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 나 잠이 안 와.
어두운 방 안, 창문 밖으로도 빛은 들어오지 않았고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만이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문제집을 덮고 태형은 서랍 속을 뒤적이다 하나 낡은 엠피쓰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바닥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 건넸다. “이거 듣고 있어. 그럼 금방 잘꺼야.” 태형에게 엠피쓰리를 건네받은 아이는 작고 오동통한 손으로 기계를 만지작 거렸다. 아무래도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았다. 그런 어린 아이에게 물건을 건넨 자신이 웃긴 건지 태형은 웃으며 아이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었다. 이윽고 모서리에 있던 버튼을 꾹 눌러 엠피쓰리의 전원을 켰다. 아이의 귓 속으로 맑은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방 밖으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웃고 있던 태형의 입꼬리는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가듯 내려갔다. 쾅! 이란 소리와 함께 문이 거세게 닫히고 태형은 유유히 버튼을 움직여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이, 새끼들은 …애비가 들, 들어왔는데. ”
태형과 어린 아이를 거친 단어로 표현하는 사람의 말투는 알아 들을 수 없을만큼 꼬여 있었다. 뒤이어 쿵쾅대며 걸었고 태형은 한 노래를 재생시켰다. 노랫소리가 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이 도착한 아이의 몸은 떨고 있었다. “…형, 형아. ” 어린 아이는 '형'이란 단어를 애타게 부르며 태형의 소매만을 잡고 있었다. 따라서 아이의 손을 꽈악, 따뜻하게 잡은 태형은 어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웃어 보였다. “노래 들으면서 자고 있어.”
태형은 방에서 나와 남자가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걸음을 내딛는 태형의 발 끝에는 이유 모를 힘이 들어가 있었다. 태형의 주먹도 마찬가지였다. 방 문을 열자 남자는 이미 한 껏 취해있는 몸을 끌고 술 상을 벌여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미 내용을 비운 술병들이 쌓여 있었다. 태형이 들어오자 남자는 고갤 들어 태형을 올려다 봤다.
“어린 놈은 어디, 다 두고 니가 오냐?”
“자요.”
“이 망할 것이, 애비가 이 시간까지 안 들어, 왔는데 쳐 자고 있어?”
“안 자면,뭐 하시게요?”
남자의 말에 지지 않고 대답하는 태형이었다. 태형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남자를 쳐다봤지만, 말투와 주먹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니 새끼. 들으면 내가 허튼 짓이라도 하는 거 같다?” 태형의 말에 흥분 한 채로 일어나 태형 쪽으로 걸어오는 남자에 태형은 마른 침만 삼켰다. “맞잖아요. 어린 아이한테 허튼 짓 하는거.” 말을 할 수록 태형은 주먹을 더 세게 쥐었다.
“이 개새끼가.. 내가 닐 낳지 않아야 이 꼴을 안 당하는데, 씨발. 이 망할 세상아!”
“그러니까 왜 낳으셨어요.”
그래야 당신도 편하게 살고 나와 동생도 웃으며 살 수 있는데. 태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는 태형의 얼굴을 내리쳤다. 애비한테 그게 말하는 꼬라지냐? 일방적인 남자의 폭력이었다. 훈계의 정도를 넘어선 폭력에 태형은 넘어졌고 놓치지 않고 남자는 태형에게 발을 휘둘렀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못난 놈이 널 낳은 잘못이라고. 그래서 꼽냐? 싫어? 나같은 놈이 너라도 낳아서 세상을 살게 해주면 감사하다 하면서 조용히 살 것이지. 아들이란 자식이 애비한테 하는 말이야? 쉴새없이 남자는 태형을 때리며 말을 뱉었고 말없이 태형은 맞고만 있었다.
“인생 다 포기해가며 너네를 키운게 나야. 그런 애비가 덕 볼 곳이 없어서 너네한테서 덕 좀 보겠다는데, 그게 싫냐고. 새끼야!”
“그 어린 놈, 어차피 여기서 이렇게 살면 결혼도 못 해. 어느 누가 가난한 남자를 만나! 그래서, 내가 미리 좀 보여주겠다는데. 싫냐고 씨발 새끼야.”
“왜. 너도 똑같이 해주리? 니 동생처럼?”
한 번 더 발을 들어 남자가 태형을 때리려던 순간, 태형은 남자의 발목을 잡고 넘어트렸다. 곧바로 태형은 남자 위로 올라타 사정없이 흔들리던 주먹으로 남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그 말, 한 번 더 뱉어 봐. 남자가 말을 하려 입을 벙긋 거리자마자 태형은 다시 주먹을 들어 남자를 때렸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멍투성이가 되었고 입술은 터져 피가 나오고 있었다. 수차례 남자의 얼굴을 때리던 태형의 주먹이 잦아들었고 태형은 거친 숨만 내쉬었다. 힘들어하는 태형을 눈치 챈 남자가 기회를 엿 봐 일어서려 하자 태형은 두 손을 남자의 목에 가져가 조르기 시작했다.
“…아, 아주. 좋은 형, 제 나셨어. 컥,”
“당신이 낳지 않았다면, 그 좋은 형제도 만나지 않았겠죠.”
“낳아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태형은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을 더 가했다. 방 문을 통과해 빛은 어두운 복도를 지나 조그만 틈새 사이로 작은 방에 들어가 어린 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작은 두 손으로 엠피쓰리를 꼭 쥐고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