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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그대와 나처럼











 

삼십 년 만에 한양을 둘러 낀 금향천(金香川)으로 거대한 장터가 섰다. 진시(唇時)부터 유시(酉時)까지 북으로는 함흥과 길주, 남으로는 탐라로부터 데려온 진귀한 물건을 볼 수 있는 대대적인 행사에 일찍이 도성 밖은 짐을 둘러맨 사람들로 장관을 이뤘다. 그중 왕의 추천서를 받고 당도한 상인들은 직인이 담긴 서를 펼치며 으스댔고, 신분 확인을 하던 군사들은 그것의 진위를 위해 얼굴을 맞댔다.
* 진시(唇時)부터 유시(酉時)까지: 07시 — 19시

어디 그뿐이랴? 전국 팔도가 한곳에 모였으니 소문으로만 듣던 날고 긴다는 양반 생김새들도 오늘만은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양반 자제들은 보란 듯 비단 도포를 뽐내며 합죽선을 펼친다. 피곤에 금치 못한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그 모습에 댕기 딴 아이는 물론, 이제 막 혼인한 처자와 구부정한 노인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더랬다.




— 내 이날만을 얼마나 손꼽았던가! 떠나 온 본가(本家)가 괘념치 않으니 굳이 돌아갈 필요 없이 이곳에 터를 잡아도 될 듯 허이. 그렇지 않은 가, 풍남이?

— 애기씨, 제가 누누이 얘기허지만 저어어얼대 혼자 계시면 안 된당게요. 누가 추파를 던질랑 말랑 혀도 쩌어어얼대 말도 섞지 말고 장 끝날 때까지 저랑 같이 쭈우우욱…….

— 애기씨라니! 그새 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 아니, 도련니이임…… 그것은 아니고요…….

— 풍남이, 자네는 걱정이 너무 많아.

— 대제학 어른께 도련님 옆 마을 자수 축제 보러 간다고 거짓부렁한 제 맘이 어떻겠습니까요. 매화단(梅花團)에 속히 귓띔 넣은 게 다행이지, 그분들이 도와주지 않았음 여기까지 택도 없당게요? 엊그녘부터 새벽만 되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약주도 끊었는데 몸이 으슬으슬하고 추운 것이 딱 제 발 저린 거 아닙니까요. 
*자수(刺繡): 십자수
* 매화단(梅花團): 한양에 뿌리를 둔 여성 모임.

— 거짓은 무슨? 여기서도 조신한 것들은 판을 친다네. 한양 장터라고 뭐가 다르겠나?

— 도련님이 말씀하신 조신한 것들은 죄다 노름 아닙니까요! 대제학 어른께 한 번만 더 야바위하다 걸리기라도 하믄 쇤내는 멍석말이에 물 싸다구에 아주 세상이랑 작별이라니께요!




행랑채 터줏대감 풍남이 길길이 날뛰며 대제학의 얼굴을 곱씹는다. 조금만 어긋나도 빠득이는 눈빛, 내 아비여도 쉽사리 견디기 힘든 것인데 거기에 거짓말까지 하였으니 풍남이의 두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새벽 물레방앗간이라.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법, 지난 상주 장터에서 팔십 냥 야바위를 털다 아비에게 걸렸을 때도 창고에 갇혀 일절 식음을 전폐한 나로서는 무서울 게 없었다.

여자로서 깊은 학문에 다가서지 못하고, 여자로서 무예가 아닌 절개만을 위한 단도만이 허락되고, 여자로서 기껏해야 방물점에 들러 은장도와 장신구를 들고 오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평생 썩어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형벌에 불만을 품고 있던 터였다.
*방물점: 현대의 액세서리 가게

가옥에 있는 것이 감옥과 같고, 백합처럼 살다가 이 고약한 성질머리를 참지 못해 홧병에 뒤질 것만 같아 시작한 바깥 구경이었는데, 그곳은 책으로 배운 것보다 생생했고 갓을 쓴 사내들 어깨너머로 들은 것보다 생경했다. 여자가 아닌 남자로서 마주한 세상은 비겁하도록 유했으며 또한 이기적인 자유가 있었기에.

조선에 내려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모름지기 이러한 역동적인 취미는 지속적으로 가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뭐, 야바위에 팔십 냥을 쏟아부은 것은 고의가 아니었네만. 슬쩍 풍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다. 하지만 풍남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방을 경계하는 것. 혹여 내게 말을 거는 자가 있는지, 몰래 허리를 감는 여편네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지난번 상주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풍남의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야 할 것이다. 도성으로부터 불과 열 발자국, 치마폭을 흔들며 요염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 멀리서부터 지켜봤네만, 그대는 어찌 봐도 참 곱소.

— 어머머, 설마 날 보고 그런 건감?

— 그대 말고 누가 또 있겠소만.

— 얼굴두 말하는 것두 어쩜 이렇게 여인을 사르르 녹이실까?




도성 문 앞에서 신분 확인을 받던 풍남의 본능 주파수가 작동한다. 옷깃을 쥐는 유혹적인 손길을 알아채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특징인. 그럼 난 아무 일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 비뚤어진 갓을 고쳐 쓰면 된다. 장터 구경만 나갔다 하면 발동하는 장난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지고지순은 내게 맞지 않는 옷임을 고갯마루 절친 똥개 돌돌이도 아는 것을. 흐음.




— 워매매애애애!!! 도련니이이임!!!! 시방 뭐더는거요!!!!!

— 그럼 이만.




간드러진 눈짓에 처자는 머리를 짚었다. 오라비가 여자를 꾀어내는 방법이라 일러준 것이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간 똥 멍청이라도 너에겐 넘어가지 않겠다 코웃음 친 것을 잠시나마 반성한다. 학문에 정진할 힘을 추파에 쏟는 오라비 너 또한 반성을 해야 할 테지.




— 도련님, 혹시 모르니 합죽선을 펼치시는 게…….

— 이 넓은 한양 땅에서 날 알아보는 이가 누가 있겠다고.

— 한양은 한양입죠. 두세 다리만 건너도 익은 얼굴이라 하지 않습니까요.

— 설령 안다 한들 도망가면 그뿐이지 않느냐.

— 이놈은 달리기를 못 허는디요.

— 누구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효과를 보는 법이지.

— 당최 뭔 말씀을 허시는지.

— 미친개에게 쫓겨 본 적이 있느냐? 당시 난 일곱 살에 맨발로 청계천에서 금향천까지…….

— 남의 집 감나무 따 먹다가 그 집 개에게 쫓긴 일 말입니까요?

— ……햇살이 굉장히 좋구나.




도성 안 금향천(金香川)으로 향하는 발이 가볍다. 꼭두새벽부터 자수 축제를 핑계 삼아 도성 밖으로 잠시 도피하였으니, 이제는 본래 목적인 장터로 들어가 즐기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고삐를 잡고 졸졸 따라오는 풍남은 허투루 시선을 뺏기는 일이 없다. 샛길로 숨어 야바위에 미쳐 날뛰는 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아도 큰 눈에 불화살을 매단 것 마냥 이글거리니 지나가던 꼬맹이도 두려움에 떨지 않느냐!




— 앞장서거라.

— 안 된당게요.

— 찬아, 우리의 연이 고작 이 정도였더냐.

— 진짜 이름 불러도 소용없당께요!




임시 이별의 가장 좋은 방책은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하며 장터 구경 나온 한양 최고의 청루주사(靑樓酒肆) 기생들의 이목을 즐긴다. 풍남은 대신 합죽선을 펼쳐 내 얼굴을 가렸다.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구먼요. 풍남의 엄호를 받고 당당한 양반걸음으로 장터를 누빈다. 그럼 진실로 갓을 쓴 대제학의 장남이 되는 것이다.
















[세븐틴/無銘] OFF ON OFF _ 두근두근 체인지 (㤢筋㤢筋 體認恀) | 인스티즈 

 연왕 13년, 홍문관 대제학의 차녀인 내가.
















OFF ON OFF
두근두근 체인지 (㤢筋㤢筋 體認恀)















— 닷 냥만 깎아주게.

— 에이, 그렇게는 못 합죠.

— 석 냥은 어떤가.

— 궁녀들이 진시황제 용포 빨 때 쓴다던 다듬이인데 어찌 그걸 깎아서 판다요?




삼십 냥이 양반님 같은 분께 기별이라도 갑니까? 소인이면 벌써 열댓 개는 샀겠네. 길주에서 왔다던 상인은 흥정이 마땅치 못했는지 팔짱을 끼며 눈을 흘겼다. 뒤에서 목을 축이던 풍남은 다짜고짜 눈을 부라리며 상인에게 분을 토했다.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아느냐! 이분은 바로으으읍! 흥정하던 손으로 풍남의 입을 막는다. 오늘도 구석으로 유배당하고 싶은 것이냐. 치켜뜬 눈썹에 풍남은 풀이 죽는다. 그래도 상인을 노려보는 건 풍남의 몫이었다.




— 그래, 그 값으로 두 쌍 주게.

— 무르기 없습니다?

— 그런 건 무뢰배들이나 하는 짓이지.
*무뢰배(無賴輩): 불량배




도포에 숨겨둔 엽전 꾸러미를 꺼내자 상인은 횡재한 듯 누런 이를 보였다. 행랑채에서 풍남과 살림을 꾸려갈 순심에게 줄 선물이니 아깝지 않다. 나머지 하나는 혹여 아비에게 걸려 나가지 못해 홧병이 도질 때, 그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이놈이 뭐라고 잘해주신답니까. 도련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잖어요. 속내를 알아챈 풍남은 눈물이 많아 이번 장터에서도 소매를 적셨다. 지난번 상주서는 제게 어울릴 만한 신을 마련하자 길바닥에 앉아 대성통곡하던 놈이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싶었다. 하지만 고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 당신이 아니라 이 사람이 무뢰배 아닙니까?

— …….

— 나주 연제 장터에서 값비싸게 속여 판 다듬이가 한양까지 들어오다니!




쓰게 치마에 입술만 보인 채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상인에게 다가가 일침을 놓았다.




— 당신이 판 것은 진시황제 궁녀들이 쓰던 것이 아닌, 닷 냥에 서너 개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일반적인 다듬이인데 어찌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한단 말이오!

— 그걸 어떻게…….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어야 하거늘!




미성이지만 강단 있고 과감한 목소리였다. 상인은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여 벌건 얼굴로 엽전을 끌어안았다. 한양 도성 내 곱절이나 얹은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는 물건을 조심하라는 왕과 왕세자의 방이 마을 곳곳에 퍼진 터라 장터 내 사람들은 금세 주변으로 모였다. 흉흉한 소문이 사실이 된 셈이었다.




— 세상은 그대가 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

— …….

— 항상 의심해도 당하는 건 사람이니.




매끄러운 입술을 가진 여인은 따라온 시종과 함께 장터 반대 길로 몸을 틀었다. 대신 돈을 돌려받은 풍남은 장터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도록 ‘여기 사기꾼이 있당게요!’ 손가락질하며 상인을 오도 가도 못 하도록 옭아맸다. 삼십 년 만에 열린 장터에서 쓰는 개쪽이란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 풍남아, 여기 있거라.

— 예? 갑자기 어디 가신 답니까?

— 내 곧 돌아오마.

— 아, 아니 애기……!




