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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전체글ll조회 231l 6




누가 말했던가.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고. 분명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학년 말에 사귄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사실 이걸 미리 알았어도 쿠니미와는 사귀었을 거 같지만... 시간은 거슬러 올해 2월로 돌아간다.


! 반배정 나왔대!!”


교실 앞문에서 급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친구의 목소리에 따라 하나 둘씩 반배정을 게시판에 모여들었다. 나 또한 반배정이 매우 궁금하였으나 볼품없이 뛰어나갈 순 없었기에 조급한 마음을 담아 살짝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매일 밤 ‘2학년도 쿠니미와 같은 반이 되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기도의 대상은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등 매일 바뀌었지만 자비로운 신님이라면 그 또한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난 이제 신 같은 거 안 믿어.’ 반배정 표를 보자마자 속으로 외친 말이었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는 다르게 쿠니미와 다른 반에 배정을 받았다. 심지어 층도 다른!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귀기 시작한 우리는 이제 막 두 달 남짓한 새내기 커플이었다. , 지금은 눈에 서로밖에 안 보인다는 뜻이다. 쿠니미나 나나 서로 밖에서 과한 애정행각을 하고 티내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주변의 아니꼬운 눈초리는 받지 않았지만(오히려 교제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도 항상 같은 교실에서 볼 수 있었던 남자친구를 이젠 못 본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


반배정을 확인하고 교실로 돌아온 나에게 짝꿍인 쿠니미가 말을 건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떨어져서 슬프다는 티를 내면 그에게 어리광처럼 보일까봐 괜히 의연한 척했다. 뭐랄까, 쿠니미는 항상 여유 있고 나에 비해 어른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기에 나 또한 그에게 의지가 되는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쿠니미를 믿고 의지했기에 나 또한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


반이 떨어진다고 해서 아예 못 보는 건 아니니까


응 그렇지


귀신같이 내가 반배정으로 속상한 걸 알아챘다. 남들한테 무신경할 거 같은 캐릭터인데 은근 섬세하단 말이지. 어느 때와 같이 손을 맞잡고 하교하는 길이었다. 곧 있으면 새학년이니까 배구부도 조금은 쉬는 모양이다. 만년 귀가부인 나와 강호교로 뽑히는 세이죠의 배구부의 주전인 쿠니미. 조금은 안 어울리는 조합 같아 보여도 늘 같이 붙어 다녔다.


“2학년 때도 수학 알려줘야 해?”


그에게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짓궂은 웃음과 함께 당부의 말을 붙였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살며시 웃더니 나의 머리를 헝클기 시작했다. ‘!’하는 소리와 함께 괜히 그를 째려보면 쿠니미는 내 양 볼을 붙잡고 눈을 맞췄다.


당연하지. 나 말고 다른 애한테 물어보지 마.”


이렇게 질투를 할 때면 어른스럽게 느껴지던 그가 한 없이 귀여운 어린 아이처럼 보이곤 한다. 나도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꼈나보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리다가 쿠니미가 나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평생이 늘 오늘 같았으면,


-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어린 18살이라는 나이에 깨달았다. 벌써 깨닫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지. 반이 갈라져도 우린 꽤 분위기가 좋았다. 정신없는 4월 초가 지나고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에 쿠니미네 반에 전학생이 왔다. 그것도 꽤 예쁜 여학생.


같은 반 예쁜 동급생이 생겼다고 해서 질투할 정도로 나는 어리지 않다. 그리고 쿠니미가 타인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고 있기에, 그의 섬세함은 나만 아는 영역이라고 확신했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니 솔직히 조금은 신경 쓰이긴 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닌가?


아키라, 너희반에 전학생 왔더라?”


,


별 관심 없다는 듯이 흘러 넘겨듣고 나의 머리를 정돈해주는 그. 그녀에게 관심도 없는 그의 태도에 마음 한 켠에 있던 불안감을 치울 수 있었다. 한편으론 이런 그를 볼 때면, 어떻게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나중에 꼭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그와의 점심시간 산책을 즐기기로 한다.


둘 다 급식을 먹긴 하지만 같이 먹는 친구들이 따로 있어서 급식을 각자 먹고 나온 후에는 간혹 이렇게 산책을 한다. 벚꽃이 핀 학교 조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그와 둘이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은 남은 점심시간 10분 남짓이었기에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한다.


배구부에 이번에 1학년 많이 들어왔어?”


, 작년보다 더 있는 거 같아.”


배구부로 미야기에서 이름을 날리는 학교인데, 나의 바보 같은 우문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그였다.


, 이제 아키라도 선배님이네. 후배들 생겨서 좋겠다.”


