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et
마이 펫
“넌 반인반수가 실제로 존재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정신차려, 미친년아.”
툭 머리를 밀치는 김태형을 노려봤다.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미친년 취급 할 만한 질문이 맞기는 한데……. 그 일이 나한테 실제로 일어나 버렸잖아? 그럼 그게 더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 이 희귀한 광경을 남들에게 믿어 달라고 광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정말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해 (혼자) 진지한 고민을 할 뿐이었다. 토깽이는 또 집구석에서 뭐하고 있을려나. 또 화장품이나 옷이나 다 어질러 놓는 거 아니야? (빠직) 토깽이를 동거? 라고 하긴 뭐하고. 음. 아, 그래. 키우는 거지. 동물 하나를 키우는 거지. 토깽이를 키운지 정확히 열흘이 흘렀다. 그때동안 박살난 립스틱만 열개에 찢어진 옷만 수십개다. 망할 토깽이 새끼…….
“근데 너 요즘 동물 병원은 왜 가냐?”
“……엉?”
“너 동물이라면 치를 떨더니, 요 며칠동안 동물 병원 앞에 기웃거렸잖아.”
“아니, 뭐. 그냥.”
“졸라 수상해.”
“네 얼굴이 더.”
얜 진짜 쓸데없이 관찰력이 좋다. 사실 토끼는 물론이거니와 동물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던 내가 젖내나는 토끼 하나를 키우려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물론 아직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볼 날이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음이다. 사람의 모습으로 있을 때가 반이라면 반은 토끼 모습으로 있었기에 알아둬야 할 게 많았다.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녀석은 내 립스틱과 옷을 망가트렸을 땐 내가 찾지도 못 하게 토끼로 변해 꽁꽁 숨어있다가 당근 주스로 유혹하면 그제야 나타나곤 했다. 그러다 졸려 낮잠을 잘 때에도 어느 새 토끼 모양새가 되어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고 했다. 그런 모습이 가끔 귀엽게 보이기도 했고. 물론, 토끼로 변해있을 때면 털 때문에 재채기가 나는 나 때문에 금새 사람 모습으로 돌아 와 있곤 했다.
‘주인아, 미안해……. 꾸기가 사람으로 있을게!’
내가 아픈 건 죽어도 싫은 건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옆에 딱 달라 붙어 있었다. 머리 몇 번 쓰다듬어 주면 언제 시무룩 했냐는 듯 배시시 웃곤 했다. 가끔 보면 토끼가 아니라 강아지 같기도 하고……. 집에 혼자 있는 거 싫어하는데. 또 늦게 왔다고 하루 종일 귀찮게 하겠네.
“야, 나 먼저 집 가본다.”
“요즘 집도 빨리 가. 진짜 수상하다니까, 너?”
“내가 내 집 간다는데 뭔 상관? 꺼져. 내일 연락해라.”
못 말린다는 듯 손을 휙휙 내젓는 김태형에 가방을 울러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당근도 다 떨어졌던데 사가야 겠다. 요즘들어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도 하고, 신나기도 한다. 예전엔 집에 가면 힘들어 축 늘어져 있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은 토깽이가 옆에서 애교를 부리기도 했고, 또 그 토깽이를 어떻게 놀려줄까. 라는 사악한 마음을 품기도 했다. 다 반응이 재밌는 탓이지, 뭐.
당근과 초코 바나나킥을 두 손에 쥐고서 집으로 향했다. 며칠 전에 나 먹으려고 사서 들어갔던 초코 바나나킥을 하도 잘 먹길래 또 조련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에 샀다. 먹을 걸로 협박하면 말을 어찌나 잘 듣던지. 아무래도 토끼도, 강아지도 아닌 돼지가 분명했다. 먹는 거 보면 거의 대식가 수준이야, 아주.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에도 집 안에서는 우당탕 소리가 났다. 분명 문을 열면 현관 앞에서 헤벌쭉하게 서있겠지. 하고 문을 여는 순간.
“……우억!”
“주인아, 꾸기가 기다렸어. 그것도 엄청! 왜 이제 와!”
“야, 야. 이것 좀 놔 봐. 숨 안 쉬어져, 숨!”