오라비의 갓과 도포를 훔친 탓에 품이 큰 모든 것들은 뛸 때마다 엉성한 폼으로 바람에 흔들렸다. 어찌나 상대의 걸음이 빠른지 통을 죄는 속곳이나 저고리를 입고 달리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한 뼘이나 큰 비단 신이 휘어질 때도 있었지만, 저 골목길 방물점에서 노리개를 고르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이러한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인의 시종으로 보이는 자는 뒤에서 흘긋대는 날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앞을 막았다. 무엄하다.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힘 좀 쓰는 몸집으로 밀어내니 속수무책으로 밀려난다. 여전히 쓰게 치마로 눈을 가린 여인이 이번엔 시종을 막았다.




— 되었다. 그만하거라.

— …….

— 쫓아오시는 걸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지요.




여인의 입술은 근간 조선 규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입술연지였다. 남쪽 지역 봉숭아 꽃잎으로 만든 특급 한정품. 지난달 순심이를 대형 방물점에 보냈으나 얻지 못했던 바로 그 색! 순간 용건을 잊고 여인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니 그녀의 시종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현재 풍남이가 없으니 섣불리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일단 몸을 사려야 하느니.




— 아, 아깐 고마웠소.

— 그른 것을 잡았을 뿐입니다. 괘념치 마시지요.




가벼운 묵례 후 여인은 다시 방물점 주인과 얼굴을 맞댔다. 이유인즉슨 매(妹)에게 줄 선물이었다. 노오랗고 시퍼어런 것을 좋아할라나 모르겠네. 난 여태 뒷짐을 지고 저런 말이나 지껄이며 여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2품 홍문관 대제학인 아비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고 돌아와야 후손이 평안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그 아비를 둔 자식으로서 절대 지나치지 않아야 함이 옳았다.
*매(妹):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자매

여인의 고개가 옆으로 흐른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날 보고 있음에 확신했다. 보드라운 손등을 내보이며 입술 색보다 연한 손끝으로 노리개를 집어 말을 걸었으니 이보다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 이건 어떻습니까. 어여쁘지 아니합니까.

—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저 색이 한양을 휩쓸고 저 또한 누구보다 먼저…….

— …….

— ……누이를 주었습니다.

— 누이가 계셨습니까.

— 받고서는 아주 좋아했다지요. 하하.




멀쩡한 오라비가 누이가 되었다. 입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현재 신분과 용모를 망각한 채 실언하여 스스로 남장을 한 죄를 알렸을 게다. 목소리 큰 풍남을 다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입단속이 먼저였다. 좌판 앞쪽에 늘어진 노리개 중 선홍색에 가까운 것을 집어 여인에게 내밀자, 그녀는 그것을 받아 들며 미소 지었다.

제 누이가 말하길, 올해는 이 색이 조선을 휩쓴다 합니다. 가까스로 위험을 넘기니 올려 쓴 갓 옆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여인은 말없이 시종에게 받은 손수건을 건넸다. 포목점에서도 볼 수 없는 비단이라니, 이건 예사 것이 아니다. 어느 집 양반 규수라면 이다지도 고운 것을 쓰는 것인지.
*포목점(布木店): 옷감을 파는 가게




— 저 또한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 혹시, 그대의 색이 무엇인지…….

— 색이라니요.

— 입, 입술 색 말이오.




그녀의 시종이 범상치 않다. 때에 따라 본가 마당에 오라비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검술 대련을 하곤 했는데, 상대방을 찢어 죽일 듯한 눈을 지금 저자가 하고 있었다. 개는 인간을 물지만 곰은 사람을 찢는다 하였으니 저자가 바로 곰이 아닐까. 바라건대 여인의 윤기 나는 피부 비결이라도 묻는다면 당장 찢겨 죽어도 연유가 없을 것이다.




— 궁금할 이유가 무엇인지요. 사내에게는 필요치 않은 물건 아닙니까.

— 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그러오. 그러니 내게 알려준다면…….

— 혹, 그대는 아닐런지요.

— ……뭐라고 하셨소?

— 아쉽게도 이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럼.




곁을 지나치는 여인의 팔을 잡는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것이 그대의 것이란 말이오? 내 멱살을 잡으려는 시종을 막은 여인이 천천히 다가와 귀엣말을 넣는다. 여색과 거리가 멀었음에도 아랫배가 뭉근히 꼴렸다. 귓가에 닿는 은근한 입술과 웃음을 흘리는 모양새에 정신을 놓는다. 누구와도 일절 말도 섞지 말라는 풍남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 수염 한번 나본 적 없는 턱에 묶인 끈과 옥 줄이 참 재밌습니다.

— …….

— 연꽃 향은 우리 매(妹)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지요.

— …….

— 당신의 누이는 어떠합니까.











장터를 빠져나가는 그들을 지나쳐 헐레벌떡 달려온 풍남이 사족을 살핀다. 애기씨! 괜찮은 거여요? 도련님 사라지시고 이놈이 을매나 애가 탔는지 아십니까요? 애기씨라 말하다가, 도련님이라 말하다가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 참인지 허둥지둥 대는 풍남을 붙잡고 다그치듯 물었다.




— 내게서 연꽃 향이 나느냐?

— 뭔 소린지 이놈은 잘 모르겄습니다요.

— 맡아 보아라.

— 뭘 말입니까요?

— 내 체취를!

— 아익! 지금 뭐허신대요!




풍남은 겨드랑이를 들추는 양반집 자식을 부끄러워했다. 서둘러 본가로 떠밀려가는 와중에도 쓰게 치마 밑으로 날 농락하던 입술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작 얇은 구순으로 사람 혼을 쏙 빼놓은 그 여인은 관아가 아닌 반대편 아래 고개로 사라졌다. 연유가 무엇일까.




— 그 여인 말이다.

— 도련님을 도와주신 그분 말입니까?

— 당분간 외출은 삼가야겠구나.

— 바깥 구경에 목매시던 애기씨 아닙니까요?

— 얼른 가자. 오라비가 돌아오기 전에 제자리에 두어야 하느니.










진주색 도포를 가지런히 모아 품에 안는다.
댕기 머리와 선홍색 치맛단이 말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췄다.




















수염 한번 나본 적 없는 턱에 묶인 끈과 옥이 참 재밌습니다.
연꽃 향은 우리 매(妹)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지요.
당신의 누이는 어떠합니까.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라.




















*




















— 당분간 외출은 금하신다 하셨잖습니까.

— 그랬느냐?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만.

— 바로 어제 일인디요.

— 밀전병 냄새가 좋구나.




이틀로 향한 장터는 금향천(金香川)밖으로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일은 칠석을 앞둔 터라 한양 곳곳은 고소한 밀전병 냄새를 풍겼다. 풍남은 어제 일을 대제학께 들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목숨을 두 번 얻은 셈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다, 엽전 앞뒤 바꾸듯 마음이 바뀐 내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가지를 긁었다.




— 오늘은 왜 사내 차림이 아닙니까요?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갓을 쓰고도 남으실 턴디.

— 간만에 방물점에 가지 않느냐. 장신구는 직접 대어 보아야 예쁜 것을 아는 법이다.

— 가셔도 늘 같은 것만 사지 않습니까요.

—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

— 예예, 그러합죠.

— 순심이는 다듬이를 맘에 들어 하느냐.

— 아주 쿵쾅대고 별 지랄을 다 혔는디 듣지 못하셨습니까?

— 지랄은 무슨, 악기의 쓰임이 별다른 게 있는 것도 아닌데.




포목점을 지나 방물점에 다다르자 어제와 달리 중국에서 건너온 노리개가 한가득이다. 어제 온 손님이 나였다면 굉장히 아쉬워했을……. 좌판 정 가운데 선홍색 노리개가 시선을 잡는다. 곱다란 손으로 여동생에게 줄 노리개를 고르던 여인, 귓가에 은밀히 내 정체를 폭로하던 여인, 골목길을 도는 순간 어렴풋이 눈을 맞추던 그…….




—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요?

— 별 것 아니다. 보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 상인들 말 들어보니 중국에서 건너온 다른 방물점도 많다든디요?

— 이리도 귀한 색이 많지 않은가. 조금만 더 보고 가세.




살구색 비단 치마에 노리개와 장식품을 대어 구색을 갖춘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다 가져가고 싶구나. 하지만 과소비는 금물, 절제할 줄 아는 사람만이 물건의 귀중함을 아는 법이지. 손가락에 다섯 개씩 노리개를 매달고 하는 말이기에 상당히 반어적이었지만, 어쨌거나 단 하나만 고를 것이다. 풍남은 팔짱을 끼고 노리개를 구경하다 약방길로 잠시 사라졌다.




— 선비님이 어쩐 일로 이런 데를 다 오슈?

— 누이에게 줄 선물이 있을지.

— 요새 선홍색 노리개가 인기 절정이라우.

— 그건 제 누이가 이미 가지고 있다 하여…….

— 오늘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색도 있다우.

— 그럼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어여쁘지 아니 한지.




















— 이건 어떻습니까. 어여쁘지 아니합니까.




















제비꽃 노리개에 손이 겹친다. 사내의 손등에 올라탄 손은 화들짝 놀라 등 뒤로 숨었다. 말총으로 엮은 갓을 쓴 사내가 그것을 집어 내게 건넸다. 개의치 마시지요.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에 노리개가 쥐어진다. 구색 맞추길 좋아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어제 본 여인과 영락없이 또옥 닮은 사내를 만났기에. 아니, 또옥 닮은 손가락과 얄쌍한 턱선과 봉숭아 연지를 발라주고 싶은 얇은 입술을 가진 사내를 보았으니.




— 괜찮으십니까.

— …….

—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더 명확해짐이라. 완전한 사내 복장이라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맞다는 것을. 만약 내가 전형적인 양반집 여식이었다면, 사내를 어제 만난 여인의 오라비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율법에 어긋난 남장을 하고 한양 문밖을 넘어 다녔으니 그 내공이 어디 가겠는가. 이 사내는 필히 어제 만난 여인이 맞다. 굳이 말하자면 여인인 척 장터를 누비던 사내였겠지. 어제는 진주색 도포, 오늘은 살구색 치마를 입고 노리개 따위를 맞춰보고 있는 나처럼 그도 분명 사연이 있음에 오른쪽 손에 달린 제비꽃 노리개를 걸지.

제비꽃 색은 하나밖에 없는데 어쩌실라우? 선비님이 가져가실런가, 아님 우리 규수 댁 양반이 사실런가? 방물점 주인은 담뱃대를 폴폴 피우며 흥정을 걸었다. 저는 괜찮으니 선비님께 주시지요. 기회는 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쓰게 치마를 벗어 사내와 눈을 맞추고 미소 짓는다.

제 누이가 많이 기뻐할 겁니다. 포장을 기다리며 방물점 문 앞에 오도카니 선 사내가 가볍게 묵례했다. 갓을 고쳐 쓰며 햇살을 피하는 사내의 옆모습을 관찰하다 손바닥으로 사내의 눈을 가렸다. 뽀얀 입술이 남는다. 얄쌍한 저것. 찾았다, 네 입술.




— 혹, 연꽃 향을 기억하십니까?

— …….

— 어젯밤부터 품에 안고 잠에 들었더니 이리 향이 배었지 뭡니까.

— …….

— 이제야 돌려드립니다. 그대.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옅게 조소하는 날 따라 그대 또한 알아본 것이지. 방물점 주인이 포장한 노리개를 옆구리에 낀 사내는 눈을 피한 채 자꾸만 입술을 축였다. 그래, 목이 마를 것이다. 우린 서로 비밀을 들킨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 탁주와 국밥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 …….

— 그렇다면 점심은 둘 다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제의 여인처럼 쓰게 치마를 둘러 입술만 남긴 채 뒤를 돌았다. 약에 올라 동틀 녘까지 잠에 들지 못했으니 이 정도 복수는 귀엽지 아니한가.










