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스눅스 X 정상인
'너에게 닿기를'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글잡에서도 활동하는데요 이번 글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글잡으로도 옮겨볼까 합니다. 독방에서 삭제는 하지 않을 생각이고요 하하
익명이라 제가 누군지 밝히면 안되니까 글잡에 엽기적인 다문화카페의 정모를 하는 내용의 글을 쓰는 여자가 이 글과 같은 글을 올렸다!!면 저와동일인물입니다.
두서 없이 막 쓴 글이라 오타가 있을 수도 있고 모자란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_^ (독방.ver)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독방에서도 활동하는데요 이번 글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글잡으로 옮겨왔습니다. 독방에서 삭제는 하지 않을 생각이고요 하하
두서 없이 막 쓴 글이라 오타가 있을 수도 있고 모자란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_^ (글잡.ver)
그 때 우리가 열 아홉, 스물이아니였다면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말 그대로 따사롭기 그지없는 봄 그자체였다. 나는 회담 고등학교의 평범한 열 아홉 여고생이었고 다니엘은... 그닥 평범하지 못한 열 아홉, 아니 스무살 '남고생'이었다. 스무살이 어떻게 고등학생이냐 묻는다면 딱 한 단어로 정리해주겠다. 유급. 다니엘은 유급생이었다. 중학교 시절 부터 담배와 술, 새벽엔 오토바이 폭주에 방과후에는 교내봉사를 도망쳐 시내에 지나다니는 얼굴 반반한 여자들을 길빵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고등학교 3학년 이던 그 때 까지 단 한번도 다니엘과 같은 반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제비뽑기로 자리라도 바꾸는 날이면 나는 늘 다니엘의 짝지였고 나는 그것을 몹시 불쾌한 일로 여겼다. 다니엘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 애 표정도 늘 뭐 씹은 것 마냥 인상 투성이였으니.
"숙제 했니."
"알 바냐."
"내가 걷어야 하잖아."
"되게 귀찮게 구네."
그 애는 늘 건성이었고 딱딱했으며 차갑고도 사나웠다. 온몸을 뒤덮은 문신은 누가 보기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며쉬는시간 마다 소각장도, 화장실도 아닌 교실 구석에서 대놓고 피워대는 담배냄새는 끔찍할 정도로 고약했다. 가끔가다 내가 뭐라고 소위 고나리질이라 불리는 잔소리를 하면 다니엘의 친구들은 금방이라도 내 뺨을 후려갈길 것 마냥 씩씩대며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다니엘은 늘 그들을 저지했다. 평소엔 그렇게 까칠히 대하다가도 그럴 때 왜 날 구해줬는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조울증 이런걸까. 가끔 내게 웃어주기도 했다. 그럴 때는 또 내가 웃지 않았다. 다니엘이 던지는 장난스런 음담패설들은 유쾌한 동시에 불쾌했고 속이 뻥 뚫리는 동시에 숨이 텁 막혔으니까. 그 애의 말에는 이중성이라는게 있어 아무리 좋은 말을 내던져도 늘 두가지의 뜻으로 나뉘어 들릴 때가 많았다. 표정과 말이 아주 따로노는 포커페이스를 소유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첫 지필고사 때 난 OMR카드를 밀려쓰고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그 당시에는 나와 다니엘이 짝지가 아니었는데 다니엘은 굳이 4분단에서부터 걸어와1분단 끝에 앉아 고개 숙여 남몰래 눈물 삼키는 내게 비아냥대듯 위로를 건넸다. 비아냥인지 위로일지 모를 그런 동정은 솔직히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다. 힘 내라, 엉? 하고는 주머니에서 말보루 한 갑을 꺼내 담배 두 개비를 동시에 피워댔다. 내가 눈물을 닦으며 담배 연기에 콜록콜록 대자 뭐라뭐라 말하더니 금세 저 앞으로 달려가 대걸레로 말 타기 놀이를 하는 등의 유치한 장난을 하곤 했다. 그 애는 그렇게 마냥 밝은 애였다.
