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은 턱을 괴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앞에서 체스 판을 쳐다보는 태형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정욱은 그 얼굴에서 보바통 교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언젠간 그 어둠에 잠식돼 순악이 될 것이라던.
정욱이 태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호그와트 교장이 되고 몇 년이 지나고서였다. 머글세계에 있는 고아원을 의사라는 명목으로 방문했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고학년을 올라가던 꼬마는 벌써부터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머글세계에서 마법사가 자랐을 때 흔히 있는 일이었다. 마력이 생겨 주체하지 못한 꼬마마법사가 저도 모르게 마법을 쓰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도태된 생활을 하는 것.
하지만 태형은 달랐다. 저를 쳐다보는 눈빛부터가 어린 아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바통 교장이 말했던, 순악이 서려있는……
“체크메이트.”
“…….”
“내가 이겼어요.”
정욱은 체스 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 이번엔 졌군.”
“이번에‘도’겠죠, 교장선생님.”
정욱을 보며 씨익 웃는 얼굴에서 처음 보았던 그 형형한 기운은 없었다.
정욱은 그 이후로 몇 년 간 고아원을 들렀고, 태형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머글세계에서 넘어왔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처럼 교육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마법소양을 쌓고 호그와트 입학을 준비시켰다.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보바통 교장이 선수 치기 전에 제가 먼저 데려와야 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순악의 영원한 소멸이었기에. 정욱은 보바통에서 그런 눈으로 말하는 걸 처음 봤다. 악에 대한 사무치는 증오.
하지만 태형은 어렸고, 마법실력도 뛰어났다. 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소멸시키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교화라고 하던가. 정욱은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법부에 허가서를 내오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금은 호그와트에 입학한 지 1년이 지났고, 태형은 촉망받는 마법사로 자랐다. 정욱은 제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다른 게임을 해 보자.”
“다른 거요?”
“오목이라고, 머글세계 게임이야.”
“바둑알로 하는 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해 본 적 있니?”
“바둑알로는 안 해봤는데, 칠판에 판을 그려서 하는 건 본 적 있어요.”
“그래? 그럼 우리 내기할까?”
요즘은 래번클로에서 자주 같이 다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태형은 마법실력은 말 할 것도 없고 두뇌회전도 빨라 매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데다, 퀴디치 몰이꾼으로 명성을 알리고 있었으니 정상 중에서도 최상의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우관계는 좋지 못했다. 나쁜 관계는 없었지만, 마음을 나누는 관계까지 넘어가지 않았다. 정욱은 그것이 태형이 지닌 성향의 한계라고 생각했으며,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떠냐.”
“좋아요.”
그러니 래번클로의 로운이라는 학생에게 관심을 둘 수밖에.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22.
로운이 기억하는 태형과의 첫 대화는 비가 개어 이파리와 학교 처마 밑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교수님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해가 길어져 아직 노을이 지려면 한참 남았지만 수업 중간에 조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 ‘여럿’에 끼게 된 로운은 눈을 뜨자 보이는 얼굴에 괴고 있던 팔을 삐끗하고 말았다.
ㅡJe ne regrette rien.
기숙사 배정에서 주문을 썼던 아이. 로운은 얼얼한 턱을 문지르며 태형을 바라봤다.
“조별과제.”
그런 로운의 시선에 태형이 대답하듯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전부 둘 혹은 셋이서 조를 만들어 앉아 있었다. 칠판에는 1조부터 14조까지의 조원이 적혀 있었고, 마지막 14조에는.
“김태형.”
“…….”
“로운. 맞지?”
“아아, 응. 로운이야.”
태형과 로운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어떻게 조가 짜였는지 대충 상상이 가는구만. 세상모르고 졸고 있던 나를 제외한 모두가 분주히 조를 짰을 것이고, 자연히 남는 사람은 나였겠지. 근데 왜 얘가 나랑 같은 조가 된 걸까? 로운은 칠판 아래쪽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생각했다.
조원은 2인 이상, 4인 이하.
조는 대부분 3인으로 이뤄져 있었다. 전부 태형과 조원이 되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한 명씩 남는 자리들이 그것을 설명했다. 그래서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나 너 알아.”
“어?”
그 뒤에 이어지는 태형의 물음은 더더욱.
“넌 나 몰라?”
조금의 악의나 조롱도 없는 순수한 궁금증이라는 게 느껴졌다. 로운은 흐트러짐 없이 저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알지.”
알다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마법천재라고 전교가 떠들썩한데 모를 리가 있나. 그리고 넌, 주문을 썼는걸. 나와 할머니밖에 모르던 그 주문을. 뒷말을 삼킨 로운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뭐가?”
“서로를 아니까.”
태형이 팔을 책상에 기대며 로운을 바라보았고, 로운은 의자에 꼿꼿이 앉아 태형을 바라봤다. 몇 초였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했다. 태형에게도, 로운에게도.
과제는 하나였다. ‘붉은 모래 야자수’ 찾기. 열매든 줄기든 잎이든 일부분을 채집해오면 되는 것이었는데, 찾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이 이번 과제는 포기하지 않을까. 로운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들 머리를 맞대고 열심이었다. 로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태형을 쳐다봤다.