— 제 입술은 어떠합니까.

— …….

— 그대 누이가 가지고 있는 봉숭아 연지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




















제나라 임금의 왕자가 물어 말하기를,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합니까? 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왕자가 말하기를,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인의(仁義)뿐이지요 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어질고 자비로운, 그리고 의리를 높게 잡는 선비야말로 진정하고 참된 선비가 아니겠냐는 말에 극히 공감하였으나, 여기서 제 누이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갈등을 내어야 했습니다.

누이가 말하길, 선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문적 수행이 아닌, 관직에 올라 실무를 담당하고 왕과 백성과의 마찰을 줄이는 역할이니 어짊과 자비로움보다는 사리 분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명석한 두뇌, 의리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 실리를 따져 곁에 사람을 두어야 한다 합니다.

이후 아버지께 여쭤보니 아버지 또한 누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일로 내기를 했던 저는 누이의 소원대로 여장을 하고 장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단 한 바퀴만 돌다 오면 다른 주제로 다시 토론을 펼치겠다 약주를 받아냈고요.










— 그런데 누이께서는 굳이 선비님에게 여장을 시킨 연유가 무엇인지요?

— 누이는 어릴 적 자신과 닮은 매(妹)를 얻길 바랐으나, 눈치껏 태어나지 못한 제가 미워 여태까지 벼르고 있다 하였습니다.

— 그럼 어제 연지 입술도…….

— 누이의 작품입니다.




사내는 국밥과 탁주를 심드렁하게 먹는 날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채에서 다과를 즐기며 자수나 놓고 있어야 할 양반댁 여식이 치마에 밥풀을 흘려가며 먹는 꼴은 난생처음 보았을 것이다. 가끔 풍남이와 장터에 나올 때면 늘 하던 짓을 낯선 사내와 마주하니 국물은 다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 그대의 남장 연유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 정당한 야바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노름을 좋아하기라도 한 겁니까.

— 맞추기라도 하면 여자에게는 호통을, 남자에게는 다음 판으로 회유하는 못난 습성이 싫어서라고 해두죠.




제가 이래 봬도 불공평에 치를 떠는 사람이라. 바닥을 보인 국밥 그릇을 슬쩍 숨기며 탁주로 입을 털었다. 사내는 입을 들썩이다 이내 다물었다. 술에 취한 주막 손님들이 죄다 한 번씩은 허우대 멀쩡한 사내의 어깨를 쳐가며 가게를 빠져나갔으니 열이 받지 않고서야 물러설 수 없음이라.




— 이곳은 매우 재밌는 곳이겠습니다.

— 누가 보면 처음 온 듯합니다.

— 처음, 입니다.

— 진심이십니까?

— 지나친 적은 있어도 직접 들어와 음식을 마주한 건 이번이 그대와 처음입니다.




국밥에 나무 숟가락을 첨벙대며 다른 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 사내가 마침내 첫입을 댄다. 은연중 비린내가 올라오는 국물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내 꿀떡꿀떡 잘 넘겼더랬다. 국밥에 코라도 빠지겠습니다. 농담 섞인 말에도 사내는 탁주까지 탈탈 털어내 막잔을 채웠다. 하지만 도통 술과 인연이 닿지 않은 사내는 탁주 몇 잔에 홀라당 맛이 가 볼을 씰룩였다.




— 어제 얼마나 웃겼는지 압니까?

— 어딜 보고 제가 사내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역시 향 때문입니까?

— 양반들은 옷을 맞춰 입습니다. 고로 품이 남아도 그대처럼 어설프게 남지 않는단 말입니다.

— 사실 제 오라비의 옷을…….

— 그리고 얼굴.

— ……예?

— 내 입술만 보면서 색을 묻던 그 얼굴.

— 그건…….

— 여인의 얼굴이 아니고서야 뭐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장터 밖으로 빠져나온 사내가 한적한 갈대밭에 서서 뒷짐을 지었다. 술에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얼굴만 발그레해져서는 도포가 둥글게 휘날리도록 뒤를 돈다. 맹자 왈, 공자 왈 외치던 사내는 주막집에 버리고 온 지 오래다. 도포를 구깃하게 쥐고 다가온 사내가 비단신을 내려다본다. 주막에서 들썩이기만 했던 입술이 열렸다.




— 어제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저도 보통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빨리 벗어나고자 했을 뿐입니다. 주막에서 했던 말은 농이었으니 부디 괘념치 마셨으면 합니다.

— 왜 관아에 가서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 알린다고 하여 제가 얻는 건 무엇입니까. 이리 가만히 있으니 점심도 함께하고 그대의 남장 연유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대를 이해할 수 있으니 어떠한 것이 좋지 않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이해하여 좋지 아니할 수 없겠다라. 미묘한 말끝으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 진주색 도포가 어울리는 사람은 그대가 처음입니다.

— 선비님은 뭐가 그리 다 처음이시란 말입니까?

—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지날 날을 반성하고 있으니 타박은…….




술주정치고는 귀여운 진담이 아니던가. 가로수가 뻗어 있는 갈대밭이라, 없던 마음도 생기는 장소가 아닐런지.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는 핑계로, 탁주의 연한 취기를 핑계로 다가가 사내의 흐트러진 옷깃을 여민다.




— 조정 실무를 담당하는 것도, 왕의 명령을 받들고 백성을 지도하는 것도 선비의 현실적인 일입니다. 누이의 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 …….

— 허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받들지 못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굽어살피지 못한다면, 사대부의 그 어떤 명신(名臣)이 와도 국가의 태평성대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 …….

— 그러니 전 그대의 편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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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칠석(七夕)입니다
운(雲)에서 희작(喜鵲)이 운명을 도와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술시(戌時)에 수영교(水營橋)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勳]
*희작(喜鵲): 까치
*술시(戌時) 19시~21시




















밤늦게 도착한 사내의 연서였다.




















*




















오전부터 조정에 나간 아버지의 그림자를 배웅한 후 몰래 오라비 방으로 숨어들었다. 과거 급제 후 오랜만에 맞이한 휴식에 친구들과 연거푸 술을 먹고 있을 참이니 평소보다 늦장 부리며 도포를 골라도 되었다.




— 애기씨! 빨리 나오랑께요!

— 무엇이 그리 급해.

— 도련님 오셨어라아아!




풍남이가 숨을 참는다. 뒤늦게 병풍 뒤로 몸을 감춰보지만, 오라비는 매꼬롬한 얼굴로 가여운 듯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의 것뿐만 아니라 혈육의 것을 탐할 때도 경계를 늦추지 말라 그리 말했거늘. 방에 들어선 오라비는 진주색 도포를 풀며 자리에 앉았다.




— 네 발로 걸어온다더니 용케 두 발이네?

— 누가 쥐새끼마냥 도포를 훔쳐 가니 술이 넘어가야 말이지.

— 쥐새끼라니. 엄연히 빌리는 건데.

— 빌리는 것 치고는 너무 숨을 안 쉬는 것 아니냐?




등을 퍽퍽 갈기며 지난날 무료 대여한 도포 값을 톡톡히 치르는 오라비였다. 한쪽 벽에 걸린 진주색 도포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린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만큼은 저것을 빌렸으면 좋겠는데. 값은 몇 배를 얹더라도 치를 테니 말이야. 이내 서책을 읽는 오라비 눈앞에 알짱대며 거듭 회유를 시작했다.




— 진주색이 글쎄 나한테 제일 잘 어울린다지 뭐야?

— 누가 그런 끔찍한 망언을.

— 이번만 입고 다음번엔 손도 안 댈게.

— 어디 놀러라도 가느냐?

— ……수영교. 풍등.
*풍등: 공중에 풍선처럼 띄우는 등. 초롱 쌈이라고도 함.




오라비의 눈이 번쩍인다. 네가 남자가 생겼나 보구나? 별 관심도 없던 오라비가 되려 손을 부여잡고 시시콜콜 캐물었다. 어느 집 사람이냐? 나보다 괜찮더냐? 이 한양 땅에 그런 인물은 보지 못했지만 하하하. 자화자찬이 길어지기 전에 방을 벗어나야 한다. 오라비의 손을 뿌리치며 벽에 걸린 도포를 집었다.




— 입고 간다? 무르기 없기?

— 상관은 없다만, 저고리를 놔두고 왜 도포를 왜 입으려 해?

— …….

— 아버지 때문이냐?




홍문관 대제학 여식이 남자나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라도 깔리면 한양에서 얼굴도 못 들고 아버지 명성에 금이 갈 것이 뻔하니까. 그래서 하루에도 삼시 세끼 꼬빡 들어오는 혼처가 끊겨버리면 스스로 집안의 대를 잘라내는 것과 같으니까. 부모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을 안기는 자식이 어딨겠어. 도포를 매만지며 남자 행세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상기한다. 보는 눈이 많고 규제가 많은 조선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감추는 것뿐, 그 이상은 더더욱 바라지 아니해야 하며 절대 입 밖으로는 꺼내서는 안 될 불문율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연모하는 사내에게 너를 감출 필요는 없지 싶은데.

— 오라버니 말이라도 고마워하려고.

— 정말 도포를 입고 갈 셈이냐?

— 못할 건 또 없지.




엉성한 머리 올림에 오라비가 혀를 차며 갓을 챙긴다. 그 사내는 도포 입은 네가 좋다더냐. 취향도 특이한 것이 꼭 너와 어울릴 듯싶구나. 새로 산 끈으로 묶은 갓이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옥 줄을 매고 거울 앞에 서자 오라비와 닮은 얼굴이 하나 더 있다. 여자들이 그토록 추파를 던진 까닭이 있었네. 근심 많은 오라비는 요상한 표정으로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누이의 볼을 꼬집었다. 사랑하는 이를 보러 가는데도 변장이 필요하다니. 망할 세상이구나.




— 네 모습이 어떻든 진실로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꼭 데려오너라.

— …….

— 아버지는 어떻게든 내가 해볼게.




















*




















술시(戌時)가 다 되도록 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리는 건 굉장히 지루한 일이었다. 좁다란 다리에 모여 저마다 짝을 만나는데 홀로 옥 줄을 매만지며 달을 쳐다보고 있는 외로운 선비의 모습이라. 야바위꾼이라도 보이면 시간이라도 죽이겠건만, 오로지 풍등에 소원을 적고 술시만을 기다리는 원앙들만 있을 뿐이다.

어젯밤 받은 연서는 진심이 아니라 술김에 보낸 행운의 편지는 아니었는가? 다른 집 낭자에게 보냈어야 할 연서가 주소 한 끗 차이로 우리 집으로 온 것은 아니었는지? 아예 그 사내의 존재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 뭐하십니까.

— 으아아아악!




사내가 뒤로 넘어가는 허리를 받친다. 고뿔에 걸리기라도 한 것입니까. 새빨간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내의 옥 줄이 찰랑거렸다. 그대, 나와 같은 옥 줄을 매다셨습니까? 혹 이건 하늘에서 운명처럼 맺어준다는 까치의 계략은 아닐런지요. 품은 연심이 달빛에 흔들린다. 하지만 사내는 야속하게도 도포에만 관심을 가졌다.




— 제가 본 진주색입니까.

— 그렇습니다만.

— 밤에 보니 더 멋집니다.

— ……그대도.

— 예?

— 아닙니다.




몰래 연심을 넣어둔 달빛을 켜켜이 눈에 담는 사내가 웃는다.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어쩐담. 그땐 먼저 혼처를 넣어볼까. 남녀가 유별한 조선에서 돌연변이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으니.




