김희완!”
“희완아!”
“머, 머리에 피……!”
왜냐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너무, 모든 게.
“익숙해서……”
“뭐라고? 희완아, 일어설 수 있겠어? 대답해 봐. 김희완!”
그리고 나는 그 뒤죽박죽인 파노라마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아! 숨이 탁 트이네!”
나는 분명 인간들이 북적이는데도 그렇게 말하며 기지개를 폈다. 그러자 내 어깨에 있던 그 애의 부엉이가 푸드덕거렸다.
내가 돌아다니는 것을 그 애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것이 걱정에서 비롯된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애와 함께 있을 때의 일이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냐는 물음에 거짓으로 답해야 하는 걱정과, 내가 언제 어떻게 다시 검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걱정. 하지만 나는 언제 어떻게 다시 검으로 변할지 모르는데 인간 모습일 때 좀 바람을 씌워 줘야하지 않겠느냔 생각이었다. 그 애한테 말했다가는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몰래 나오긴 했지만.
그 애와는 달리 후플푸프 교복을 입은 채로 돌아다닌다면 만날 일도 적겠지. 어쨌거나 나는 그 걱정과는 별개로 얕은 마법 정도는 껌이니까.
그러고 보면 요즘은 봉인이 거의 풀린 것 같다. 그 자식한테 걸린 봉인 치고는 빨리 풀리는 게 이상하다.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 애 때문인가?
“김희완.”
아, 입으로 말하니까 되게 어색하다. 나는 김희완이라는 이름을 몇 번 되뇌다가도 걸음을 멈췄다. 이상하다. 밖에 나왔는데도.
왜 냄새가 나지.
스쳐 지난 사람은 슬리데린 교복의 여자아이였다. 느낌이 쎄한데. 슬리데린이라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장터를 빠져나왔다.
“이런 거 아직도 하고 있네.”
게임랜드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과 커다란 천막. 그 안에 세워진 여러 부스들 사이를 다니며 중얼거렸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옛말 다 틀린 말이네. 십 년은 무슨 거의 백 년이 지났구만. 저 낡아 빠진 회전목마가 아직도 있는 것에 기함을 하며 나는 그 애가 말했던 다트 부스를 찾아다녔다. 얼마나 못하면 그런 상품을 타온 건지. 싸구려 호그와트 피규어보다 훨씬 좋은 것을 타서 놀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목을 쭉 빼고 다트 부스를 찾아다니다가도 일순간 인상을 확 찌푸렸다. 냄새가 난다. 탁한 냄새.
“…….”
“…….”
얘 뭐지? 후플푸프 옷을 입고서 이런 냄새를 풍기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내 옆에 선 후플푸프 남자애를 위아래로 훑었다. 하마터면 너 슬리데린이지? 하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슬리데린이라 해도 이렇게 짙은 냄새가 날 리가 없다. 어둠의 마법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는 이상. 게다가 냄새는 묘하게 그 자식의 것을 닮아 있었다.
나는 부스를 찾다 말고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 놈의 뒤를 따랐다. 느낌이 쎄한 정도가 아니다. 확실히 뭔가가 있다. 그 자식이 그 애의 것인 나를 굳이 제 것으로 만들려 한 것부터가 이상했다. 의심할 턱도 없이 뒤틀린 마력들의 충돌로 봉인돼버렸지만 이젠 생각할 때가 됐다. 봉인도 풀리고 있고, 나는 그 애 손에 있으니. 옛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손목에 뭐가 묻어 있으면 닦아야지.”
“……뭐예요?”
나는 앞서가던 놈에게 다가가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손수건으로 문대고서는 더러워진 손수건을 눈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뭐가 좀 묻었길래.”
“…….”
“조심해. 잘 안 지워지는 것 같으니까.”
나는 손수건을 탈탈 털고 놈의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굳은 얼굴로 아무것도 없는 제 손목을 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가문의 자식이군.
뒤돌아서자마자 억지로 올린 입꼬리를 내리며 생각했다. 가문의 자식이 어째서 후플푸프에 들어간 거지? 혈통을 부정하려는 일종의 반항이라기엔 손목의 표식이 거슬린다. 볼드모트 뷔의 표식.