귀가부인 나는 어느 동아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끔씩 동아리 부원들끼리 끈끈한 것을 보며(대부분 쿠니미의 곁에서 본 배구부의 모습이지만) 부럽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끼어들 수 없는 그들만의 유대랄까.


“... 귀찮아


? 귀엽기만 할 거 같은데


쿠니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연습 상대도 해줘야 하고 챙겨줘야 할 것이 은근 많다며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미간 주름 사이에 검지를 가져다 꾹 누르며 인상 피라는 한마디를 했다. 그의 투덜거림 속에도 묻어나오는 애정이 있었기에 싫다고 해도 후배들을 챙겨줄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살짝 웃음이 나왔다.


, 쿠니미! 담임 선생님이 너 찾으시던데?”


한참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쿠니미와 같은 반인 남학생이 갑자기 찾아와 말을 걸었다. 쿠니미의 담임 선생님은 작년 우리 둘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오지랖은 넓지만 친절한, 당사자는 모르지만 우리만의 오작교인 그 선생님.


다녀와, 나도 교실 들어갈게.”


, . 알겠어. 오늘 부활동 끝나면 같이 가


당연하지! 이따가 봐


그에게 손을 흔들며 급하게 인사하고 나도 교실로 돌아갔다. 쿠니미의 부활동을 구경하다가 집에 같이 가는 것은 일상이었다. ‘뭐 때문에 부르셨을까?’ 잠깐 궁금했지만, 오늘 방과 후에 그와 함께 하교하면서 할 이야기들을 생각하다보니 그 궁금증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


쿠니미는 닝과 헤어진 뒤, 바로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어쩐지 작년과 비슷한 일을 또 겪고 있다.


쿠니미, 배구부 맞지? (-)이 남자배구부 매니저를 희망한다고 하네. 네가 좀 도와줘라.”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소리였다. (-)은 전학생으로 전에 있던 학교에서도 남자배구부 매니저를 했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이죠에 여자 매니저가 없었던 이유는 오이카와의 팬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직접 지원해서 배구부의 분위기를 흐리는 것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도 팬들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괴롭히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원인은 졸업하고 없어졌으니, 배구부원들 사이에서도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참이었다.


쿠니미 너만큼 믿음직스러운 얘도 없다. 그러니까 이번 일도 좀 부탁한다? 하하하


선생님은 쿠니미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그의 등을 두들기며 교무실에서 내쫓았다.


.”


복도로 나온 쿠니미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 옆엔 물론 (-)도 있었다.


쿠니미군! 전에 나름 강호교에 있어서 매니저 일은 부족함 없이 할 수 있어. 앞으로 잘 부탁해!”


쿠니미가 굳이 돕지 않아도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특히 3학년의 야하바가 헤벌쭉 웃으며 일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저 인간 카라스노 매니저한테 관심 보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쿠니미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기만 할 뿐이었다.


-


방과 후에 쿠니미를 만나러 배구부가 쓰는 강당에 들어갈 때, 이곳에선 처음 보는 얼굴이 있어서 놀랐다. 평소처럼 조용히 관중석에 올라가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오늘은 낯선 얼굴이 끼어있었다. 바로 쿠니미네 반 전학생 (-)이었다. 그들의 대화 소리를 집중해서 들어보니 오늘부터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그렇게 됐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도 배구부 매니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남자 배구부는 여러 이유로 여자 매니저를 안 뽑고 있었고 배구부원에 남자친구가 있으니 속 보이는 거 같아서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늘 쿠니미의 곁에서 본 부활동은 동료애가 끈끈했기에 나도 그 속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후회하면 뭐하나, 이미 지난 일인 것을. 나도 한 번 말이나 해볼걸. 후회하면서 오늘도 관중석에 떨어져 그들의 연습을 지켜만 보았다. 평소에는 쿠니미의 모습을 집중해서 보았는데 어쩐지 오늘은 자꾸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매니저를 하는 모습이 능숙해보여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 눈길이 갔다. ‘내가 매니저 했으면 저렇게 일 못했지, .’ 이렇게 합리화하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늘 잘만 가던 시간이 오늘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중간 중간 시계를 쳐다보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오늘 연습이 끝나는 듯 보였다. 다들 인사하며 체육관을 나가는데 감독과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서 쿠니미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쿠니미는 끄덕끄덕하면서 이야기를 듣더니 곧 끝났는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별로 오래 안 기다렸어.”


그는 항상 연습이 끝나면 나에게 다가와 저 질문을 했다. 사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부활동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배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끝나고 같이 걸어갈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는 나를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했기에 반대하였지만, 나의 고집으로 인해 두 손 들었다.


그와 함께 체육관을 나서려는 차에,


쿠니미 군!!”


