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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이병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며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훈련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갑갑함을 자대로 전입오고 난 이후로 거의 매일 아침마다 경험한다. 6시 기상 전파가 울리기 30, 20, 15, 10, 5, 3, 1분 전에 한 번씩 깨어지는 정신은 언제나 이 갑갑함에 얹어지는 덤이었다. 동원 훈련을 앞두고 있는 터라 소대별로 생활하고 있는 이 때 이곳으로 전입을 오게 된 건 앞으로 꼬여나갈 군 생활을 암시한 전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자마자 재빠르게 매트와 포단을 갠 뒤 세면도구를 챙겨야 한다고 알려 줬던 맞선임 강 일병의 당부를 윤 이병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부들을 상기하다 윤 이병은 깨달았다. 오늘이 전입 2주차가 해제 되는 그 날임을. 전입대기라고도 불리는 2주간의 기간은 이등병들이 자대에 적응하기 위해 마련해놓은 기간이다. 이때는 근무배치에서 배제되는 공식적인 혜택과 본격적으로 욕을 하지는 않는 비공식적인 혜택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게 바로 어제까지였음을 윤 이병은 눈을 뜨자마자 기억해낸 것이다. 윤 이병은 전입 날부터 늘 이 순간을 걱정했다. 본격적으로 욕을 먹는 건 어떤 것일까에 대한 미지의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그 정도라는 게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어둠속에서 과연 내게는 어떤 폭풍이 휘몰아칠까하는 불안감이 윤 이병을 감쌌다.

 

 아침 점호를 위해 사열대 앞에 사람들이 집합하기 시작했다. 거드름을 피우며 모이는 제법 머리 긴 병장들부터 동자승 모양의 머리로 뻣뻣하게 굳어있는 이등병까지 갖가지 모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 윤 이병도 있었다. 윤 이병의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니나 훈련소 때부터 해 온 몸 고생 때문인지, 자대에 와서 겪게 된 공포에 대한 마음고생 때문인지 유독 야위어 보였다. 윤 이병 옆에선 맞선임 강 일병은 대열이 갖춰지자마자 인원 파악에 들어갔다. 인원 파악을 다 한 뒤 분대장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총원 몇, 열외 몇, 현재원 몇 인지를 외쳐줬다. 인원 파악은 막내가 해야 하는 일임을 강 일병은 윤 이병에게 늘 숙지시켰다. 그런데 대기가 풀릴 때까지는 자신이 하겠다던 그의 약속을 윤 이병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오늘 까지를 말하는 것인지는 조금 긴가민가해 인원파악에 나서기를 주저했다. 그게,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렸고 남은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남은 임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것이었다. 다른 소대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성량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전방에 힘찬 함성, 애국가, 도수체조 구령까지 도무지 목이 남아나지가 않을 여러 단계의 과정에 이등병답게내야 하는 목소리의 음량은 그 끝이 없었다. 윤 이병은 어디선가 그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가장 정당해 보이는 듯하면서 잔인한 폭력이 뭐 다워야 한다는 것이라는. 남자면 남자답게, 학생이면 학생답게 같은 그럴싸한 포장으로 둘러싸인 말이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날라 치면 매섭게 따돌려버리는 기준이 되어버린다는 요지의 말이다. 그런데 맞선임 강 일병은 지난 2주 동안 이등병다움을 차분한 어조를 통해 윤 이병에게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강조했고, 윤 이병은 자신이 그런 글귀를 읽었다는 사실조차 머릿속에서 내몬 채로 열심히, 그야말로 열심히 이등병답게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윤 이병이 속한 3소대는 타 중대에서 전출 온 병사가 많은 소대였다. 좋은 이유로 전출을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후임에 대한 폭언, 욕설이나 선임에 대한 하극상이 대개 그 이유가 되어 부대 전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든 그다지 만만한 부류는 아니고 이런 이들을 여럿 선임으로 두고 있다는 건 윤 이병에게 어떤 면으로든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군대라는 집단이 워낙에 갖가지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이들을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 관계 속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이들은 대개 몇 가지 경우로 통한다. 하나는 스스로 생각할 때 자기가 너무 잘난 경우이다. 군 생활 잘하는 데 요구되는 게 센스, 스피드, 사운드라는 얘기는 하도 공공연하게 떠돌아 무슨 이론취급까지 받기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 체력까지 겸비하면 흔히들 말하는 에이스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이런 혹은 자신이 이렇다고 믿는 애들 중에는 자신의 군 생활이 너무도 대단스럽고, 밑에 애들이 하는 행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그 짬 때는 그러지 않았다는 둥에 확인도 못할 궤변을 늘어놓으며 후임도 그렇게 되길 요구한다. 그게 과해지면 폭언, 욕설이 되어 마음의 편지 같은 장치에 소위 말해 자주 끍히는 일이 생기게 된다. 다음의 경우는 못나도 못나도 너무 못난 경우이다. 대부분 빠릿빠릿하지 못하며 센스도 없고 힘도 약하다. 그래서 공동으로 일을 해야 할 때 피해를 주는 경우인데 이보다 더 문제는 아예 열심히 할 생각도 없는 것이다. 겉모양새는 착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뒤꽁무니로는 어떤 핑계를 들어 훈련을 안 뛸 지, 작업을 빠질지 궁리한다. 이들은 선임을 너머 동기 눈 밖에 나는 것까지도 신경 쓰지 않는 종자들로 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윤 이병의 소대에는 공교롭게도 이런 부류들이 아주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역학관계에 따른 올바른 줄서기 또한 윤 이병이 눈치껏 알아서 해야 할 중요한 임무였다.

