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은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이름을 부르고 뒷자석에 몸을 집어넣고선 한숨을 푹 내쉰다.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정신이 쉽게 정리되지 않아 미간을 잔뜩 구긴채 애꿎은 택시의 앞좌석만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모든게 의문투성이였다. 티브이에 출연하고 꽤 인지도 높은 의사가 됨으로써 다른 의사보다 곱절은 많게 특별케이스를 많이 진료해본 남준이었는데 윤기의 이야기를 듣고선 아주 생소한 감정이라는게 하나 피어오른것이, 그렇게나 마약에 찌들었는데도 자신과 이야기할땐 아주 똑바르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던 윤기가, 그리고 평소 다른사람에게 마음을 열지않던 태형이 며칠만에 사랑에 빠졌다며 그를 감싸던 모습이.
" …후, "
그래, 일단은 약속 먼저지키는게 우선이겠지, 남준이 휴대전화를 꺼내어 손에 익은듯한 번호를 틱틱 눌러대자 세련된 디자인을 뽐내는 남준의 휴대전화에서 뚜-뚜- 하는 착신음이 새어나온다.
" 여보세요, 전정국입니다. "
" 나야, "
" 아, 선생님. 급한 일은 잘 해결 되셨어요? 남동생분 일이라고… "
" 그럭저럭, 그래서 부탁할게 하나있어. "
" 뭔데요? 지금 병원으로 오시고 있는거예요? "
" 어, 환자하나를 네가 맡았으면 하는데, 어떤가해서. "
" 선생님이 부탁하시는 일이면 싫어도 맡아야죠, 무슨 환자인데요? "
" …어, 그냥 마약환자야. "
" 어느정도 중독되있나요? "
" 환각? 자세한건 정국이 네가 내일 직접 가서 한번 봐. 약물 치료해야되니까 약 챙겨가고. "
" 네, 다른 특기사항같은건 없나요? "
" 아 그게, "
태형이한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남준의 귓가에 윤기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젠장, 내가 별걸다 신경쓰게 됐군, 잔뜩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쭉쭉 피던 남준이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꺾는다.
" …여보세요? 선생님? "
" 아, 아니야 잠깐 딴 생각좀 했어. 환자관련해서 이야기할게 좀 있으니까 커피한잔 시켜놓고 기다려. "
" 네, 그럼 카페에 있을께요. "
" 그래. "
뚝, 정국과의 전화를 마친 남준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잔뜩 구겨진 이마의 주름살들의 느낌이 손끝에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모든게 복잡하다. 사실 윤기의 약물치료정도는 남준이 도맡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일이었고, 본인의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꽤 믿음직한 태형도 옆에 붙어있으니 그닥 귀찮은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도 뭐한, 정말 쉬운일이었다. 다만 어쩐지 남준은 죄책감인지 거부감인지 모를 감정에 휩쌓여 윤기의 얼굴을 다시 보는게 꺼려졌다. 그 이유가 뭘까 남준은 거듭 고민했지만 확실한 대답은 커녕 오히려 추상적이고 두리뭉실한 의문만 속속히 남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문은 자꾸만 머릿속을 메워 답변을 요구하는데, 자신이 내던진 의문에 대답을 쉽게 내놓을 수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의문'이라는것 자체가 떠오를리 없었을테니까.
" 저기 카페앞에서 내려주세요. 잔돈은 됐습니다. "
말없는 택시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능숙한 솜씨로 카페앞에 멈춰 남준이 내민 지폐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남준이 웃음지으며 택시문을 닫자, 뒤늦게 남준을 알아본 택시기사가 눈을 잠시 크게 뜨며 눈인사를 건냈다. 병원이 꽤 번화가에 있어서 그런지 남준이 내리자마자 짐 가득한 백인여성이 바로 택시문을 열어 탑승했고, 얼마 지나지않아 택시가 출발했다.
" 선생님! "
카페 앞에 몇개 놓여있는 야외테이블에 손을 살짝 흔드는 정국의 모습이 보였다. 요즘 병원에 들를일이 없어 정국을 잘 보지못했는데, 볼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는 정국은 이제 꽤 어린애 티를 벗고있었다. 아직 나이가 모자란 탓에 현장에는 투입 못하고 남준의 조수로써, 또는 연구자로써 남준의 병원에 자주 들락날락거리던 정국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어느정도 기분이 가라앉는것 같았다.
" 정국이는 볼때마다 자라는거같아, 이제 어른티가 나는데? "
" 아직 성장기니까요, 선생님 제치는게 제 꿈이랄까, "
" 키만? "
" 아뇨, 실력도. "
자기가 싫은건 죽어도 안한다면서 난 이거 할 수 있는데,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이걸 했었는데, 하면 금방 따라하는 정국이었다. 정국은 남준을 자신의 롤 모델이자, 뛰어 넘어야할 라이벌, 두가지 관점에서 보고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국의 시점이었던것인지 남준은 그런 정국을 항상 애취급했다. 네 재능과 천재성은 이해하지만 넌 아직 덜 컸어, 하는 말로. 남준이 그런 말을 할때마다 정국은 더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어른들을 훌쩍 제치고 남준의 조수로써 떳떳하게 맹활약중이니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은 말로 하자면 입만 아픈것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정국을 아예 '천재'취급했다. 반면에 남준은 정국에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과대평가 된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남준이 없었다면 정국은 자만감에 휩쌓여 발전하지 못했을것이다. 그걸 잘 알고있는 정국은 항상 언젠가 남준을 뛰어넘어 보겠노라고 생각했다.