— 무엇을 소원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 다 같은 마음 아닐런지요.




풍등을 나누는 상인에게 사내가 손짓한다. 적을 곳이 워낙 넓으니 이곳에 각자 소원을 풀면 될 것 같습니다. 풍등 하나에 사람은 두 명. 사내와 내가 적는 소원은 만수무강과 온 가족의 안녕과 안위, 자신에 대한 미래와 성공이었다. 뻔한 글귀와 지겨운 획순에 입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도 모른 채 점화 시간을 기다리자, 사내는 조심스레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 무엇이라 적으셨습니까.

— 소원이니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만 너무 궁금하여…….

— 먼저 말씀하시면 제 것도 내어드리지요.




사내는 또렷한 눈으로 응시하며 상인처럼 흥정을 걸었다. 억지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놀리는 것이 취미인 듯한 사내였다. 골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날이 날인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진실로 답한다. 그대가 날 이해하고 내가 그대를 이해한 것처럼.










—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 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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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이 떠오른다. 그것들은 조선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수가 되어 산 중턱을 넘었다. 이제 그대 차례입니다. 미처 듣지 못한 사내의 소원에 귀를 기울인다. 환호하는 사람들 위로 멀리 흩어지는 풍등을 쫓던 사내가 말한다. 역시나 우린 같은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 특정한 의복으로 판별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

— …….

— 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 …….

— 그대와 나처럼.























+

— 어딜 그리 바삐 둘러 가느냐.

— 잠시 풍등에 다녀왔습니다.

— 잠행에 재미를 붙인 것이냐.

— 민심을 굽어살피는 것이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아직도 누이와의 일을 잊지 못한 것이냐.

— 아닙니다. 누이의 말이 그르다 생각하지 않고 저 또한 그르다 생각지 않습니다.

— 세자.

— 모두의 생각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제 생각과 다르다 한들 어찌 그들을 미워하겠습니까.

— 요즘 세자의 관심사는 무엇인고?

— 공평입니다.

— 공평?




















—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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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그대와 나처럼











 

삼십 년 만에 한양을 둘러 낀 금향천(金香川)으로 거대한 장터가 섰다. 진시(唇時)부터 유시(酉時)까지 북으로는 함흥과 길주, 남으로는 탐라로부터 데려온 진귀한 물건을 볼 수 있는 대대적인 행사에 일찍이 도성 밖은 짐을 둘러맨 사람들로 장관을 이뤘다. 그중 왕의 추천서를 받고 당도한 상인들은 직인이 담긴 서를 펼치며 으스댔고, 신분 확인을 하던 군사들은 그것의 진위를 위해 얼굴을 맞댔다.
* 진시(唇時)부터 유시(酉時)까지: 07시 — 19시

어디 그뿐이랴? 전국 팔도가 한곳에 모였으니 소문으로만 듣던 날고 긴다는 양반 생김새들도 오늘만은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양반 자제들은 보란 듯 비단 도포를 뽐내며 합죽선을 펼친다. 피곤에 금치 못한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그 모습에 댕기 딴 아이는 물론, 이제 막 혼인한 처자와 구부정한 노인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더랬다.




— 내 이날만을 얼마나 손꼽았던가! 떠나 온 본가(本家)가 괘념치 않으니 굳이 돌아갈 필요 없이 이곳에 터를 잡아도 될 듯 허이. 그렇지 않은 가, 풍남이?

— 애기씨, 제가 누누이 얘기허지만 저어어얼대 혼자 계시면 안 된당게요. 누가 추파를 던질랑 말랑 혀도 쩌어어얼대 말도 섞지 말고 장 끝날 때까지 저랑 같이 쭈우우욱…….

— 애기씨라니! 그새 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 아니, 도련니이임…… 그것은 아니고요…….

— 풍남이, 자네는 걱정이 너무 많아.

— 대제학 어른께 도련님 옆 마을 자수 축제 보러 간다고 거짓부렁한 제 맘이 어떻겠습니까요. 매화단(梅花團)에 속히 귓띔 넣은 게 다행이지, 그분들이 도와주지 않았음 여기까지 택도 없당게요? 엊그녘부터 새벽만 되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약주도 끊었는데 몸이 으슬으슬하고 추운 것이 딱 제 발 저린 거 아닙니까요. 
*자수(刺繡): 십자수
* 매화단(梅花團): 한양에 뿌리를 둔 여성 모임.

— 거짓은 무슨? 여기서도 조신한 것들은 판을 친다네. 한양 장터라고 뭐가 다르겠나?

— 도련님이 말씀하신 조신한 것들은 죄다 노름 아닙니까요! 대제학 어른께 한 번만 더 야바위하다 걸리기라도 하믄 쇤내는 멍석말이에 물 싸다구에 아주 세상이랑 작별이라니께요!




행랑채 터줏대감 풍남이 길길이 날뛰며 대제학의 얼굴을 곱씹는다. 조금만 어긋나도 빠득이는 눈빛, 내 아비여도 쉽사리 견디기 힘든 것인데 거기에 거짓말까지 하였으니 풍남이의 두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새벽 물레방앗간이라.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법, 지난 상주 장터에서 팔십 냥 야바위를 털다 아비에게 걸렸을 때도 창고에 갇혀 일절 식음을 전폐한 나로서는 무서울 게 없었다.

여자로서 깊은 학문에 다가서지 못하고, 여자로서 무예가 아닌 절개만을 위한 단도만이 허락되고, 여자로서 기껏해야 방물점에 들러 은장도와 장신구를 들고 오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평생 썩어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형벌에 불만을 품고 있던 터였다.
*방물점: 현대의 액세서리 가게

가옥에 있는 것이 감옥과 같고, 백합처럼 살다가 이 고약한 성질머리를 참지 못해 홧병에 뒤질 것만 같아 시작한 바깥 구경이었는데, 그곳은 책으로 배운 것보다 생생했고 갓을 쓴 사내들 어깨너머로 들은 것보다 생경했다. 여자가 아닌 남자로서 마주한 세상은 비겁하도록 유했으며 또한 이기적인 자유가 있었기에.

조선에 내려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모름지기 이러한 역동적인 취미는 지속적으로 가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뭐, 야바위에 팔십 냥을 쏟아부은 것은 고의가 아니었네만. 슬쩍 풍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다. 하지만 풍남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방을 경계하는 것. 혹여 내게 말을 거는 자가 있는지, 몰래 허리를 감는 여편네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지난번 상주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풍남의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야 할 것이다. 도성으로부터 불과 열 발자국, 치마폭을 흔들며 요염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 멀리서부터 지켜봤네만, 그대는 어찌 봐도 참 곱소.

— 어머머, 설마 날 보고 그런 건감?

— 그대 말고 누가 또 있겠소만.

— 얼굴두 말하는 것두 어쩜 이렇게 여인을 사르르 녹이실까?




도성 문 앞에서 신분 확인을 받던 풍남의 본능 주파수가 작동한다. 옷깃을 쥐는 유혹적인 손길을 알아채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특징인. 그럼 난 아무 일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 비뚤어진 갓을 고쳐 쓰면 된다. 장터 구경만 나갔다 하면 발동하는 장난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지고지순은 내게 맞지 않는 옷임을 고갯마루 절친 똥개 돌돌이도 아는 것을. 흐음.




— 워매매애애애!!! 도련니이이임!!!! 시방 뭐더는거요!!!!!

— 그럼 이만.




간드러진 눈짓에 처자는 머리를 짚었다. 오라비가 여자를 꾀어내는 방법이라 일러준 것이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간 똥 멍청이라도 너에겐 넘어가지 않겠다 코웃음 친 것을 잠시나마 반성한다. 학문에 정진할 힘을 추파에 쏟는 오라비 너 또한 반성을 해야 할 테지.




— 도련님, 혹시 모르니 합죽선을 펼치시는 게…….

— 이 넓은 한양 땅에서 날 알아보는 이가 누가 있겠다고.

— 한양은 한양입죠. 두세 다리만 건너도 익은 얼굴이라 하지 않습니까요.

— 설령 안다 한들 도망가면 그뿐이지 않느냐.

— 이놈은 달리기를 못 허는디요.

— 누구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효과를 보는 법이지.

— 당최 뭔 말씀을 허시는지.

— 미친개에게 쫓겨 본 적이 있느냐? 당시 난 일곱 살에 맨발로 청계천에서 금향천까지…….

— 남의 집 감나무 따 먹다가 그 집 개에게 쫓긴 일 말입니까요?

— ……햇살이 굉장히 좋구나.




도성 안 금향천(金香川)으로 향하는 발이 가볍다. 꼭두새벽부터 자수 축제를 핑계 삼아 도성 밖으로 잠시 도피하였으니, 이제는 본래 목적인 장터로 들어가 즐기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고삐를 잡고 졸졸 따라오는 풍남은 허투루 시선을 뺏기는 일이 없다. 샛길로 숨어 야바위에 미쳐 날뛰는 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아도 큰 눈에 불화살을 매단 것 마냥 이글거리니 지나가던 꼬맹이도 두려움에 떨지 않느냐!




— 앞장서거라.

— 안 된당게요.

— 찬아, 우리의 연이 고작 이 정도였더냐.

— 진짜 이름 불러도 소용없당께요!




임시 이별의 가장 좋은 방책은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하며 장터 구경 나온 한양 최고의 청루주사(靑樓酒肆) 기생들의 이목을 즐긴다. 풍남은 대신 합죽선을 펼쳐 내 얼굴을 가렸다.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구먼요. 풍남의 엄호를 받고 당당한 양반걸음으로 장터를 누빈다. 그럼 진실로 갓을 쓴 대제학의 장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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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왕 13년, 홍문관 대제학의 차녀인 내가.
















OFF ON OFF
두근두근 체인지 (㤢筋㤢筋 體認恀)















— 닷 냥만 깎아주게.

— 에이, 그렇게는 못 합죠.

— 석 냥은 어떤가.

— 궁녀들이 진시황제 용포 빨 때 쓴다던 다듬이인데 어찌 그걸 깎아서 판다요?




삼십 냥이 양반님 같은 분께 기별이라도 갑니까? 소인이면 벌써 열댓 개는 샀겠네. 길주에서 왔다던 상인은 흥정이 마땅치 못했는지 팔짱을 끼며 눈을 흘겼다. 뒤에서 목을 축이던 풍남은 다짜고짜 눈을 부라리며 상인에게 분을 토했다.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아느냐! 이분은 바로으으읍! 흥정하던 손으로 풍남의 입을 막는다. 오늘도 구석으로 유배당하고 싶은 것이냐. 치켜뜬 눈썹에 풍남은 풀이 죽는다. 그래도 상인을 노려보는 건 풍남의 몫이었다.




— 그래, 그 값으로 두 쌍 주게.

— 무르기 없습니다?

— 그런 건 무뢰배들이나 하는 짓이지.
*무뢰배(無賴輩): 불량배




도포에 숨겨둔 엽전 꾸러미를 꺼내자 상인은 횡재한 듯 누런 이를 보였다. 행랑채에서 풍남과 살림을 꾸려갈 순심에게 줄 선물이니 아깝지 않다. 나머지 하나는 혹여 아비에게 걸려 나가지 못해 홧병이 도질 때, 그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이놈이 뭐라고 잘해주신답니까. 도련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잖어요. 속내를 알아챈 풍남은 눈물이 많아 이번 장터에서도 소매를 적셨다. 지난번 상주서는 제게 어울릴 만한 신을 마련하자 길바닥에 앉아 대성통곡하던 놈이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싶었다. 하지만 고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 당신이 아니라 이 사람이 무뢰배 아닙니까?