거래를 했다. 가문의 거래인가, 개인의 거래인가. 가문의 거래라면 아까 봤던 슬리데린 여자애도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호그와트에도 사람을 심어놓았단 말이지. 김태형.
그 거지발싸개 같은 자식이 또 그 애를 가지고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 자식을 다시 만났을 때. 무슨 상황이었지?
“저기요.”
“뭐야?”
중요한 생각 중인데 누가 방해하는 거야. 나는 내 앞을 막아 선 놈을 위아래로 훑었다. 잿빛 머리칼에 슬리데린. 가문의 자식이던가.
“익숙한 부엉이인데. 어디서 났어요?”
나는 내 오른쪽 어깨에 있는 부엉이를 돌아봤다. 이름이 하필이면 태태지. 빌어먹을.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그 애와 아는 사인가 보다.
“친구 꺼라 잠시 맡았는데. 문제 있어?”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놈을 지나쳤다. 묘하게 쳐져 있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 나는 부딪친 어깨를 탈탈 털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아까 그 슬리데린 여자애를 어디서 찾는담. 장터로 다시 가야 하나. 이미 자리를 옮겼을 것 같은데.
“김희완 있잖아.”
“김희완? 아 그 보류됐었던 신입생?”
나는 걸음을 걷다가도 들리는 김희완 이름에 멈춰 섰다. 뭔가를 들고 있는 폼이 상당히 어색한 그리핀도르 남자애 둘. 탕, 탕. 플라스틱 총알이 과녁을 맞힐 때마다 소리가 났다. 머글들 게임인가 보군. 얘넨 이런 걸 하면서도 입을 나불거리고 싶을까. 나는 동전을 내고 조용히 옆자리로 가 자세를 잡았다.
“어, 걔. 요즘 전정국이랑 엄청 붙어 다니더라. 어제도 장터랑 게임랜드에서 둘이 같이 다니는 걸 본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전정국? 걔는 누구지.
“뭐……친한가 보네.”
“그러니까, 이상하지 않아? 전정국 걔 아무하고도 말 안 하잖아. 수업이나 과제 관련된 거 아니면 말 걸지도 않고. 말 걸어도 엄청 단답에다 재수없게 나온다던데.”
“그래? 그거 이상하네.”
“아무래도 둘이 뭔가 있는 것 같아. 아, 답답하네! 이거 왜 이렇게 안 맞아!”
“뭐……. 뭔가 있을 수도 있지.”
“아, 넌 또 왜 이렇게 답답하냐!”
“말하면서 쏘니까 안 맞지.”
“뭐? 넌 뭐야?”
탕, 탕. 쏠 때마다 반동에 밀려나면서도 끊임없이 남 이야기를 해대는 게, 혀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발끈하며 다가서는 놈의 이마를 검지로 누르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너 같은 애들이 제일 문제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그 애가 김태형 같은 놈이랑 엮였었다고. 나는 떠오르는 옛 기억을 애써 밀어내며 말을 이었다.
“뭔 소리야? 이거 안 놔? 이 후플푸프 자식이……!”
본인이 쳐놓고서는 허공을 가리키게 된 내 손가락에 서늘하게 쳐다보니 입을 다문다. 전정국이 누구냐고만 물으려 했는데, 이거 안되겠네.
“야, 전정국!”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부스였다. 그것도 다트 부스. 아니, 당사자가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댔단 말이야? 영문을 몰라 멀뚱히 서 있는 놈을 제자리로 돌려놓고는 자세를 잡아줬다.
“총이란 건 말야, 머글들이 만들어낸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거야.”
“너, 지금, 무슨 말을!”
“그래서 집중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곳을 맞춰서 뒈ㅡ지게 할 수가 없거든?”
숨을 한 번에 끊어놓고 싶거든 말야.
탕.
“악!”
“이 입을 좀 다물고.”
탕!
“억!”
“자세 똑바로 하고…… 과녁에 집중해…… 알았어?”
탕.
“알았냐고?”
“아, 알았어! 알았다고! 아으…….”
“알았다면 다행이네.”