빈틈없이 나를 꽉 끌어안는 토깽이에 손에 들고 있던 당근과 과자를 놓쳐버린 지는 오래 전이다. 어깨를 퍽퍽 내리쳐도 꼼짝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 원 참. 무슨 힘이 이렇게 세? 분명 내 얼굴은 이 힘에 못 이겨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을 거다. 이렇게 격한 환영은 처음인데, 두 번 더 반겼다간 아주 질식사로 사망할 것 같다. 겨우 떼어놓은 토깽이 얼굴을 본 나는 기겁을 할 뻔 했다. 이 망할 토깽이 새끼가 또 내 립스틱을……. 하. 이 새끼 어쩜 좋지.
“어! 이거 꾸기 당근이랑 과자야? 허얼. 꾸기 이거 엄청 먹고 싶었는데!”
“내 놔. 너 안 줄 거야. 왜 또 내 립스틱 먹었어, 어?”
“……안 먹었어.”
“입술에 떡칠을 해놨잖아, 지금. 이젠 거짓말도 치네?”
허리춤에 손을 얹고서 저를 바라보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핀다. 옆으로 제쳐둔 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오 마이 갓이다, 시발. 염병, 이 토끼 새끼……. 집 안을 아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놨다. 스타킹이든 속옷이든 코트든! 시발. 거실에 보기 좋게 흐트려져 있는 건 물론이고 화장품도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아이고, 두야. 아이고, 혈압아. 뒷목을 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걸 또 언제 치운담. 뒤로 홱 돌아 저를 노려보니 깨갱 거리며 내 눈을 피한다.
“나한테 시위하는 거지, 너.”
“미안해, 주인아….”
“아니, 집 구석에 얌전히 있을 순 없겠어? 어? 어떻게 하루를 안 지치고 이래?”
“주인이 없으니까 꾸기 심심해…….”
앞 시야도 안 보이는 채 끙끙 거리며 옷을 옮기다 차마 밑에 자리한 장애물은 보지 못 하고 립스틱을 밟아 그대로 자빠질 뻔 하는 내 허리를 누군가 낚아챔에 넘어지는 건 면했으나…….
“주인, 조심.”
“어어.”
자세가 심히 이상하다. 힘겹게 다 주워든 옷가지들은 다시 여기저기 흩어졌고, 토깽이 가슴팍에 묻어져서는 주책없이 뛰는 심장 덕에 숨을 꾹 참았다. 절대. 절대 이 자세가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놀래서 그런 거야, 놀래서.
아니, 심심하다고 집을 이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다니. 내가 매를 어디다 뒀더라. 일부로 큰 소리로 매를 찾는 나를 보고선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선 허겁지겁 토끼로 변해서는 후다닥 도망쳐 버린다. 아니, 저걸 진짜 어쩌면 좋지. 한숨을 쉬면서 옷가지들을 주워들었다. 하루 정도는 날 쉬게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걸까……. 집 오는 발걸음이 신나고 즐거우면 뭐 해? 집 들어오는 순간 와장창 깨버리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를 다드니 내가 옷에 잡아먹히는 꼴이다. 고생 많았네, 토깽이 새끼. 이 많은 걸 이렇게 흩뿌리느라.
“저 토깽이 당근 주스고 뭐고, 아주 굶겨야 겠어.”
“헉, 주인! 그건 안 돼! 꾸기 배고프면 죽을 거 같단 말이야…….”
“그건 토깽 네 사정이고. 말 안 들은 벌이야.”
“꾸기 손 들고 벌 설까? 꾸기가 잘못했어. 그런 잔인한 소리 하지 마…….”
어느새 다시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벽에 틀어박혀 고개를 박고 손을 들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주인으로서 또 마음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에 한숨을 푹 내쉬며 구석으로 옷들을 밀어넣고, 바닥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선 내 앞자리를 툭툭 쳤다.
“꾹, 일로 와.”
내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다 슬금슬금 내 앞자리로 와 앉았다. 사실 얘를 부를 때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었다. 늘 웬수 부르듯 토깽이, 토깽이 새끼. 등등 내가 봐도 정 없는 말들로 불렀는데, 가끔 이름을 불러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좋아라하는 모습을 볼때면 가슴이 찌잉하긴 해도, 뒤돌면 웬수같은 짓만 해대니 차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게 또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덩치는 산만 해서는. 큼큼 헛기침을 한 뒤 두 팔을 벌리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 금세 배시시 웃으며 품으로 파고 들었다.