— …….

— 나주 연제 장터에서 값비싸게 속여 판 다듬이가 한양까지 들어오다니!




쓰게 치마에 입술만 보인 채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상인에게 다가가 일침을 놓았다.




— 당신이 판 것은 진시황제 궁녀들이 쓰던 것이 아닌, 닷 냥에 서너 개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일반적인 다듬이인데 어찌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한단 말이오!

— 그걸 어떻게…….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어야 하거늘!




미성이지만 강단 있고 과감한 목소리였다. 상인은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여 벌건 얼굴로 엽전을 끌어안았다. 한양 도성 내 곱절이나 얹은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는 물건을 조심하라는 왕과 왕세자의 방이 마을 곳곳에 퍼진 터라 장터 내 사람들은 금세 주변으로 모였다. 흉흉한 소문이 사실이 된 셈이었다.




— 세상은 그대가 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

— …….

— 항상 의심해도 당하는 건 사람이니.




매끄러운 입술을 가진 여인은 따라온 시종과 함께 장터 반대 길로 몸을 틀었다. 대신 돈을 돌려받은 풍남은 장터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도록 ‘여기 사기꾼이 있당게요!’ 손가락질하며 상인을 오도 가도 못 하도록 옭아맸다. 삼십 년 만에 열린 장터에서 쓰는 개쪽이란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 풍남아, 여기 있거라.

— 예? 갑자기 어디 가신 답니까?

— 내 곧 돌아오마.

— 아, 아니 애기……!




오라비의 갓과 도포를 훔친 탓에 품이 큰 모든 것들은 뛸 때마다 엉성한 폼으로 바람에 흔들렸다. 어찌나 상대의 걸음이 빠른지 통을 죄는 속곳이나 저고리를 입고 달리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한 뼘이나 큰 비단 신이 휘어질 때도 있었지만, 저 골목길 방물점에서 노리개를 고르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이러한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인의 시종으로 보이는 자는 뒤에서 흘긋대는 날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앞을 막았다. 무엄하다.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힘 좀 쓰는 몸집으로 밀어내니 속수무책으로 밀려난다. 여전히 쓰게 치마로 눈을 가린 여인이 이번엔 시종을 막았다.




— 되었다. 그만하거라.

— …….

— 쫓아오시는 걸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지요.




여인의 입술은 근간 조선 규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입술연지였다. 남쪽 지역 봉숭아 꽃잎으로 만든 특급 한정품. 지난달 순심이를 대형 방물점에 보냈으나 얻지 못했던 바로 그 색! 순간 용건을 잊고 여인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니 그녀의 시종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현재 풍남이가 없으니 섣불리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일단 몸을 사려야 하느니.




— 아, 아깐 고마웠소.

— 그른 것을 잡았을 뿐입니다. 괘념치 마시지요.




가벼운 묵례 후 여인은 다시 방물점 주인과 얼굴을 맞댔다. 이유인즉슨 매(妹)에게 줄 선물이었다. 노오랗고 시퍼어런 것을 좋아할라나 모르겠네. 난 여태 뒷짐을 지고 저런 말이나 지껄이며 여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2품 홍문관 대제학인 아비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고 돌아와야 후손이 평안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그 아비를 둔 자식으로서 절대 지나치지 않아야 함이 옳았다.
*매(妹):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자매

여인의 고개가 옆으로 흐른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날 보고 있음에 확신했다. 보드라운 손등을 내보이며 입술 색보다 연한 손끝으로 노리개를 집어 말을 걸었으니 이보다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 이건 어떻습니까. 어여쁘지 아니합니까.

—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저 색이 한양을 휩쓸고 저 또한 누구보다 먼저…….

— …….

— ……누이를 주었습니다.

— 누이가 계셨습니까.

— 받고서는 아주 좋아했다지요. 하하.




멀쩡한 오라비가 누이가 되었다. 입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현재 신분과 용모를 망각한 채 실언하여 스스로 남장을 한 죄를 알렸을 게다. 목소리 큰 풍남을 다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입단속이 먼저였다. 좌판 앞쪽에 늘어진 노리개 중 선홍색에 가까운 것을 집어 여인에게 내밀자, 그녀는 그것을 받아 들며 미소 지었다.

제 누이가 말하길, 올해는 이 색이 조선을 휩쓴다 합니다. 가까스로 위험을 넘기니 올려 쓴 갓 옆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여인은 말없이 시종에게 받은 손수건을 건넸다. 포목점에서도 볼 수 없는 비단이라니, 이건 예사 것이 아니다. 어느 집 양반 규수라면 이다지도 고운 것을 쓰는 것인지.
*포목점(布木店): 옷감을 파는 가게




— 저 또한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 혹시, 그대의 색이 무엇인지…….

— 색이라니요.

— 입, 입술 색 말이오.




그녀의 시종이 범상치 않다. 때에 따라 본가 마당에 오라비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검술 대련을 하곤 했는데, 상대방을 찢어 죽일 듯한 눈을 지금 저자가 하고 있었다. 개는 인간을 물지만 곰은 사람을 찢는다 하였으니 저자가 바로 곰이 아닐까. 바라건대 여인의 윤기 나는 피부 비결이라도 묻는다면 당장 찢겨 죽어도 연유가 없을 것이다.




— 궁금할 이유가 무엇인지요. 사내에게는 필요치 않은 물건 아닙니까.

— 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그러오. 그러니 내게 알려준다면…….

— 혹, 그대는 아닐런지요.

— ……뭐라고 하셨소?

— 아쉽게도 이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럼.




곁을 지나치는 여인의 팔을 잡는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것이 그대의 것이란 말이오? 내 멱살을 잡으려는 시종을 막은 여인이 천천히 다가와 귀엣말을 넣는다. 여색과 거리가 멀었음에도 아랫배가 뭉근히 꼴렸다. 귓가에 닿는 은근한 입술과 웃음을 흘리는 모양새에 정신을 놓는다. 누구와도 일절 말도 섞지 말라는 풍남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 수염 한번 나본 적 없는 턱에 묶인 끈과 옥 줄이 참 재밌습니다.

— …….

— 연꽃 향은 우리 매(妹)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지요.

— …….

— 당신의 누이는 어떠합니까.











장터를 빠져나가는 그들을 지나쳐 헐레벌떡 달려온 풍남이 사족을 살핀다. 애기씨! 괜찮은 거여요? 도련님 사라지시고 이놈이 을매나 애가 탔는지 아십니까요? 애기씨라 말하다가, 도련님이라 말하다가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 참인지 허둥지둥 대는 풍남을 붙잡고 다그치듯 물었다.




— 내게서 연꽃 향이 나느냐?

— 뭔 소린지 이놈은 잘 모르겄습니다요.

— 맡아 보아라.

— 뭘 말입니까요?

— 내 체취를!

— 아익! 지금 뭐허신대요!




풍남은 겨드랑이를 들추는 양반집 자식을 부끄러워했다. 서둘러 본가로 떠밀려가는 와중에도 쓰게 치마 밑으로 날 농락하던 입술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작 얇은 구순으로 사람 혼을 쏙 빼놓은 그 여인은 관아가 아닌 반대편 아래 고개로 사라졌다. 연유가 무엇일까.




— 그 여인 말이다.

— 도련님을 도와주신 그분 말입니까?

— 당분간 외출은 삼가야겠구나.

— 바깥 구경에 목매시던 애기씨 아닙니까요?

— 얼른 가자. 오라비가 돌아오기 전에 제자리에 두어야 하느니.










진주색 도포를 가지런히 모아 품에 안는다.
댕기 머리와 선홍색 치맛단이 말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췄다.




















수염 한번 나본 적 없는 턱에 묶인 끈과 옥이 참 재밌습니다.
연꽃 향은 우리 매(妹)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지요.
당신의 누이는 어떠합니까.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라.




















*




















— 당분간 외출은 금하신다 하셨잖습니까.

— 그랬느냐?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만.

— 바로 어제 일인디요.

— 밀전병 냄새가 좋구나.




이틀로 향한 장터는 금향천(金香川)밖으로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일은 칠석을 앞둔 터라 한양 곳곳은 고소한 밀전병 냄새를 풍겼다. 풍남은 어제 일을 대제학께 들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목숨을 두 번 얻은 셈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다, 엽전 앞뒤 바꾸듯 마음이 바뀐 내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가지를 긁었다.




— 오늘은 왜 사내 차림이 아닙니까요?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갓을 쓰고도 남으실 턴디.

— 간만에 방물점에 가지 않느냐. 장신구는 직접 대어 보아야 예쁜 것을 아는 법이다.

— 가셔도 늘 같은 것만 사지 않습니까요.

—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

— 예예, 그러합죠.

— 순심이는 다듬이를 맘에 들어 하느냐.

— 아주 쿵쾅대고 별 지랄을 다 혔는디 듣지 못하셨습니까?

— 지랄은 무슨, 악기의 쓰임이 별다른 게 있는 것도 아닌데.




포목점을 지나 방물점에 다다르자 어제와 달리 중국에서 건너온 노리개가 한가득이다. 어제 온 손님이 나였다면 굉장히 아쉬워했을……. 좌판 정 가운데 선홍색 노리개가 시선을 잡는다. 곱다란 손으로 여동생에게 줄 노리개를 고르던 여인, 귓가에 은밀히 내 정체를 폭로하던 여인, 골목길을 도는 순간 어렴풋이 눈을 맞추던 그…….




—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요?

— 별 것 아니다. 보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 상인들 말 들어보니 중국에서 건너온 다른 방물점도 많다든디요?

— 이리도 귀한 색이 많지 않은가. 조금만 더 보고 가세.




살구색 비단 치마에 노리개와 장식품을 대어 구색을 갖춘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다 가져가고 싶구나. 하지만 과소비는 금물, 절제할 줄 아는 사람만이 물건의 귀중함을 아는 법이지. 손가락에 다섯 개씩 노리개를 매달고 하는 말이기에 상당히 반어적이었지만, 어쨌거나 단 하나만 고를 것이다. 풍남은 팔짱을 끼고 노리개를 구경하다 약방길로 잠시 사라졌다.




— 선비님이 어쩐 일로 이런 데를 다 오슈?

— 누이에게 줄 선물이 있을지.

— 요새 선홍색 노리개가 인기 절정이라우.

— 그건 제 누이가 이미 가지고 있다 하여…….

— 오늘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색도 있다우.

— 그럼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어여쁘지 아니 한지.




















— 이건 어떻습니까. 어여쁘지 아니합니까.




















제비꽃 노리개에 손이 겹친다. 사내의 손등에 올라탄 손은 화들짝 놀라 등 뒤로 숨었다. 말총으로 엮은 갓을 쓴 사내가 그것을 집어 내게 건넸다. 개의치 마시지요.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에 노리개가 쥐어진다. 구색 맞추길 좋아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어제 본 여인과 영락없이 또옥 닮은 사내를 만났기에. 아니, 또옥 닮은 손가락과 얄쌍한 턱선과 봉숭아 연지를 발라주고 싶은 얇은 입술을 가진 사내를 보았으니.




— 괜찮으십니까.

— …….