(-)이 급하게 뛰어오면서 쿠니미의 이름을 불렀다.


같은 반이기도 하고, 앞으로 부활동도 같이 할 텐데,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아까 너랑만 번호 교환을 안 한 거 같아서!”


그녀는 마치 봄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웃으며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이쁘긴 더 예뻤다. 쿠니미는 내 쪽을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내가 괜찮다는 듯이 웃어보이자 그녀의 휴대폰의 본인의 번호를 입력했다.


여기.”


고마워~ 내일 보자!”


손을 흔들며 그녀가 자리에서 떠나고 나서 나와 그도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반에 같은 동아리면 전화번호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근데 난 왜 기분이 나쁘지? ... 닝 너 이렇게 구속하고 쪼잔한 사람 아니잖아.’ 혼자 기분이 나빴다 괜찮았다 반복했다. 오늘따라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다.


-


재수없게도 나는 오늘 아침에 우산을 안 챙겨왔고, 등굣길에 비를 맞았다. 쿠니미는 아침 연습이 있다며 먼저 등교를 했기에 그와 함께 비를 맞는 일은 없었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유독 몸이 찝찝하게 느껴지고 습기와 더위에 지치는 날. 분명 몇 주 전까지 벚꽃이 예쁘게 흩날리고 산뜻한 봄날이었는데, 올해는 어쩐지 장마가 이르게 찾아왔다. 6월 초부터 장마라니! 덕분에 예쁘게 피었던 벚꽃들은 땅을 나뒹굴고 있어 하얗던 꽃잎은 흙투성이가 되어 사라진지 오래다.


습기로 교실이 가득 차 있었기에 반 아이들은 거세게 에어컨을 틀었다. ‘푸엥취-!’ 에어컨 바람으로 축축했던 옷을 말리면 그나마 나을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오히려 이대로 있다면 100% 감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쿠니미의 져지를 빌리기 위해 그의 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친구보단 남자친구한테 물건을 빌리는 게 더 편하니까.


바로 옆 반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층조차 다른 반이 되어버려서 그의 반으로 갈 때마다 거리가 참 멀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반에 도착했을 때, 뒷문에 있던 아이에게 쿠니미 좀 불러달라고 말하려던 차에,


! 닝상? 여긴 어쩐 일이야?”


(-)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배구부에 매일 같이 가고 쿠니미와 함께 있는 모습을 종종 봐서 그런지 딱 한번 통성명했는데, 친밀하게 말을 건다. 붙임성이 참 좋은 아이구나. 쿠니미를 보러 왔다는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왜 이렇게 물에 빠진 생쥐 꼴이야? 어쩌다 이랬어? , 이럴 때가 아니지. 내 옷이라도 빌려줄까?”


말이 쉴 새 없이 나오는 그녀에 어버버 거리며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아까 (-)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는지 쿠니미가 여기로 다가왔다.


내가 젖은 모습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지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비 맞았어?”


, . 비오는 줄 몰라서


그는 자신의 의자에 걸려있던 져지를 가져오더니 나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 근데 사이즈가 너무 크지 않을까? 내 옷 입는 게 낫지 않겠어? 큰 옷 입으면 오히려 더 춥지 않을까


(-)이 쿠니미의 옷을 입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말을 걸었다.


그녀는 평소 모습을 봐도 눈치가 많이 없는 편이었다. 배구부에서 모습 또한 그랬다. 저번에 킨다이치의 썸녀로 추정되는 여학생이 준 선물과자를 배고프다는 이유로 벤치에서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땐, 혹시 의도적인 건가 싶었다. 하지만 2개월 정도 관찰한 결과 의도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냥 그녀는 눈치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가끔은 본인이 사야할 물건이 우리의 하교 방향이면 우리와 함께 하교하곤 했다. 원래 성정이 그러한 사람이었다.


쿠니미는 부활동 때 땀 흘리고 운동하면 집 갈 때 져지 없어서 추울 거 아니야. 나는 운동 안 하니까 딱히 상관없는데.”


어깨를 들썩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태평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엔 악의가 없었다. 심지어 맞는 말처럼 들려서 지금 벗어서 돌려주고 그녀의 옷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괜찮아. 닝 편한대로 해.”


큰 옷을 입은 내가 불편할까 싶었는지 쿠니미는 나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여기서 쿠니미의 옷을 입는다고 하면 너무 애 같아 보일까? 그래도 난 그의 옷이 좋은데. 1초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쳤다. 대답하기 전에 마주친 (-) 그녀의 동그란 눈 속엔 도대체 뭐가 그렇게 고민 되는 거지?’라는 메시지가 담긴 듯한 눈빛에(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 그럼 그냥 (-) 옷 빌릴게.”


