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 02
- 특별수사본부팀 '구원자' -
순영은 벙찐 채 어젯밤에 사건 현장에서 본 남자와 마주했다. 아무렇지 않게 제 앞에 서서 말을 걸고 있다니. 순영은 급히 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팀장님, 그 자식이에요."
"뭐라고?"
"어제 그놈이라니까요!"
"일단 앉아."
흥분한 순영과 달리 앞에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던 그는 아까 문을 열어줬던 남자에게 따뜻한 차를 부탁했다. 아까 저 남자가 '지훈이 형'이라고 지칭한 사람이 이 자식이었나 보다. 순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팀장님께서 가만히 계시니 용의자는 아닐 것이라.
"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소개하는 게 낫겠죠? 아무래도 팀원 분께서 어제 일 때문에 절 못 믿는 것 같으신데."
"……."
이들과 무슨 일 얘기를 한다는 것인지 순영은 팀장을 째려봤다. 정신없는 와중에 자신에게 먼저 말을 할 여유가 지금까지 어디 있었겠냐마는.
"먼저 이걸 보시겠어요?"
그가 서랍에서 펜을 꺼내 아무것도 써져 있지 않은 부적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순영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팀장님은 이런 것 좀 믿지 말라니까.
순영이 무슨 생각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그는 가볍게 웃으며 부적을 벽 쪽으로 힘껏 날렸다. 칼처럼 날이 서있는 듯이 날아간 부적은 눈앞에서 화르르 타 사라져버렸다.
"이곳은 결계가 쳐져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효과 없이 사라진 겁니다. 방금 제가 써서 던진 부적은 '칼 검(劍)'자였고요."
"……."
"어제 본인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기억도 안 나죠? 지금 본 것도 믿고 싶지도 않을 거고."
"덜컥 믿는 게 더 신기하죠."
삐거덕대는 대답에 팀장은 순영의 허벅지를 살짝 내려쳤다. 그럼 저걸 어떻게 믿으라고.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구원자' 소속이자 특별 수사본부 협력팀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과 맞서는 사람들이죠."
"……."
"억울한 영들을 달래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악한 영들을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특수본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기밀이었으니까요."
*특수본: '특별수사본부'의 줄임말
'구원자'. 그가 말하길 자신들도 하나의 큰 조직체이고 그 아래로 여러 개로 갈린 팀 중 하나라고 했다. 팀장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지.
순영은 일단 이 상황은 넘어가자고 생각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악수하자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권순영 경위입니다."
"이지훈입니다. 직접 퇴마를 하고 있고요. 어젠 실례가 많았습니다. 권순영 경위님."
"이지훈입니다. 직접 퇴마를 하고 있고요. 어젠 실례가 많았습니다. 권순영 경위님."
"이지훈입니다. 직접 퇴마를 하고 있고요. 어젠 실례가 많았습니다. 권순영 경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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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요."
아, 들어왔네요. 민규는 쪼르르 문쪽으로 달려가 방금 들어온 사람을 데려왔다. 순영과 그 사람이 눈이 마주쳤으나 웬일인지 순영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어째서인지 미묘하게 바뀐 그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뭘 하고 들어왔는지 잔뜩 더러워진 그의 옷에 호들갑을 떨며 화장실로 보내버린 민규가 대신 말을 했다.
"저 친구는 최한솔이라고 우리랑은 다르게 직접 퇴마를 못해요. 대신 방어 계열 쪽으로 뛰어난 친구라 이 집 결계는 물론이고
현장 나갈 때 저희를 다 책임지는 기특한 막내랍니다."
"……."
"아, 그리고 저 친구는 사이코메트리 기질이 좀 있어서 찰나로 과거를 볼 수 있어요. 가끔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아도 볼 때가 있고요."
서로를 서로에게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숨 막혔다. 범인의 단서를 찾은 줄 알았더니 뜬금없이 특수본 얘기에 자기소개 시간이라니. 자신이 아무리 눈치를 밥 말아먹었어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기밀이라는 특수본에 자신이 합류하겠구나'라는 것을. 순영은 금방이라도 욱-하고 소리를 지를 것 같았지만 끝까지 참았다. 지훈이 그런 순영을 살펴보더니 자신이 분석한 자료를 팀장에게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특수본 가셔서 한꺼번에 자세한 얘기를 들으시는 게 더 낫겠네요."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지훈 씨."
"아닙니다. 또 연락 주세요."
꼭 다시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지훈이 집을 나가는 순영을 보면서 툭 내뱉은 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순영은 묵묵히 창문 밖만 바라봤다. 살벌한 기운에 팀장이 힐끗 눈치를 보다 겨우 말을 꺼냈다.
"몸 아직 이상하냐? 오늘은 그냥 들어가서 쉴래?"
"팀장님."
"어, 어…."
"그거 다 사실인 거 맞죠? 특수본도… 이지훈 씨가 얘기한 것도요, 다."
"…그래."
"그 특수본 팀원으로 제가 추가로 들어가는 거고요."
"……."
"팀장님, 아직 저 못 미덥고 불안하세요?"
순영은 기밀이었다던 그 팀에 자신이 들어가는 것이 왜인지 쫓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살짝 촉촉해진 눈동자에 팀장이 비친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팀장은 더러 헛기침을 하며 큰소리를 내었다.
"인마, 거긴 뭐 노는 줄 알아? 너 거기 들어가면 더 힘들다고 난리 칠 거다."
"……."
"명호…. 떠나보낸 거 네 잘못 아니다."
"……."
"그니까 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거기서 일이나 잘해. 알았어?"
갑자기 들린 아픈 이름에 순영은 떨리는 입술을 주체하지 못하고 급하게 창문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도착할 동안 차 안에는 간간이 들려오는 코 훌쩍이는 소리만 퍼질 뿐 팀장도 순영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