“상점 30점이래.”
“…….”
“한 사람 당 15점.”
로운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과목별 학력우수자에게 주는 점수가 20점인데, 과제에서 주는 점수가 15점이면 만만치 않은 점수다. 어려운 과제에 쉽게 포기할 것을 예상한 교수가 내민 히든 카드였다. 로운이 다시금 태형을 쳐다봤다.
“우리, 열심히 하자.”
검은 눈동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처럼, 마치 주문을 외듯이.
그게 로운이 기억하는 태형과의 첫 대화였다.
태형은 수풀 사이를 뒤지는 로운의 뒷모습을 열심히 관찰했다. 신 뒤축이 흙으로 뒤덮인 채로 쭈그려 앉은 모습이 어쩐지 나비 같았다. 발소리가 나지 않는 나비. 그리고 태형은 어제 오후를 떠올렸다. 조를 짤 때 여기저기서 뻗어온 손길을 뿌리치고 어쩔 수 없이 남은 척, 로운의 앞으로 갔던 어제 오후. 턱을 괴고 졸던 모습이 기차에서의 모습과 일치해 픽 웃었던 것도 같다.
붉은 모래 야자수는 이름과는 다르게 붉은 모래가 아닌 흙이나 검은 모래에서 자라며, 뿌리내린 곳이 흙이냐 모래냐에 따라 생김새도 다르다. 로운은 수풀 사이에 검은 모래가 많다며 온갖 수풀을 헤쳤다. 태형은 그런 로운을 조용히 따라다녔다. 이따금씩 앞장서서 가지를 잘라나가면서.
주말에 만날 것은 예상했지만 아침부터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가장 먼저, 가장 빨리 과제를 제출하는 게 유리하다는 로운의 말을 따라 태형은 인근 숲으로 왔다. 그리고 한 시간째 붉은 모래 야자수는커녕 검은 모래도 찾지 못하고 숲을 헤매고 있었다.
“아, 더워.”
“찾았어?”
“아니. 모래알도 하나 안 보여. 흙이라도 찾아볼까? 근데 숲 전체가 흙이라 사막에서 바늘 찾기일 텐데…….”
로운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열심히 하자는 말을 허투루 내뱉은 건 아닌지 머리칼엔 이파리를 잔뜩 붙이고 손발은 온통 흙모래 범벅이었다. 과제 상점이 간절한 건지, 아니면 약초학 상점이 간절한 건지. 태형은 작년 래번클로 기숙사 점수를 생각해 보았다. 5점 차이로 슬리데린이 1등이었지. 혹시 그 때문인가? 태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열한시야.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찾아.”
“시간이 많으니까 더 열심히 찾아야지. 붉은 뭐시기 그거, 분포가 제멋대로라서 찾는 게 무진장 어렵단 말야.”
다른 식물과 다르게 자아 엇비슷한 걸 가지고 있어 채취도 쉽지 않다는 게 로운의 말이었다. 태형은 이제껏 약초학을 들으면서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교과서에도, 도서관 책에서도. 로운은 손발이 흙모래 범벅이긴 했으나 흙을 파내는 솜씨도 태형과는 사뭇 달랐다. 천천히 흙바닥을 손바닥으로 쓸다가 아닌 것 같으면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끝을 사용해 살살 파내려갔다. 로운의 옆에서 함께 흙을 파내던 태형은 똑같이 범벅이 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렴 좋다. 1년 동안 태형이 로운의 근처에 가는 것은 어려웠기에. 같은 수업을 듣는 날도 없었고, 항상 퀴디치라든지 교장인 정욱과의 면담 같은 것들 때문에 바빠 만날 일도 적었고, 만난다 해도 복도에서 스쳐지나가는 게 다였다. 그렇게 기차에서의 기묘한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태형은 조식을 먹자마자 제 테이블로 찾아와 손을 잡아끈 로운을 생각하면 지난 1년의 공백이 허무하리만치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1년 만에 만난 나비는 여전히 검은 머리칼을 가졌고, 여전히 소리 없이 걸었으며, 여전히……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흙을 파내는 법을 더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나눠서 찾는 거야. 긴지 아닌지 구분하는 건 처음에 어려울 거야. 그냥 느낌 가는대로 파 봐. 아, 우리 할머니가 약초학을 전공하셔서 내가 이런 거에 빠싹하니까 의심은 안 해도 돼.”
“응.”
“그래. 그럼 일단 여기서 연습해 볼까? 어떤 흙에 붉은 뭐시기가 살 것 같은지 대충 감이라도 오게 말이야.”
……여전히 예뻤다.
오 옮기고 보니 22화도 짧은 느낌,, 전체적으로 2부는 1부보다 한 화당 분량이 더 적을 것 같습니다....
2부에 나오는 교장과 1부에 나오는 교장은 다릅니다 1부: 하정우 2부: 하정욱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겠지만,, 이것도 나중에 3부에서 풀릴 거예요 헤헹 좀만.. 아니 좀 많이 기다려주세요,,,,,,,,
소장본 수요조사 (~2/17)
http://naver.me/5HFhi4UX
수요조사 진행중입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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