" 어떤 환자길래 저한테 맡기시는거예요? 조금 성가신? "
" 딱히. "
" 그럼 왜 안맡으셨어요? "
" 글쎄, 안맡은거라기보단… "
꺼려진다는것에 가깝지, 남준이 테이블위에 올려져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들이킨다.
" 난 못할것같더라. "
" 선생님이 못하는걸 제가 어떻게해요, "
" 글쎄, 넌 할수있을것같은데, "
" 무슨… "
" 내 남동생의 애인이야, 그래서 그런지 좀 그래. "
" 마약환자가 남동생 애인이예요? "
" 공교롭게도 그렇게 된거같다. "
" 와, 선생님 속 좀 썩으시겠는데요. "
정국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딱히 웃을일 아닌데, 하고 남준이 정국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마냥 웃을 상황이 아니라는것을 감지한 정국이 눈을 내리깔며 헛기침을 해댔다.
" 아무튼, 난 못맡을것같다. 네가 해. "
" 아니 그래도 선생님… "
" 이미 네가 맡는다고 얘기 해뒀어, 뺄생각하지마. "
" …알았어요. "
마지못해 대답한 정국의 얼굴에 귀찮음이 역력했지만 애써 무시한 남준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영수증 뒷면에 윤기의 집주소를 적는다. 꽤 멋진 필기체에 정국이 감탄하며 허공에 남준의 글씨를 그대로 따라써본다.
" …어? "
" …? "
" 잠깐만, 선생님! "
" 왜? "
" 슬럼가, 슬럼가예요? "
" 그래, 그게 왜? "
" 그게 왜? 가 아니라 슬럼가잖아요! "
…504. 윤기의 집 호수를 마지막으로 적어내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정국의 얼굴을 바라본 남준이 손깍지를 꼈다. 뭐, 슬럼가가 얼마나 위험한데 자기를 거기로 보내느냐, 이런 뜻이겠지.
" 슬럼가여서 무섭다? "
" 아뇨, 차라리 그런 이유였으면 좋겠는데요. "
정국의 표정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남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 미동도없는 멀뚱한 눈, 서운하다는 표정은 점점 화를 참아내는듯한 무표정으로 바뀌어간다.
" 지금 슬럼가가 더럽다고해서 내 말을 안듣겠다는거야? "
" 솔직히…! "
" 네가 언제까지 이런 깨끗한 시설과 최고의 환경에서 환자들을 치료할것같아? 이런곳도 좀 다녀봐야지. "
" 아니, 그런 사소한것 아니예요. "
남준의 냉정한 태도에 정국은 입술을 꽉 깨문다. 정국은 남준의 정도까지가 아니더라도 꽤 완벽주의자였고, 더불어 결벽증까지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지망하면서 결벽증이 있다는것은 커다란 핸디캡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정국은 좀 다른 케이스였다. '피' 에만 결벽증세가 일어나지 않는다는것. 그런 점에 흥미를 느낀 남준은 정국에게 자꾸 눈이갔고, 재능을 발견해냈다. 대놓고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며 편애받다보니 자연스레 정국은 '남준'이라는 인물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었다. 뛰어넘고, 인정받기위해 굳이 맡지않아도 되는 일도 도맡아했는데 그렇게 개고생해서 간신히 얻어낸 '인정받을 기회'가 슬럼가에사는 마약환자라니, 심기가 뒤틀릴수밖에.
" 전정국, 정신차려. 슬럼가에 사는 마약환자도 환자야. "
" …그럼 선생님께서 맡지 그러셨어요. "
" 난 못해. 그리고 난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 소중한 남동생의 애인이야, 슬럼가에 사는 마약쟁이라는것 따위가 요점이 아니라고. "
" … "
" 내가 못해내는걸 너가 해낸다면 그건 나에게 충분히 인정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안그런가? "
고개를 숙인 정국이 깨달았다는듯이 고개를 들어 남준을 보았다. 어느새 미동도 없던 남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그래, 선생님께서 '못' 한거다, 내가 그걸 해낸다면 인정을 받을 뿐만아니라 저 '남준'이라는 인물을 뛰어넘을수있는 영역에 조금이라도 가까워 지는거야, 정국이 생각했다.
" 아무튼, 이 주소로 내일 오후부터 출근해. 치료비는 내가 지불할거고, "
" … "
" 아, 그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거든, 갈때 장도 어느정도 봐서 가는게 좋을거야. 일단 식비는 이걸로해. "
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신용카드를 한장 쑥 내민다. 얼마전에 지인때문에 한장 더 만들게되었다는 카드, 잠시 뜸을 들이던 정국이 보기에 답답했는지 말없이 정국의 주머니에 끼워두고선 툭툭 손으로 두어번 토닥거린다.
" 뭐 먹고싶은거 있어도 이걸로 사먹고, 간다. "
" …안녕히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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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델루젼입니다!
쵸큼..늦었죠? 깨어있는 독자분이 계실런지도 의문스러운 야밤에 올리게되어 죄송합니다.
저번에 질문타임 정말 즐거웠어요!!!!
단편은 아마 1을 먼저 쓰게될거같군요 내심 2가 되길바랬는데..
는 사실 뭐 더 쓰고싶다던가 이런것보다는 2는 미리 조각으로 살짝 쪄놨거든요..☆
그래서..헤헤... 망측한 델루젼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호시기호시기해 융기쨔응 비리미 명치 유니크 복숭 22 독방 민트초코 태태매거진 슈가 깨끗한나라 TRG-42 에어컨 뷔뷔 스웩 자괴감 검은별 희 뷥슈가_ 강낭콩 이제봤니 칸쵸 소름 윰슙 슈가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