나는 부스 담당자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과녁으로 걸어가 내가 쏜 과녁을 가져왔다. 그리고 반동으로 인해 입이 시뻘개진(총으로 쏜 게 아니다) 놈의 얼굴에 날리며 말했다.
“형님 꺼 보고 좀 배워라.”
그리핀도르 녀석은 가운데만 커다랗게 뚫린 과녁을 보더니, 조금 두려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 어쩌라고. 눈을 확 뚫어버릴라. 나는 눈썹을 한 번 까딱하고 부스를 나왔다.
전정국이라는 애는 래번클로였다. 다트를 건네는 표정이 퍽 무심한 게, 아까 그 놈들이 지껄이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됐다. 그런데 아무하고도 말을 안 하는데 그 애하고만 이야기를 한다라…….
“야 전정국, 너 있다가 퀴디치 끝나고 미로 안내원 해줄 수 있냐?”
“끝나고도 여기 계속 있어야 돼.”
“어차피 그때 되면 사람들 다 미로로 몰려와. 일손이 부족해서 그런단 말이야. 엉? 내가 래번클로 형님들한테 말해놓을게. 어차피 그 형들은 학생회라 허락해줄 걸?”
굳건히 고개를 저은 전정국은 나에게 규칙을 마저 설명해줬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서 절절 매는 래번클로를 쳐다봤다. 똥마려운 강아지 같네.
“게다가 이번에 미로 설계한 애 삼촌이, 옛날에 트리위저드 게임에 참가했던 마법사래. 그러니까 그 미로랑 엄청 비슷할 거라니까.”
……트리위저드 게임.
다트를 던지려던 손이 절로 멈췄다. 그 게임이 아직도 있단 말이야.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게임이 살아 있단 말이야.
“삼촌이면 얼마나 옛날인 거야.”
“너 다음에 참가하면 조금 이득일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런 거 안 해.”
나는 손에 들린 다트 전부를 한꺼번에 과녁에다 던졌다. 나도 모르게 던진 거라 눈만 깜빡이고 있을까 전정국이 옆으로 와 점수를 매기더니 상품을 줬다.
“총점 50점으로 1등 상품이에요.”
웬 족자봉을 건네길래 펼쳐보니 소원권이라 적혀있다.
“한 번 더 할게.”
“만점 상품은 하나뿐이라 50점 맞추셔도 더 못드리는데.”
“괜찮으니까 더 줘.”
1등이니 원하는 만큼 던지라며 다트 뭉텅이를 쥐어준 전정국은 아직도 옆에 붙은 래번클로 한 명을 귀찮은 듯이 쳐다봤다. 그 표정에 래번클로는 알았다며 성질을 내고 부스를 빠져나갔다. 아, 또 냄새가 나네. 이번엔 또 누구지.
“안녕?”
“아.”
후플푸프, 가문의 자식.
“1회에 3시클이고 다트는 다섯 개 드려요.”
“나 다트 하러 온 거 아닌데.”
나는 뭉텅이들을 하나씩 빼 던지며 귀를 그쪽으로 집중했다.
“이거, 네 거야?”
“…….”
후플푸프가 전정국에게 내민 것은 사탕 통이었다. 쓸데없이 저런 걸 주워 와서 주인을 찾아주네. 후플푸프는 후플푸프인가 보다. 탁, 하고 던진 다트는 정중앙을 맞췄다.
“도서관 앞에 떨어져있더라고.”
“…….”
“네 거 맞지?”
“고맙습니다.”
사탕 통을 건네받은 전정국은 다트를 마저 정리했다. 후플푸프 놈도 부스를 빠져나가는데, 다시 들어와서는.
“근데 10층엔 왜 갔어?”
하고 굉장히 후플푸프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아니 할 일 끝났으면 갈 것이지 그건 또 왜 궁금하대? 나는 코를 막으며 다트를 던졌다.
“…….”
“말해주기 곤란한가?”
“…….”
“혹시 말해주기 곤란한 게, 작년에 휴학한 거랑도 관련이 있나?”
“…….”
“난 그냥 궁금해서.”
