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체증이 너무나도 심한 아침이었다.
이맘때면 나는 거북이 운전을 하는 차 안에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일찍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라는 생각도 하고
내가 차를 모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 아 이 인간들은 왜 이렇게 아침마다 차를 몰고 나오는 거야!' 라는 생각도 든다.
그 때, 내 전화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헤헤이-어수선하네! 길을 걸어도 어수선하네! 말을 할 때도...'
그래, 오늘 아침은 참 어수선한 날이구나.
이 엿같은 기분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기를 힐끔 본다. 맙소사, 회장님이다.
일단 성질이 급하신 분이니 빨리 전화를 받았다.
"자네 지금 어디야! 오늘 S그룹 회장님 자네가 모셔와야 한다고 어제 몇 번을 말했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최대한 빨리 모셔오겠습니다."
이런, 잊고 있었다. 오늘은 회사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W호텔로 갔어야 하는 건데.
나는 나의 금붕어 같은 기억력을 탓하며 W호텔로 차를 돌렸다.
W호텔로 가는 길도 역시 막히긴 했지만, 그나마 회사로 가는 길 보다는 덜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신호 때문에 차를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진급이 너무 빨라도 스트레스긴 스트레스구나. 하는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다가 때마침 카톡이 와서 카톡을 열어보았다.
'김진희비서' 한테서 온 카톡이었다.
'김진희비서- 실장님 S그룹 회장님에 관한 정보 보내드립니다. S그룹 회장님은 현재 31세이고, 벨기에 사람인데 한국 교환학생으로 온 적이 있어 한국말 또한 유창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페 라떼와 와플을 좋아하신다고 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또, 혹시나 필요하실까 싶어 S그룹 회장님의 전화번호도 같이 보내드립니다. 010-3456-6789.'
카페 라떼와 와플을 좋아하는, 나와 동갑인 벨기에 사람이라... 왠지 그 애가 생각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과거를 떠올렸다.
11년 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경영학부 새내기였다. 또한 아싸이기도 했다.
밥도 혼자 먹고 수업도 혼자 듣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다. 적어도 그 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내가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던 곳은 경영학부 과방 앞에 있던 복도였다.
늘 시끄럽기만 한 곳이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 했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엿들었던 순간은 놀랍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야 이번에 교환학생으로 벨기에 사람이 온다며? 진짜야?"
"진짜지 그럼. 과 사무실에서 조교님한테 똑똑히 들었는데? 그 조교 언니 말로는 자기가 그 교환학생에 관련된 모든 일을 다 처리했대."
"대박..."
"근데 벨기에? 벨기에는 어떤 나라야? 유럽이야? 아님 아시아야?"
"글쎄..."
벨기에...벨기에 교환학생이 우리 나라에 온다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의문이 생기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 뒤, 나는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지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툭 친 사람은 놀랍게도 그 당시에는 그닥 흔치 않았던, 노란 머리의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그 노란 머리의 외국인은 서툰 한국어로 더듬더듬 나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조기, 삼백, 일, 번, 강이시리, 어듸, 있서?" ("저기,301번 강의실이 어딨어?")
301번 강의실이라면 내가 전공 수업을 듣는 곳이기에, 나는 손짓을 하며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그 외국인은 헤헤 웃으며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에 흔치 않던 노란 머리의 외국인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서 강의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나의 손목을 잡으며 물어왔다.
"내가, 커피, 한, 잔, 사도, 될가?"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난 커피숍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아메리카노는 왠지 쓸 것 같고, 다른 것은 너무 비싸니까... 아메리카노 다음으로 싼 카페 라떼를 골랐다.
그러자 그 외국인은 자기도 같은 것을 주문하더니, '새로 나온 메뉴: 맛있는 사과맛 와플' 이라는 광고를 힐끔 보다가 깔깔 웃으며,
"역시 뷀기에는 와프리지!" 하면서 와플까지 하나 주문했다.
나는 낯선 외국인 앞에서 할 말이 없어 어쩔 줄 모르다가, 혹시 이 외국인이 과방에서 들었던 그 교환학생인가 싶어 말을 건넸다.
"혹시 저희 경영학부에 교환학생으로 온 벨기에 사람이 당신 맞나요?'
그러자 그 외국인은 깔깔 웃으며,
"맞긴, 맞는뒈. 말 놀면, 안돼?"
"말 놓으라고?'
"그래!"
그렇게 난, 본 지 두 시간 밖에 안 된 노란 머리의 외국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이름이 뭐야?"
"줄리안!"
"라떼 좋아해?"
"어!"
"왜 한국 왔어? 낯설지 않아?"
"그냥. 난 모홈하는 게 좋아서."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카페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이어졌고, 그 때부터 나는 그 아이와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난 W호텔 앞에 도착해 있었다.
'김진희비서' 한테 온 카톡을 다시 확인한 후, 라떼와 와플을 1층 W호텔 카페에서 산 다음, S그룹 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W그룹 비서실장 OOO입니다. 어디에 계신지 몰라 연락 드렸습니다."
"아, 2층 J레스토랑에 있어요."
"네, 올라가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가볍게 누른 후, 2층 J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런데, J 레스토랑에 앉아있던 사람은, 놀랍게도 그 아이 한 명 뿐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렇지 않을거야.
나는, 순간 손이 떨려오다가, 머리가 하애지면서,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OOO, 맞지?"
너무나도 익숙하면서 또 너무나도 나를 가슴아프게 했던 목소리가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P.S)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여주인공의 행동이 이상하죠? 그 이유는 다음 편에 밝혀질 예정이구요. ^_^
이 이야기는 방금 전 제가 머릿속에서 떠올린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조잡할 수가 있지만,
간략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현재 W 그룹 비서실장인 여주가 S그룹 회장이 된 전 남자친구 줄리안의 비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빙의글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