말이 공중에 흩어지고 나서 곧바로 후회했다. 괜히 말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 여기-!”


그녀가 곧장 본인의 자리로 가서 져지를 가져왔다. 쿠니미의 옷을 벗고 그녀의 옷을 건네받아 입었다. 쿠니미의 옷에선 숲속 풀내음이 났다면 그녀의 옷에선 화려한 꽃향기가 났다. 둘이 섞이니 수목원 같은 느낌이 났다. 아침부터 비를 맞아서 그런지, 그녀가 눈치 없어서 그런지 짜증이 나서 그냥 고맙다는 말을 급하게 하고 반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반은 여전히 거센 에어컨 때문에 추웠다.


-


“..., 닝아!”


...”


옆에서 누가 흔들어 깨우는 탓에 급하게 몸을 세웠다. 세상이 왜 이렇게 빙글빙글 돌지? 그리고 내 짝꿍이 어느새 2명이 되었담... 아까 교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기분이 안 좋았기에 그냥 내 자리에 엎드려 잤다.


너 지금 완전 불덩이야. 얼른 보건실 다녀와!”


시계를 보니 이제 막 3교시가 끝난 시간이었다. 짝꿍의 말로는 내가 너무 소리 없이 자고 있어서 깨우려고 보니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깨웠다고. 그녀의 말을 듣고 보건실을 가려고 자리에 일어났을 때, 순간 너무 어지러워 넘어질 뻔했다. 짝꿍이 옆에서 잡아주고 부축해주어 보건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보건선생님께선 내 열을 재시더니 38도가 넘는다며, 얼른 조퇴하고 인근 병원을 다녀오라고 재촉하셨다. 그러고 보니 목도 살짝 칼칼한 느낌도 났다. 결국 걸렸구나, 감기.


반으로 돌아가기 전에 교무실에 들러 담임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고 조퇴증을 받았다. 그리고 곧장 반으로 돌아가서 가방을 쌌다.


결국 조퇴하는 거야? 푹 쉬고 내일 보자.”


, 병원 갔다가 집에 가서 쉬려고. 내일 봐


나를 보건실까지 데려다준 짝꿍과 인사를 하며 병원으로 갔다. 사실 아픈 정신으로 어떻게 병원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전된 사람마냥 침대에 엎어져서 잠에 들었다.


-


으음...”


옷도 안 갈아입고 잠들어서 그런지 목은 한층 더 칼칼해졌고 콧물도 살짝 나는 느낌이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어 어두컴컴한 하늘에 밤인지 낮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옷도 안 갈아입고 찝찝한 채 더 잘 수 없었기에 뉘엿뉘엿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병원 밑에 있는 죽집에서 포장한 죽이 살짝 식었지만 급한 대로 먹고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그동안 못 본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5)

라인 알림(6)


부재중 전화 5통 중 1통은 엄마, 1통은 아빠에게 왔고 3통은 쿠니미에게 온 전화였다. 엄마랑 아빠는 아마 학교 선생님께 연락을 받고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 거 같고, 쿠니미한테는 말도 못하고 조퇴했으니, 걱정을 꽤 했을 것이다. 라인에 들어가 보니


(엄마)

[아프다며, 병원은 갔어?]

[아빠랑 엄마 둘 다 오늘 야근이야. 집에서 쉬고 있어.]


(쿠니미)

[조퇴했다며.]

[많이 아파?]

[오늘 부활동 끝나고 너희 집 들려도 될까?]

[일어나면 연락 줘.]


엄마에겐 알겠어.’라고 답장을 보낸 뒤 쿠니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지 3초도 안 되어서 그가 전화를 받았다.


[일어났어?]


. 미안해, 말도 못하고 나왔네.”


[아니야. 목소리 들으니까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방금 약 먹어서 괜찮아. 아키라는 부활동 끝났어?”


[끝났어. 혹시 지금 잠깐 밖에 나올 수 있어?]


?”


[무리해서 나오진 말고, 걱정돼서 죽 사왔어. 좀 그러면 그냥 문 앞에 두고 갈게.]


, 아니야. 금방 나갈게


아파서 그런지 몸을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고 했는데 굼뜬 느낌이었다. 그래도 방금 씻었기 때문에 아까와 같이 초췌하진 않은 거 같아 안심을 하고 급하게 외투를 입고 나갔다. 우리집 앞에서 우산을 쓰고 서있는 그가 보였다.


아키라!”


그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몸은 괜찮아?”


뭐 그럭저럭. 뭐 하러 왔어. 집 가서 쉬지.”


,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이었는데 왠지 책망하는 듯한 말투로 나가버렸다.


기다리느라 춥진 않았어? 비와서 좀 쌀쌀했을 텐데.”


