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김태형은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기력을 되찾았다. 컨디션이 회복되기 전 김태형은 하루의 절반 가까이 잠으로 보내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그저 내가 주절주절 떠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마저도 어렵던 때는 24시간 중 15시간 이상을 자기도 했다고 들었다. 가끔은 진짜 죽은 것 아닌가 싶어 선이 일정하게 요동치는 기계를 한참이나 살펴보았다가 또 오똑한 김태형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보기도 했다. 당연히 이상이 없는 기계와 손가락에 와 닿는 따뜻한 숨결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를 수십 번, 어느 날 김태형은 기적적으로 기운을 차렸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작용한 것 같다고 아빠는 기뻐했다. 서양의학을 공부한 사람 입에서 나올만한 말인가 싶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한 번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김태형은 회복속도가 가히 괴물 같았다.
벼르고 벼르던 여름방학이었다. 물론 다음 날부터 지긋지긋한 보충을 나가야 했지만 일단 오늘 야자가 없다는 게 중요했다. 일찍 끝난 김에 병원에도 일찍 가서 김태형이 눈을 뜨고 있을 때 조금이나마 얼굴을 더 보여주려 교실 문을 나서는 내 어깨를 덥석 잡는 손길에 고개를 팩 돌려 바라보니 박지민이 나를 향해 씩 웃고 있었다.
"뭐야."
"병원 가?"
"가 봐야지. 오랜만에 김태형 컨디션 좋다. 누나 말리지 마라."
"에이, 그래도 오늘 일찍 마쳤는데 오빠랑 점심 같이 먹지?"
"안 돼. 나 가봐야,"
"맛있는 거 사 줄게."
"…뭐 먹을 건데."
박지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소리 내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망설임 없이 떡볶이라 대답하는 나에 박지민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놈의 떡볶이, 질리지도 않냐.
김태형은 떡볶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나 매운 떡볶이를 잘 못 먹었다가 매운맛 탓에 심장에 무리라도 가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나는 삼시 세끼를 떡볶이로 때울 수 있을 만큼 떡볶이를 좋아했다. 박지민의 말을 빌리자면 거의 떡볶이에 환장한 사람, 정도가 되겠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멋도 모르고 하굣길에 500원에 파는 컵 떡볶이를 사서 나 혼자 냠냠 먹으며 함께 병원으로 오곤 했는데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난 후에는 김태형 앞에선 일절 떡볶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떡볶이가 김태형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김태형이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을 때는 박지민과 나 단둘이서만 종종 만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박지민을 분식집으로 끌고 갔다. 처음에는 좋다고 따라오던 박지민도 이제는 오롯이 떡볶이만 고집하는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서울에 있는 떡볶이 절반은 네가 다 먹었겠다.
"웬일이래. 점심도 사고. 할 말 있냐?"
박지민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익숙하게 주문을 넣은 뒤 먼저 나오는 물을 따라 박지민에게 건넸다. 내가 건네는 컵을 한 손으로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컵을 내려 두 손으로 감싸 쥔 박지민의 얼굴이 옅게 상기되어 있었다. 날이 많이 덥긴 하지. 박지민의 얼굴을 한참 살피던 차에 박지민의 입이 느리게 열렸다.
"김태형, 말이야."
"어. 걔가 왜?"
"…몸은 좀 괜찮대?"
박지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김태형이 학교를 쉬고 난 뒤로 박지민은 단 한 번도 김태형의 병실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 큰 맘 먹고 병원 앞까지 와서도 이내 못 들어가겠다며 걸음을 돌리곤 했다. 박지민 이 새끼는 친구가 아프다는데 찾아오지도 않고. 김태형은 알게 모르게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박지민에게 전했지만 박지민은 요지부동이었다. 얼굴 한 번 보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내 물음에도 박지민은 대답을 미루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면 와서 얼굴 봐."
"……."
"김태형이 엄청 서운해하는 건 아냐? 나한테 네 욕을 그렇게 한다고."
"……."
"왜 안 오는 건데? 김태형이 너 잡아먹기라도 한대?"
