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무슨 일이란 것은 신기하게도 아무도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온다.
그가 너에게 입 맞췄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후의 감정은 차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혹시 꿈일까 싶다.
*
"뭐해, 정신차려."
넋을 놓고 있던 모양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하얀 벽이 보이고 그런 너 옆에는 정택운이 보였다.
너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병원이구나."
"얘 왜이래."
정택운 옆에 앉아있던 차학연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너가 몸을 움직이며 기지개를 켰다.
차학연은 그런 너를 신기한 듯 빤히 바라보았다.
바람이 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너는 근처 옥상으로 걸음을 돌렸다.
차학연은 옥상으로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왜 저렇게 혼자 멍때리는 거야. 충격 먹었나."
머리를 긁적이는 차학연 뒤로 태연하게 핸드폰을 만지던 정택운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한 말투였다.
"이미 아픈 건 다 알고 있어서 충격 먹을 건 아닐 거 같은데,
그리고 이재환 병원 오가는 게 한 두번이냐."
"뭐야, 알고 있었다고? 그래도 야, 쟤는 이런 경험 처음일 거 아니야."
택운은 볼에 바람을 넣으며 옥상 쪽을 바라보는 학연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곤 별 관심 없이 핸드폰을 집어넣고 로비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서성거렸다.
학연은 여전히 로비 의자에 앉아있으면서 그런 택운을 바라보기만 했다.
택운은 자신을 보는 차학연이 신경쓰인 모양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좀 친해졌다보다? 이별빛이랑."
"왜 갑자기 그런 얘기야, 이재환한테 안가?"
잠시 옥상 쪽 계단을 보던 학연이 팔짱을 끼며 일어섰다.
쟤는 왜 안 데려가냐고 묻는 차학연을 등진 채로 택운이 말했다.
"알아서 오겠지, 뭘."
*
"바람 좋네,"
눈을 감고 옥상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까의 일들이 생각나졌다.
정택운이 집으로 데리러 온 것도,
바보같이 약을 안 먹이냐고 혼난 것도,
...그리고 이재환과,
순간 눈이 번뜩 떠졌다.
손등을 뺨에 갖다대보니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었다.
어후, 더워지는 것이 이유가 있었나보다.
손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하다 주머니 안으로 진동이 울렸다.
배터리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먼저 가있을게. 3층 병실인거 알지?]
먼저 가있는단 정택운의 문자에 너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들어가는 것도 눈치 보일텐데, 늦게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였다.
서둘러 옥상을 나가려다 어두워진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던 하늘이었는데,
꽤 시원한 바람이 너의 얼굴을 스쳤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 시간이 순간 어색하다고 느낀 걸까,
이사 온 뒤로 벌써 많은 일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도 잠시,
너는 심호흡을 하며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별빛이 왔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갔다.
작은 병실에 혼자 앉아있는 이재환이였다.
"걔, 걔네들은 어디 가고 혼자 있어."
"음료수 사온대."
너가 어색하게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심심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는 이재환의 눈치를 보았다.
혼자 두고 간 정택운과 차학연을 원망하며 근처 바나나를 집어먹었다.
"...별빛아, 미안해. 민폐끼쳤어."
이재환이 다 접은 종이비행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너가 당황하며 먹던 바나나를 내려놓았다.
"아, 아니. 많이 피곤했다면서! 과로라고 다 들었어."
너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최대한 모르는 척 횡설수설 말하자 이재환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다 알잖아. 택운이한테 눈치챘다고 말했다면서,"
너가 입을 다물었다.
정택운도 참, 말해줄거면 나한테 아는 척 하지 말라고 말이나 해주지 말 것이지,
그래놓고 지가 다 알려줘놓고선 너가 눈치챘다고 말한 모양이다.
너가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이재환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조금 추했겠지? 기억이 잘 안 나네."
이재환이 민망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어색하게 따라 웃다 표정이 굳어졌다.
잘 기억이 안 난다고...?
"기억이 안나..?"
"그게, 너네 집에서 막 티비보고 있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것만 기억나.."
그것만 기억한다니,
설마 뭐 실수했냐고 묻는 이재환에게 너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큰 실수? 했지! 감히 임자 없는 몸에 뽀뽀를 해?
....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에게는 지금까지도 생생한데 정작 그 일을 이재환은 기억도 못 한다는 게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진심으로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얘네는 어디까지 사러 간거야."
말 없이 있다가 이재환이 입을 열었다.
핸드폰이 없는 이재환에게 낡은 너의 핸드폰을 빌려주었다.
서툴게 전화를 거는 이재환 모습을 너가 빤히 바라보았다.
이재환은 뭐가 안 풀린 듯 고개를 기웃거리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안 받는다, 근데 별빛이 너, 애들이랑 친해졌나봐? 전화번호는 언제 교환했대."
".... 너도 핸드폰 사, 바보야."
너의 말에 이재환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핸드폰을 건넸다.
아무래도 살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너가 사라고 하면 생각은 조금 해볼게."
너가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에 이재환도 환하게 웃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너가 입술을 물고 있다 재환이를 불렀다.
"재환아."
"응?"
너를 바라보고 있는 이재환의 눈빛에 너가 차마 말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너가 아프든 말든 상관없다고,
이렇게 내가 용기 없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너가 심호흡을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재환아."
"왜 자꾸 불러~"
".... 너는 날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지..?"
*
".... 당연하지."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너 자신이 지금 초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 그냥 좋은 친구일 뿐이지...?"
"별빛아."
차마 눈을 못 마주치겠어서 바닥만 바라보았다.
또 괜히 이런 말을 꺼내서 곤란한 상황이 온 것 같았다.
너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 앞에 너를 바라보는 이재환이 보였다.
어디서나 매일,
보고 싶은 그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만약에 이사를 오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인연이라 생각했었다.
그러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던 사람이었고
착하고 순한 모습이 너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나 너 좋아해."
비가 갠 후의 날씨는 꽤 쌀쌀했다.
창문 밖으로 쎄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병실 안은 너의 심장소리로 가득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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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는 16편이 짧게 느껴지는지..ㅠㅠㅠ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벌벌 그 때문에 좀 몇일 뒤에 찾아왔네요ㅠㅠ
여자가 고백하게 만드는 이재환이란...ㅋㅋㅋㅋㅋ
재밌게 봐주시고 17편에서 뵈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