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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지 못한 덕후 전체글ll조회 1411l 1
[쿠로켄/쿠로야쿠] 추락한 천재의 말로  

  

  

'야쿠 선생님, 그 환자 꽤 고생하실 거예요.'  

  

  

언젠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던 간호사의 말이었다.  

  

  

영 입을 안 열고 웃기만 해서요. 얼굴은 잘생겼는데, 어딘지 음침한 게 기분 나쁘기도 하고.  

  

  

저 자신이 덧붙인 영양가 없는 농담이 재미있었는지 킬킬대며 동조를 구하듯 저를 올려다보기에, 시선을 피하며 환자의 신상이 적인 차트를 뒤적였다.  

  

  

야쿠는 제 손에 쥐어진 차트를 다시 한 번 훑었다.  

버릇이었다.  

환자를 상담하기 전에는 환자의 정보가 담긴 차트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저 외면의 일부분이기는 했지만.  

환자를 알려주고 이해시켜주는 일말의 힌트이기도 했다.  

  

차트의 종이는 이미 몇 번이고 읽어 새것의 느낌을 잃었지만, 여전히 눈이 시리게 하얗고 깨끗했다.  

  

조그맣고 흰 사각의 공간.  

그 안에 담긴 한 사람과 그에 대한 판결.  

이 한낱 종이 한 장에 한 사람의 인간이 담길 수 있을까.  

  

  

쿠로오 테츠로.   

추락한 천재라 했다.  

천재와 정신병원.  

꽤나 괴리감이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이라 생각하며 그가 있을 상담실의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정신병원이라 그런가.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유독 차다고,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테츠로씨. 야쿠라고 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쉽지는 않겠지만요.  

야쿠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허공을 배회하던 멍한 눈이 야쿠를 향하자 이내 단단하게 굳어지며 가득 경계심이 서렸고, 입술을 작게 물었다.  

  

  

저 사람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닿고 싶지 않다.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명이었다.  

그리곤 웃었다.  

웃는다고 하기에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짧은 정적이 상담실에 내려앉았다.  

  

  

심리적으로 너무 침체되어 얼마 전부터 미량의 약물을 투약받는다고 들었는데.  

이제까지 쿠로오는 어떠한 노력에도 입을 여는 것을 거부해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갇혀 혼란에 이상행동을 보이는 다른 환자들과 달랐다.  

환자라기엔 지나치게 정상적이었으며 조용했다.  

평소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다만, 그저 우울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구분 지어지어 지는 지표는 그저 우울이었다.  

  

  

그리고 그의 우울함이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격리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그의 우울을 내버려두기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심리적 타격을 감수하고 약물 투약이 결정되었다.  

  

  

약효가 듣는 모양인지 그의 표정은 여러 색의 물감이 섞인 팔레트 마냥 무표정한 동시에 우울해 보였고, 슬퍼 보이기도 했으며 묘하게 설레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자신이 낯선 듯,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이따금 불규칙하게 다리를 떨었다.  

  

  

어떻게든 말문을 트는 게 중요했다.  

미량이라고는 하나 약물로 평온하지 못할 내면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으니까.  

  

  

그들은 아주 예민한 유리 세공품과도 같았다.  

작은 무신경에도 되돌릴 수 없이 바스러져 버리곤 했다.  

  

  

야쿠는 어떤 화제를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부담이 없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선생님."  

먼저 입을 뗀 쪽은 쿠로오였다.  

  

  

"아. 네, 네!"  

아차.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걸거란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한 탓에, 야쿠는 속으로 저도 모르게 오버스러운 반응을 내보인 자신을 책했다.  

  

  

"네, 말씀하세요."  

  

  

"꿈을 꿨어요."  

쿠로오의 눈이 기억을 곱씹는 듯, 회상에 잠겼다.  

  

  

"어떤 내용이었어요?"  

  

  

"켄마…, 켄마가 나오는 꿈이요."  

  

  

"켄마씨…요?"  

존재의 여부가 불투명한 그의 기억 속의 사람.  

  

  

조금 경직된듯한 쿠로오는 야쿠를, 정확히는 그의 오른쪽 어깨너머의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어요.  

정확히는 제 졸업식은 아니었어요.  

저는 참석하지 못했으니까."  

  

  

"왜 참석하지 못했을까요?"  

  

  

그때 저는 집안에만 갇혀있었거든요.  

쿠로오가 작게 웃었다.  

  

  

"갇혀요?"  

야쿠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저는 피아노를 쳤어요.  

자랑 같은 건 아니지만 모두 저한테 천재라고 했어요.  

이건 좀 웃기는데, 한국의 모차르트라고 했거든요. 저한테."  

  

  

언제부터요?  

와, 쿠로오씨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어렸을 때부터요.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쿠로오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낮추며 작게 웃었다.  

  

  

"제 말. 이상하죠? 천재라고 했는데.  

집에나 갇혀있었다고 하고, 지금도 이렇게 정신병원에나 갇혀 있으니까.  

저 좀 미친 사람 같아요?  

선생님, 저 안 미쳤어요.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친 사람인걸 모른다고 하는데 전 정말 안 미쳤거든요."  

다소 흥분한 듯 쿠로오가 숨 가쁘게 제 말을 늘어놓았다.  

  

  

"말도 배우기 전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그 어린애가. 조금 크고서는 라디오에서 나오던 클래식을 한번 듣고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걸 완벽하게 쳐냈대요.  

못 믿겠죠? 그런 거 책이나 티비에서나 보던 거니까.  

