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 - 10cm
팀장님, 우리 팀장님
W. 뽀베
" 저랑 장난하시는 겁니까. "
" ... 죄송합니다. "
" 됐습니다, 나가보세요. "
이럴거면 대체 왜 나한테 이걸 시킨건지. 눈에 울망울망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고 팀장실을 나섰다. 이렇게 퇴짜를 맞는 게 몇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업무도 다 제쳐두고 여기에만 며칠을 매진했는데. 불과 며칠 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보고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라는 팀장님을 차마 거부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승낙하게 되었다. 싫기는 했다만, 어쨌든 하게 된 이상 열심히 하려고도 노력했고. 그러나 항상 다정하게만 보였던 팀장님은 그 후로 내가 올린 보고서들을 볼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말을 내뱉기 일쑤였다. 오늘도 내 멘탈에 스크래치를 하나 남기고서야 나를 내보낸 팀장님에 이젠 억울한 감정까지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래. 하라고 그래서 했고, 나는 최대한 열심히 해서 올린건데.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 앉았다.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마른 세수를 하자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호석 씨가 어깨를 툭툭 쳐온다. 이거, 먹고 해요. 이 말과 함께 커피를 건네며 내 등을 토닥여주는 호석 씨에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렇게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건만, 저 놈의 팀장님은. 서러움과 같이 폭발해버린 눈물샘은 갑작스레 생긴 스케줄에 신이 났는지 도무지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호석 씨가 당황한 듯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혹여 다른 동료들이 볼새라 내 얼굴을 제 손으로 가려주고는 비상구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호석 씨와 함께 비상구 계단을 통해 올라온 옥상은 쓸데없이 확 트여 내 눈물샘과 감성을 더욱 자극했다. 옥상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니 호석 씨가 한숨을 폭 내쉬며 내 등을 쉴새없이 토닥였다. 덕분에 한 달치 눈물은 다 흘린 것 같다. 한참을 울다, 끅끅대며 숨을 고르고 있자 이내 민망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호석 씨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어린 애처럼 울어버리다니. 울어서 못생겨졌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 왜요, 창피해요? "
" ... 네. "
" 괜찮아요, 사람이 속상하면 그럴 수도 있는거지. "
" 미안해요, 당황시켜서. "
" 정말 괜찮다니까. "
걱정스런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내게 손까지 내저어보이며 활짝 웃고는 내 옆에 털썩 앉는 호석 씨다. 누구와는 다르게 참 매사에 긍정적인 것 같다. 어느 틈에 커피를 챙겨온건지, 호석 씨가 들고 있던 커피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아들어 한 모금 마시니 달달한 커피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날씨가 참 좋았다. 방금 전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마음은 따뜻하게 살랑이는 바람을 맞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해졌다. 아, 일하기 싫다. 그쵸. 호석 씨가 제 몸을 뒤로 젖히며 나를 쳐다보았다.
" 그러게요. "
" 아, 아까는 김남준 때문에 운 거예요? "
자연스럽게 나온 김남준이란 호칭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저번에 호석 씨하고 팀장님이 학생 때부터 친구였다고 했었지. 그래서인지 가끔 호석 씨가 김남준,하고 부르면 팀장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었더란다. 호석 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 음... 네. 혼났거든요. "
" 너무하네, 김남준. 그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
" 네, 며칠째 계속 혼나는 중이에요. "
" 고생이 많아요. 다른 업무도 많을텐데. "
" 그러는 정호석 씨는 널널하신가 봅니다.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어오는 팀장님이 보였다. 팀장님이 미워서 인정하기는 싫은데, 키가 커서 그런지 저러고 있을 때면 모델 같기도 하다. 팀장님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호석 씨가 끙차,하며 일어나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담을 하다 걸린 것 같은 기분에 죄인처럼 바닥을 쳐다보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젠장, 내 인생도 참 너무하지. 그 사이 호석 씨와 내 앞으로 다가온 팀장님은 엄한 목소리를 냈다.
