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예요' 라는 대답이 어째선지 입밖으로 튀어나오질 않았다. 분명 '뭐든지 할게,'란 말은 태형을 만나 처음 한 말이었고 자신은 그 말을 대체 살면서 몇명의 남자에게 내뱉어왔던것인지 헤아릴수도 없었다. 잠자리후에 약을 두고가던 태형.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말라붙은 목을 움켜쥐고 온힘을 다해 도리질해댔다.
" 그건 꽤 다행인군요, 첫만남은 그 바겠죠.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나요? 태형이가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을텐데. "
" … "
" 역시, 약? "
말없이 끄덕, 꽉 쥔 손안이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숨막히게 고요한 방안에 시계소리만이 째깍째깍 울려퍼졌다.
" 그럼 마지막으로 몇가지만 더 물어볼께요. "
" …네. "
" 윤기씨가 보기에 태형이는 좋은 사람이죠? "
" 네, "
" 윤기씨는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 …아니요. "
의도가 무엇일까, 하고 잠시 고민해본 윤기가 금세 남준이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것을 깨닫는것은 시간문제였다. 덕분에 다시한번 무겁게 가라앉은 방안의 공기가 윤기의 어깨를 꾹꾹 짖이겨왔다. 손이 땀에젖어 축축하다 못해 미끌거릴경지에 다다르자 꼭 쥔 손을 간신히 펴 침대시트에 몇번 비벼댔다. 하긴, 저 같아도 자신의 소중한 의동생이 어디에서 굴러들어온지도 모를 마약쟁이와 뒹굴거린다하면 몹시 불쾌했을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푹 크게 내쉰 한숨의 무게가 무겁게느껴졌다.
" 남..준씨, 는, 제가 마음에 안드시나봐요. "
" 물론, 솔직히 제 의동생이 좋아하는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약환자는 일반적으로 곱게 보이지는 않죠. "
" 약, 해보신적 있으신가요? "
" 있었다면 여기에 없었겠죠. "
그렇구나, 윤기가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자 꽤 차가운말을 하는데도 표정 하나 바뀌지않고 가지런한 웃음 그대로인 남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나도, 하기싫을때가있어요. 아니, 실은 하기싫어요. "
" 끊으려고 노력해본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
" …남준씨, 목 부은적있어요? 감기나, 호흡기질환 같은거 걸려서 물 넘어가는것도 따갑게 느껴질정도로 엄청나게 부은적. "
" 있죠. "
" 목이 너무 따갑고 타들어가는것 같은데 물을 먹으면 더 괴롭고, 그렇다고 물 없이 버티자니 그게 또 더 괴롭고. "
" …? "
" 약은 그런거예요. 몸은 약을 갈구하는데 내 머리는 참아야한다고 하고, 몸은 또 갈구해대고. 몸이랑 머리가 완전히 따로놀죠. "
" 저를 납득시키려는건가요? "
" …네, 납득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
허, 하는 남준의 코웃음 소리가 윤기의 귓속에 꽂혀들어왔다. 눈치를 보며 바라본 남준의 얼굴에 비웃음이 역력하다. 어디 해볼테면 해봐, 하는 표정, 삐딱하게 다리 꼰 자세가 윤기의 말이 아주 우습게느껴진다는것을 증명하는듯 보였다.
" 어렸을때, 그냥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친척집에 맡겨졌거든요. "
" 태생부터 고아는 아니였군요? "
" 그렇게 비아냥대실꺼면 계속 비아냥대보세요. 전 계속 말할테니까, "
" 적당한 대목에 그러도록하죠, 얼른 끝내주세요. 태형이랑 약속된 시간은 30분 남짓이니까…, 15분? 정도밖에 안남았네요. 그 이후로는 저도 굳이 윤기씨랑 대화할 마음이 없어요. "
태형과 있을때에는 꽤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었는데 이제보니 꽤 무례한 사람인것 같기도한 남준의 태도가 여간 이상한게 아니었다. 분명 대화를 하고있는데 아슬아슬하게 모래성을 쌓는기분이 들었다.
" …말그대로 친척집에 '맡겨져서' 뭐 하나 잘못하면 맞고 괜히 혼나고 그랬었죠, 그래도 이 세상에 내 가족이 그분들밖에 없으니까, 그냥, 이 앙물고 버텼어요. 꽤 어렸는데, 기특하기도하고… 8년쯤 버텼나. "
" … "
" 그 흔한 생일파티 한번도 9살 이후로는 구경도 못했죠, 친척동생 두명은 그렇게나 잘 챙겨줬으면서… "
과거를 회상하는게 꽤 오랜만인듯 눈을 가늘게 뜬채로 천장을 바라보던 윤기가 말끝을 흐린다. 남준은 여전히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 손가락을 반복적인 박자로 틱틱거린다.
