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거센 비가 내리는 날이다.
나를 다 휩쓸어가겠다는 듯이 거센.
차갑고 무겁고 축축한.
예전에는 나도 아끼던 우산이 있었다.
지금은 다 고장나 펼칠 수도 없게 돼 버렸지만.
그땐 비 오길 기다렸다. 그런 때도 있긴 있었다.
행복한 추억은 다 망가졌다.
새로 생기는 기억은 모조리 아플 뿐이다.
나름 아픈 데에 익숙해 졌다 생각했다.
비가 와도 끄떡 없을 거라고.
잘못 생각했다.
처음 보는 방식으로, 처음 보는 세기로 내리는 비를
우산 하나 없이 혼자 버텨내기엔 무리였다.
내가 소중히 지키던 내가 무너졌다.
망가진 우산.
'망가진' 우산.
망가진 '우산'.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히 나를 만나 남들보다 거센 비를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수고했을까.
우산을 펼치기가 두렵다.
나 때문에 무언가가 희생 당하는 것 같아서.
그러라고 있는 건데도, 난 평생을 망가지며 살아 왔는데도
무섭다. 너무 무서워 미칠 것 같다.
우산을 망가뜨린 벌일까.
우산을 망가뜨려서 내가 망가지고 있는 걸까.
망가진 밤이다.
거센 폭풍우가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