“주인, 꾸기가 미안해.”
“알면 됐어. 또 이렇게 만들어 놓기만 해.”
“으응. 꾸기 이제 이렇게 안 해놓을게.”
품에 안겨 한참 부비적거리는 국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곤 손에 그토록 먹고 싶어하던 과자와 당근 주스를 쥐어주고 나서야 어지러운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해맑게 티브이를 보며 과자를 먹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이런 맛에 육아를 하는 구나, 따위의 22살 짜리의 고민 답지 않은 고민을 했다.
우리 귀여운 토깽이 새끼, 아. 아니. 우리 귀여운 꾹이 새끼.
***
“야, 김탄소. 이번 조별 과제 너랑 나랑 수정 누나, 태희 선배, 윤기 선배다.”
“돌았냐?”
“미안. 내가 막을 새도 없이 이미 그렇게 짜져있더라.”
시발, 시발. 시발! 가자미 눈이 될 때까지 김태형을 노려봤다. 저 새끼 진짜 뚫린 입이라고 막 터네. 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아니, 하필 같은 조가 되도 왜 그 놈이랑 같은 조가 되느냐고! 아침에 가지 말라고 찡찡 거리며 들러붙는 전정국 겨우 당근 주스 하나 쥐어주고 나온다고 기진맥진 힘 다 빼먹고 왔는데 여기서는 영혼 털리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야, 선배는 너 신경도 안 써. 그냥 해, 그냥.”
“미친놈아. 말은 바로 해라? 누가보면 난 신경쓰고 있는 줄 알겠네.”
“……아니었어?”
“너 아가리 막 턴다, 진짜.”
ㅈㅅ. 빠른 사과였다. 근데 사실 김태형 말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 놈은 날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만, 나는. 나는……. 그래,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지.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연애를 한 놈인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냐고! 그 2년이라는 시간동안 열렬히 사랑했다. 물론 그때를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냥 무슨 정신으로 그 놈을 만났는가, 하는 마음은 들었다. 헤어진 이유가 내게 실증을 느낀다니 그 지랄을 하며 헤어지자고 선언했으니 뭐, 할 말 다 했지.
“나 그 새끼랑 얼굴 마주보고 있으면 주먹 나갈지도 몰라. 너 내 성격 모르냐?”
“야, 진짜 너랑 내가 다른 조였으면 내가 바꿔줄 텐데 같은 조잖아. 그냥 눈 딱 한 번만 감고 하자. 우리의 A+ 를 위해.”
“열 받아서 돌아가시겠네, 진짜.”
씩씩 거리며 책상을 쾅쾅 쳐 댔다. 아니, 미친 새끼가 스물 넷이나 쳐 먹었음 빨리 졸업이나 할 것이지 왜 자꾸 내 앞에서 알짱거려? 진짜 거슬리게. 존나 토깽이 같아! 아니다. 집에 혼자 있을 토깽이 미안. 주인이 말이 심했네. 그런 인간 말종 쓰레기 새끼랑 비교해서 주인이 정말 미안해. 집 가서 맛있는 당근 쥬스 갈아줄게. (집에 있는 토끼 전정국 의문의 1패. 귀 후비적.)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대폰을 만지다 들어간 갤러리 앨범 중 단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얼굴을 얼마나 초 근접을 해놨는 지. 얘는 또 언제 내 폰 만졌대? 슬핏 웃으며 동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잉? 주인이가 맨날 찰칵찰칵 혼자 하던 거다, 히히."
시발. 욕을 내지르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니, 늬 집 토낀데 이렇게 귀엽고 난리야. 나는 학교 강의를 듣는 와중에도 하루 종일 그 동영상만 서른 마흔 다섯 번을 재생하며 김태형에게 고나리를 당했지만 아무렴 좋았다. 존나 귀여우면 됐어!
*
사실 자급자족 글이라 암호닉두 안 받을 거고, 연재 텀도 제가 쓰고 싶을 때 끄적일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독자님들도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