곤란했다면 미안, 이만 갈게. 손 인사까지 하고 나가는 놈에 코를 놓는데 이번엔 전정국이 놈을 불러 세운다. 아, 또 코 막아야 돼. 진짜 제발.
“그럼 선배는 왜 거기 계셨는데요.”
“…….”
천천히 뒤 돈 후플푸프의 표정엔 웃음기 하나 없이 굳어 있었다. 아까 내가 손목을 건드렸을 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조금 더, 표독한 느낌이랄까.
아아, 그래. 이제 알겠다. 저 애한테서 왜 그렇게 김태형 냄새가 짙은지.
“말해주면.”
“…….”
“너도 내가 궁금한 거 말해줄래?”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못말하겠지?”
“…….”
“그럼 너도 궁금해 하지 마.”
분류모자를 속인 놈이었어.
“더 많이 다치는 게 누구인지 아직 우리 둘 다 모르잖아?”
“…….”
“다음에 또 보자. 정국아.”
김태형처럼.
전 같으면 김태형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던 상관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볼드모트 뷔라는 명칭을 얻고 하고 다닌 짓들을 보면 죄다 제 본성을 닮아있다. 그 본성이 왜 갑자기 튀어 나왔는지, 아니면 이제껏 일부러 숨기고 살았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 애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테라스에서 아무렇지 않게 검 상태로 있는 나를 툭툭 건든 것만 생각 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교활한 새끼.
복잡해진 머리에 인상을 썼지만 지금은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 내가 있는 곳은 퀴디치 경기장이니.
경기가 시작한 지 좀 지나고서야 들어온 나는 후플푸프 교복을 래번클로 교복으로 바꾸고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좁았지만 그냥 앉았다. 옆에서 따갑게 쳐다보는 것들을 째려보니 중얼거리면서 자리를 옮긴다. 찍 소리도 못할 거면서 까불어.
건너편 관중석에 앉아있는 것들을 보니 슬리데린이다. 아까 마주친 익숙한 몇몇 얼굴들 사이에서 아주 먼 옛날에 봤던 것 같은 얼굴이 있다, 검과 인간을 번갈아가며 산 만큼 이런 것엔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리는 게 꼭…… 꼭…….
“아앗, 말씀드리는 순간 블러져가 래번클로의 품에서 벗어나는데요! 슬리데린이 기세를 몰아 힘껏…… 경기장 밖으로 칩니다! 수색꾼을 노리는가 본데요! 저렇게 그대로 블러져가 경기장을 나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죠?!”
“만약 저기서 수색꾼이 블러져를 피한다면, 이번 결승전의 후반부는 블러져 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수색꾼에겐 더 유리하게 작용됩니다!”
아 모르겠네. 뭐, 시간은 많으니까. 지금은 다른 것들을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눈앞에 빗자루를 탄 그 애가 보이니까.
퀴디치는 예나 지금이나 정신 사나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정신없어 보이는 건 그 애, 그러니까 김희완이었다. 이거……꼴을 보아 하니 누가 마법을 건 것 같은데. 블러져에다 마법을 걸든 스니치에다 마법을 걸든 상관없지만 김희완이 저렇게 꽁지 빠지게 날아다니는데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지. 조금 도와줘야겠다. 아니 근데 마법 건 놈은 누구야? 교수는 이런 거 안 찾고 뭐해.
주위를 둘러보며 마법의 근원을 찾고 있을까 문득 보인 건 슬리데린에……
“…….”
“…….”
아까 지나쳤던 여자애였다. 이거 신분이 없어서 찌르지도 못하고. 뭐, 마법엔 마법으로 대해줘야지. 나는 눈짓 한 번으로 손쉽게 여자애의 지팡이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마법을 해제시켰다. 아 이거 나중에 김희완이한테 말해야겠다. 넌 나 아니었으면 블러져에 맞아서 눈탱이 밤탱이가 됐을 거야~
라고 생각하자마자 블러져는 저 멀리 뻗어나가다가 다시 김희완을 쫓아 방향을 꺾었다. 타이밍이 안 맞았나 보네. 뭐,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희완아!”