" 정호석 씨. "
" 네. "
" 다시 업무 복귀하시죠. "
" 네, 알겠습니다. "
굳은 표정을 짓고 걷는 호석 씨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 하자 팀장님이 내 손목을 잡아왔다. 손목에 감긴 팀장님의 손에 움찔하며 팀장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엄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상태다. 탄소 씨는 잠깐 저랑 얘기 좀 하고 갑시다. 또 혼나겠네. 망연자실하며 자리에 섰다. 호석 씨가 옥상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팀장님이 문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에 심장이 움츠러드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자 의외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탄소 씨. 아까 전과는 달리 누그러진 목소리에 그나마 안심하며 조심스레 팀장님을 쳐다보았다.
제가 무섭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만 여기는 회사다. 나는 지금 사회 생활을 하는 중이고. 그렇기에 내 감정을 모두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하아, 팀장님이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또다시 움찔. 팀장님이 화가 났을 때는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낮의 나팔꽃처럼 꽃봉오리를 잔뜩 움츠린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차마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 시선이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는지가 두려워서, 잘못을 저질러 엄마에게 크게 혼난 아이처럼,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 김탄소 씨. "
" ... 네. "
" 미안합니다. "
" ...? "
" 아까는, 제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미안합니다. "
"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
" 저는 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
" ... ... "
" 특히 탄소 씨가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면 더 기분이 나쁠 것 같습니다. "
" ... ... "
" 제가 표현 방식이 아직 서툽니다. 많이. "
그러니까, 제가 탄소 씨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만 꼭 기억해주시죠. 오히려 그 반대라고. 내 머리 위에 제 손을 올리고 다정하게 쓰다듬은 팀장님이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뒤 먼저 옥상을 나섰다. 팀장님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리에 그대로 굳은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거지. 내가 다른 이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유독 싫다고 했다. 자신의 표현 방식이 서툴어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했다. 큰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 팀장님에게 들은 말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팀장님이 나를,
" 일 안 하실 겁니까, 김탄소 씨. "
" 아, 아닙니다! "
좋아한다고.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자마자 옥상 문이 다시 열리며 팀장님이 얼굴을 빼꼼 드러냈다. 덕분에 보기 좋게 얼굴이 익어버렸다. 팀장님의 짖궂은 물음에 말을 더듬으며 걸음을 빠르게 옮기니 옥상 문을 잡고 있는 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문을 닫은 팀장님은 나를 앞세우고 뒤에서 걷기 시작했다. 아, 귀도 빨개졌을텐데. 혹시라도 팀장님이 알아챘으면 어떡하지. 심장이 콩콩 뛰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토록 미웠던 팀장님인데, 또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어디 아픕니까. 계단을 내려가기에만 몰두하다 뒤에서 들려오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그만 발을 헛디뎠다.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쑥 내려가는 내 몸을 가볍게 낚아챈 팀장님이 얼빠진 상태의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제야 아,하고 짧게 소리를 내자 내 허리에 둘러진 팔이 스르륵 풀렸다. 내 허리를 단단히 잡고 있던 손은 금세 어깨에 올려져 내 몸을 빙글 돌렸다. 덕분에 다시 무서워진 표정의 팀장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입만 벌린 채 아무런 형태소도 내뱉지 못하는 나를 보던 팀장님이 답답한 듯 내 어깨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 그러다 크게 다쳤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어떻게 된 사람이... "
" ... ... "
" 탄소 씨, 혹시 감기라도 걸렸습니까? "
" 아, 아뇨. "
" 그럼 왜 얼굴이 빨개져서는 상태가 이렇게 멍합니까? 꼭 어디 아픈 사람처럼. "
" 정말 괜찮, "
" 조퇴증 끊어드리겠습니다. 집 가서 쉬십시오. "
" 아니에요. 저 정말 괜찮은데... "
" 제가 안 괜찮습니다. 얼른 가서 쉬세요. "
단호한 목소리에 또 주눅이 들었다. 뭐, 집에 보내주겠다는데 굳이 안 갈 이유는 없지. 저런 말을 들으니 또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자 내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다시 움직이려고 하기도 잠깐, 데려다 주겠다는 팀장님의 말에 당황했다.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가 난 사람처럼 투박한 걸음 소리를 내며 내려간 팀장님이 한숨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거부하겠냐고. 결국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팀장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팀장님은 운전에 집중 중이시고, 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정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자세를 취하면 팀장님의 신경에 거슬릴까봐.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며칠 전부터 계속 야근을 하느라 어둑어둑할 때에 퇴근을 했었는데, 환한 대낮일 때 퇴근을 하니 기분이 좀 색다르긴 했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다. 멍하니 창 밖만 보고 있으려니 배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아침엔 늦잠을 자서 밥을 거르고, 점심엔 팀장님에게 올릴 보고서를 준비하느라 또 끼니를 거르고. 제대로 먹은 것은 아까 전 호석 씨가 건넸던 커피 몇 모금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팀장님의 등장으로 다 마시지 못했다.