 

 아침 점호가 끝나고 곧 식사 집합이 있었다. 고참이 될수록 짬밥에 대한 애착은 감소하지만 주요 반찬과 우유에는 이상한 소유욕을 보인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새치기가 필수다. 그래서 고참은 밥을 빨리 받게 된다. 그래서 먼저 서더라도 짬찌들은 밥을 늦게 받는다. 그런데 고참보다 늦게 식사를 끝마치고 나와선 안 된다. 이상하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산다. 윤 이병은 그래서 아예 밥을 조금 받고, 조금 먹은 뒤, 고참이 다 먹기 까지를 기다리다가 일어나서 설거지를 빨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관물대에 넣어놓은 크럼블이 주린 배를 달래줄 것이라 믿었다. 식사를 끝마치고 막사로 오고 가는 길에 발맞추는 구령이 있는데 이 과정 또한 앞에서 말한 빽빽 지르기 경연의 연장선상이었다. 목이 찢어져라까진 아니더라도 있는 힘껏 질렀는데 그게 이 사람들 마음에 들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윤 이병 내부 장기 어딘가를 무겁게 짓눌렀다.

 

 식사를 마치고 막사에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전파는 소대 내 세 명씩 분리수거장으로 올라가라는 내용이었다. 소대 내 세 명은 해석하자면 소대 내 밑에서 세 명을 이른다. 따져볼 것도 없이 윤 이병은 포함이었다. 눈치껏 부리나케 뛰어 올라갔다. 분리수거장은 윤 이병 동기들과 차이 얼마 안 나는 선임들로 붐볐다. 소대 내 분대가 달라 아침 시간에 자주 못 만나는 성 이병, 문 이병이 분리수거장에 있었다. 윤 이병은 동기이지만 자대에서 처음 만난 그들에게 아직 어색한 느낌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선뜻 가서 먼저 아는 척하기가 머쓱했고 일단 주어진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분리수거장은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라 계절을 불문하고 뭣 같지만 뭐니뭐니해도 여름 더하기 분리수거장이 제일 뭣 같은 조합이었다. 벌레는 말할 것도 없고, 냄새며 쓰레기 상태며 도무지 어느 하나 참을 만한 것이 없었다. 청소구역 담당자이면서 관리자인 듯한 병장 몇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농담 따먹기에 열중했다. 간혹 가다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하냐며 군대가 망했다는 둥의 소리를 하는 병장 한 둘이 있기도 했다. 속에서는 팔짱끼고 쳐다만 보고 있는 주제에 입만 살았다는 생각에 열불이 나기도 했지만 너네들이라고 이맘 때 별 달랐겠니 하는 우스운 위안으로 윤 이병은 스스로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기계처럼 분리수거장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쓰레기 중 제일 난감한 건 백 리터짜리 전용 봉투 묶음들이었다. 늘 그 한계치를 한참 도달한 양을 담다보니 옮길 때 찢어질 확률이 많고, 옮기는 일 자체가 고역일 경우가 많았다. 고참들은 늘 찢어질 것에 대비해 끌고 가지 말고 들고 갈 것을 주문했는데 정말 말이 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윤 이병은 해야 했고 그래서 묵묵히 날랐다. 그런데 이게 또 밑에까지 나르는 데서 끝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를 리어카에 실어 대대의 쓰레기가 모두 모이는 내리막길 아래에 공터까지 가야했다. 리어카 중심 잡기도 힘들 뿐 더러 그 무게는 말할 것도 없고 더구나 가속페달이 자동으로 밟히는 내리막길까지 도무지 좋은 조건이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윤 이병은 또 해야 했고 그래서 리어카 앞에서 위태롭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동원해 어떻게든 내려갔다. 한 여름의 아침이었다.