" 아무튼,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용돈같은건 꿈도 못 꿔서 J라는 친구와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좀 늦겠다 싶어서 집에 뛰어갔었어요. "
" 서론이 길어서 좀 지루한데요, "
" 이 얘기를 끝까지 들으면 절 동정하게 될지도 모르죠, 제가 맨정신일때 함께 대화를 나눌수 있다는게 얼마나 드문일인데. "
" 마치 자랑하는양 들리는군요. 약하는건 자랑할것이 못… "
" 당신 의동생이 중독자와 뒹굴거리는꼴을 계속 보고싶으신가봐요, "
오, 남준의 얼굴이 무표정에서 서서히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 상황이 꽤나 흥미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윤기쪽으로 돌려 경청하는 자세까지 취한 남준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 실례를 범했습니다. 내가 잠시 당신의 주치의가 나라는걸 망각하고 있었어요. "
" 이제 편하게 말해도 되는건가요? "
" 물론, "
태형의 얘기만 나오면 유독 민감하게 구는 남준의 모습에 윤기는 혹여나 자신이 말 실수라도 한것일까 잠시 고민을했지만 개의치않았다. 남준은 임시지만 윤기의 주치의라고 밝혔고,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치료해나가는게 남준의 의무가 아닌가.
" 편하게 말씀하세요. "
" …말하라니까 또, 좀 그러네요. 헐레벌떡 뛰어서 집으로 갔거든요, 허파에 찬바람이차서, 정말, 정말 죽을것같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고, 가족이랑 보내는날이니까요. "
" 그렇죠, "
" 뛰어가서 문을 열려고하는데, 문이 잠겨있더라구요. 가끔 친척동생이 명절때마다 그런 장난을 치곤했는데…, 어째선지 그날따라 엄청 서러웠어요. "
" … "
" 보란듯이 커튼이 벌어져있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그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어요. "
" 뭘 느꼈나요? "
" …내 자리가없구나, 내가 낄 곳이 아니구나. "
윤기의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무언가 솓구치는걸 참는듯 입술을 꾹 다물더니 심호흡을 크게 내쉰다.
" 나도 모르게 옆에 있던 돌을 창문에 던졌어요, 사내새끼가 힘도없는지 흠집만 살짝 나더라구요, 소리는 컸지만…. 그러고서 막 미친듯이 다시 뛰었어요, J라도 다시 붙잡아서 놀까 싶었죠. "
" 두렵지는 않았나요? "
" 전혀. 그 순간에 뭐 눈물도 안나고, 빌어먹을 친척들한테 정나미가 확 떨어져버려서… "
" 그럼 그날은 J를 만나서 뭘 했나요? "
" …그게, "
" …? "
" J의 집이 슬럼가거든요, 위험하다고 주소만 알고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는데 뛰다보니 슬럼가였어요. J의 집을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봤죠, 빌어먹을 뭔 놈의 건물들이 그리 복잡한지… "
윤기의 목소리는 떨리다 못해 마치 깊은곳에서부터 비명을 질러오는것을 막고 막아 간신히 쇳소리만 입밖으로 튀어나오는것같았다. 약간 흥분한듯 상기된 귀와 뺨이 죽을듯한 목소리와 상반되어 이질적인 느낌을 가지게했다.
" …그때였어요, 낯선 남자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라구요. 길을 물어볼줄 알았거든요, 나도 모른다고 대충 둘러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사실 좀 무서워지기도 했고… "
" … "
" …내가 그나마 갈 곳이 거기 밖에는 없으니까. "
" 혹시 그 남자가… "
" 그 빌어먹을 새끼가 나한테 뭐라고 한줄 알아요? "
" … "
" 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선물 필요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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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델루젼입니다! 내님들 스밍잘돌리고있나요?
전 엄청엄청 열심히 돌리고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하 써놓고보니 별 내용이 없네요... 그래도 언젠간 외전에서라도 다룰 윤기의 과거얘기였으니
대화식으로 풀어나가도 좋을것같았다는생각을했긴했는데죄송합니닼ㅋㅋㅋ.하...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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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이 벌써 22개나..! 감사합니다 내님들!
비회원님들 나도 모두 공개로 풀어버리고싶은데 불맠땜에 어쩔수가없네요ㅠㅠㅠㅠ
인티회원되면 꼭꼭 암호닉신청하기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