떡볶이가 나와 우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포크와 숟가락을 박지민 앞에 가지런히 두고 내 몫의 포크와 숟가락도 챙긴 뒤 바로 떡볶이를 찍어 입에 넣었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만 보고 있던 박지민이 푸스스 웃었다. 우리 돼지는 뭘 먹어도 복스럽게 잘 먹지. 돼지라는 말에 발끈하려다 이내 물주가 박지민이라는 것을 빠르게 인지하고 입에 든 떡만 오물오물 씹었다.
"아니 그래서, 왜 안 오는 거냐고."
"무섭잖아."
"뭐가. 병원 한두 번 가 보냐?"
"그거 말고."
"그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김태형이 더 아플까 봐."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막 입에 들어있던 떡을 삼키고 새로운 떡을 집어 올리려던 차에 들려온 먹먹한 박지민의 목소리에 나는 떡볶이로 향해있던 시선을 박지민의 얼굴로 옮겼다. 답지 않게 축 처진 표정이 꼭 김태형이 풀 죽었을 때를 연상시켰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전에, 김태형 학교에서 쓰러지고 나서 너랑 보러 갔을 때."
"……."
"…몰랐는데 애가 너무 마른 거야."
"……."
"…진짜 곧 죽을 것 같잖아, 김태형."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 날 이후 하도 덤덤하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속으로는 이렇게 앓고 있었을 줄이야. 그럴 만도 했다. 김태형을 평생 봐온 나와 기껏해야 2년 반 정도 봐온 박지민은 분명 김태형의 상태를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있을 터였다. 내가 그걸 생각 못 했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박지민의 가지런한 머리 위로 손을 턱 얹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박지민과 눈을 맞추며 손으로 박지민의 머리를 작게 헝클었다.
"김태형이 왜 죽냐."
"……."
"걔가 죽는다는 말 입에 달고 살아서 그렇지,"
"……."
"…안 죽어."
아마도.
*
그야말로 찌는 듯이 더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뉴스에서는 백 년 만의 무더위라며 떠들어댔고 그나마 조금 선선해야 할 저녁에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에도 학교는 부지런히 우리를 불러냈다. 고3인 게 죄라면 죄였다. 그래도 정규수업보다 시작하는 시간이 늦어 나는 꼬박꼬박 김태형에게 들렀다 학교에 가곤 했다. 김태형은 완전히 기운을 차렸지만 절대 밖으로 나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아빠의 엄명에 꼼짝없이 병실에 갇혀있어야 하는 신세였다. 평소 같았으면 하루만 보충 빼고 저와 놀아달라고 보챘을 김태형도 수능이 15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 별말 없이 나를 보내주었다.
9시부터 5시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서 문제집만 들여다보고 있는 단순노동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나마 에어컨을 틀어주니 망정이지 에어컨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을 것이었다. 3시를 기점으로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인 것을 분간하는 것조차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박지민은 이제 숫자만 보면 구역질이 난다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샤프를 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자습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는 책상 위로 어지럽게 널브러진 문제집을 싹 쓸어 가방에 처박았다.
"야, 박지민. 일어나. 학교 끝났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 박지민의 어깨를 툭툭 치자 번쩍 머리를 들어 올린 박지민이 입가를 손등으로 쓸며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종 쳤어? 어딘가 어눌한 발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지민의 등을 퍽 소리 나게 내리쳤다. 정신 차리고 집에 가자!
"데려다줘?"
"됐네요.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무슨. 빨리 집에 가서 잠이나 자."
너 볼 눌려서 빨개졌다. 내 말에 박지민이 쑥스러워하며 연신 제 볼을 매만졌다. 버스에서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 놓치지 말고 잘 들어가라는 내 말에 박지민은 대답 없이 손만 휘휘 저으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박지민의 뒷모습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다 이내 나도 걸음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지는 햇살이 머리 위로 닿았다. 이제는 해가 질 때까지도 거뜬히 버티고 있는 김태형 생각에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병원에 도착해 매일 보는 간호사 언니들에게 가볍게 눈인사 후 김태형의 병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태형아, 누나 왔다!"