그가 내 말투를 듣고 오해를 할까 싶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 괜찮아. 여기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나에게 건넸다. 아마 죽이겠지.


고마워. 근데 내가 잔 건 어떻게 알고 기다렸어? 언제 일어날 줄 알고?”


교실에서도 내내 잤다고 하길래. 집 와서도 그럴 거 같았어. 괜찮아, 기다린지 얼마 안 됐어.”


쇼핑백을 건네는 그의 손을 잡으니 꽤나 차가웠다. 말은 저렇게 해도 오래 기다렸겠지. 미안해서 어쩌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더니 이만 집에 가보겠다고 했다.


조심히 잘 가, 내일 보자.”


, 너도 어서 들어가. 밤공기가 차가워.”


그는 내가 먼저 들어갈 때까진 본인이 먼저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리하여 먼저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발걸음을 옮기는 그였다. 아까까지 물속에 가라있었던 거 같은 몸이 그나마 붕 떠오르는 거 같았다.


죽은 아까 먹었으니까, 이건 내일 아침에 따듯하게 데워서 먹어야지. 그렇게 식탁에 올려놓고 라인으로 쿠니미에게 고맙다는 연락 한 통을 남겨둔 뒤 잠에 빠졌다.


-


닝아, 일어나봐라.”


아침에 되어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급하게 나를 깨우셨다. 콜록, 콜록. 일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감기가 꽤 심한 거 같은데. 오늘 학교 쉬는 게 어때?”


오늘도 쉬라고?


라며 나온 목소리의 상태가 꽤 심각했다. 다 쩍쩍 갈라져 쉰 목소리가 나왔다. 어제 밤에도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몸이 굉장히 피로했다. 이 상태로는 학교를 못 가겠군.


엄마가 담임 샘한테 연락해줘.”


, 더 자. 죽은 끓여두려고 했는데 포장한 거 있더라? 그거 데웠으니까 아침으로 먹고 약 먹고 다시 자


으응..”


엄마가 나를 일으켜 세워 식탁으로 앉혀 죽과 약을 먹인 뒤 출근했다. 나는 다시 침대로 기어 들어와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어쩐지 잠이 안 왔다. 하긴 어제 학교에서부터 집에서까지 계속 잠만 잤지.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안 오니 미칠 노릇이었다. 한참이나 뒤척이다가 눈을 뜨고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켜 어젯밤 왔던 연락들에 답장을 보냈다.


(쿠니미)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나 오늘도 아파서 학교 못 갈 거 같아.]

[ㅠㅠ]

[쿠니미도 감기 조심해.]


그에게 연락을 보내고 라인을 나가 습관적으로 SNS를 켰다. 친구들은 별 시답지 않은 본인들의 인상을 찍어 올리기 바빴다. SNS를 거의 눈팅용으로만 이용하던 나는 가볍게 휙 휙 넘겼다. ‘(-)님이 회원님을 팔로우 하였습니다.’ 어제 일찍 자서 못 봤나보다. 그녀의 계정에 들어가 나도 팔로우를 누른 후 그녀가 올린 게시물들을 구경하였다. 역시 예쁜 애는 사진도 예쁘네.


게시물에는 본인의 셀카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같이 올라가 있었다. 전학생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누구보다 아오바죠사이에 잘 적응한 모습이었다. 1년을 더 다닌 나보다 학교와 더욱 친밀해보였다. 그녀는 다소 눈치가 없을지라도 누구에게나 친절히 잘 다가갔다. 그게 급식 아주머니나 경비실 아저씨더라도.


, 괜히 봤어. 이번엔 게시물 말고 스토리를 보았다.(24시간 지나면 사라지는 그거.)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내 남자친구 쿠니미. 어제 밤에 올린 사진이었는데 깜깜한 빗길에 어떤 남자가 우산을 쓰고 가는 뒷모습이었다. 뒷모습이지만 나는 그가 쿠니미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쿠니미가 어제 우리집 오기 전에 (-)랑 같이 하교했나? 아니면 우리집 갔다가 (-)를 만났나? 급한 마음에 다음 스토리를 확인했지만, 그녀가 먹은 야식 사진뿐이었다.


쿠니미는 SNS를 안 했기에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괜히 기분만 안 좋아졌네. 보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


하루동안 집에서 얌전히 쉬었더니 컨디션이 완전히 괜찮아졌다. 세차게 내리던 장마도 멎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으며 웬일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쿠니미에게 어제 밤 내일 아침 연습이 없어. 같이 등교할래?’라고 문자가 와서 같이 등교하기로 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날이었다. 이틀 전 (-)에게 빌린 져지를 챙겨 집 밖을 나섰다. 문 앞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쿠니미가 보였다.


