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신아," "뭐요." "그...아이스크림, 먹을까?" "됐어요." "ㄱ..그럼 밥 먹을까? 배안고파?" "안 고픈데요." "응..." 옆에서 몇 마디 건네는 것에도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문제만 풀어내려가고 있는 날 보며 아저씨는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는 듯 했다. 평소였으면 어쩔 줄 몰라 끙끙대는게 귀엽기도 하고 괜히 미안하기도 해서 난 괜찮으니 신경쓰지말라고 말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괜찮지 않은 상황이라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꾸역꾸역 문제만 풀어나갔다. 못참겠다는듯이 달려들어선 바닥에 날 눕히기 까지 하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날 똑바로 앉혀놓던 아저씨였다. 그러고는 대뜸 하는 말이 미안해, 라니. 황당함에 한참을 말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자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던 아저씨였다.
"실수 아니야, 아 그니까, 실수기는 한데, 그런 실수가 아니고," "...뭐에요 지금?" "내가, 성급했어. 어, 그래. 그거네...내가 너무 급했어, 너 아직 어린데." "아저씨 나 몇 살인지 아는거 맞아요?" "너, 19살이지..." "근데 어리다고?" "어쨌든, 아직 미성년자고...어...그니까," "됐어, 때려쳐요." "응?" "다 관둬요... 아 몰라!!"
열이 받아 그대로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아저씨 집에서 뛰쳐나와 내 집으로 돌아와 거실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애꿎은 얼굴만 바닥에 부비적거리며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아 오히려 더 짜증만 날 뿐이었다. 솔직히 29살과 19살, 누가 봐도 나이차가 많이 나기는 했다. 심지어 나는 법적으로 아직 미성년자에, 고등학생이고. 아저씨가 짙은 스킨쉽뒤에 나에게 미안함이라던가 죄책감 같은걸 느끼기에 충분한 조건이긴 했다. 그렇다고 그, 막, 하다말고 대뜸 미안해, 라고 하는건 무슨 심보야. 짜증나 진짜.
그렇게 한참을 아저씨를 이해하면서도 짜증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바닥만 퍽퍽 쳐대다가 혼자 짜증만 내고 있는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미워죽겠는데 그래도 여태 같이 있었다고, 아주 잠깐 혼자 있는 시간조차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무리 화나고 짜증나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 생각만으로 다시 아저씨 집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가 집을 나서던 때와 똑같이 현관 문 앞에 멍하니 서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같이 있고는 싶은데, 얼굴을 마주하니 또 방금 전의 일이 떠올라 인상을 구긴 채 다시 거실 협탁앞에 주저앉았다.
"..효신아?" "말걸지마요. 공부할거야." "...어...응...근데, 효신아," "시끄러워요. 집중 안 되잖아요." "....미안,"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며 옆에 앉아있는 아저씨를 애써 무시하며 문제만 꾸역꾸역 풀어내려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싫어요, 됐어요. 따위의 대답으로 일관하며 문제만 풀어대자 아저씨도 슬슬 말 걸기를 포기한 눈치였다. 그 대신 내 옆모습을 정말 뚫어버릴 기세로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워 그만 쳐다보라고 한마디 하려다, 왠지 지는 기분이 들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래, 잘됐다. 안 그래도 요즘 아저씨랑 눈만 마주치면 웃기 바빠서 매번 공부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뭐, 잘됐지 뭐!
"효신아," "아, 말 걸지 좀..!" "좋아해." "...뭐요?" "이건 진짜 진심이야." "ㄱ, 그래서..뭐, 어쩌라고요." "그냥, 난 진짜 널 좋아한다고. 네가 알았으면 좋겠는데."
직접적인 고백, 그리고 진심. 그 모든 게 너무 와 닿아서 눈물이 핑 돌려다가 울컥 또 짜증이 치밀어 대답도 않고 고개를 돌렸다.
...진짜 반칙이야. --------
"효신아?" "응, 왜요." "저기...효신아, 그," "왜, 뭐가요. 일이나 계속해요-"
좋아해,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그 직접적인 한마디에 꽤나 기분이 나빴다. 좋아한다면서 내가 나이가 어쩌고 저째??? 그렇게 또 한참을 툴툴거리기만 하다가 문득,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면, 언제까지고 밀어내고 자시고 할 여유같은게 없지 않을까? 전에도 말했다싶이 고3인 나에게 남은 거라곤 패기뿐 이였다. 요즘 들어 그 거침없음이 도움이 된 적이 많았던 것 같아, 이번에도 무작정 들이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어필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끝까지 밀어낸다면, 좋아하니 진심이니 했던 말 따위 믿지 않기로 했다.