 

 아직은 힘들 수조차 없는 출발선상이었다. 지금이 너무 고되다고 느낀다면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해 윤 이병은 까마득함을 느꼈다. 낯선 환경자체로도 버거운데 그 중에서도 말단 중 말단인 자신의 처지는 스스로를 가엾게 느낀다거나 해서 위로될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애시당초부터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까지 몰리든 결국에는, 언젠가는 이 위치에 왔다. 그게 지금일뿐이었다. 믿을 건 그저 하나였다. 시간이 간다는 것. 괴롭든 즐겁든 시간은 물살처럼 어디론가 흐른다는 것. 그 많은 시간을 지나 여기에 닿았듯, 또 많은 시간을 지나 어디엔가 닿을 것이라는 사실만이 의심의 여지없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명제였다.

 

 땀을 뻘뻘 흘리고 리어카를 정차시키기 무섭게 출동 준비를 하라는 막사 내 전파가 윤 이병의 귀에 닿았다. 국지도발 훈련 겸 진지 정비를 위해 하는 출동임을 어제 맞선임 강 일병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장구류를 차고 총을 챙긴 뒤 훈련낭을 찾아맸다. 최대한 빨리 한다고 했지만 분리수거를 할 동안 이미 준비를 마친 선임들 속도에 맞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나온 윤 이병을 직접적으로 지목한 건 아니지만 빨리빨리 안나오냐고 분대원 전체를 채근하는 분대장의 말이 윤 이병은 알게 모르게 신경쓰였다. 내심 자신은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이를 마치자마자 준비했다는 정당성이 있었지만, 그건 내면의 당당함일 뿐 겉으로 표출 할 수 있을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윤 이병을 비롯한 분리수거에 동원되었던 짬찌들이 마지막으로 대열에 합류했고, 인원파악이 완료된 소대부터 출발에 나섰다.

 

