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권X우지호] 내 달팽이관에는 해파리가 산다 10

[김유권X우지호] 내 달팽이관에는 해파리가 산다 10 | 인스티즈

그 날 밤도 유권은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던지 보기 힘든 애교도 부리고,

눈이 마주칠 때 마다 두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었던 우지호의 얼굴이 아른거려서였다.

웬만한 여자보다 예쁜 목선하며,

미술실 창가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시도록 빛나던 하얀 피부.

붉은 입술과 길게 찢어져 살짝 올라간 눈매는 유권을 미치게 만드는 킬링파트.

반대로 남자다운 콧날과 날렵한 턱선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눈에 뭐가 씌었나.

아무리 깜박여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얼굴은 잊혀지지 않았고 유권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난 우지호를 좋아한다.

결론짓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평소에도 큰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도 있지만,

그런 사소한 것을 고민하기에는 이미 마음이 너무 커져버려서였다.

유권에게 가장 큰 고민은 하나였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잘못했다간 영영 남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유권은 머리를 감싸쥐고 침대를 뒹굴었다.

복잡한 거 싫은데.

학교에서도 파리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유권을 깨운 건 박경이었다.

"권아. 쟤네가 하는 얘기 들었어? 아니지?"

"..무슨 얘기?"

경은 잠이 덜 깬 상태로 눈을 껌벅이는 유권을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사실일리가 없지. 나도 참, 쟤네가 너무 지x을 구체적으로 떠는 바람에-"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왠지 우지호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유권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뒤 물었다.

"무슨 얘기냐고."

"그저께 너가 우지호 들쳐업고 집 들어갔다던데.

백퍼 우지호랑 너랑... 알지?"

경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끝이 없구나.

우지호는 어째서 항상 이런 모습으로 소문에 등장해야만 하는걸까.

다른 놈들도 우지호의 매력을 눈치챘다는 뜻일까.

떠오르는 잡생각을 밀어두고 유권은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경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걔 그저께 쓰러졌었어. 난 집 가다 봤고.

그 때 나 밖에 없어서 내가 들쳐업고 걔 집까지 셔틀 노릇했다.

오해할 만 하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을 끝마쳤다.

경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짜 어디 아픈가보네."

"그런가 보지."

"애들한테 아니라고 설명해야겠다."

덧붙이고는 휑하니 일어나버리는 모습이 어딘가 싸늘했다.

기분 탓인가.

유권은 중얼거리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얜 또 왜 이렇게 안와.

박경이 돌아왔을 때 표정은 더욱 심각했다.

"전교에 소문 쫙 났어.

너네 둘이 그렇고 그렇다고.

내가 몇명한테 입막아달라고 부탁하긴 했는데.."

"뭐가 그래?"

우지호였다.

뒤늦게 와서는 박경의 뒤에서 자기 의자를 잡고 불안하게 서있었다.

"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의 얼굴을 바라보던 우지호는 고개를 돌려 유권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유권은 잠시 고민하다 경의 표정을 확인했다.

경은 말해줄 기미가 없어 보였다.

"너랑 나랑 사귄대."

많이 순화된 표현이었다.

경은 비교적 안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저번에 내가 너 집 데려다줬잖아. 그거 보고 애들이 오해했나봐. 심심해서 떠들어대는 거겠지"

유권은 지호를 안심시키려 최대한 담담히 말했지만 지호의 눈은 점차 젖어갔다.

꽉 다문 입술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권아.. 나 때문에.."

토해내듯 뱉어낸 사과에 유권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너 때문이라니?

"미안해.. 진짜 미안해.."

지호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왈칵 쏟아냈다.

경은 힘없이 주저앉아 마냥 눈물을 흘리는 지호를 토닥이며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에이, 지호야. 이게 왜 너 잘못이야.

애들이 혈기 왕성한 시기에, 어? 사내새끼들끼리 놀 것도 없고.

그래서 심심해가지고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뱉는거야.

너 잘못 아니라니까?"

일부로 평소보다 한 층 더 높은 톤으로 지호를 위로하는 경을 보며 유권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호는 조금 가라앉은 듯 딸꾹질을 하며 눈물을 닦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나 때문에.. 권이까지 엮인거니까.."

"아냐 진짜. 야 김유권! 뭐라 말 좀 해봐!"

경은 토닥이던 도중 갑자기 고개를 들어 유권에게 말했다.

"아.. 어. 너 잘못 아니야. 진짜."

"기대한 내 잘못이지. 에휴"

머뭇거리다 아무렇게나 얼버무리는 유권을 장난스럽게 노려보던 경은 지호의 얼굴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아이고. 고만 좀 울어. 아침부터 사내시끼가. 뚝."

"흐, 그러게, 창피하다. 흡."

지호는 꽉 막힌 코를 풀다가 머쓱한지 헤헤, 웃어버렸다.

바라보는 경과 유권의 얼굴에도 엄마미소가 가득했다.

경이 휴지를 가져오겠다며 일어서자 유권은 지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는 모습까지 사랑스러웠다.

문득 지호가 유권을 바라보며 살짝 웃자 유권도 미소지었다.

'미술실에서 보자'

유권의 입모양을 본 지호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경이 오자 유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휴지로 지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