아키라! 되게 오랜만인 거 같네.”


매일 매일 보던 그를 어제 하루 못 봤다고 오랫동안 못 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쿠니미는 나에게 대답하기에 앞서 자신의 손을 나의 이마에 대보았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손길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열은 없네.”


아직도 내가 아픈지 걱정이 되는 표정이었다.


나 진짜 괜찮다니까. 얼른 가자. 늦겠다.”


이마에 있던 손을 떼어 내 손과 맞잡게 한 후 학교로 향했다.


물어볼까, 말까. 엊그제 (-)이 올렸던 쿠니미의 사진이 조금 신경 쓰였다. 물어보면 너무 속 좁아 보이려나? 근데 안 물어보고 혼자 꽁해있는 것만큼 꼴불견도 없다. 고민하다가 이내 옆에서 같이 등교하던 쿠니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키라, 혹시 엊그제 (-)랑 같이 있었어?”


, .”


“.. 그래?”


구체적으로 대답을 안 하고 단답으로 말을 끊은 그였기에 무엇을 더 물어보기 애매했다. 더 물어보면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 같지 않나. 결국 어제 뭐 했냐는 일상적인 질문을 하여 화제를 돌렸다. 맞잡은 손을 더욱 꾹 잡은 채.


-


? 오늘은 왔네.”


, 이제 완전 괜찮아.”


반으로 돌아오니 짝꿍이 말을 걸어왔다. 자리를 바꾼지 얼마 안 돼서 어색했었는데, 엊그제 나를 좀 챙겨줘서인지 조금은 친해진 느낌이었다.


다행이다. 너 그날 거의 시체였어, 시체.”


걱정을 한시름 더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날 챙겨줘서 고마웠어. 진짜 그대로 교실에서 계속 잤으면 이렇게 학교 못 돌아왔을 거야.”


고마우면 매점 쏘든지~”


그녀의 말에 그러겠다며 같이 매점을 가자고 팔을 잡았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매점으로 가는 길에 쿠니미를 마주쳤다. 쿠니미의 곁엔 늘 그렇듯 킨다이치가 있었고 그 옆엔... (-)이 있었다. 쿠니미는 나를 발견 못 한 듯 그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그 모습을 쳐다본 후에 매점으로 향했다.


아까 쿠니미군 쳐다본 거 맞지?”


매점에 도착한 후 짝꿍이 나에게 말했다.


, .”


닝은 쿠니미군이랑 사귀는 거 맞지?”


? 응 맞아. 작년부터 사귀었어.”


그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었네.”


? ?”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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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한 건 비밀로 해줘. 다른 얘들이 쿠니미군이 (-)이랑 사귄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랑 사귀는 줄 알았는데 얘들 말로는 엊그제 둘이 밤에 같이 있는 거 봤다고 그러더라.”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나랑 쿠니미가 사귀는 티를 안 냈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소문이 나도 (-)이랑 엮여서 났는지. 그리고 왜 밤에 같이 있었는지.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까도 (-)이 하는 거 보면 남들이 오해할 거 같긴 하지.”라며 방금 마주친 그들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 그랬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나름 표정관리를 하며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 그녀에게 감사표시를 했다. 모르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아는 게 나았을 거 같으니까.


-


내가 작가였더라도 평범하고 심심한 나보단 예쁘고 활기찬 (-)을 주인공으로. 그것도 배구부의 주전과 매니저의 로맨스로 스토리를 적을 거 같다. 그 편이 훨씬 더 생동감 있고 극적일 거 같으니까. 학기 초부터 조금씩 쌓인 열등감이라는 게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왜 그녀와 함께 있었는지, 그녀와 무엇을 했는지 안 알려준 그가 원망스러웠고 이런 걸로 그를 원망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짜증났다.


오랜만에 등교했으니 당연히 점심을 먹고 나와 쿠니미와 점심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밥 생각도, 산책 생각도 없었다.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에겐 입맛이 없다며 너희끼리 먹으라고 보내버렸고 나는 교실에 홀로 책상에 엎드려 창 밖을 구경했다.


원래 연애라는 게 사소한 걸로 삐지고 투닥 거리고 맞춰가는 거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그런 걸 표현 못하겠는지. 쿠니미 앞에만 서면 입이 꾹 다물어진다. 그에게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 내 자아와 감정을 솔직하게 다 표현하고 싶은 내 자아가 끊임없이 싸운다. 그래서 결국 입을 다물게 된다. 이런 나에게 스스로 질리고 있었다.


...?’