—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더 명확해짐이라. 완전한 사내 복장이라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맞다는 것을. 만약 내가 전형적인 양반집 여식이었다면, 사내를 어제 만난 여인의 오라비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율법에 어긋난 남장을 하고 한양 문밖을 넘어 다녔으니 그 내공이 어디 가겠는가. 이 사내는 필히 어제 만난 여인이 맞다. 굳이 말하자면 여인인 척 장터를 누비던 사내였겠지. 어제는 진주색 도포, 오늘은 살구색 치마를 입고 노리개 따위를 맞춰보고 있는 나처럼 그도 분명 사연이 있음에 오른쪽 손에 달린 제비꽃 노리개를 걸지.

제비꽃 색은 하나밖에 없는데 어쩌실라우? 선비님이 가져가실런가, 아님 우리 규수 댁 양반이 사실런가? 방물점 주인은 담뱃대를 폴폴 피우며 흥정을 걸었다. 저는 괜찮으니 선비님께 주시지요. 기회는 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쓰게 치마를 벗어 사내와 눈을 맞추고 미소 짓는다.

제 누이가 많이 기뻐할 겁니다. 포장을 기다리며 방물점 문 앞에 오도카니 선 사내가 가볍게 묵례했다. 갓을 고쳐 쓰며 햇살을 피하는 사내의 옆모습을 관찰하다 손바닥으로 사내의 눈을 가렸다. 뽀얀 입술이 남는다. 얄쌍한 저것. 찾았다, 네 입술.




— 혹, 연꽃 향을 기억하십니까?

— …….

— 어젯밤부터 품에 안고 잠에 들었더니 이리 향이 배었지 뭡니까.

— …….

— 이제야 돌려드립니다. 그대.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옅게 조소하는 날 따라 그대 또한 알아본 것이지. 방물점 주인이 포장한 노리개를 옆구리에 낀 사내는 눈을 피한 채 자꾸만 입술을 축였다. 그래, 목이 마를 것이다. 우린 서로 비밀을 들킨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 탁주와 국밥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 …….

— 그렇다면 점심은 둘 다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제의 여인처럼 쓰게 치마를 둘러 입술만 남긴 채 뒤를 돌았다. 약에 올라 동틀 녘까지 잠에 들지 못했으니 이 정도 복수는 귀엽지 아니한가.










— 제 입술은 어떠합니까.

— …….

— 그대 누이가 가지고 있는 봉숭아 연지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




















제나라 임금의 왕자가 물어 말하기를,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합니까? 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왕자가 말하기를,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인의(仁義)뿐이지요 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어질고 자비로운, 그리고 의리를 높게 잡는 선비야말로 진정하고 참된 선비가 아니겠냐는 말에 극히 공감하였으나, 여기서 제 누이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갈등을 내어야 했습니다.

누이가 말하길, 선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문적 수행이 아닌, 관직에 올라 실무를 담당하고 왕과 백성과의 마찰을 줄이는 역할이니 어짊과 자비로움보다는 사리 분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명석한 두뇌, 의리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 실리를 따져 곁에 사람을 두어야 한다 합니다.

이후 아버지께 여쭤보니 아버지 또한 누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일로 내기를 했던 저는 누이의 소원대로 여장을 하고 장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단 한 바퀴만 돌다 오면 다른 주제로 다시 토론을 펼치겠다 약주를 받아냈고요.










— 그런데 누이께서는 굳이 선비님에게 여장을 시킨 연유가 무엇인지요?

— 누이는 어릴 적 자신과 닮은 매(妹)를 얻길 바랐으나, 눈치껏 태어나지 못한 제가 미워 여태까지 벼르고 있다 하였습니다.

— 그럼 어제 연지 입술도…….

— 누이의 작품입니다.




사내는 국밥과 탁주를 심드렁하게 먹는 날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채에서 다과를 즐기며 자수나 놓고 있어야 할 양반댁 여식이 치마에 밥풀을 흘려가며 먹는 꼴은 난생처음 보았을 것이다. 가끔 풍남이와 장터에 나올 때면 늘 하던 짓을 낯선 사내와 마주하니 국물은 다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 그대의 남장 연유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 정당한 야바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노름을 좋아하기라도 한 겁니까.

— 맞추기라도 하면 여자에게는 호통을, 남자에게는 다음 판으로 회유하는 못난 습성이 싫어서라고 해두죠.




제가 이래 봬도 불공평에 치를 떠는 사람이라. 바닥을 보인 국밥 그릇을 슬쩍 숨기며 탁주로 입을 털었다. 사내는 입을 들썩이다 이내 다물었다. 술에 취한 주막 손님들이 죄다 한 번씩은 허우대 멀쩡한 사내의 어깨를 쳐가며 가게를 빠져나갔으니 열이 받지 않고서야 물러설 수 없음이라.




— 이곳은 매우 재밌는 곳이겠습니다.

— 누가 보면 처음 온 듯합니다.

— 처음, 입니다.

— 진심이십니까?

— 지나친 적은 있어도 직접 들어와 음식을 마주한 건 이번이 그대와 처음입니다.




국밥에 나무 숟가락을 첨벙대며 다른 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 사내가 마침내 첫입을 댄다. 은연중 비린내가 올라오는 국물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내 꿀떡꿀떡 잘 넘겼더랬다. 국밥에 코라도 빠지겠습니다. 농담 섞인 말에도 사내는 탁주까지 탈탈 털어내 막잔을 채웠다. 하지만 도통 술과 인연이 닿지 않은 사내는 탁주 몇 잔에 홀라당 맛이 가 볼을 씰룩였다.




— 어제 얼마나 웃겼는지 압니까?

— 어딜 보고 제가 사내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역시 향 때문입니까?

— 양반들은 옷을 맞춰 입습니다. 고로 품이 남아도 그대처럼 어설프게 남지 않는단 말입니다.

— 사실 제 오라비의 옷을…….

— 그리고 얼굴.

— ……예?

— 내 입술만 보면서 색을 묻던 그 얼굴.

— 그건…….

— 여인의 얼굴이 아니고서야 뭐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장터 밖으로 빠져나온 사내가 한적한 갈대밭에 서서 뒷짐을 지었다. 술에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얼굴만 발그레해져서는 도포가 둥글게 휘날리도록 뒤를 돈다. 맹자 왈, 공자 왈 외치던 사내는 주막집에 버리고 온 지 오래다. 도포를 구깃하게 쥐고 다가온 사내가 비단신을 내려다본다. 주막에서 들썩이기만 했던 입술이 열렸다.




— 어제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저도 보통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빨리 벗어나고자 했을 뿐입니다. 주막에서 했던 말은 농이었으니 부디 괘념치 마셨으면 합니다.

— 왜 관아에 가서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 알린다고 하여 제가 얻는 건 무엇입니까. 이리 가만히 있으니 점심도 함께하고 그대의 남장 연유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대를 이해할 수 있으니 어떠한 것이 좋지 않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이해하여 좋지 아니할 수 없겠다라. 미묘한 말끝으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 진주색 도포가 어울리는 사람은 그대가 처음입니다.

— 선비님은 뭐가 그리 다 처음이시란 말입니까?

—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지날 날을 반성하고 있으니 타박은…….




술주정치고는 귀여운 진담이 아니던가. 가로수가 뻗어 있는 갈대밭이라, 없던 마음도 생기는 장소가 아닐런지.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는 핑계로, 탁주의 연한 취기를 핑계로 다가가 사내의 흐트러진 옷깃을 여민다.




— 조정 실무를 담당하는 것도, 왕의 명령을 받들고 백성을 지도하는 것도 선비의 현실적인 일입니다. 누이의 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 …….

— 허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받들지 못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굽어살피지 못한다면, 사대부의 그 어떤 명신(名臣)이 와도 국가의 태평성대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 …….

— 그러니 전 그대의 편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세븐틴/無銘] OFF ON OFF _ 두근두근 체인지 (㤢筋㤢筋 體認恀) | 인스티즈
내일은 칠석(七夕)입니다
운(雲)에서 희작(喜鵲)이 운명을 도와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술시(戌時)에 수영교(水營橋)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勳]
*희작(喜鵲): 까치
*술시(戌時) 19시~21시




















밤늦게 도착한 사내의 연서였다.




















*




















오전부터 조정에 나간 아버지의 그림자를 배웅한 후 몰래 오라비 방으로 숨어들었다. 과거 급제 후 오랜만에 맞이한 휴식에 친구들과 연거푸 술을 먹고 있을 참이니 평소보다 늦장 부리며 도포를 골라도 되었다.




— 애기씨! 빨리 나오랑께요!

— 무엇이 그리 급해.

— 도련님 오셨어라아아!




풍남이가 숨을 참는다. 뒤늦게 병풍 뒤로 몸을 감춰보지만, 오라비는 매꼬롬한 얼굴로 가여운 듯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의 것뿐만 아니라 혈육의 것을 탐할 때도 경계를 늦추지 말라 그리 말했거늘. 방에 들어선 오라비는 진주색 도포를 풀며 자리에 앉았다.




— 네 발로 걸어온다더니 용케 두 발이네?

— 누가 쥐새끼마냥 도포를 훔쳐 가니 술이 넘어가야 말이지.

— 쥐새끼라니. 엄연히 빌리는 건데.

— 빌리는 것 치고는 너무 숨을 안 쉬는 것 아니냐?




등을 퍽퍽 갈기며 지난날 무료 대여한 도포 값을 톡톡히 치르는 오라비였다. 한쪽 벽에 걸린 진주색 도포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린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만큼은 저것을 빌렸으면 좋겠는데. 값은 몇 배를 얹더라도 치를 테니 말이야. 이내 서책을 읽는 오라비 눈앞에 알짱대며 거듭 회유를 시작했다.




— 진주색이 글쎄 나한테 제일 잘 어울린다지 뭐야?

— 누가 그런 끔찍한 망언을.

— 이번만 입고 다음번엔 손도 안 댈게.

— 어디 놀러라도 가느냐?

— ……수영교. 풍등.
*풍등: 공중에 풍선처럼 띄우는 등. 초롱 쌈이라고도 함.




오라비의 눈이 번쩍인다. 네가 남자가 생겼나 보구나? 별 관심도 없던 오라비가 되려 손을 부여잡고 시시콜콜 캐물었다. 어느 집 사람이냐? 나보다 괜찮더냐? 이 한양 땅에 그런 인물은 보지 못했지만 하하하. 자화자찬이 길어지기 전에 방을 벗어나야 한다. 오라비의 손을 뿌리치며 벽에 걸린 도포를 집었다.




— 입고 간다? 무르기 없기?

— 상관은 없다만, 저고리를 놔두고 왜 도포를 왜 입으려 해?

— …….

— 아버지 때문이냐?




홍문관 대제학 여식이 남자나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라도 깔리면 한양에서 얼굴도 못 들고 아버지 명성에 금이 갈 것이 뻔하니까. 그래서 하루에도 삼시 세끼 꼬빡 들어오는 혼처가 끊겨버리면 스스로 집안의 대를 잘라내는 것과 같으니까. 부모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을 안기는 자식이 어딨겠어. 도포를 매만지며 남자 행세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상기한다. 보는 눈이 많고 규제가 많은 조선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감추는 것뿐, 그 이상은 더더욱 바라지 아니해야 하며 절대 입 밖으로는 꺼내서는 안 될 불문율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연모하는 사내에게 너를 감출 필요는 없지 싶은데.

— 오라버니 말이라도 고마워하려고.

— 정말 도포를 입고 갈 셈이냐?

— 못할 건 또 없지.




