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스 타다 문득 생각난 건데 부잣집 아들 나재민이랑 과제에 치이고 있는 대학교 2학년 여주가 보고 싶다. 여주는 유아교육과지만 노래를 취미로 하고 있어서 가끔 인별에 노래 부르는 영상까지 올리는데 얼굴도 귀엽고 목소리도 예뻐서 자타공인 인스타그램 스타로 떠오르고 있음. 물론 여주는 자기가 좋아서 올리는 거지, 스타고 자시고 전혀 관심 없음. 때는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주가 대학교를 막 들어간 후 첫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천천히 적응 중이었던 여주는 한껏 뒤집어쓴 피로를 뒤로 하고 그냥 버스에서 잠을 청하기로 한 거지. 여주 고개 뒤로 하고 꿀잠 자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누군가가 앉는 느낌이 듦. 낮은 목소리가 여러 개 들리는 거 보면 고등학교 앞으로 버스가 지나갔나 보다 싶어서 그냥 신경 안 쓰고 다시 자려고 했지. “저 여자 저렇게 자는 거 불편하지 않나?” “거북목인가 보지, 뭐.” “거북목이면 고개 저렇게 꺾어서 자는 게 편한가. 꿈에 나오겠다, 야.” “아무래도 목이 불편하니까....” 옆에서 자꾸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신경 쓰임. 마음 같아선 너희가 뭔데 남의 자는 모습에 개입하려고 하냐 따지고 싶지만 그래도 스무 살 체면이 있지 저 고딩들의 판타지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고 시도함. ‘으음....’ 조금 인위적인 신음 소리를 뱉으면서 고개를 창문 쪽으로 두는데 뭔가 옆에서 자꾸 쏘아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최대한 티 안 내려고 눈 질끈 감지. “그럼 내일 보자, 나재민.” “어, 잘 가.” 아무래도 옆에 앉아 있는 놈이 나재민이라는 이름을 가졌나 보다 싶음. 그러다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조용한 흐름을 타 여주도 진짜 잠이 들었음. 근데 그게 진짜 완전 숙면이라는 게 문제. 너무 푹 자다가 그만 종점에 와 버린 거야. 누가 자꾸 깨우는 것 같아서 눈 떠 보니까 밖은 한적하고 꽉 채워져 있던 버스도 한산함. 상황 파악도 잘 안 됐는데 자꾸 어깨 두드려서 돌아보니까 훤칠한 남자애가 자기를 보고 있는 거. 그리고 여주 금방 사고회로 다 정지되고 홀린 듯 남자애의 얼굴을 뚫어져라 봄. ... 와, 진짜 미친 것같이 잘생겼다. 육성으로 안 내뱉은 게 다행일 정도로 잘생김. 그냥 무표정하게 자기를 내려다 보는데 눈 코 입 전부 오밀조밀한데 피지컬도 돼. 스타일도 좋아. 그리고... 손목 위의 롤렉스? 저런 걸 교복 위에 차고 다니는 거 보면 웬만한 부자가 아닌가 봐. “어.... 그쪽 내려야 할 곳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너무 잘 자길래요.” “아, 아,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여주 그냥 내려 버림. 그래서 재민도 잡으려고 했는데 여주 어찌나 걸음이 빠르던지 이미 정신 차려 보면 저쪽 멀리까지 가 있는 거야. 재민 쫓아가려는 거 포기하고 헛웃음 지음. 내가 누구 때문에 길도 모르는 종점까지 왔는데. 아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스친 사이라도 좀 하자고. 재민이는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만 해도 여주에게 관심 없었음. 그냥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어느 학교인지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음. 재민에게 여주란 그냥 버스 탄 승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자기 얘기 한다고 자는 척 자세 예쁘게 고치고 하는 게 인상깊은 거. 그래서 재민이는 원래 친구랑 같이 내려야 하는데 여주 때문에 안 내리는 거지. 힐끔힐끔 여주 보는데 ‘나 자는 척해요’ 티 내는지 눈꺼풀이 움직이는 거 보면서 재민이 설레게 웃음 짓는다.