창밖 하늘을 구경하다가 심심해져 엎드린 몸을 일으켜 밑에서 뛰노는 학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근데 쿠니미가 (-)과 함께 걷고 있는 거 아닌가. 표정은 멀어서 잘 안 보이지만, 그냥 쿠니미가 여학생과 둘이 걷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러웠고, 기분이 안 좋아졌다.


나와 산책할 땐 항상 학교 뒤쪽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자주했는데 쿠니미가 지금 걷는 곳은 학교 앞쪽 운동장 옆길이었다. 저렇게 남들이 다 보는 곳에서 둘이 있으니 그런 소문이 돌만도 하지. 더 안 좋아질 수 없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더 안 좋아졌다.


내가 본 쿠니미는 나를 좋아했고 남들에게 무관심했기에 그가 그녀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본 (-)은 워낙 눈치가 없고 단순히 친화력이 좋을 뿐 누군가를 이성으로 대하는 느낌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속이 안 좋아지고 기분이 언짢았다. 이쯤 되니 내가 문제인 거 같았다.


한숨을 쉬며 공부나 하자는 마음으로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책상으로 옮겼다. 엊그제 조퇴를 했고 어제는 결석을 했기에 못 따라간 수업이 가득했다. 기말고사도 얼마 안 남았는데, 큰일이네.


-


기말고사 끝나고 여름 합숙에 들어갈 거 같아.”


아 그래? 배구부 다 같이?”


. 아마 감독님이랑 선생님도 같이 갈 거 같아


그렇구나.”


“23일정도 진행할 거 같아.”


혹시, (-)도 가?”


, 걔도 배구부니까


여자애 혼자서?”


그래서 방 따로 잡는다고 하더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차마 이 말은 밖으로 못 꺼냈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내 수학을 봐주던 쿠니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시험 직전엔 부활동이 없었기에 그와 오랜만에 함께 공부하는 날이었다. 여름 합숙이야 갈 수 있다 쳐도 걔는 왜 그런 곳까지... 아니 가는 게 맞긴 하지만, 내가 공과 사를 구분 못 하는 건가? 항상 (-)의 이야기가 들릴 때면 기분이 언짢아졌다.


잘 다녀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


그렇게 같이 공부를 하다가(사실 저 이야기를 한 뒤로는 제대로 집중도 못했다.)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두고 내 몸은 침대로 다이빙했다. 최근에 (-)의 이야기만 들으면 텐션이 떨어졌다. 계속 그 아이가 신경 쓰인다. 나는 쿠니미랑 행복하려고 연애하는 건데 점점 더 스트레스만 늘어간다.


최근엔 배구부 부활동 관람하러 안 갔다. 뭐 하러 가나. 괜히 혼자 스트레스 받아서 끙끙 앓을 텐데. 쿠니미는 내가 여전히 아파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먼저 간다고 생각했는지 별말을 안 했다.


침대에 누워서 또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켰다. 오늘도 SNS에 들어가니 어김없이 아이들은 본인들의 행복한 일상을 올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도 있었다. 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그녀가 올린 게시물들을 확인하는 나였다.


[기대된다. 여름 합숙 D-9]

라는 문구와 함께 여름 합숙 일정표와 합숙 때 필요한 물품들이 사진 찍혀서 올라왔다. 일정표는 한명씩 나눠줄 예정인지 각자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쿠니미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휴대폰의 화면을 꺼 뒤집어두고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그만 신경 쓰자. 내 공부나 해야지. 그렇게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펴 열심히 필기를 했다. 무엇을?


내가 진짜 이상한가?’

‘(-)은 별 생각 없는 거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와 같은 쓸데없는 내 머릿속 생각들을 나열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이 없었다. 이건 그저 나 혼자만의 고민이고 나 혼자만의 문제였다.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대로는 우울해질 것만 같아서 급하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나섰다.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


-


딸랑-’ ‘-’


편의점 문이 열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는 누군가의 몸과 부딪혔다. 정확히는 그 사람의 몸통과 나의 얼굴이 부딪혔지만. 순간 코가 너무 아파 내 손으로 코를 감싸고 어쨌든 부주의하게 못 본 내 탓도 있으니 사과의 말을 건네려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 카게야마군?”


그는 나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카게야마 군이었다. 사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대부분 세이죠에 진학하기에(쿠니미랑도 같은 중학교였다. 다만, 그땐 같은 반인 적이 없어서 서로 몰랐을뿐.) 세이죠에 왔을 때 카게야마가 없어서 놀랐었다. 교복을 보니 카라스노에 갔구나.


,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와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사실 배구부에 엄청난 소질이 있다고 듣기만 했고 교실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땐 눈치 제로에 공부도 그닥인... 그냥 착한 친구였다. 숙제같은 거 있으면 짝꿍인 내가 챙겨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오랜만에 본 친구였기에 반가웠다.