그래도 마법이 안 먹히진 않았는지 비틀거리며 방향을 자꾸만 틀던 블러져는 결국 김희완 빗자루를 쳐버렸다. 그런데 이상하네. 내 마법이 저 여자애의 마법과 대등하다고?
아무리 봉인이 덜 풀렸기로소니, 아직 학생인 애송이한테 내가 뒤질 리 없다. 후플푸프의 가문의 자식보단 아니지만 여자애에게 옅게 났던 냄새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저 애도, 뭔가 있다.
“아리스토 모멘텀!”
그리고 그때, 한 교수의 주문을 외치는 목소리와 눈앞에 내리는 부스러기들에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모래 위에 쓰러져 있는 김희완이 보였다. 저거 저거, 예나 지금이나 덜렁대는 건 똑같네.
“김희완!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왜 저렇게 호들갑이야. 저런다고 안 죽는데.
“수색꾼이 스니치를 잡았군요! 이렇게 해서 이백 대 삼백팔십으로 래번클로의 승리입니다!”
어, 피 나네……. 참나, 피 난다고 안 죽는다. 저것 봐, 저렇게 일어나서 잘 걷,
“김희완!”
“희완아!”
는 줄 알았는데 쓰러졌다. 곧이어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머리를 헝클었다. 아씨, 병동 어딘지 기억 안 나는데.
꿈을 꿨다. 빗자루에서 떨어지면서 보았던 것과 같은 꿈. 모든 게 뒤죽박죽인 이것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들이라 떠올리기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매일 토요일이면 열두시 삼십분, 같은 시간에 일어나 희미한 꿈을 더듬는 것. 그것이 시작이었고, 호그와트에 오고서부터 선명해지다 못해 일기장과 비슷한 내용으로 흘러가면서 내게 알려주고 있던 것이었다.
뭔진 몰라도 무언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림과 동시에 코를 드나드는 숨이 뜨거운 게 느껴졌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이는 건 병동 침대들과, 박지민이었다.
“깼냐?”
“……나 얼마나 누워 있었어?”
“글쎄. 한 서너 시간?”
오래도 누워 있었네. 병동에는 박지민과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폼프리 부인마저 없는 것을 보니 밖은 아직 축제 중인가 보다. 옆에 놓인 거울을 보니 이마에는 거즈가 얼기설기 붙어 있었고, 잔 상처들에는 연고가 진득하게 발려 있었다. 팔이 너덜너덜한 퀴디치복 사이사이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피가 비쳐 여간 만신창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퀴디치 전에 먹었던 약의 약효가 떨어졌는지 으슬으슬한 게, 진짜 제대로 감기몸살에 걸린 것 같았다. 진짜 엉망진창이다.
“애들 몇 명 다녀갔어. 여자애 세 명이랑, 전정국.”
“…….”
“걱정 마. 나 변신도 좀 하거든? 봐, 지금 교복 입고 있잖아. 검으로도 안 변했고. 아무도 의심 안 했어.”
“네가 전정국을 어떻게 알아?”
“유명하던데. 돌아다니면서 걔 이름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네 이름이랑 같이.”
“나?”
“그래. 너. 둘이 사귀냐?”
“뭐?”
“애들이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대부분 그런 뉘앙스던데. 아냐?”
“아니, 남녀 둘이 같이 있으면 무조건 사귄대? 누가 그래?”
“그래서 아니라고?”
“아니야.”
“그럼 저기 문 앞에 있는 애랑은?”
박지민의 시선을 따라가니 굳게 닫혀 있는 병동 문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또 어디서 놀리려고.
“붕대 푼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다쳐? 넌 진짜 변한 게 없다.”
“다칠 만해서 다친 거야. 블러져가…… 이상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블러져도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음에 하 교수님을 만나면 꼭 물어 봐야겠다. 사실 스니치랑 블러져는 자아를 가지고 있는데, 아닌 척 하는 거죠?
“자, 이거나 받아.”
“뭔데?”
박지민이 건넨 건 무슨 족자봉 같은 것이었다. 호그와트 인장으로 잠긴 것을 천천히 풀어 보니 소원권이라 적혀 있다.
“다트 만점 상품.”
“뭐? 만점 상품?”