처음 다니엘이 우는 걸 봤을 때는 여름 방학식 날 이었다. 3교시만 하면 한 달간 학교와는 작별이라며 벌써부터 노래방이니 PC방이니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이 난 싫었다. 워낙 소극적인 성격탓에 친구가 없는 나 였으니까. 아주 작게, 개미도 못 들을 정도의 소리로 아 시끄러워... 하니 짝지였던 다니엘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더니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칠판을 향해 던지며 '우리 상인이 시끄럽대, 열라 일진이잖냐 다들 좀 싸물어라' 따위의 웃지 못할 농담을 했다. 아이들은 정말 일제히 고요해졌다. 숨을 거둔 듯 아무 소리 없는 교실의 정적을 깬 것도 다니엘이었다. 너무 조용한 분위기에 감기 탓에 나오려던 기침을 애써 참던 나를 알아본 것이다.
"그냥 해라, 콜록콜록."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니엘을 쳐다봤다. 지금껏 본 것중 가장 환한 다니엘의 미소였다. 곧, 아이들이 시끄러워지고 나는 맘 편히 기침을 했다. 손에 알약을 덜어내고 물을 마시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다니엘은 다시 앉혔다. 뚱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다니엘이 내게 물었다.
"넌 왜 내 이름을 안 부르냐. 같은 반 계속 한지 햇수로 5년짼데."
"꼭 불러야 하니. 득 되는 것도 없잖아."
"이득만 따라가다는 모든걸 잃고말아."
"다니엘."
"어."
"나 이제 물 마시러 가도 되지."
고개를 젓던 다니엘이 일어선 나를 다시 앉혔다. 그러고는 검은 백팩에서 보온병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학교 정수기 물은 차가워'하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니엘이 건네는 보온병을 받아들고 약을 먹었지만 내 맘은 아무렇지 않지가 않았다. 내 맘은 아무랬다. 내 맘은 암울했다. 아무래도 열 아홉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하필 이 녀석에게 시작된 것만 같아서.
여름방학식의 끝을 알리는 종이치고, 난 한참 뒤에야 깨어났다. 교실 텔레비전으로 거창한 방송인 양 생중계되는 교장의 훈화는 지루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이제 막 그 애가 좋아졌는데... 정말로 암울했다. 교실엔 아무도 없었고 인기척은 느껴졌지만 달갑지 않았다. 빨간 잔 스포츠 백팩을 어깨에 둘러메고 의자를 끄르륵 소리나게 집어넣은 후 교실 뒷문을 열었는데 어디선가 어린 아이처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지고 내 호흡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누구지, 아직 집에 안 간 사람이. 깨금발로 조심조심 복도를 걷는데 계단에 앉아 홀로 흐느끼는 다니엘이 보였다. 맙소사, 그 애가 울고있었다. 남들 앞에선 마냥 웃기만 하던 그 애가. 문신과 담배로 모두를 위협하던 그 애가. 작은 거인 같이 아주 강인했던 그 애가 말이다. 난 너무 놀란 나머지 허억-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다니엘이 뒤를 돌아 내 얼굴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난 조용히 그 애를 지나쳐 계단을 지나치려고 했는데... 내 치맛자락을 붙잡더니 날 코너로 몰아넣은 것은 그 애였고, 내 뒷목을 잡은 채 글썽이는 눈으로 입 맞춘 것도 그 애였다. 나는 그런 다니엘의 키스를 받아줬다. 우리는 가방과 장마에 대처할 작은 우산들을 계단과 복도에 어질러 놓은 채 아무도 없는 양호실에 들어섰다. 하얗고 정갈한 침대가 우릴 맞았고 우린 그 곳에서 서로를 영영 갖고 말았다.
난 처음이었고, 믿기 어렵겠지만 그 애 역시 처음이었다. 우리는 서툴었지만 아름다웠고 너무 아팠지만 아픈만큼 더 뜨거웠다. 우리가 사랑했던걸까. 그 간 그 애를 불쾌하게만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간다. 교복치마 아이스케키를 당했을 때 뺨을 때리며 엉엉 울어버린 기억, 고등학교 입학식 날 또 같은 학교구나 싶어 정문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걸어오는 그애를 보며 한숨을 내뱉던 기억, 그리고 홀로 서글프게 우는 그 애와 하나가 된 방금까지.
"왜 울었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걸 알아버려서."