위 속에 든 것이 없으니 배도 묘하게 앓이를 하는 것 같고, 몸이 축 늘어졌다. 어디 보자, 지금 시간이... 아직 두 시밖에 되지 않았다. 집에 가면 뭘 좀 먹어야지. 시무룩하게 차 시트에 기대고 있다 크게 들려온 꼬르륵 소리에 얼굴이 붉어졌다. 젠장, 왜 이럴 때만 크게 소리가 나는거야. 이 정도면 팀장님도 들었을 것이다.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배만 움켜잡고 있자 옆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쪽팔려.
" 김탄소 씨. "
" 네? "
" 배 많이 고픕니까. "
" ...아, 아! 그게! "
" 아까 전에 점심도 안 드셨지 말입니다. "
" 그걸 어떻게... "
" 일단 뭐부터 먹고 들어가죠. "
팀장님이 차를 돌리더니 음식점들이 널려있는 시내로 나왔다. 뭐 드시고 싶습니까. 어... 그러니까 저는... 뭘 먹고싶기는 한데, 막상 말하려니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말꼬리를 주욱 늘린 채 대답을 망설이니 팀장님은 말없이 한 음식점 앞에다 차를 세우고는 내리라며 재촉했다. 차에서 내려 음식점 외관을 둘러보자, 음... 간판에 떡하니 국밥이라고 쓰여있다. 조금 의외이긴 했다. 팀장님은 뭐, 스파게티 같은 음식만 드실 것 같이 생기셨는데. 척척 걸음을 옮겨 들어가는 팀장님을 따라 음식점 안으로 들어왔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팀장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탄소 씨. 그러다 들려온 이름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런 멍청이. 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근데, 팀장님이 날 너무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은근히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네? 순댓국밥 좋아합니까. 그런 당연한 소리를. 시선을 피했던 건 언제고, 신이 난 아이처럼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이렇게 축 처질 때면 뜨끈한 순댓국밥이 최고지, 암. 익숙하게 주문을 하는 팀장님이 조금은 인간적으로 보였다. 항상 일만 하고, 그런 로봇처럼 보이기만 했는데. 주문을 마치고 또다시 찾아온 정적은 여전히 불편하기만 했다.
" 탄소 씨. "
" 네. "
" 아까는 배가 고파서 그런 겁니까. "
" 어... 네에. "
" 제가 못됐네요. 몰아붙이기만 하고. "
" 아, 아니에요. "
" 점심도 거를 정도로 일만 시키는 상사라니. 아주 못됐죠. "
" ... ... "
" 심술 부려서 미안합니다. 그냥, 탄소 씨에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처음이라서. "
쑥스러운지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말하는 모습은 평소 팀장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팀장님이 맞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래 다정하긴 했어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어딘가 부끄러운 말을 들은 내 얼굴 또한 화끈해지는 느낌이었다. 자책을 하고, 어리숙한 모습이 팀장님 같지 않았다. 내 머릿 속의 팀장님은 그야말로 워커 홀릭이었다. 완벽하고, 냉정하고, 일을 사랑하는, 그런.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팀장님이다.
주문한 게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둘 다 말없이 먹기만 했다. 이 상황이 불편해서 그렇기도 했고, 일단 나는 배가 고팠으니까. 숟가락을 움직이는 소리, 음식을 먹는 소리만 들려왔다. 있다가 음식을 다 먹고나면 또 어떡해야하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나도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 것 같기는 한데, 머릿 속이 멍하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계처럼 먹기만 할 뿐, 영혼이 나간 상태로 시간을 보내버렸다.