엉성한 머리 올림에 오라비가 혀를 차며 갓을 챙긴다. 그 사내는 도포 입은 네가 좋다더냐. 취향도 특이한 것이 꼭 너와 어울릴 듯싶구나. 새로 산 끈으로 묶은 갓이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옥 줄을 매고 거울 앞에 서자 오라비와 닮은 얼굴이 하나 더 있다. 여자들이 그토록 추파를 던진 까닭이 있었네. 근심 많은 오라비는 요상한 표정으로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누이의 볼을 꼬집었다. 사랑하는 이를 보러 가는데도 변장이 필요하다니. 망할 세상이구나.




— 네 모습이 어떻든 진실로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꼭 데려오너라.

— …….

— 아버지는 어떻게든 내가 해볼게.




















*




















술시(戌時)가 다 되도록 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리는 건 굉장히 지루한 일이었다. 좁다란 다리에 모여 저마다 짝을 만나는데 홀로 옥 줄을 매만지며 달을 쳐다보고 있는 외로운 선비의 모습이라. 야바위꾼이라도 보이면 시간이라도 죽이겠건만, 오로지 풍등에 소원을 적고 술시만을 기다리는 원앙들만 있을 뿐이다.

어젯밤 받은 연서는 진심이 아니라 술김에 보낸 행운의 편지는 아니었는가? 다른 집 낭자에게 보냈어야 할 연서가 주소 한 끗 차이로 우리 집으로 온 것은 아니었는지? 아예 그 사내의 존재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 뭐하십니까.

— 으아아아악!




사내가 뒤로 넘어가는 허리를 받친다. 고뿔에 걸리기라도 한 것입니까. 새빨간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내의 옥 줄이 찰랑거렸다. 그대, 나와 같은 옥 줄을 매다셨습니까? 혹 이건 하늘에서 운명처럼 맺어준다는 까치의 계략은 아닐런지요. 품은 연심이 달빛에 흔들린다. 하지만 사내는 야속하게도 도포에만 관심을 가졌다.




— 제가 본 진주색입니까.

— 그렇습니다만.

— 밤에 보니 더 멋집니다.

— ……그대도.

— 예?

— 아닙니다.




몰래 연심을 넣어둔 달빛을 켜켜이 눈에 담는 사내가 웃는다.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어쩐담. 그땐 먼저 혼처를 넣어볼까. 남녀가 유별한 조선에서 돌연변이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으니.




— 무엇을 소원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 다 같은 마음 아닐런지요.




풍등을 나누는 상인에게 사내가 손짓한다. 적을 곳이 워낙 넓으니 이곳에 각자 소원을 풀면 될 것 같습니다. 풍등 하나에 사람은 두 명. 사내와 내가 적는 소원은 만수무강과 온 가족의 안녕과 안위, 자신에 대한 미래와 성공이었다. 뻔한 글귀와 지겨운 획순에 입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도 모른 채 점화 시간을 기다리자, 사내는 조심스레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 무엇이라 적으셨습니까.

— 소원이니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만 너무 궁금하여…….

— 먼저 말씀하시면 제 것도 내어드리지요.




사내는 또렷한 눈으로 응시하며 상인처럼 흥정을 걸었다. 억지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놀리는 것이 취미인 듯한 사내였다. 골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날이 날인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진실로 답한다. 그대가 날 이해하고 내가 그대를 이해한 것처럼.










—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 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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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이 떠오른다. 그것들은 조선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수가 되어 산 중턱을 넘었다. 이제 그대 차례입니다. 미처 듣지 못한 사내의 소원에 귀를 기울인다. 환호하는 사람들 위로 멀리 흩어지는 풍등을 쫓던 사내가 말한다. 역시나 우린 같은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 특정한 의복으로 판별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

— …….

— 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 …….

— 그대와 나처럼.























+

— 어딜 그리 바삐 둘러 가느냐.

— 잠시 풍등에 다녀왔습니다.

— 잠행에 재미를 붙인 것이냐.

— 민심을 굽어살피는 것이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아직도 누이와의 일을 잊지 못한 것이냐.

— 아닙니다. 누이의 말이 그르다 생각하지 않고 저 또한 그르다 생각지 않습니다.

— 세자.

— 모두의 생각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제 생각과 다르다 한들 어찌 그들을 미워하겠습니까.

— 요즘 세자의 관심사는 무엇인고?

— 공평입니다.

— 공평?




















—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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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그대와 나처럼











 

삼십 년 만에 한양을 둘러 낀 금향천(金香川)으로 거대한 장터가 섰다. 진시(唇時)부터 유시(酉時)까지 북으로는 함흥과 길주, 남으로는 탐라로부터 데려온 진귀한 물건을 볼 수 있는 대대적인 행사에 일찍이 도성 밖은 짐을 둘러맨 사람들로 장관을 이뤘다. 그중 왕의 추천서를 받고 당도한 상인들은 직인이 담긴 서를 펼치며 으스댔고, 신분 확인을 하던 군사들은 그것의 진위를 위해 얼굴을 맞댔다.
* 진시(唇時)부터 유시(酉時)까지: 07시 — 19시

어디 그뿐이랴? 전국 팔도가 한곳에 모였으니 소문으로만 듣던 날고 긴다는 양반 생김새들도 오늘만은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양반 자제들은 보란 듯 비단 도포를 뽐내며 합죽선을 펼친다. 피곤에 금치 못한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그 모습에 댕기 딴 아이는 물론, 이제 막 혼인한 처자와 구부정한 노인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더랬다.




— 내 이날만을 얼마나 손꼽았던가! 떠나 온 본가(本家)가 괘념치 않으니 굳이 돌아갈 필요 없이 이곳에 터를 잡아도 될 듯 허이. 그렇지 않은 가, 풍남이?

— 애기씨, 제가 누누이 얘기허지만 저어어얼대 혼자 계시면 안 된당게요. 누가 추파를 던질랑 말랑 혀도 쩌어어얼대 말도 섞지 말고 장 끝날 때까지 저랑 같이 쭈우우욱…….

— 애기씨라니! 그새 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 아니, 도련니이임…… 그것은 아니고요…….

— 풍남이, 자네는 걱정이 너무 많아.

— 대제학 어른께 도련님 옆 마을 자수 축제 보러 간다고 거짓부렁한 제 맘이 어떻겠습니까요. 매화단(梅花團)에 속히 귓띔 넣은 게 다행이지, 그분들이 도와주지 않았음 여기까지 택도 없당게요? 엊그녘부터 새벽만 되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약주도 끊었는데 몸이 으슬으슬하고 추운 것이 딱 제 발 저린 거 아닙니까요. 
*자수(刺繡): 십자수
* 매화단(梅花團): 한양에 뿌리를 둔 여성 모임.

— 거짓은 무슨? 여기서도 조신한 것들은 판을 친다네. 한양 장터라고 뭐가 다르겠나?

— 도련님이 말씀하신 조신한 것들은 죄다 노름 아닙니까요! 대제학 어른께 한 번만 더 야바위하다 걸리기라도 하믄 쇤내는 멍석말이에 물 싸다구에 아주 세상이랑 작별이라니께요!




행랑채 터줏대감 풍남이 길길이 날뛰며 대제학의 얼굴을 곱씹는다. 조금만 어긋나도 빠득이는 눈빛, 내 아비여도 쉽사리 견디기 힘든 것인데 거기에 거짓말까지 하였으니 풍남이의 두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새벽 물레방앗간이라.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법, 지난 상주 장터에서 팔십 냥 야바위를 털다 아비에게 걸렸을 때도 창고에 갇혀 일절 식음을 전폐한 나로서는 무서울 게 없었다.

여자로서 깊은 학문에 다가서지 못하고, 여자로서 무예가 아닌 절개만을 위한 단도만이 허락되고, 여자로서 기껏해야 방물점에 들러 은장도와 장신구를 들고 오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평생 썩어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형벌에 불만을 품고 있던 터였다.
*방물점: 현대의 액세서리 가게

가옥에 있는 것이 감옥과 같고, 백합처럼 살다가 이 고약한 성질머리를 참지 못해 홧병에 뒤질 것만 같아 시작한 바깥 구경이었는데, 그곳은 책으로 배운 것보다 생생했고 갓을 쓴 사내들 어깨너머로 들은 것보다 생경했다. 여자가 아닌 남자로서 마주한 세상은 비겁하도록 유했으며 또한 이기적인 자유가 있었기에.

조선에 내려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모름지기 이러한 역동적인 취미는 지속적으로 가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뭐, 야바위에 팔십 냥을 쏟아부은 것은 고의가 아니었네만. 슬쩍 풍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다. 하지만 풍남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방을 경계하는 것. 혹여 내게 말을 거는 자가 있는지, 몰래 허리를 감는 여편네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지난번 상주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풍남의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야 할 것이다. 도성으로부터 불과 열 발자국, 치마폭을 흔들며 요염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 멀리서부터 지켜봤네만, 그대는 어찌 봐도 참 곱소.

— 어머머, 설마 날 보고 그런 건감?

— 그대 말고 누가 또 있겠소만.

— 얼굴두 말하는 것두 어쩜 이렇게 여인을 사르르 녹이실까?




도성 문 앞에서 신분 확인을 받던 풍남의 본능 주파수가 작동한다. 옷깃을 쥐는 유혹적인 손길을 알아채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특징인. 그럼 난 아무 일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 비뚤어진 갓을 고쳐 쓰면 된다. 장터 구경만 나갔다 하면 발동하는 장난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지고지순은 내게 맞지 않는 옷임을 고갯마루 절친 똥개 돌돌이도 아는 것을. 흐음.




— 워매매애애애!!! 도련니이이임!!!! 시방 뭐더는거요!!!!!

— 그럼 이만.




간드러진 눈짓에 처자는 머리를 짚었다. 오라비가 여자를 꾀어내는 방법이라 일러준 것이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간 똥 멍청이라도 너에겐 넘어가지 않겠다 코웃음 친 것을 잠시나마 반성한다. 학문에 정진할 힘을 추파에 쏟는 오라비 너 또한 반성을 해야 할 테지.




— 도련님, 혹시 모르니 합죽선을 펼치시는 게…….

— 이 넓은 한양 땅에서 날 알아보는 이가 누가 있겠다고.

— 한양은 한양입죠. 두세 다리만 건너도 익은 얼굴이라 하지 않습니까요.

— 설령 안다 한들 도망가면 그뿐이지 않느냐.

— 이놈은 달리기를 못 허는디요.

— 누구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효과를 보는 법이지.

— 당최 뭔 말씀을 허시는지.

— 미친개에게 쫓겨 본 적이 있느냐? 당시 난 일곱 살에 맨발로 청계천에서 금향천까지…….

— 남의 집 감나무 따 먹다가 그 집 개에게 쫓긴 일 말입니까요?

— ……햇살이 굉장히 좋구나.




도성 안 금향천(金香川)으로 향하는 발이 가볍다. 꼭두새벽부터 자수 축제를 핑계 삼아 도성 밖으로 잠시 도피하였으니, 이제는 본래 목적인 장터로 들어가 즐기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고삐를 잡고 졸졸 따라오는 풍남은 허투루 시선을 뺏기는 일이 없다. 샛길로 숨어 야바위에 미쳐 날뛰는 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아도 큰 눈에 불화살을 매단 것 마냥 이글거리니 지나가던 꼬맹이도 두려움에 떨지 않느냐!




— 앞장서거라.

— 안 된당게요.

— 찬아, 우리의 연이 고작 이 정도였더냐.

— 진짜 이름 불러도 소용없당께요!




임시 이별의 가장 좋은 방책은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하며 장터 구경 나온 한양 최고의 청루주사(靑樓酒肆) 기생들의 이목을 즐긴다. 풍남은 대신 합죽선을 펼쳐 내 얼굴을 가렸다.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구먼요. 풍남의 엄호를 받고 당당한 양반걸음으로 장터를 누빈다. 그럼 진실로 갓을 쓴 대제학의 장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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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왕 13년, 홍문관 대제학의 차녀인 내가.
