“난 한 번에 만점 상품 받아오는데, 넌 어떻게 꼴지 상품을 받아와? 주인이 뭐 이래?”
“참나, 내가 한다 그랬냐? 네가 해달라며.”
“나중엔 너도 한다 그랬잖아.”
“아, 나 지금 머리 아프니까 나중에 말해.”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족자봉을 다시 말았다. 그나저나 소원권이면 엄청난 거 아닌가? 기숙사 전체 1등을 해도 받기 힘든 게 소원권인데. 이거 짝퉁 들고 와서 나 놀리는 건 아니겠지?
“……아, 오늘 좀 무리했나.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뭐가?”
침대에서 내려와 신을 신는데 갑자기 신발 앞에 칼이 뚝 떨어졌다.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인간으로 있을 시간이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
“너 이렇게 되면 불꽃놀이 혼자 봐야 하잖아…….”
창밖을 보니 노을이 점점 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불꽃놀이가 시작될 텐데, 혹시나 폼프리 부인이 돌아온다면 꼼짝없이 병동에서 불꽃놀이를 봐야 한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면 교수님이나 애들이 날 발견해 날 다시 병동으로 보낼지도 모른다. 축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게 불꽃놀이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날릴 순 없다. 어디서 보는 게 가장 잘 보일까. 나는 서둘러 족자봉과 칼을 챙겨 나갔다.
“……어디 가?”
“어, 안녕하세요…….”
절뚝거리며 문을 열자 민윤기 선배가 서 있었다. 여기저기에 반창고와 붕대를 칭칭 감은 애가 갑자기 문을 열어서 그런지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까 박지민이 말 한 문 앞에 있는 사람이 이 선배였나 보다. 재주도 좋지. 어떻게 알았대.
“불꽃놀이 보려구요.”
“……그 상태로?”
“아……네. 혹시나 폼프리 부인 오시면 잘 좀 말해주세요. 참, 퀴디치는 어떻게 됐어요? 래번클로가 이겼어요?”
“응. 네가 스니치를 잡아서.”
“다행이다. 그 고생 하면서 스니치를 잡았는데 혹시라도 우승 못했을까 봐 조금 걱정했거든요.”
내 말에 선배는 살짝 웃었다.
“불꽃놀이는 어디서 보려고?”
“제 방이요.”
“방?”
“시계탑 근처라 높기도 하고, 테라스도 있어서요.”
그리고 혹시나 티가 올지도 모르니까.
“다시 들어가서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어때. 거기서도 불꽃은 잘 보일 텐데.”
“아뇨…… 그건 좀…….”
“그래. 호그와트 전체에 불꽃을 터뜨린다고 했으니까 그쪽에서도 아마 보일 거야. 혹시 모르니까 내가 말 해놓을게.”
“……선배.”
“어?”
“사퇴……했다고 들었는데 무리한 부탁이면 안 들어주셔도 돼요.”
“별로 무리는 아냐.”
“그나저나 병동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선배는 잠깐 말이 없었다.
“아는 애가 다쳐서. 잠깐 보고 나오는 길이야.”
“……아.”
“곧 불꽃놀이 시작할 텐데, 어서 가 봐.”
“아, 네. 먼저 가 볼게요!”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상하지. 병동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는데.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돌아온 방은 테라스를 제외하고 칙칙했다. 다음엔 테라스뿐만 아니라 방도 조금 꾸며야겠다. 나는 담요를 두르고 이불도 나 더 끌고 오며 생각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산들바람에도 온몸이 반응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무리 이불을 끌어 당겨도 찬 공기가 구석구석을 채웠다. 아까 병동을 나올 때 약이라도 챙겨 나올걸 그랬다.
벤치에 비스듬히 누운 나는 마침내 붉은 기가 사라지고 푸른 저녁을 맞이하는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방학이니 좀 쉴 수 있겠다. 그동안 일이 너무 많았어. 방학을 하면…… 나는 영원의 집에 돌아가는 거려나. 돌아갔을 때 마주할 반가운 얼굴들 사이에 가시처럼 마음을 찌르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또 온몸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시린 몸은 또 시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픈 말을 내뱉는 나와 강례원. 그 말들은 뭉치고 뭉쳐 커다란 공이 되었고, 그것은 내 빗자루를 세게 치고 가 나를 공중에 떨어뜨렸다. 다시 흩날리는 파노라마. 발작하듯 눈을 뜨자 식은땀이 흘렀다. 잠깐 사이에 꾼 꿈 치고는 너무 강렬했다. 꿈까지도 나를 가만 두지 못하는구나.