"효신아..! 우리 밥 먹을래?" "아까 먹었잖아요." "그...후식먹자 후식!" "그것도 먹었는데-" "그랬구나? 하하..그래, 그랬었어..."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한 마당에 옆에서 알짱거리는 어린애를 어떻게 내팽겨치지도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 일에 집중하려 애쓰는 모습이 웃겨 혼자 웃음을 참아가며 더더욱 끈질기게 아저씨에게 엉겨 붙었다. 일하고 있는 아저씨 등을 끌어안고 앉아 목이며 귓가에 쪽쪽 뽀뽀를 해대고 있으면 효신아, 제발... 하며 거의 울먹이는 듯한 말투로 나를 말려오는 아저씨의 손이 있었다. 그럼 잠시 가만 있는 척 하다가 허리를 끌어안고 옆구리를 만지막대고 있으면 그 손을 마주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 난 그 손을 오히려 더 꽉 붙잡아 묶어두곤 또 뒷목에 쪽쪽,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효신아, 너 진짜 그러면...아저씨 힘들어..." "뭐에요. 좋아하니 어쩌니 하더니...순 뻥이였구나 아저씨," "아니, 그런거 아닌거 알면서 왜 그래..." "뭘 알아요. 하나도 몰라요. 내가 뭘 알아? 하나도 모르겠는데?"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약 올리듯 묻자 아저씨가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내 이마에 짧게 입 맞추고 떨어졌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응? 이마에 닿았다 떨어진 말랑한 감촉에 잠깐 멍하니 있다가 아저씨가 애원하듯 내뱉는 말 따윈 무시하고 입술로 돌진해 쪽, 입을 맞췄다. 질척한 느낌이 들던 키스와는 다르게 그저 말캉말캉만 입맞춤이 재밌어 계속 새가 쪼아대듯 입술을 쵹쵹 붙였다 떨어지자 아저씨도 결국엔 웃으며 내 볼을 붙잡고 꽤 여러 번 입술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마주친 눈빛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한 느낌을 가득 싣고 있어 멍하니 그 눈을 마주보고만 있었다.
"너 땜에 죽겠다, 응?" "...어, 그," "아저씨 일할동안만 가만히 있어, 일 끝나고 놀아줄게." "..알겠어요."
꼭 끌어안고 토닥여주는것에 결국 나는 또 지고 말았다.
...억울한데 멋있어. 짜증나게. --------
그 날 이후로도 계속해서 아저씨와 나는 스킨십으로 이리저리 밀고 당겨댔다. 물론, 당긴건 전부 나고 민건 다 아저씨였지만. 보통 이정도 했으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그만둘법한데, 어찌된 게 난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오기가 끓어 넘쳤다. 물론 손잡고, 안고, 뽀뽀하고. 그런 스킨십들은 서로 좋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것들이긴 했다. 그리고 또 가끔은 진한 키스까지도. 근데 그 이상은 절대, 단 한발자국도 진전이 없는 것이 내 의지를 불태웠다. 솔직히 자기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면서, 29살 평범한 성인남자인 주제에,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서 이렇게까지 들이대면 좀..!!!
"아저씨 나 싫어요?" "또 그런 말 한다, 아니래도." "그게 아니면, 이렇게까지, 어? 그럴 일인가?" "얘가 갈수록 말이 짧아져, 엉?" "말 돌리기 있어요?" "...없을건 굳이 뭐겠어,"
씨익 웃으며 은근슬쩍 내 눈을 피하는 아저씨를 가만히 지켜보다 이제 진짜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안될 것 같아 무작정 아저씨 무릎위로 올라탔다. 세상 살며 이런 짓을 해본적도, 심지어 내가 이런 짓을 할 거란 상상조차도 해본 적 없는 입장에서 낯 뜨겁고 쪽팔려 목이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과감하게 아저씨 목에 팔까지 두르고는 꽤나 비장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아저씨가 보기에도 내가 꽤나 큰 결심을 한게 보이는 듯 조금 전과는 다르게 눈빛이 진지해졌다. 조심스럽게 내 팔을 풀어내려고 하기에 더 꼭 끌어안아 아예 품에 고개를 파묻어버리자 아저씨가 차분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저씨 나 좋다고 했죠," "응, 좋아. 좋아해." "나도 아저씨 좋아해요." "알아." "...뭐가 이렇게 당당해요?" "싫으면 이러겠어?"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새삼스럽게 뭘 그래." "하긴," "...인정하지 마, 기분 이상하니까."