"왔어? 안 더워?"
김태형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았다. 누워있던 몸을 발딱 일으켜 제 침대 옆 작은 냉장고에서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주스를 집어 들고 내게 건네는 김태형에게 씩 웃어주며 그 자리에서 주스 뚜껑을 따 마셨다. 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태형이 헐렁한 환자복 소매를 잡아 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하지 마, 냄새나. 내 만류에도 김태형은 꿋꿋하게 소매로 땀을 훔쳐내었다.
"하루종일 뭐 하고 있었어?"
"어…, 네 생각?"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진 네 닭살스러운 말에 낮은 보호자 의자에 앉아 네 침대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에 턱을 괸 채 너를 바라보다 몸을 부르르 떨며 상체를 일으켰다. 심장이 답지 않게 쿵쿵 뛰었다. 그, 그런 거 말고. 김태형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튀어나온 말조차 더듬어 사과처럼 얼굴이 붉게 변한 나를 한껏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김태형이 내 머리 위로 손을 얹어 결대로 쓸어내렸다. 귀여워 죽겠어, 하여간.
"아까 낮에 요 앞에 잠깐 나갔다 왔어."
"아빠가 뭐라고 안 하셨어?"
"답답해서 못 참겠다고 제발 한 번만 나갔다 오면 안 되냐고 빌었더니 갔다 오라시던데."
"너 그렇게 내보내고 아빠 진료실에서 너 내내 내려다보셨을 걸."
"안 그래도 벤치 앉아있다가 진료실 쪽 올려다봤는데 선생님이랑 눈 마주쳤어."
너무나도 아빠다운 행동에 김태형과 나는 눈을 맞추며 쿡쿡 웃었다. 밖에서 얼마나 있었냐는 물음에 10분 정도 있다가 너무 더워서 다시 들어왔다는 김태형이 오늘따라 유난히 풀 죽어 보였다. 아파서 그렇지 만약 김태형이 병원하고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면 분명 여행작가 따위를 했을 게 분명할 만큼 김태형은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사람한테 병실 감금이라니.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텅 빈 병실을 잠시 둘러보던 내가 목소리를 확 낮춰 소곤소곤 물었다.
"이모 어디 가셨어?"
"집에 가셨어. 저녁 드시고 늦게 오실걸."
"삼촌 퇴근은?"
"늦으실걸? 요새 바쁘시대."
그렇단 말이지. 김태형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들어 깊숙이 들어있던 지갑을 꺼내 들었다. 나가자. 입을 벌리고 있는 가방은 김태형의 침대 발치에 던져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만 보던 김태형이 이어지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어딜 나가."
"한강."
"한강?"
"빨리. 지금 아니면 너 못 나간다."
아, 맞다. 너 산소호흡기. 지갑만 챙겨가려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산소호흡기를 챙겨야 했다. 발치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다시 집어 들고 들어있던 문제집을 죄다 꺼내 그 옆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내 몫으로 가지고 있던 산소호흡기와 김태형 몫의 산소호흡기까지 모조리 챙기고 강바람이 조금 매서울세라 옷걸이에서 김태형의 가디건까지 챙겨 넣은 가방을 둘러맬 때까지 김태형은 나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안 갈 거야? 내 물음에 허둥지둥 양말을 끼워 신고 운동화를 챙겨 신은 김태형이 불안한 얼굴로 내 팔목을 붙잡았다.
"우리 이래도 괜찮을까?"
"괜찮아. 나 아빠한테 문자 넣어 놓을 거야."
"그래도…."
문자를 넣어놓는다는 내 말에 어느 정도 표정이 풀렸지만 그래도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는 김태형의 옷 소매를 잡아끌었다. 가자. 잠시 사복으로 갈아입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그냥 환자복을 입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미 새를 따르는 아기 새처럼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김태형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네, 우리 태형이.
[아빠 나 김태형 데리고 한강 가요]
[핸드폰 끌거야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나 산소호흡기도 갖고 가니까]
이제 나도 모르겠다. 아빠의 답장을 받기도 전에 그냥 핸드폰 홀드 버튼을 꾹 눌렀다.