“그냥 다 꺼졌으면 좋겠다아…….”
약도 안 먹었는데 약을 먹은 것처럼 졸리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찬 속과는 달리 더운 숨을 내뱉는 게 꼭 불볕더위와 혹한을 한꺼번에 삼킨 기분. 이러다가는 불꽃놀이도 제대로 못 보겠는데.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옷자락에 다시 눈을 떴다.
“안색이 안 좋네.”
“어…… 언제 왔어요.”
“네가 ‘다 꺼졌으면 좋겠다’라고 할 때.”
“진짜 소리 소문 없이 오네…….”
“아파?”
“네…….”
“…….”
“아파요. 엄청. 열도 막 나고.”
뜨거워. 티가 내 이마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순간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에 티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불볕더위에 개나리가 피고 혹한에 나비가 나는 기분. 묵묵히 손을 빌려주던 그는 손등에 내 온도가 옮겨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많이 아파?”
그런 것 같아요. 머리도 아프고, 눈앞이 핑핑 돌고, 몸에 힘도 안 들어가고,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숨도 잘 안 쉬어져. 그냥 나대지 말고 병동에 얌전히 있을걸, 하는 후회가 간지러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으나 내뱉지 못했다.
“인상.”
티가 미간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수업은.”
“축제라서 안 해요.”
“안 심심해?”
“좀 심심했으면 좋겠어요.”
하루 종일 생각할 게 너무도 많다. 하루가 아니더라도 이번 한 학기 동안 내가 겪은 일과, 느낀 것들에 대해 정리하지 못하고 뒤로 미룬 생각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더 이상 미루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생각의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뒤죽박죽이었다. 그 파노라마처럼.
“그럼 내가 심심한 얘기 하나 해 줄까.”
“그게 뭐예요…….”
“아플 때 들으면 낫는 이야기야.”
“그럼 들어 볼게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반대편에서 불어왔다. 그 흐름에 나부끼는 머리칼이 시야를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내 옆에 앉은 그의 표정은 묘했다. 추억에 젖어 있으면서도, 현실의 허공을 더듬는 애매한 시선. 감기라 그런가. 천천히 운을 떼는 그는 조금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옛날에, 래번클로 소속인 한 여자애가 있었어.”
“…….”
“그리고 그 여자애에게는 친구가 있었지.”
바람이 선선히 머리칼을 적셨고, 하늘 위로 천천히 오르는 불꽃이 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 애 이름은.”
나는 감기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했다. 피어오르는 불꽃 소리와 티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야기는 천천히 시작됐다.
“김태형이야.”
볼드모트 뷔. 본명 김태형.
호그와트 613회 졸업생이며,
소속학사는 래번클로였다.
1부 후기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장장 5개월에 걸쳐서 호일호 1부가 끝났네요.
첫 연재는 여름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인스티즈에서 복원문제가 발생해 전부 사라졌었죠...(아련)
재업로드 하기에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충분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 9월에 하기 시작했어요.
재업 전 초반에 댓글 달아주셨던 분들 중에 지금도 호일호와 함께 하고 계신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처음엔 5~6화를 미리 써놓고 시작했어요. 쓰고 보니 혼자 보기엔 아까워 어딘가에 업로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스티즈에 연재하기 시작했죠.
솔직히 조회수나 신알신, 댓글 같은 독자반응은 전혀 기대도 안 했고 오로지 업로드에만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글 마지막에 쓰는 코멘트도 혼잣말로 적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 글을 봐주시고 너무 좋은 댓글을 써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막힐 때마다 힘이 나는 댓글이 달린 덕분에 1부는 12월에 구상을 끝냈고, 1월 초에 다 쓰게 됐어요.
그리고 초록글도 꽤 자주 올라갔더라구요!!!