선생님,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으세요?  

세상은 일등만 기억한다는 말.  

그 말이 맞아요. 제가 진짜 천재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어요.  

방송국에서도 천재라느니, 한국의 기적이라느니 찾아왔었거든요."  

  

  

"아, 네."  

야쿠는 그가 계속 말할 수 있도록 방해되지 않는 최소한의 반응을 보였다.  

  

  

"그중에는 신문기자도 있었고. 저를 가르치고 싶다는 음대 교수도 있었어요. 스폰하고 싶다던 대기업도 있었고.  

저는 어렸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배로 천재를 낳았다는 허영에 빠져 목걸이나 보석을 자랑하듯이 나를 이리저리 구경시키며 내보였어요.  

몰랐어요, 그게 뭔지.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는 게.얼굴이 알려진다는 거요.  

어머니는 매일같이 나를 씻겨주고 아침을 주며 주문같이 읊었어요.   

쿠로오, 너는 천재야. 라고.  

그리고 저는 대회와 연주회, 방송국이나 신문사를 전전하며 희귀한 동물이나 보석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어요.  

해외에서도 제 인터뷰 한번 따내려고 노력해올 만큼.  

이 정도 되면 궁금하죠. 제가 지금 왜 이런지."  

쿠로오가 느리게, 그러나 자신을 온전히 쏟아내며 말했다.  

괜히 그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어,  

야쿠는 말하기 괴로우면 억지로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쿠로오를 말렸다.  

  

  

아니요, 말할래요.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거든요.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쪽에서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선생님은 왠지 마음이 편해서 좋아요.  

  

  

중간에 힘들면, 쉬어도 좋아요.  

야쿠의 배려가 고마웠었던 듯 쿠로오가 옅게 웃었다.  

  

  

"선생님 저는, 저주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재능이. 이 두 손이…"  

덤덤한 어투에 짧은 문장이었지만,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우울의 기운에 자신조차 젖어가는 것 같았다.  

  

쿠로오에게서는 묘한 느낌이 났다.  

심해와도 같은 어두움과 공허함을 뿜어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저는요, 세상이 원하는 천재였었지만 동시에 세상이 미워하는 존재였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저를 기특해하고 좋아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저를 힐난했고 미워했어요.  

재수 없으니까, 노력이 아니라 재능을 타고난 게 그렇게나 미웠나 봐요.  

그런데 선생님, 딱 한 사람을 빼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거지만.  

저는 사실 부러웠어요.  

저는 가진 게 피아노밖에 없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잖아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또 다른 소중한 게 있잖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땐 그 공허함이 뭔지 몰랐어요. 어머니가 그랬거든요."  

  

엄마  

  

나  

  

여기가 공허해.  

이게 뭐야?  

  

  

쿠로오가 느리게 말하며 제 가슴팍을 가르켰다.  

  

"어머니가 천재는 원래 그런 거래요.  

저한테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고 피아노나 더 연습하라고 했어요.  

벌써 몇 번이고, 몇백 번이고 연습한 곡이었는데.  

또, 더 치라고만 했어요.  

어머니에게 저는 더이상 쿠로오 테츠로도, 아들도 아니었어요. 엄마한테 저는 뭐였을까.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오히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외제 차나 다이아몬드 반지쯤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피아노를 쳤어요. 더 열심히, 더더 열심히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전 기억에 어머니가 제게 웃어주셨던 적이 있거든요.  

엄마를 위해 처음으로 피아노를 쳤는데, 엄마가 웃어줬어요. 너무너무 예쁘게요.  

그 웃음이 정말 예뻤어서, 너무 아름다웠어서 혹시 또 한번 그렇게 웃어주지않을까.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피아노를 쳤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바보 같네.  

쿠로오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피아노를 치기 싫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사실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말했어요.  

질린다거나 반항심이라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그냥이요.  

의도가 있었다면 어머니가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했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러라고 하실까, 아니면 화를 내실까."  

  

화를 내시던가요?  

  

네, 정말로 크게요.  

옅은 미소만 보이던 얼굴에 아이 같은 환한 웃음이 가득 찼다.  

  

  

시원스런 이목구비에 밝은 웃음은 남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야쿠는 왜인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의 그처럼 그냥 울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비싼 미술품마냥 저를 소중히 했던 어머니가 제 뺨을 쳤어요.  

아팠었지만, 맞은 아픔은 금방 사라져 버리니까 맞은 뺨은 더이상 안아팠었는데.  

이미 엄마한테 나는 사랑하는 아들이 아닌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 사실이 뼛속 깊이 체감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서럽고 눈물이 났어요. 심장이, 이 안이.  

정말, 정말로 아팠어요.  

어머니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나는 엄마를 정말로 사랑했거든요."  

  

  

야쿠는 간간이 내뱉던 네, 그랬구나, 따위의 말을 더이상 하지 않았다.  

  

  

그가 너무 깊어서, 또 자신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의 심연이 너무 깊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쿠로오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게끔, 그의 눈을 마주 보며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길어져서 우선 1편으로 잘랐고  

제 글을 제가 보면 같은 표현이 반복되고 좀 꽉막힌?답답한 느낌이드는데 남이 보는제글은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어요ㅠㅠ  

올린다는거 자체가 많이 떨리고...아무쪼록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오늘 하는 하이큐 22편 완전 기대합니다ㅠㅠㅠㅠ이미 스포를 봐버렸는데도 막 떨리고ㅋㅋㅋ큐ㅠㅠㅠ(답없는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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