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려라, 김동혁!
" 삥아, 많이 화 났어?" 내 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잡고 나에게 말하는 동혁이에게 보란듯이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내 모습에 동혁이는 안절부절하며 내 눈을 마주하려고 했지만, 어디 내가 그렇게 되게 놔둘까 보냐. 이번엔 진짜 화났다고. 동혁이는 학생회장이다. 그냥 평범한 학생인 나와는 달리 항상 바쁜데, 그래서 동혁이와 나의 데이트약속이 깨진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한두 번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점점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동혁이가 바빠서 많이 힘든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제는 우리 일주년이었잖아, 바보. 이번엔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 삥아, 정말 미안. 어제 갑자기 학교폭력사건 신고가 들어와서..." 학교폭력같은 소리하고 있네. " 김동혁. 너 어제 무슨 날이었는지 알기는 해?" 자꾸 변명하려는 동혁이의 말을 끊고 물었다. 설마 모르진 않겠지? " 음, 그러게. 무슨날이지... 수요일? 하하..." 당황한 표정으로 애써 기억해내려고 노력하는 동혁이를 째려봤다. 정말 몰랐구나, 나쁜 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갑자기 서러워져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 삥아, 울어?! 아... 안돼는데... 울지마.. 아, 마음 아프게..." 내가 눈물을 보이자 더 당황한 동혁이가 안절부절 못하며 내 얼굴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내가 차갑게 쳐내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또 그 표정에 넘어갈 줄 알고. " 삥아, 내가 진짜 미안해. 내가 진짜 죽일놈이야.. 나 그냥 막 때려. 짱 쎄게 때려도 되니까 제발 울지마..." " 아니야. 내가 널 왜 때려."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했다. 불안한지 슬쩍 고개를 들어올린 동혁이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 우리, 조금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 쿵. 동혁이는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보고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다시 다잡았다. 지금까지는 참아왔지만, 이제 더이상은 안 돼. 어쩌면 갑작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동혁이에게는 나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사건이 필요했다.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 김 삥. 마음 굳게 먹어라. "삥...삥아.. 장난이지?" " 아니, 장난 아니야." "..." "있잖아, 동혁아. 난 사실 조금 지쳤어. 우리 어제 사실 일주년이었다? 넌 모르고 있었겠지만." 쓰게 웃으며 말을 잇는 나를 보는 동혁이의 몸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삥아.." " 네가 많이 바쁘다는 거 알아. 그래도 있잖아, 나는 네가 우리 기념일 정도는 기억해줄 줄 알았어. 백일, 이백일도 아니고 일주년이었잖아." "...." " 나도 많이 힘들어, 김동혁. 네가 바쁘고 힘든거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한데, 우리에겐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래, 우리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혼자 속으로 다시 되뇌였다.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떨어져 지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뒤를 돌아 다시 돌아가려던 차에 동혁이가 다급하게 다가오더니 뒤에서 나를 안았다. " ㅃ, 삥아. 미안해.. " 어찌나 세게 안았는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동혁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김동혁, 네 여친 죽일 셈이냐. " 야, 이것 좀..." "그런데, 그래도 나 안 놓으면 안 돼?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는데..." "..." "나 네말대로 요즘에 너무 바빠서 우리 기념일까지 까먹은 병신이야. 정말 내가 죽일 놈인데... 그래도 나한테서 뒷모습 보이지 마.." 횡설수설 말을 잇던 동혁이는 점점 나를 꼬옥 안았다. 내 어깨 위에서 교차된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거절 당할까 두렵다는 듯이. 나는 한숨을 쉬었다. 또 이렇게 동혁이에게 지게 되는 건가. 정말 김삥, 마음이 이렇게 여려서야...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내 어깨에 기대있던 동혁이의 얼굴이 번쩍 들렸다. " 앞으로는 한빈이한테 일 다 맡기더라도 데이트 약속 안 깰게! 기념일도 안 까먹고.. 너랑 관련 된 일, 단 하나도 까먹지 않도록 노력할게." 누가 전교회장 아니랄까 봐, 미리 정리라도 해논 듯이 술술 내가 원하는 말을 내뱉는 동혁이의 얼굴을 고개만 돌려 살짝 노려봤다. 그러자 약간 주눅 들었는지 동혁이가 나의 눈치를 봤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려 동혁이를 마주안았다. 동혁이의 몸이 잠시 살짝 굳었다가 이내 기쁜 얼굴로 내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 진심이지." " 응응, 당연하지, 삥아! 이제는 네 기분 상할 일 절대 없게 할게. 나 한 번만 더 믿어 줘." 당차게 말하는 동혁이를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도 실망시키면 정말 깨질거야'라며 협박하자, 동혁이는 절대 그럴일 없다며 내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를 쪽쪽해댔다. " 우리 삥이~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 " 아 진짜, 침 묻었잖아!" 김동혁... 부들부들. 나도 질세라 동혁이의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침묻히기)를 날리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어버렸다. 앞으로는 이렇게 웃을 날만 있을 수 있기를. --------------- 갑자기 졸려서 급전개...! 주네글이 의외로 안써지네여. 그래서 동혁이 단편글 하나 데려왔어용 히히 댓글써주신 분들 감쟈함다.. 상냥해여(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