…아무래도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올 걸 그랬나 보다. 병원 앞 버스정류장까지만 해도 바로 앞이 병원이니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은 버스에 타자마자 호기심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비쩍 마른 애가 환자복을 입은 채로 버스에 탔으니 궁금할 만도 했다. 김태형은 노골적인 시선이 불편했는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꿈쩍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타보는 버스가 반가울 법도 한데 꼼짝도 않는 김태형이 문득 안쓰러웠다.
"멀미 안 나? 괜찮아?"
"괜찮아."
"사복 갈아입고 올 걸 그랬나?"
"……."
"…많이 불편해? 다시 갈까?"
"괜찮대도."
김태형의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지는 에어컨 바람이 김태형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흩트려뜨렸다. 제 눈치를 살피는 나를 눈치챈 듯 김태형은 그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어컨 바람 안 추워? 또 한 번 제게 돌아오는 내 물음에 김태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풋 웃었다. 한강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끝물인 햇살이 김태형의 뒤통수를 발갛게 물들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햇살이 닿은 김태형의 뒤통수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따뜻한 온기가 퍼진 김태형의 머리는 약간 푸석푸석했다. 이것도 약 기운 탓이겠지. 한 번 닿은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기가 어려웠다. 연신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내 어깨 위로 김태형이 제 머리를 뉘었다. 자그마한 머리가 어깨로 내려앉자 나는 그제야 가까스로 손을 내렸다.
"피곤해?"
"조금."
"내내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피곤하냐."
"누워있는 것도 에너지 소모 어마어마하거든."
김태형의 투정 어린 목소리에 픽 웃으며 김태형의 머리 위로 내 머리를 기대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김태형이 사귀자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박지민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김태형 너한테 고백하기 전까지 고민 엄청나게 했을 거라고. 저한테도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좋아한다고 만나달라고 얘기하는 거 욕심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김태형이 만약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고백할 마음을 접었더라면 나는 그냥 그렇게 물 흐르듯 김태형을 놓쳤을까.
"너 머리 감을 때 트리트먼트 써?"
"써. 쓰지. 왜, 내 머리카락에 무슨 문제 있어?"
"…상했어. 앞으로 더 열심히 써. 옛날에는 보들보들했는데."
"아, 그거 지금 먹는 약 독해서 그럴걸. 어쩔 수 없어."
나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즈음 해서 분명 내가 먼저 김태형을 잡았을 거라고, 김태형이 싫다고 밀어내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러니 김태형에게 그거 욕심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끝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겨우 네가 앓는 병에 흔들릴만한 감정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머릿결이 영 신경 쓰여 넌지시 던진 말에 김태형은 태연히 내가 둘러가려 했던 단어를 직설적으로 꺼냈다. 아, 그렇구나. 급히 대화를 마무리 지었지만 아려오는 속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김태형에게 기대었던 머리를 들고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김태형의 윗머리는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동글동글, 예쁘네.
"태형아, 김태형.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어, 어."
"졸지 마. 기껏 데리고 나왔더니."
한강공원에 도착할 무렵에는 해가 완전히 져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는 김태형을 끌고 내리자 더운 바람이 훅 끼쳤다. 가뜩이나 말라 한참이나 남는 김태형의 환자복이 바람에 펄럭였다. 마른 몸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아 뒤로 매고 있던 책가방을 앞으로 바꿔 매 가지런히 개어두었던 가디건을 꺼내 들었다. 도로 가방을 뒤로 맨 뒤 까치발을 들고 김태형의 어깨에 가디건을 둘렀다. 내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던 김태형이 얌전히 가디건 소매에 팔을 끼워 넣었다.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른 저녁임에도 강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도 보였고 단체로 잔디 위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는 무리도 보였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던 터라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가 부러웠던 것이었다. 아, 날씨 좋다. 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는 나를 보며 김태형은 예쁘게 웃었다.
"공주야."
"응?"
"너는 진짜, 어떻게 매일 봐도 예쁘지?"