약간은 진심이 담긴 말투에 아저씨 품에 안긴 채 끅끅 웃어대다 고개를 들고 아저씨와 눈을 맞추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시선만 허공에서 마주쳤다, 엇갈렸다 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사뭇 묘해졌다. 조금 더 아저씨 쪽으로 몸을 붙이자 자연스레 아저씨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 본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볼이며 목을 쓸어내리다 뒷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고개가 떨어지고, 얼굴이 가까워졌다. 닿을 듯한 거리에서 애태우듯 하던 입술이 순식간에 맞붙어 진득한 그림을 만들어내었다.
처음 하는 키스도 아니면서, 조심스럽게 입술을 혀로 쓸어주다가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느낌에 눈을 감고 목을 감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어 아저씨를 끌어안았다. 입안 구석구석 쓸고 지나가는 혀의 감촉에 움찔움찔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아저씨의 리드에 따라 서툴게 혀를 움직이자 맞붙은 입술 새로 아저씨가 웃는 것이 전해져왔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대범하게 혀를 아저씨 입속으로 밀어 넣자 내 허리를 감싼 손에 한층 더 힘이 실렸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하반신이 서로에게 조금씩 쓸리는 느낌이 짜릿했다.
"아저씨," "후...박효신," "입술떼지마요, 싫어," "...미치겠다."
또 한 번 깊게 들어오는 숨이 거칠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급하게 섞여 들어오는 느낌에 나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이젠 뭘 하든 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아 아저씨의 목을 감싸고 있던 손을 밑으로 내려 아저씨의 티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말리지 않는 아저씨 덕에 손길은 더더욱 대담하게 이곳저곳을 만져댔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게 이런데서 보이는 거라고, 그 이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저 손만 꼼지락대고 있자 아저씨가 내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등허리를 두 손으로 끌어안고는 움푹패인 척추 선을 따라 지긋이 눌러오는 손길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저씨와의 관계에서 처음인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다. 입술이 잠시 떨어지는 틈을 타 숨을 좀 고를라 치면 또 다시 입술이 맞물려왔다. 아직까지도 키스하면서 코로 숨 쉬는 게 익숙해지지 않은 탓에 숨이 막혀 헉헉대면서도 아저씨를 끌어안은 손을 놓지 못했다. 허리를 지분대던 손길이 밑으로 내려가 예고도 없이 엉덩이를 움켜쥘 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입술이 맞붙은 채 몸 이곳저곳을 만져대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아저씨가 내 목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혀가 살을 핥아 내리는 생소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고 아저씨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한참을 그렇게 내 목을 핥아대던 아저씨가 별안간 나를 끌어안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진짜 안 되겠어. 하는 어처구니없는 말과 동시에 고개를 든 아저씨가 내 입술에 짧게 키스하고 떨어졌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 지금, 또 날 가만히 두겠다고?
"장난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런 걸로 장난을," "이게 장난이 아니면 뭔데요? 개그? 농락? 희롱? 추행?" "야, 너는 뭘 또 그렇게 살벌하게 말하고 그래..." "지금 안 그러게 생겼어요?!" "그..너, 너! 수능! 수능 끝나면..!" "..에?" "수능 끝나면, 너 하고싶은대로 다 하자. 어때?" "...수능 끝나도 나 성인 아니거든요?" "그냥, 그,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작업이라 생각해. 응?" "뭐야, 그게..." "왜, 괜찮은 제안 아냐? 어?"
아저씨의 말을 듣고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수능이 끝나든 안 끝나든 내가 19살 인건 변함이 없었다. 근데 그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작업, 이라는 말이 적절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어떤 기점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으로서의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이제 대학생으로, 또 20살 성인으로의 길을 꾸며나가는 시기. 그 시기라면, 아저씨도 마음 놓고 날 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요," "응?" "좋다고요. 대신 그땐 진짜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야해요." "응, 알았어. 진짜, 약속." "뭘 또 약속까지, 저 가요." "어? 어딜??" "...공부하러요." 까짓거 수능 한 번 끝발나게 잘 쳐주던가 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