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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에 놓여있다. 회사 과장 딸의 결혼식에 온 종인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결혼식을 왜 보고 있어야 하나 짜증이 날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종인은 그저 앞에 놓인 단 초콜릿 쿠키를 집어먹기만 한다. 그나마 같이 온 회사 직원들이 있어 간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들도 실없는 내용들뿐이다. 집에 가고 싶다, 배고프다, 그리고 과장의 사위가 될 사람에 대한 평 같은 그런 영양가 없는 대화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와 그런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짓는 그들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결혼에 대해 1%도 환상이 없는 종인은 그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결혼하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인가? 지금 저렇게 좋아해도 결국 사랑 아닌 정으로 사는 관계가 되겠지. 앞에 놓인 트리 모양의 초콜릿 쿠키를 집어 먹으며 생각한다.

“와 종인씨 저 둘 너무 예쁘지 않아요? 모르는 사이인 내가 봐도 정말 행복해 보이네. 부럽다”

“네 그러네요.”

영혼 없이 대답한 종인이 트리모양 쿠키를 하나 더 집어 먹는다. 그렇게 멍하니 쿠키를 우물우물 거리고 있을 때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웬 각종 각목들과 판자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리고는 드럼이 들어오더니 베이스와 기타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들어온다. 장내는 소란스러워 졌고 다들 예상하지 못한 일인 듯 당황스러워 했지만 식장 스텝들은 예상된 일 인 듯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결혼식과 관련 없는 외부인의 출입에도 미동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스텝들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종인이었다. 그리고 곧 중간 무대에 흰 천막이 걸렸고 천막 뒤에선 무언갈 설치하는 듯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다 거렸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었고 잠시 뒤 둥두두둥 하는 드럼 소리와 함께 흰 천막이 내려가고 수트를 맞추어 입은 밴드가 등장했다. 그리곤 밴드의 연주 소리와 함께 보컬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박”

옆에 있던 여사원이 중얼거렸다.

“네. 정말 대박이네요...”

종인도 중얼거렸다. 밴드가 등장하고 나서부터 종인의 눈은 밴드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간에서 마이크를 꼭 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밴드의 보컬에게서 말이다. 작은 체구의 남자에게서 강단 있는 음색에 한 번 놀랐고, 남자다운 얼굴이지만 동글동글하게 큰 눈이라든지 묘하게 귀여운 얼굴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그런 남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종인에게로 닿았다가 사라졌다. 그 잠깐의 마주침에 종인은 강한 찌릿함을 느꼈다. 마치 고딩 시절 짝사랑 하던 아이와 수업시간에 눈이 마주쳤을 때의 기분 같았다. 첫 눈에 반하기라도 한 건지 종인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다시 남자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런 종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다시 남자의 시선이 종인에게로 닿았다. 그리곤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둘은 계속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종인은 입모양으로 ‘예뻐요’라고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리는 입모양을 알아들은 건지 남자의 눈은 크게 뜨이더니 방긋 웃음을 지었다. 남자의 웃음과 함께 노래는 끝이 났다. 식장 곳곳에서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터졌고 종인의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밴드 ‘프레시’ 입니다. 우선 이렇게 갑작스러운 무대에도 열렬히 환호 해주신 하객 분 들게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희는 여기 계신 신랑 분께서 초청해주셨습니다. 신부님께 깜짝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고 하셔서 저희가 이렇게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하영 신부님 저희의 공연 마음에 드셨나요?”

감동한 신부는 눈물을 흘렸고 신랑의 품에 안겼다. 그런 모습을 남자는 마치 제 일 인양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저기요”

그렇게 감동적인 모습에 훈훈한 분위기였던 식장이 어떤 남자의 부름에 조용해졌다. 종인이었다.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종인의 모습에 모든 시선이 쏠렸고 옆의 동료들은 벙찐 표정을 지으며 당혹감에 종인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듯 종인은 남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에요?”

뜬금없는 종인의 질문에 울고 있던 신부도 신랑도. 양 부모들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남자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 다면 저 질문에 대답을 해도 될까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했다.

“..네. 저흰 괜찮아요.”

신부가 허락의 대답을 해주었다.

“제 이름은 도경수입니다.”

남자의 이름은 들은 종인은 그제야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그 천진한 웃음에 그들을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도경수.도경수.도.경.수. 사람들이 웃든 말든 종인은 남자의 이름을 마치 각인하듯 혀에서 굴렸다. 입 안에서 맴도는 이름은 계속 저가 집어먹던 트리모양의 초콜릿 쿠키보다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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