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귤탱귤
!prologue!
고백을 받았다.
그리고 단칼에 거절했다. 상대가 10년동안 남자로는 한번도 바라봤던 적 없는 김태형이여서. 하루가 지났다. 어제 일은 잊은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웃길래 관계는 잘 회복 되겠구나, 안심했다.
방심했다.
정확히 2주. 14일이 지난 녀석은 다시 내게 그 날처럼, 우리집 가로등 아래서 저녁노을을 배경삼아 또 다시 고백했다. 참나, 귀여워서 웃었다. ...나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야. 너는 내가 왜 좋냐? 웃음과 함께 그대로 물었다. 근사한 말이라도 해야, 내가 받아줄 줄 알았는지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위로 굴렸다, 아래로 굴렸다. 정신 사납게 움직이던 녀석의 눈동자가 드디어 멈췄다.
...착하잖아.
말이 진심이라기도 하듯 녀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작게 입을 벌린체 1분이 1시간 같을 녀석을 마냥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절했다.
녀석은 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했다. 고 생각하겠지만, 미묘하게 전과는 다른 녀석의 행동을 바라보는건 요즘들어 제일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였다. 같이 우산을 쓸때 내게 더 기울어주는것도,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도, 돈도 개뿔이 없을텐데 용돈 들어왔다는 거짓말로 내게 좋은 것만 사주려는 행동이 눈에 밟혔다.
오늘도 김태형이 사준 생귤탱귤을 사이좋게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그지없이 선선한 바람이 그지같이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길래 짜증스레 앞머리를 붙잡았다.
"야 태형아."
편하게 정리하라는 의미로 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던 김태형이 다먹은 자신의 아이스크림 스틱을 입에 문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랑 사귀고 싶냐."
김태형의 입에서 벗어난 스틱이 녀석의 교복조끼를 스치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안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있는 걸 보고 앞머리를 붙잡은 체로 헛웃음을 지었다.
"사귀던가."
"...왜?"
"......"
"......"
"재밌잖아."
우리 같이 있으면.
"......"
"......"
아무 말, 아무 표정도 없길래 얘가 그세 마음이 변했나 싶어 당황해 농담이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녀석의 눈이 빨갛게 충혈ㄷ,
...? 타임. 너 우냐?
"야...왜 울고 그래."
...흐허허앟허헐허헣.
정확히 저렇게 울었다. 자리에 주저 앉은 녀석에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났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였다. 두 손바닥으로 양 쪽 눈을 차례대로 가린 김태형은 서럽게 울었다. 아 얘 진짜 웃기네. 입술을 깨물었다. 김여주 웃지마. 제발 웃지마. 스스로에게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드는 마음, ...내가 마음고생 많이 시켰구나. 괜히 미안했다. 훌쩍이는 동그란 뒷통수를 연신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너랑 있을땐 항상 행복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고백했다. 야, 사귀자.
난리가 났다.
김태형이랑 나랑 사귄다는 소문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학교가 난리가 났다. 암대전(암이고 대신 전해드려요)에선 김태형이 정말 남자친구 있냐고 죄다 익명으로 물어봤다. 이것들이, 실명 깔 자신이 없으면 묻지를 말아야지. 제 앞에서 중얼거리는 나를 턱을 괸체 만난지 10분 내내 바라만 보던 김태형이 뭐가 웃긴지 베시시 웃었다. 뭘 쪼개냐.
문제는 그 다음이였다.
사귄지 2일 만에 복도에선 내 이름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쟤야? 쟤? 내 이름이 '김쟤'가 될 판이였다. 사실 별로 신경은 안쓰였다. 그냥 김태형 귀에 들어갈까봐 그게 마음에 걸린거지. 저래보여도 화를 낼땐 진짜 무섭다. ...몇년전에 남자애를 때려 반 죽여놓던 이유도 ...뭐, 나 때문이지만. 큼.
"......"
"......"
어느새 엎드려 옆에서 잠이 든 녀석의 머리칼을 천천히 만졌다. 넌 내게 남동생이나 다름없었는데, 앞으로 내가 너를 완전한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턱을 괴며 코로 한숨을 뱉었다. 갑작스럽게 여자랑 남자가 된,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 아 맞다. 넌 갑자기가 아니였지. 말없이 웃음을 지으며 잠자는 코를 톡. 하고 건드렸다.
넌 남자여서 나보다 힘이 쎄니까, 나 좀 잘 이끌어줘.
잘부탁해, 태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