캡처 못 한 것도 있지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2부가 시작되기 전에 다음 글에는 QnA를 하려고 해요.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여기에 댓글로 달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작품에 대한 것도 좋고, 작가에 대한 것도 좋아요. 여러분이 묻지 않은 것도 질문으로 만들어서 날조할 예정입니다^^ 알려드리고 싶은 게 많거든요.
고로 다음 글은 티엠아이 파티가 되겠습니다! 하하하하! 한 사람이 여러 질문을 하셔도 좋으니 제가 날조하지 않도록 질문 많이 해주세요...(쭈굴)
질문이 아니라 제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셔도 감사히 읽겠습니다^ㅁ^!
그리고...
1부가 끝났으니 말하는,
알아두면 좋을(그리고 작가가 실수한..) 것들:
1. 전정국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마법사가 아니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마법사다.
죄송해요 백년천년 계속 들쑥날쑥이더라구요... 차차 수정하겠습니다...
2. 9화에 나왔던 후플푸프 수색꾼은 순전히 연습을 위해 다른 포지션의 학생이 수색꾼 역할을 해준 것이다. 호그와트 수색꾼은 10년동안 없었고, 여주가 처음이다.
죄송해요 9화 본편에는 설명을 빼먹었어요...
3. 12화에 여주 부모님의 이름 끝 글자를 땄다고 했는데 여주 이름을 독자분들이 직접 적을 수 있게 해 놓은 상태라 현재 그 대사는 뺐습니다...
읽으면서 혼란스러웠을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4. 12화에서 교장은 두 번째 호크룩스 작전 때, 여섯 개의 호크룩스를 모두 파괴했는데도 볼드모트 뷔의 죽음이 확실치 않아 호크룩스가 하나 더 있음(일곱 개)을 알게 되었다. → 다섯 개로 알고 있었고, 다섯 개를 모두 파괴했음에도 뷔가 죽지 않아 여섯 개인 걸 알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수정돼 있어요ㅠ_ㅠ
5. 이지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찻집 '유앤아'는 70년 전통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죄송합니다... 이것도 제 실수... 차차 수정하겠습니다...
6. 17화에 시아가 맡은 부스가 다트라고 돼 있는데 사실 포춘 쿠키였던 건 다들 아시겠죠... 이것도 수정했습니다ㅠ_ㅠ
7. 호그와트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지만 조금씩 다르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 제1가문/2가문 등, 블러져가 몰이꾼들의 방망이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것, 1년에 시험을 두 번(한 학기에 한 번씩) 친다는 것, 여름축제 등등)
8. 호그와트 학생회: 전교회장, 부회장
호그와트 기숙사자치회: 전교회장, 부회장, 그리핀도르/래번클로/슬리데린/후플푸프 학사장(=기숙사장)
학생회와 기숙사자치회 투표는 2학기, 본격적인 활동은 이듬해부터 시작한다.
9. 임시완: 전교회장, 퀴디치 주장/몰이꾼
김남준: 래번클로 학사장, 퀴디치 몰이꾼
이지은: 후플푸프 학사장, 퀴디치 추격꾼
김석진: 그리핀도르 학사장, 퀴디치 파수꾼
(하는 게 많은 사람들)
10. 교장선생님이 여주가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숙사는 그리핀도르다.
11. 초상화로 된 문은 초상화 주인(그림)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다.
초반에 여주가 주인 없는 초상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그 자리에 있던 윤기가 여주 모르게 잠깐 수를 써뒀기 때문이다. 이를 여주는 모른다.
12. 전정국이 다트 부스 첫손님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런 거 없다. 여주라서 돈을 안 받은 것이다.
2부는 2월 중으로 QnA와 함께 올라옵니다. 그때까지 여러분 모두들 안녕!
1월 마지막을 즐겁게 보내시길! 미리 새복많!~~~!~!!~!~!~!~!!
[암호닉]
다람이덕 김석진잘생김
자몽해 몽9 우주
낑깡 빙구 잠만보
파냥 감귤 뮵
민덩방아 뇸
하루 방람둥이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1부를 봐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ˊ◡ˋ꒱
여기까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