" 티, 팀장님! "
" ...? "
" 커피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
정적 속의 식사가 끝난 후, 내 몫까지 계산을 해 버린 팀장님 탓에 어색함이 더욱 더해졌다. 차를 세워두었던 곳으로 걷다 문득 발견한 카페에 무턱대고 팀장님의 옷깃을 잡았다. 더듬거리며 눈을 질끈 감고 내지른 말에 팀장님은 다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와, 하마터면 진짜 어색할 뻔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 팀장님과 함께 조그만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몰릴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카페 내부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주문을 하러 우뚝 선 카운터 안에는 여자 직원과 남자 직원이 하나씩 있었는데, 아마도 사귀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저렇게 깨를 볶는 걸 보면.
" 뭐 드실래요, 팀장님? "
" 저는 그냥 아메리카노면 됩니다. "
" 아, 네. "
그럼 나는 뭘 먹지. 고민을 하며 메뉴판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외간 남자의 음성이 대뜸 들려왔다. 아, 그 남자 직원이구나. 여전히 여자 직원과 가까이 붙은 채로 웃음을 지으며 메뉴 추천을 해주겠단다. 잘생기기는 했다, 정말. 단 거 좋아하세요? 네, 짧게 대답을 하자 그럼 화이트 초코 모카가 어떻겠냐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내 옆에 있는 팀장님 탓에 아예 넋이 나가진 않았다. 직원이 추천해준대로 주문을 한 뒤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며 벽에 기대섰다.
" 좋습니까. "
" ... 예? "
" 저 남자 직원 말입니다. "
" 팀장님 지금 질투, "
" 제가 무슨 질투입니까. 사귀지도 않는데. "
" 질투 맞으시죠, 그쵸. "
어느새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내 옆에 서 있는 팀장님을 보고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질투 맞네, 이거. 해맑게 웃음을 터뜨리자 팀장님이 머쓱한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있으니 여전히 카운터에 있던 여자 직원이 직격타를 날려왔다. 두 분 혹시 커플이세요? 저런, 순간 웃다가 사래가 들려 기침을 컥컥 해대자 팀장님이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궁금한지 눈을 빛내는 여직원에게 떨떠름하게 웃어보이고 있자 팀장님이 내 어깨에 제 팔을 둘러왔다.
" 아마 곧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
" ... 팀장님? "
" 와, 사내연애예요? 로맨틱하다. 석진아, 나도 빨리 취업할까. "
" 우리도 나름 사내연애거든.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
그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나는 대체 어쩌라고. 여전히 내 어깨에 두른 팔을 내리지 않은 채 여직원과 투닥거리는 남자 직원에게서 커피 두 잔을 받아온 팀장님이 고개를 끄떡하며 인사를 한 뒤 카페 밖으로 나왔다. 티, 팀장님, 팔 좀...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한 것을 용케 들었는지 팀장님이 황급히 팔을 내리고는 내게 커피를 건넸다. 아, 미치겠다. 정말로. 팀장님과 차마 눈도 못 마주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걷기만 했다. 그러다 차 앞에 도착해 차에 올라타면 또 정적만 가득하고. 아까 전보다 더욱 불편해진 상황에 그저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꼼지락대며 멍을 때릴 수 밖에 없었다.
" 탄소 씨, 다 왔습니다. "
" 아, 감사합니다. 데려다주셔서. "
" 아닙니다. "
기다렸다는 듯 차 문을 열고 튀어나가자 팀장님 또한 같이 차에서 나왔다. 정말 어색해 죽겠네. 감사 인사까지 했는데,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팀장님의 모습에 눈만 멀뚱히 깜빡대고 있자 팀장님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 푹 쉬고, 내일 나오세요. "
" ... 내일 토요일인데요, 팀장님. "
" 아. "
" ... ... "
" 그럼 데이트나 합시다. 데리러 올게요. "
" ... 네? "
" 좋아합니다, 탄소 씨. "
" ... ... "
" 그럼 내일 봅시다. "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조개를 만든 팀장님이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팀장님의 폭풍같은 발언 덕에 차가 출발할 때까지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다 움직이는 차를 보고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팀장님과의 강제 데이트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떡하지, 나 지금 얼굴 완전 빨개졌어.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트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니까 나도, 팀장님이 싫지는 않았다.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라는 단어만 온통 머릿 속에 가득했다. 내일 뭘 입어야하지. 괜히 심장이 간질거리며 떨려왔다. 팀장님은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같아. 머리를 헤집으며 앓는 소리를 내다 결국 입꼬리를 둥글게 올려버렸다.
팀장님, 우리 팀장님. 이제 곧 사내연애 시작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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