, 닝상이었구나.”


넌 여전히 배구하고 지내?”


. 지금도 배구부야.”


그렇구나. 카게야마는 지금도 배구부이며 눈치가 상당히 없다.((-)과 비슷한 수준인 거 같다.) 그의 특징을 보았을 때,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해 듣고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카게야마군, 혹시 지금 바빠?”


시간 괜찮다는 그를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혀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 물론, 실명은 거론하지 않고. 근데 카게야마가 카라스노면 세이죠랑 경기 해봤으니까 누군지 아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 눈치 둔탱이 친구는 굳이 세이죠랑 경기를 할 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찾으려 할 거 같진 않아서 걱정은 묻어두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내가 이상해?”


, 잘 모르겠는데.”


? 그게 다야?”


나는 연애를 안 해봤으니 잘 모르지.”


카게야마군 아직도 솔로야?”


얼굴은 멀쩡하게 생겨서 눈치가 없어서 그런지 고2나 되어서 아직도 솔로인 그를 보고 꽤 놀랐다. 중학교 시절에도 선배들은 귀엽다며, 또래들은 잘생겼다며, 후배들은 멋있다며 은근히 팬이 있었다. 물론 독보적인 오이카와 선배 때문에 인기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 수준이었지만.


너는 지금도 배구부라고 했지?”


.”


그럼 너희도 합숙해?”


. 그렇지


그럼 여자 매니저도 같이 자?”


나의 질문을 들은 그는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아니. 저녁까지 같이 있다가 밤에는 본인 집으로 가던데.”


뭐야. 꼭 같이 자야하는 건 아니었잖아. 그의 말에 그렇구나 라고 대답하며 이제 슬슬 갈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게야마와 인사를 하고 나는 집으로 몸을 돌렸다.


? 아키라?”


편의점에서 신호를 건너 집으로 가려던 곳엔 쿠니미가 서있었다. 그리 먼 동네에 사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 가깝진 않은데.


여긴 무슨 일이야?”


근처에 볼일 있다가 편의점 갈일이 있어서.”


아 그랬구나. 신기하네. 이렇게 만나고.”


카게야마랑 아는 사이야?”


, 응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거야?”


? 아니 그냥 우연치 않게 여기서 마주쳤어.”


쿠니미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아 바로 잡아 정정해주었다. 그랬구나라고 대답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의 얼굴을 이렇게 바라보면 좋다. 그와 함께 있으면 좋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를 볼 때면 자꾸 (-)이 떠오른다. 이내 내 기분은 점차 안 좋아지지만 늘 입술이 안 떨어졌기에 그에게 내 이런 힘듦을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까 카게야먀군을 만나서 수다를 떨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게 내 스스로 나아지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깨달아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키라, 나 할 이야기 있어.”


. 말해.”


사실 요즘 많이 힘들어. 너와 함께 하면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어. 너 때문이라는 말은 아니야. 그냥 온전히 나의 문제야. 우리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안 될까?”


그에게 한 번도 힘들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당황할까? 아니면 붙잡을까? 나는 땅만 쳐다보며 두서없이 말을 뱉어냈다.


헤어지자는 건 아니야. 그냥 시험도 얼마 안 남았고 내가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았나봐. 잠깐만 시간을 갖는 거 어때?”


그의 대답이 들리기까지 몇 초의 정적이 있었다.


그래. 알겠어.”


? 생각보다 쉽게 수긍한 그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 그래.. 그럼 나 먼저 집에 들어갈게.”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당황스러워서 그냥 쫓기듯 집으로 들어왔다.


이게 우리의 여름에 있었던 이별이었다.


-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네 변명의 여지가 없죠... 사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이 전편을 기억하고 계실 분이 계실런지... (혹시라도, 만에 하나,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머리박고 사죄드립니다.)

현생이 바빠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살다가 잊지 않고 기웃 기웃 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동을 받고 이제서야 업로드 합니다. ㅎㅎ 닝들 사실 저 취업했어요~!(ㄹㅇ tmi) 그래서 쵸큼 바빴습니다 ㅠ,,,

겨울 소재이기 때문에 겨울에 완결을 내고 싶었는데 왜 벌써 여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下편 들고 오고 여름으로 하나 써야겠어요... 모쪼록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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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사랑해요
1년 전
독자2
제발 센세 기다렸어요 사랑해요 저와 평생을 함께해 주세요
1년 전
독자3
헉 와 센세 분량 무슨일이야...전편도 이번 편도 넘 잘봤어요ㅠㅠ 센세 살앙해요
1년 전
독자4
다음 편도 기다릴게요 센세 사ㅡ,사탕해요!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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