"어, 뭐야. 나도 너 매일 봐도 잘생겼던데."
곧 죽어도 저런 말은 해주지 않는 나를 알고 있던 김태형이 제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고? 벙쪄서 나를 바라보는 김태형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럽고.
"이런 말 자주 해야지, 이제."
"……."
"그래야 우리도 좀 연인 같고 그럴 것 같아서."
말을 마친 내가 샐쭉 웃자 김태형은 한껏 감격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뭐야, 나 진짜 죽을 때 다 됐나 봐. 너한테 이런 소리를 다 듣고. 또다시 죽는다는 소리를 입에 올린 김태형에게 한소리 하려다 그냥 손을 올려 네 등을 토닥였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현재. 현재에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면 다 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다지도 사랑스러운 너를 내가 어떻게 먼저 놓을 수 있을까.
"사랑해."
"……."
"사랑해, 태형아."
나를 품에서 떼어놓은 김태형이 내 양 볼을 두 손으로 잡았다. 김태형의 손은 남들보다 유달리 커 내 양 뺨을 모조리 덮고도 남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김태형의 얼굴에 눈을 질끈 내리감고 숨을 꾹 참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닿지 않는 입술에 실눈을 뜨자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을 두고 나와 얼굴을 마주한 김태형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놀란 내가 눈을 번쩍 뜨며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김태형의 입술이 닿았다. 지그시 내리감은 김태형의 눈 위로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그림자를 뻗어내는 것까지 보고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주위를 감싸던 소음이 그대로 사라졌다. 이 넓은 곳에 오롯이 우리 둘만 존재하는 듯 세상이 고요로 들어찼다.
나는 어리석게도, 너와 내가 입을 맞춘 순간 온 세상이 우리를 위해 침묵해 준 거라 믿어버렸다.
돌아가자마자 김태형의 병실을 지키고 있던 아빠에 의해 나는 크게 혼이 났다. 원래 김태형도 혼쭐이 날 예정이었지만 간만에 오랫동안 밖에 있어서 그런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려 어쩔 수 없이 연기되었다. 김태형의 부모님께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태형의 상태를 살피던 아빠가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닫으셨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하면 태형이 방에 자물쇠를 걸어놓겠다는 아빠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빠에게 나는 오늘 죄인이었기 때문에.
*
안녕하세요, 썸머비 입니다.
쓰차가!!!!!!! 풀렸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조심 인티 하겠습니다ㅠ_ㅠ
오늘 진짜로 분량조절 실패했네요... 앞에 지민이와 여주 부분을 빼자니 너무 짧아지고 넣자니 너무 루즈해져서 고민 많이 했는데 그냥 넣었습니다.
지루하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네요;ㅅ;
독방에서 보고 오셨다는 분들이 많아서 독방에 글 제목을 몇 번 검색해 봤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추천해주셨더라구요.
아이구... 진짜 저 너무 기분 좋아서 전부 스크랩하고 다녔습니다ㅋㅋㅋ 감사해요! 재밌으셨다니 넘나 다행인 것;ㅅ;
사담이 길었네요.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하고자 하는 일 전부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암호닉♥
자몽사탕 짐잼쿠 뿡뿡이 8개월 사이다 설레임 태태
잘난태태 비비빅 짜근 두글 ♥사랑둥이♥ 이프 0103
복동 소녀 어썸태태 맹공자 자몽에이드 자몽석류 또또
순대곱창 태행시 남준이몰래 어른공룡둘리 하늘 백일몽
방탄을보면짖는개 짐짐 별님달이 탱탱 눈누난나 녹둥
큰사자 민군주 당근 카라멜마끼아또 삼일 민슉아슈가
쩡구기윤기 쿠마몬 현지짱짱 ♥옥수수수염차♥ 덩율곰
용용 피터팬 1230 112 김태형 꾸엥 꾸까 자몽에이슬
초코파이 람이 물망초 꽁꽁 첼리
+)내 암호닉이 빠진 것 같다 싶으신 분은 댓글로 한번만 더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ㅅ; 제가 못 봤을 가능성이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