 국지도발은 비교적 쉬운 편의 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서너 명 단위로 진지에 자리를 잡고 위장을 한 뒤 신호체계를 연결하고 가상 폭발물을 설치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때때로 다르기는 했지만 주로 주변 경계를 하며 대기하는 형태일 때가 대부분이다. 윤 이병은 저번 주에 이어 이번 국지도발 훈련이 두 번째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졸지 않는 것이었다. 선임들이 던지는 화두에 계속해서 대답하고 말을 이어나갈 때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대기시간이 무기한으로 길어질 때 올 수도 있는 졸음에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됐다. 이등병다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졸음에 이기느냐 지느냐 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중간중간 주어지는 업무에서 보여줘야 할 똘똘함이 필요했다. 삽질을 능숙하게 한다든가, 위장을 완벽하게 한다든가 등의 능력이 이 애가 앞으로 잘 할 수 있을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미터라고 선임들은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맞선임 강 일병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잘 하는 거라고. 별 생각 없이 군대에 와 그저 열심히 하면 잘 받아주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던 윤 이병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말이었다. 딱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시받기를 스스로 용인하고 싶지 않았다. 중간쯤, 그 이상이라면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를 보여주긴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그런 욕심을 내면 낼수록 일은 엉켜지고 버벅거리게 되었다. 오늘 훈련에 나와 윤 이병은 시키는 대로 그야말로 열심히 땅을 까기도 하고, 신호줄도 쳤지만 그저 의욕이 앞섰을 뿐이라는 사실을 대충대충 하는 듯 보여도 제대로 해낸 듯 보인 선임들의 실력 앞에서 목도했다. 일을 그리 잘 한 것이 아니니 졸지라도 말자는 생각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지만 고참들은 그닥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저 피곤한 자신의 몸 건사하느라 윤 이병을 보초 새운 뒤 잘 궁리를 하고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윤 이병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녁 식사 이후 취사장 청소였다. 취사장 청소는 1주일을 단위로 하여 중대가 번갈아가며 하고 그 한 주 내에서는 요일을 단위로 하여 소대가 번갈아가며 했다. 그런데 오늘 원래 취사장 청소를 해야 할 옆 중대가 중대장 정신 교육을 이유로 들어 윤 이병의 중대로 순서를 토스했는데 마침 소대 순번이 3소대 였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 것에 소대 고참들은 노발대발했지만 그래봤자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누구보다 괴로운 건 아랫것들이었다. 취사장 청소가 갉아먹을 개인 정비 시간에 대한 분노 때문에 예민해진 선임들을 말 그대로 모시고 해야 할 판이었다. 사실 고참들은 취사장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을 깎아 먹는게, 하필 자신의 소대가 해야하는 게 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청소를 안하고 중대에 있자니 간부 눈에 걸렸다가 어떤 고초를 겪을까 몰라 일단 취사장에 상주하기는 해야 했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로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윤 이병은 걱정스러웠다. 어차피 더러운 건 다 내가 치우는 데 왜 자기들이 성을 낼까 싶으면서도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들과 함께 있음을 인지할 때 긴장이 되곤 했다. 짬은 전통적으로 막내의 일이었다. 소대 막내급인 윤 이병과 성 이병, 문 이병은 번갈아가며 짬통을 음식물 찌꺼기 통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저들의 분노를 멀리 둘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으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불똥이 이상한 데로 튀었다. 짬통을 나르고 다시 청소를 하러 들어오는데 맞선임 강 일병이 시선을 내리깐 채로 서있고 그 앞에 전역을 2개월 정도 남겨두고 있는 박 병장이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용의 요지는 그런 것이었다. 밑에 몇 명 들어오니까 너가 뭐라도 된 것 같냐, 선임이 그냥 몇 달 먼저 들어왔다고 선임인 것 같냐, 요즘 칭찬 좀 받으니까 위가 다 우습냐 등등. 박 병장은 이미 중대에 자자하게 소문이 날 정도로 악마로 소문이 난 선임이었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뭔가에 꽂히면 그걸 빌미로 계속해서 시비를 터는게 그 자자한 악명의 원천이었다. 오늘의 뒤틀린 기분은 불행하게도 강 일병을 향해 활 시위가 당겨져 있었던 모양이다. 윤 이병은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일단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저들과 조금이나마 분리될 수 있는 시간을 쟁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청소에 매진했다. 중대 내에서 취사장 청소를 빨리하기로 유명한 3소대는 15분 만에 모든 일을 마쳤다. 그런데 끝냈구나 하며 안심하려는 찰나, 박 병장의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시간은 점호 끝나고 난 이후, 장소는 중대 흡연장이라는 단 두 마디를 남기고 박 병장은 자신의 무리와 함께 취사장을 빠져나갔고 윤 이병을 비롯한 신참들은 이게 무슨 일일까 싶은 걱정을 한 가득 짊어진 채로 청소도구를 가지고 막사로 향했다. 그 쯤 윤 이병은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오늘이 전입대기가 끝난 바로 그 날이라는 사실을. 아까 강 일병을 향해 있던 화살촉이 혹여나 자신에게 향할까하는 걱정이 뒤이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욕을 먹은 저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하는 조심스런 걱정이 피어났다. 전입오자마자 맞선임과 맞후임이라는 관계로 연결되어 교감했던 강 일병에 대한 고마움이 일종의 연민으로 연결되어 안타까움의 감정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일단은 이런 연민의 감정도, 집합에 대한 걱정도 묻어놓은 채로 내려가서 해야 할 정비로 신경이 쏠렸다. 무엇보다도 하루의 유일한 숨통 같은 전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할 사람이 많은 건 아니었다. 주로 엄마, 친구 몇 몇 정도였다. 그렇지만 짧더라도 오늘 있었던 일과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부대 울타리 바깥에, 내가 원래 함께 했던 사람들과 나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속에 큰 위로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윤 이병은 사랑의 마음을, 고마움의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고 표현하는 것에 굉장한 쑥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군대에 와서 자신이 보잘 것 없어졌다고 느껴지자 그런 감정들에도 솔직해지고 자신이 예전에 부끄럽다고 느꼈던 행동들에 보다 용감해졌다. 전화를 자주 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자신은 안 그럴 줄 알았지만, 어느새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것 조차에 무감해질 정도로 예전을 그리워하며 찾았다. 훈련소 때부터 써오던 편지들을 계속해서 이어가고자 했으며 거기에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쓰는 행위가 주는 쾌감에 중독되어갔다. 오늘도 윤 이병의 첫 전화는 엄마를 향해 신호를 울렸다. 주고받는 내용의 패턴은 늘 비슷했다. 오늘은 뭐했다, 뭐가 힘들었다, 그래도 지낼만 하다, 엄마는 별일 없었냐 등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면 남는 헛헛한 감정이 영 찝찝스러웠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쯤에서 만족해야 했다.

