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감기가 심하게 걸려있었다.
눈 좀 맞고 뛰어다녔다고 감기라니.
내 머리가 잘못되면서 몸도 좀 잘못된 거 같다, 이런 약골 아니였다고.
"으으..."
"마마, 탕약 드실 시간이옵니다."
미친
저 탕약인지 자신지는 정말 존나 쓰다.
안 먹기라도 하면 또 우는 소리를 내는 저 할망구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마마, 얼른 쾌차 하셔야 하옵니다. 합방이 내일인데..."
"으, 어, 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약을 다 뿜어버렸다.
안그래도 핑핑 돌던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갑자기?
약을 다시 가져오자 멍하니 마시기는 하는데 그렇게 썼던 약이 아무 느낌이 없다.
"내일... 내일이예요?"
"예, 마마. 해서 오늘 목욕을 하셔야 하는데..."
"아, 싫어요. 목욕 하면 감기 더 심해져요."
단칼에 거절하자 또 앓는 소리를 끙, 내며 물러난다.
할매가 나같은 성질머리를 만나서 참 고생이 많소...
약만 먹고 다시 누웠더니 좀 덜 어지러운 거 같기도 하다.
내가 말을 안하니까 아무도 안한다.
분위기 뭐야.
귀가 먹어가는 느낌이다.
벌떡 일어나자 이 상궁이 급하게 팔을 잡아들었다.
괜찮냐고, 뭐가 또 불편하냐고.
이 상궁의 말이 웅웅 울린다.
정리해보면, 나는 후궁으로 들어왔고 아기를 낳아야하고.
어쨌든 여기는 궁궐 안일거고.
내일은 그 황제인지 자신지랑 자는 날이고.
아 씨발... 엄마... 아...
벌떡 일어나 문을 여니 상궁이 또 기겁을 하며 옷을 챙겨 따라 나온다.
감기에 걸렸다고 저렇게 해 놓은건지, 방 안은 너무 습하고 더웠다.
나오자마자 불어오는 찬바람에 괜히 피식 웃고는 정말 후궁이라도 된 마냥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옷 하나가 어깨에 걸쳐지더니, 올려다보니 그 사내다.
"헐"
"마마, 병이 더 깊어집니다. 산책은 나중에 하시지요."
이 사내야 말로 내가 여기에 살아 숨쉬는 이유다.
오늘은 꼭, 어디에 있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내야지.
무작정 사내를 끌고와 높은 돌에 앉았다.
"이렇게 아무데나 앉으시면 아니..."
"저,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 저는 대비마마의 호위무사입니다."
뭐여?
호위무사?
헐...
뭔가 키도 크고 듬직하게 생긴 거 같더니 역시.
"음... 어디에 있어요? 찾아 오라면서, 어디 있는지 알아야 찾아가죠."
"궁 안 지리를 전혀 모르십니까?"
"당연하죠, 어제 왔는데."
어제라는 말에 갸우뚱하더니 그 긴 팔을 쭉 편다.
"저기가 폐하가 계신 곳입니다."
저 멀리 엄청 크고 높은 건물이 보인다.
시발 내가 아무리 후궁이라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다니...
"그리고, 저기는... 중궁전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 옆을 가리킨다.
"주제 넘는 말일지 모르나 중궁전 근처는..."
"안 가. 안가요. 저까지 갈 일도 없어요, 길 잃지 않는 이상."
스윗펌킨처럼 대답해주니 안심이라도 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그 옆을 가리킨다.
"저 뒤쪽이 대비마마와 제가 있는 곳입니다."
으음, 사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좀 가려져서 정작 이 사내가 있는 곳은 잘 안보이지만 그래도!
"알았어요."
"이제 들어가 보셔야 합니다."
작게 기침을 하자 일으켜서 어깨 감싸고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아...
너무 내스타일이야.
호위무사라면서 뽀얗기는 또 엄청 뽀얗고.
눈은 또 선하게 생겨가지고 안 웃어도 웃는거 같고.
한참 감탄하다가 방으로 들어와 다시 눕는데 눕자마자 식은땀이 줄줄 났다.
"마마, 정신을 잃으시면 아니되옵니다..."
어쩌라고, 내일이라며.
그냥 푹 자다가 합방인지 자신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눈을 뜨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아 진짜 합방.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씨바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말을 크게 하면 체통이니 뭐니 하는 바람에 말도 조곤조곤.
하...
여기서도 어떻게든 죽고싶지만 또 어디로 갈 지 몰라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겠고.
"저, 마마. 목욕 하실 시간입니다."
그래 목욕하다가 고뿔인지 감긴지 시발 심해져서 뒤져버려야지.
다행히 첫날처럼 돌로 몸을 닦지는 않는다.
뜨거운 물에 노곤하다가도 윗공기는 차가워서 어깨는 시렵고...
아, 집에 가고 싶다.
만약에 집에 다시 돌아가면 어깨까지 푹 담그고 목욕해야지.
"마마, 합방 때 유의하실 점을 다시 말씀 드리겠사옵니다."
진짜 정신이 이상해졌나?
왜 이상궁 말만 들으려고 하면 몽롱하지?
듣기 싫어서 그런가?
그래도 대충 들은건 신음소리 천박하게 내지 않기, 안으면 안는대로 안기기, 적극적으로 안거나 하지 말기.
뭐여.
적극적인 신여성을 무시하는구만?
은 무슨...
합방 시간이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이사람들 꽤 느긋하다.
세워놓고 또 향기나는 걸 발라주는데 미친 진짜 추워 죽을 거 같다.
결국 방에 들어와 다시 털썩 자리에 누워버렸다.
"마마, 조금 있으면 일어나셔야 합니다."
이상궁의 말은 역시나 꿈처럼 들렸고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끙끙대다가 또 잠에 들었다.
부스럭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꿈은 아니겠지.
누군가 내 저고리를 풀어서 벗기고.
뭐?
뭐 시발 벗겨?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어서 눈을 떴다.
크
캬
드디어 벗기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