침묵은 꽤 오래갔다.나는다니엘이 고작 그런 이유로 울었다는것이 몹시 이해가 됐다. 워낙에 자존심이 강한 아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없는 정신과 마음과 몸 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것이 바뀌었다. 나를 보며 웃고, 내 손목을 잡고, 수업 중 잠든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내 책상을 어루만지고 조용히 마음을 삭혔다. 그러던 오늘에야 나에게 키스하고 결국에는 나를 가졌다.힘들었을 시간이다. 스무 살 평생을 살며 겪어보지 못 한 감정이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난 우산이 없었고 소나기는 거세게 내렸다. 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그 작은 우산속에 내 어깨를 감싼 채 학교에서 도보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 우리 집까지 나를 바래다줬다. 조심히 들어가는 인사 역시 잊지 않았다. 다니엘은 정말이지 꽤 근사한 애 였다. 우리는 양호실에서 서로를 탐한 후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말 거는 것이 공포스럽고 두려웠다. 혹시라도 벅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200%의 기분이 대화 몇번으로 괜시리 싸늘히 식을까봐서.
2학기가 시작되고서 우리는 여름방학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잊은 것 마냥 지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되도록의 대화는 피했지만 한 번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꽤나 깊은 이야기까지 파고들어갔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의 키스라던지, 양호실에서의 에로스라던지. 우리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다가 2학기 마저 조용히 보냈다. 수능이 끝나고서는 아이들이 하나둘 봉사활동 핑계를 대며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선생들은 다 알지만 속아주는 눈치였다. 나는 예외였다. 친구도 없는 마당에 할 짓도 없는데 학교에 등교할 수 있다는건 훌륭한 이득이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깨끗하게 씻고, 옷을 차려입고 갈 수 있다는 것 이니까. 하지만 다니엘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괜히 섭섭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하다가도 늘 포기였다.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서. 솔직히 말해 그건 상당히 바보같은 짓 이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솔직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거니까.
그 애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수능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초기도 아니고 말기라는 말에 난 심장이 덜컥했지만 애써 괜찮은 척 했다. 다니엘의 친구들이 하는 말을 엿듣고서야 나는 겨우 다니엘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나와 다니엘이 주고 받은 딱 두 통의 문자였다. [어느 병원이니.] [00병원] 나는 하교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병원을 향했다. 예상외로 굉장히 큰 병원이었고 나는 그것을 깨달으며 동시에 탄식을 내뱉었다. 병이 꽤 깊구나.
"많이 아프니."
"적어도 널 좋아하고있었구나 싶은그 감정을깨달을 때보다는 덜 아파."
그 애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 때까지는 정말 괜찮을줄로만 알았다. 학창시절부터 담배를 많이 피던 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나 소설, 영화의 남자 주인공 처럼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다니엘이 저 세상에 갈 거라고는 생각 조차 하지 못 했다. 내가 병문안을 간 날의 저녁 일곱시. 다니엘은 숨을 거두었다. 내가 병문안을 다녀오고나서 딱 한시간 만의 일 이었다. 나는 몹시 슬펐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매우 놀랐지만 심장이 빨리 뛰지는 않았다. 그냥 어차피 있을 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그 애를 아주 조용히 보내주었다. 애초에 한국에 입양된 아이라 장례식장 역시 아주 조용했다. 양 부모님과 친구들이 들렸고 심지어는 다니엘의 사정을 딱하게 본 옆 병실 환자의 아버지께서 대신 장례식의 전체를 담당하셨다.
나는 다니엘이 묵던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니엘이 쓰던 침대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 애가 유난히 좋아했던 내 흰 손수건이 떠올라 가슴 한 구석이 찡했다. 병실의 모든 짐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는 다니엘의 백팩과 속옷, 생활용품 등을 치웠다. 다니엘이 사용하던 수납장에는 내게 보내는 마지막 유서가 있었다. 나는 아홉살 때 넘어져 다친 이후, 처음으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단 하나의 문장이 날 울리고 내 모든것을 망쳤다. [항암치료보다, 악몽을 꾸는 밤 보다 널 향한 내 감정이 제일로 아프다.]
나는 지난 5년의 긴 시간 동안 그 애에게 불치병이었다. 적어도 널 좋아하는 그 감정을 알 때보다는 덜 아프다며 웃는 그 애의 얼굴이 눈앞에 빤히 그려졌다. 시간이 지나, 스물 아홉이 된 나는 가끔 내 옆에 서른이 된 그 애가 앉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때 우리가 열 아홉, 스물이아니였다면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진작에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알았다면... 그렇다면그 만큼 더 오랜 기간 사랑하지 않았을까. 지금 너에게로 간다. 손을 뻗고 또 뻗어서 내가 천국의 문을 열면 너는 날 반기며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겠다.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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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 만 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