 

 전화를 마치고 나서는 전투화를 닦아야 했다. 이십시 반부터 시작되는 청소 시간 이전에 닦아 놔야 되는 게 포인트인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늦은 적이 없다. 이 시간대에 닦으러 나오면 1소대로 추정되는 탈모 선임이 늘 잘 치지도 못하는 기타를 두들기고 있었다. 속으로는 웬 소음 공핸가 싶었지만 이역시도 어디나 내면의 대화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기타였지만 그래도 그 음률을 들을 때쯤이면 하루가 갔다는 생각에 그래 오늘도 버텨냈다는 안도감이 윤 이병을 감쌌다.

 

 청소, 뉴스시청, 점호까지를 마치고 때가 왔다. 박 병장이 집합시킨 인원은 일병 왕고부터 윤 이병이 속한 말단까지 총 열 여섯 명이었다. 흡연장에 우르르 모여든 인원들을 주변 고참들은 동물원에 원숭이를 보듯 둘러보며 낄낄댔다. 그러든지 말든지 박 병장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들려오는 말이 많다, 소대 분위기가 말도 아니다, 선후임 관계 명확히 해라, 목소리 크게 내고 일 빠릿빠릿하게 해라, 그리고 이등병들 대기 끝났으니까 얼타기만 해봐라, 가만 안 납두겠다의 내용이었다. 아침부터 윤 이병의 마음을 짓누르던 전입대기의 종료를 타인의 말로써 접하게 된 순간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현실이 다시 눈앞에 아득히 펼쳐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지만 때는 왔다. 윤 이병은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스스로의 위로에 기대어보려 했다. 험한 소리가 오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집합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윤 이병은 이 고단한 하루 또한 어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해산 이후 화장실에 들려 소변을 보고 잠자리로 온 윤 이병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자리에 누운 뒤 눈을 감았다. 바로 잠이 올리는 없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가 아스라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이정도만이라도 그게 어디일까 하는 나름의 위로를 하며 늘 하던 마음속 기도를 차분히 묵념으로 되뇌이려던 찰나, 유동병력 통제로 인해 잠자리로 빨리 복귀하느라 들어오며 잘 자라는 말도 못 건넸던 동기인 문 이병이 윤 이병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흡연장으로 다시 모여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그런 의심을 여유롭게 할 만큼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바로 서둘렀다.

 

 막사 문을 열고 나오자 멀리서부터 흡연장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동기인 성 이병이 서서 쭈뼛대고 있는 통에 가려져있었지만 그 앞에 앉아 담배를 뻐끔뻐끔 피고 있는 사람이 강 일병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유야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뛰어 앞에 섰다. 강 일병은 다 모인 이등병 무리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담배를 깊게 빨았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모두 들이마신 뒤 그의 시선은 윤 이병을 향했다. 영문을 모른 채 서있던 윤 이병의 시선이 자신의 눈과 마주친 순간 강 일병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뗐다.

 

누가 들어가래.”

 

 그 시선도, 그 말도 모두 윤 이병을 향해 있음을 본인은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 지 순간적으로 혼란이 왔을 때 강 일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 안 해 씨발아? 누가 들어가랬냐고?”

 

 아무 준비도 없이 마주하게 된 폭격에 윤 이병은 순간적으로 아득해졌다. 강 일병은 그런 윤 이병을 매섭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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