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저 그런 날, 날씨는 제법 선선한 편이였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내 발 밑엔 낙엽들이 스치며 고개를 들면 눈이 시릴 듯이 파아란 하늘이 높게 떠 있던 그런 날에 우연히 너를 다시 만났다. 딱 이맘 때 쯤이였지. 네가 나에게 이별을 말한 날이. 그 시절, 나의 전부였던 너는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넌 나에게 그만 만나자고 말했고, 어렸던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순간. 넌 이렇게 될 나를 알았는지 망설임없이 나를 돌아서 버렸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왜? 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어. 그냥... 그게 너와 나의 마지막이었다. 그 때 이후, 너와 나는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길에서 우연으로도 마주칠 수 없었다. 주위에서 너의 소식은 간간히 들려왔지만 들을 자신도 없었거니와 궁금하지도 않았다. 너에 대해서 더 들을수록 더 아파질 것만 같아서. 그렇게 혼자 아파했다. 많이 사랑했던 만큼 많이 아팠고, 오래 좋아했던 만큼 오래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너를 못 보내겠다는 듯이 보내고 말았다. 아아, 가슴 시리도록 아픈 너의 눈웃음. 또 너를 떠올리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도 나도 훌쩍 자라 있었다. 그 때도 많이 났던 키차이지만 너는 더 훤칠해진 키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더 진해진 눈썹과 뚜렷해진 이목구비는 나를 놀라게 만들었지. 나의 청춘을 더 파아랗게 해줬던 너, 나의 학창시절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줬던 너, 내가 처음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그런 너가 지금 내 앞에, 다시금 상상하지 못할 순간에 내 앞에 있다. 나는 또 다시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너도 그랬을까. 너는 어땠을까. 너도 많이 아팠니. 나만큼 많이 아파했니.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았던 너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담겨진다. 그리고 그것은 시선을 나에게로 옮긴다.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안겨진다. '잘 지냈지,' '보고싶었어.' 바람이 불어온다. 선선한 가을 바람, 네가 참 좋아했었지. 그때와는 사뭇 다른 바람, 그 바람이 널 스쳐간다. 그리고 너란 바람은 다시 나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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