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은 정상적이었다. 공부하는 것이 좋았고 편했다. 공부를 하고 있을 때만큼은 남들이 다르게 보지도 않았고 내가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공부였다. 그래서 무작정 일반고로 부모님에게 졸랐다. 장애인 학교는 편했지만 싫었다. 모순일까. 동정한다며, 불쌍하다는 눈빛. 그 눈빛이 너무 싫었다. 평범한 아이들 사이에 섞이면 나도 평범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마주한 새 교실 문 앞에서 가만한 한숨을 토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조례 시간. 친절한 담임 선생님의 안내로 창가 옆 분단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옆에는 턱을 괴고 저를 아래 위로 훑어보는 따가운 시선.
"목소리 한 번만 들려주라. 안녕해 봐, 어?"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게 백현이 나에게 건넨 첫 마디.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어 수화로 대답했다.
'나 말 못해.'
"너 귀 안 들린다면서 내 말의 대답은 어떻게 하는 건데?"
'입 모양.'
어릴 적에 나는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주 어릴 적. 소리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귀에서 윙윙대는 느낌, 울리는 진동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백현의 목소리가 낮게 울린다.
"난 변백현이야."
고개를 갸우뚱했다. 명?... 변?... 못 알아듣는 눈치가 보이자 백현이 샤프를 꺼내들어 내 책상에 변백현이라고 글씨를 써준다. 아, 백현이구나. 변백현. 제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날 보고 환하게 웃는다. 웃는 거 되게 예쁘다. 강아지 같아. 날 보고 웃는 너를 따라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영문도 모르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백현이 푸하하, 웃기 시작했다. 백현이 경수가 안 보이게 고개를 돌리곤 주위 애들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뭐라고 한 건지. 당연히 나는 백현의 입 모양조차 못 보았으니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다.
1교시 체육 시간. 아이들은 분주히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기 바빴다. 체육복이 없어서 수업 시작 종이 울릴 때까지 머뭇거리다가 운동장으로 나갔다. 으, 되게 덥네. 체육복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교복. 다행히 선생님은 대충 수행평가 연습이나 하라며 자유시간을 내렸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백현이 와서 어깨를 툭 친다.
"내가 학교 안내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