사진 터치 후 저장하세요
“나잼, 안 내려?” “나 들를 때 있으니까 너희 먼저 가.” “아, 그럼 내일 보자, 나재민.” “어, 잘 가.” 첫 번째 대화는 버스 안 소음 때문에 여주가 정확하게 듣지 못했던 거야. 창밖을 보니까 모르는 풍경 천지인데 이번에는 진짜 자는지 눈꺼풀도 안 움직이는 거 보면서 재민이는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인다. 그래도 무슨 꿈을 꾸는지 가끔 여주가 웃음 지으면서 자는 거 보면 깨울 엄두도 나지 않음. 좀 귀여운 것 같네. 그렇게 재민이는 자는 여주 관찰하면서 결국은 종점까지 도착함. 근데 여주가 저렇게 가 버렸으니까 재민이는 굳이 종점까지 온 고생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거야. 그래서 재민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꺼내서 비서팀한테 전화함. “저 재민인데요. 버스 타다가 잠들어서 종점까지 와 버렸어요. 나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차 하나만 보내 주세요. 여기가 어디냐면....” 어딘가 도련님의 목소리가 화난 것 같아 보이는데 괜히 눈치 보이는 비서팀임. 기어코 재민 알겠다는 대답 받고 전화 끊어서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 얼굴은 똑똑히 기억나는데. 목소리도... 엄청 예뻤는데. 재민이는 꿈처럼 사라져 가는 여주의 잔상을 한껏 더듬음. 그 모양새가 퍽 차인 남자의 모습 같아 보여서 조금 애잔하다. 그렇게 차 타고 재민이 침대에 누워서 SNS 살펴 보다가 친구 카톡 온 거 보고 급하게 들어가 봄. 원래 같음 미리보기로 보고 무시했을 카톡이지만 내용이 내용인 만큼 그게 전혀 안 됨. ‘야 나재민’ ‘이 사람 오늘 버스에서 본 그 여자 아님?’ ‘(주소)’ ‘뭐야 ㅅㅂ 왜 이리 빨리 봐’ 친구가 보내 준 링크로 들어가 보니까 진짜 그 여자 맞음. 눈 떴을 때 올망졸망한 그 모습 맞았음. 보니까 팔로워도 꽤 있어 보이고 나름 인기 있는 여자였구나 싶음. 그렇게 재민 한참 여주 인스타 훑어 보고 있다가 나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썸네일의 동영상을 눌러 본다. 여주가 노래 부르고 있는 영상. 언뜻 들어 보니까 목소리도 예쁘다. 재민은 그렇게 노래 부르는 영상을 몇 개 찾아서 듣다가 친구한테 답장함. ‘이 사람 아는 사람이야?’ ‘아는 누나의 친구 ㅇㅇ’ 보니까 이름이 김여주. 프로필에 학교 이름만 적혀 있지, 과 이름은 안 적혀 있음. 재민은 굉장히 일차원적인 생각으로 노래를 잘 부르니까 실용음악과겠거니 싶음. 보통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음 다이렉트로 부딪쳤겠지만 왠지 이 사람에겐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 이런 팔로워를 가지고 있으면 보통 년놈들의 사심 섞인 다이렉트를 많이 받아 봤을 테고 자기도 무턱대고 보내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재민은 여주가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시티대학교 실용음악과에 들어가려고 준비하지. 그게 고삼 나재민의 첫 번째 목표였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해서 재민 실용음악과에 진학한다. 재민의 천재적인 잠재력이 입시 때 폭발한 거야. 뭔 뜬금없는 전개인가 싶겠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래야 이야기 진행이 되니까. 입학식을 끝낸 후로 실용음악과는 난리남. 꽃돌이 새내기가 한 명 들어왔는데 실력도 좋고 집안도 부자래. 근데 재민이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음. 분명 보여야 할 사람이 안 보임. 수업이 달라서 못 마주치나 싶은데 신입생 환영회에도 안 보이니까 재민 속이 타는 거지. 그래서 재민 자신에게 술을 따르는 선배에게 물어본다. 김여주라는 사람 혹시 실용음악과 아니었냐고. “아, 김여주? 그 인스타에서 유명한 애? 걔 실음 아니야.” “... 그럼 어딘데요? 이 학교라고 들었는데.” “걔 유교야. 진짜 인스타 노래하는 거 보면 기가 막히던데 나도 보고 많이 감탄한다니까.” “유교요?” “응, 유아교육과.” 재민이 다시금 헛웃음 지음. 노래 잘 부르길래 당연히 실용음악과인 줄 알았더니 실용음악과가 아니래. 가까워지고 싶어서 기회를 만들어 버리니까 더 멀어져. 일 년 동안 자신이 고생했던 건 다 뭐였는지. 물론 정확한 증거 없이 혼자서 추측하고 혼자 준비한 건 자신의 잘못인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재민은 속상한 마음에 애꿎은 여주 원망하고 쓴 술만 들이킨다.
사진 터치 후 저장하세요
참 당신 만나기 어렵다. 안녕하세요 글잡 처음이네용 일단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평소 쓰고 싶었던 소재를 써 봤어요 부잣집에 연하남 재민 넘 설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