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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백] 우리 안의 늑대  

 

 

 

 

존나 신경쓰이는 애새끼가 하나 있다. 생긴 건 딱 반찬감인데,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 설렁설렁 다니는 태도하며, 학교 안에서 제법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 죄다 슬슬 피하기만 하고 건드리질 않는다. 어쩌다 씹을 거리가 생겨도 "오세훈이 원래 그렇잖아." 하며 대충 넘기고 마는 꼴이라니. 그 새끼 하는 짓도 존나 맘에 안 드는 게, 그걸 냉랭하다고 해야하나 뭐라야 하나. 창녀처럼 생겨먹은 주제에 늘 무관심한 얼굴로 책이나 파고 앉아있으니 호기심이 동할 밖에. 괜히 일 치르고 후회하지 말라는 박찬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패기있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은 게 인간의 특성이니까.  

 

"야. 오세훈."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든다. 길게 내린 앞머리가 이목구비를 다 가리고 있지만 확실히 예쁜 얼굴이다.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 한 쪽을 빼고 뭔가를 써내려가던 손도 딱 멈추고 올려다 본다.  

 

"왜?"  

"왜는 왜야 씨발. 어? 너 이어폰 좋은 거 쓴다."  

 

백현이 세훈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알아보았다. 연예인들도 쓰고, TV 광고에도 나오는 거다. 그 나이대 흔한 치기로 가격을 검색해봤더니 기껏해야 만원 이만원짜리 이어폰을 쓰는 백현은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다.  

 

"이게 왜."  

"뭐 씨발. 빌려달라고 씹새야."  

"나도 써야되는데."  

"나중에 써. 아 근데 이 새끼 꼬박꼬박 말대꾸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혼자 열을 터트리던 백현의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피식 웃은 백현이 세훈의 이어폰을 빼앗아 주머니에 넣었다.  

 

"야. 이거 돌려받고 싶으면 이따 학교 끝나고 체육관으로 와라."  

 

아무 말도 않는 오세훈의 머리통을 툭 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미친. 변백현 또라이새끼."  

"뭐 새꺄."  

 

옆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리며 시끄럽게 구는 찬열을 무시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근질거린다. 쑤셔박을 생각에 들떴나보다.  

 

 

 

 

 

 

오세훈은 오지 않았다. 6교시가 문학이기에 한 시간만 짼다는 걸 내리 창고에서 잔 뒤 일어나보니 벌써 학교가 끝났을 시간이었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걸로 욕을 좀 하고, 오세훈이 결국 안 왔다는 거에 지랄을 좀 하고, 투덜투덜 거리며 학교를 나섰다. 요즘 해가 짧은 탓에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빨간 조명이 어지럽게 켜져 있는 골목을 돌아 가게 뒷문을 열고 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옆방에서 섹스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지긋지긋해. 백현은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발버둥을 쳤다. 내내 학교에서 잤는데도 머리가 멍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싶었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왔어?"  

 

진한 향수 냄새가 난다 했더니 백현의 엄마였다. 코끝을 찡하게 하는 장미향에 잠이 덜 깬 백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그 냄새나는 거 좀 안 뿌리면 안 돼? 니가 그런 거 쓴다고 존나 고급스러워질 줄 아냐?"  

"지 엄마한테 말버릇하고는. 양아치 새끼."  

 

경멸스런 눈으로 백현을 쏘아보더니 서랍에서 웬 약을 한 움큼 덜어서 나간다. 마약이다. 이 곳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백현의 엄마는 시도때도 없이 약을 찾았다. 약에 취하면 성적 흥분이 극대화되어서 일을 더 잘하게 된다고 했다.  

 

"미친년. 옷이나 제대로 입고 다니든가."  

 

부작용도 있었다. 약에 제대로 취한 어느 날은 손님과 백현도 구분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그 날 이후로 백현은 엄마가 약을 챙겨 나가면 방문을 꼭꼭 잠그고 잤다.  

 

나가자마자 또 손님을 물었는지 옆방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약에 취한 웃음과 신음소리가 얇은 합판벽을 타고 흐른다. 이내 흔들리기 시작한 벽을 보면서 백현은 세훈에게서 빼앗은 이어폰을 꺼내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좋은 이어폰이랬는데 순 과장 광고다. 소리를 아무리 키워도 소리는 줄지 않는다.  

 

 

 

 

 

 

밤새 잠을 설친 탓에 늦잠을 잔 백현은 느지막히 학교에 갔다. 4교시 담당 교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들어가 운좋게 혼나지 않을 수 있었다. 뒷 자리, 옆 자리 놈들과 앉아서 별 시덥잖은 얘기를 막 하다가 문득 오세훈을 봤다. 저 새끼. 어제 안 왔지. 오세훈을 보며 욕을 하는 백현에게 누군가가 왜 오세훈을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아 그냥. 존나 싫어. 기집애같이 생겼잖아."  

"그게 왜?"  

"몰라 씨발. 걍 시룸."  

"생긴 건 변백현도 좀 얄쌍해서 기집애같지 않, 윽!"  

"씨발새끼가!!"  

 

발끈한 백현이 대뜸 찬열의 턱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계집애처럼 얇은 뼈대와 미끈한 생김새가 컴플렉스라면 컴플렉스였다.  

 

"아 존나 아프네. 그래 너 존나 상남자다 씨발아."  

"저 새끼랑 나랑 엮지마라. 창녀같이 생겨서 기분나쁘니까."  

 

세훈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데, 세훈이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쳤다. 창녀라고 말한 게 찔려서 괜히 뜨끔한 백현의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백현은 사볼 엄두도 못 내었던 그 이어폰이, 새 것인 채로 세훈의 귀에 꽂혀 있다. 기분이 아주 더러워졌다.  

 

 

 

결국 지각을 한 걸 담임한테 걸려서 된통 깨졌다. 괜히 세훈에게 시비를 걸고, 책상을 뒤엎고, 걸리는 것들을 죄다 발로 차대면서 화풀이를 하는데 박찬열이 자기가 쏜다고 피씨방에 가자며 꼬드겼다. 게임은 영 젬병이었지만 공짜로 시켜준다는 데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피씨방에서 몇 시간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서 백현은 익숙한 머리통을 발견하고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교복이며 가방이며 백현이 아는 사람이 맞았다. 오세훈. 여기 저기 기웃대던 세훈이 어느 곳으로 들어갔다. 쟤가 왜 저기로 들어가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뭔가 알았다는 듯, 백현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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