OFF ON OFF
두근두근 체인지 (㤢筋㤢筋 體認恀)















— 닷 냥만 깎아주게.

— 에이, 그렇게는 못 합죠.

— 석 냥은 어떤가.

— 궁녀들이 진시황제 용포 빨 때 쓴다던 다듬이인데 어찌 그걸 깎아서 판다요?




삼십 냥이 양반님 같은 분께 기별이라도 갑니까? 소인이면 벌써 열댓 개는 샀겠네. 길주에서 왔다던 상인은 흥정이 마땅치 못했는지 팔짱을 끼며 눈을 흘겼다. 뒤에서 목을 축이던 풍남은 다짜고짜 눈을 부라리며 상인에게 분을 토했다.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아느냐! 이분은 바로으으읍! 흥정하던 손으로 풍남의 입을 막는다. 오늘도 구석으로 유배당하고 싶은 것이냐. 치켜뜬 눈썹에 풍남은 풀이 죽는다. 그래도 상인을 노려보는 건 풍남의 몫이었다.




— 그래, 그 값으로 두 쌍 주게.

— 무르기 없습니다?

— 그런 건 무뢰배들이나 하는 짓이지.
*무뢰배(無賴輩): 불량배




도포에 숨겨둔 엽전 꾸러미를 꺼내자 상인은 횡재한 듯 누런 이를 보였다. 행랑채에서 풍남과 살림을 꾸려갈 순심에게 줄 선물이니 아깝지 않다. 나머지 하나는 혹여 아비에게 걸려 나가지 못해 홧병이 도질 때, 그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이놈이 뭐라고 잘해주신답니까. 도련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잖어요. 속내를 알아챈 풍남은 눈물이 많아 이번 장터에서도 소매를 적셨다. 지난번 상주서는 제게 어울릴 만한 신을 마련하자 길바닥에 앉아 대성통곡하던 놈이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싶었다. 하지만 고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 당신이 아니라 이 사람이 무뢰배 아닙니까?

— …….

— 나주 연제 장터에서 값비싸게 속여 판 다듬이가 한양까지 들어오다니!




쓰게 치마에 입술만 보인 채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상인에게 다가가 일침을 놓았다.




— 당신이 판 것은 진시황제 궁녀들이 쓰던 것이 아닌, 닷 냥에 서너 개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일반적인 다듬이인데 어찌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한단 말이오!

— 그걸 어떻게…….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어야 하거늘!




미성이지만 강단 있고 과감한 목소리였다. 상인은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여 벌건 얼굴로 엽전을 끌어안았다. 한양 도성 내 곱절이나 얹은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는 물건을 조심하라는 왕과 왕세자의 방이 마을 곳곳에 퍼진 터라 장터 내 사람들은 금세 주변으로 모였다. 흉흉한 소문이 사실이 된 셈이었다.




— 세상은 그대가 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

— …….

— 항상 의심해도 당하는 건 사람이니.




매끄러운 입술을 가진 여인은 따라온 시종과 함께 장터 반대 길로 몸을 틀었다. 대신 돈을 돌려받은 풍남은 장터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도록 ‘여기 사기꾼이 있당게요!’ 손가락질하며 상인을 오도 가도 못 하도록 옭아맸다. 삼십 년 만에 열린 장터에서 쓰는 개쪽이란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 풍남아, 여기 있거라.

— 예? 갑자기 어디 가신 답니까?

— 내 곧 돌아오마.

— 아, 아니 애기……!




오라비의 갓과 도포를 훔친 탓에 품이 큰 모든 것들은 뛸 때마다 엉성한 폼으로 바람에 흔들렸다. 어찌나 상대의 걸음이 빠른지 통을 죄는 속곳이나 저고리를 입고 달리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한 뼘이나 큰 비단 신이 휘어질 때도 있었지만, 저 골목길 방물점에서 노리개를 고르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이러한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인의 시종으로 보이는 자는 뒤에서 흘긋대는 날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앞을 막았다. 무엄하다.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힘 좀 쓰는 몸집으로 밀어내니 속수무책으로 밀려난다. 여전히 쓰게 치마로 눈을 가린 여인이 이번엔 시종을 막았다.




— 되었다. 그만하거라.

— …….

— 쫓아오시는 걸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지요.




여인의 입술은 근간 조선 규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입술연지였다. 남쪽 지역 봉숭아 꽃잎으로 만든 특급 한정품. 지난달 순심이를 대형 방물점에 보냈으나 얻지 못했던 바로 그 색! 순간 용건을 잊고 여인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니 그녀의 시종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현재 풍남이가 없으니 섣불리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일단 몸을 사려야 하느니.




— 아, 아깐 고마웠소.

— 그른 것을 잡았을 뿐입니다. 괘념치 마시지요.




가벼운 묵례 후 여인은 다시 방물점 주인과 얼굴을 맞댔다. 이유인즉슨 매(妹)에게 줄 선물이었다. 노오랗고 시퍼어런 것을 좋아할라나 모르겠네. 난 여태 뒷짐을 지고 저런 말이나 지껄이며 여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2품 홍문관 대제학인 아비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고 돌아와야 후손이 평안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그 아비를 둔 자식으로서 절대 지나치지 않아야 함이 옳았다.
*매(妹):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자매

여인의 고개가 옆으로 흐른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날 보고 있음에 확신했다. 보드라운 손등을 내보이며 입술 색보다 연한 손끝으로 노리개를 집어 말을 걸었으니 이보다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 이건 어떻습니까. 어여쁘지 아니합니까.

—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저 색이 한양을 휩쓸고 저 또한 누구보다 먼저…….

— …….

— ……누이를 주었습니다.

— 누이가 계셨습니까.

— 받고서는 아주 좋아했다지요. 하하.




멀쩡한 오라비가 누이가 되었다. 입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현재 신분과 용모를 망각한 채 실언하여 스스로 남장을 한 죄를 알렸을 게다. 목소리 큰 풍남을 다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입단속이 먼저였다. 좌판 앞쪽에 늘어진 노리개 중 선홍색에 가까운 것을 집어 여인에게 내밀자, 그녀는 그것을 받아 들며 미소 지었다.

제 누이가 말하길, 올해는 이 색이 조선을 휩쓴다 합니다. 가까스로 위험을 넘기니 올려 쓴 갓 옆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여인은 말없이 시종에게 받은 손수건을 건넸다. 포목점에서도 볼 수 없는 비단이라니, 이건 예사 것이 아니다. 어느 집 양반 규수라면 이다지도 고운 것을 쓰는 것인지.
*포목점(布木店): 옷감을 파는 가게




— 저 또한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 혹시, 그대의 색이 무엇인지…….

— 색이라니요.

— 입, 입술 색 말이오.




그녀의 시종이 범상치 않다. 때에 따라 본가 마당에 오라비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검술 대련을 하곤 했는데, 상대방을 찢어 죽일 듯한 눈을 지금 저자가 하고 있었다. 개는 인간을 물지만 곰은 사람을 찢는다 하였으니 저자가 바로 곰이 아닐까. 바라건대 여인의 윤기 나는 피부 비결이라도 묻는다면 당장 찢겨 죽어도 연유가 없을 것이다.




— 궁금할 이유가 무엇인지요. 사내에게는 필요치 않은 물건 아닙니까.

— 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그러오. 그러니 내게 알려준다면…….

— 혹, 그대는 아닐런지요.

— ……뭐라고 하셨소?

— 아쉽게도 이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럼.




곁을 지나치는 여인의 팔을 잡는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것이 그대의 것이란 말이오? 내 멱살을 잡으려는 시종을 막은 여인이 천천히 다가와 귀엣말을 넣는다. 여색과 거리가 멀었음에도 아랫배가 뭉근히 꼴렸다. 귓가에 닿는 은근한 입술과 웃음을 흘리는 모양새에 정신을 놓는다. 누구와도 일절 말도 섞지 말라는 풍남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 수염 한번 나본 적 없는 턱에 묶인 끈과 옥 줄이 참 재밌습니다.

— …….

— 연꽃 향은 우리 매(妹)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지요.

— …….

— 당신의 누이는 어떠합니까.











장터를 빠져나가는 그들을 지나쳐 헐레벌떡 달려온 풍남이 사족을 살핀다. 애기씨! 괜찮은 거여요? 도련님 사라지시고 이놈이 을매나 애가 탔는지 아십니까요? 애기씨라 말하다가, 도련님이라 말하다가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 참인지 허둥지둥 대는 풍남을 붙잡고 다그치듯 물었다.




— 내게서 연꽃 향이 나느냐?

— 뭔 소린지 이놈은 잘 모르겄습니다요.

— 맡아 보아라.

— 뭘 말입니까요?

— 내 체취를!

— 아익! 지금 뭐허신대요!




풍남은 겨드랑이를 들추는 양반집 자식을 부끄러워했다. 서둘러 본가로 떠밀려가는 와중에도 쓰게 치마 밑으로 날 농락하던 입술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작 얇은 구순으로 사람 혼을 쏙 빼놓은 그 여인은 관아가 아닌 반대편 아래 고개로 사라졌다. 연유가 무엇일까.




— 그 여인 말이다.

— 도련님을 도와주신 그분 말입니까?

— 당분간 외출은 삼가야겠구나.

— 바깥 구경에 목매시던 애기씨 아닙니까요?

— 얼른 가자. 오라비가 돌아오기 전에 제자리에 두어야 하느니.










진주색 도포를 가지런히 모아 품에 안는다.
댕기 머리와 선홍색 치맛단이 말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췄다.




















수염 한번 나본 적 없는 턱에 묶인 끈과 옥이 참 재밌습니다.
연꽃 향은 우리 매(妹)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지요.
당신의 누이는 어떠합니까.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라.




















*




















— 당분간 외출은 금하신다 하셨잖습니까.

— 그랬느냐?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만.

— 바로 어제 일인디요.

— 밀전병 냄새가 좋구나.




이틀로 향한 장터는 금향천(金香川)밖으로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일은 칠석을 앞둔 터라 한양 곳곳은 고소한 밀전병 냄새를 풍겼다. 풍남은 어제 일을 대제학께 들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목숨을 두 번 얻은 셈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다, 엽전 앞뒤 바꾸듯 마음이 바뀐 내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가지를 긁었다.




— 오늘은 왜 사내 차림이 아닙니까요?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갓을 쓰고도 남으실 턴디.

— 간만에 방물점에 가지 않느냐. 장신구는 직접 대어 보아야 예쁜 것을 아는 법이다.

— 가셔도 늘 같은 것만 사지 않습니까요.

—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

— 예예, 그러합죠.

— 순심이는 다듬이를 맘에 들어 하느냐.

— 아주 쿵쾅대고 별 지랄을 다 혔는디 듣지 못하셨습니까?

— 지랄은 무슨, 악기의 쓰임이 별다른 게 있는 것도 아닌데.




포목점을 지나 방물점에 다다르자 어제와 달리 중국에서 건너온 노리개가 한가득이다. 어제 온 손님이 나였다면 굉장히 아쉬워했을……. 좌판 정 가운데 선홍색 노리개가 시선을 잡는다. 곱다란 손으로 여동생에게 줄 노리개를 고르던 여인, 귓가에 은밀히 내 정체를 폭로하던 여인, 골목길을 도는 순간 어렴풋이 눈을 맞추던 그…….




—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요?

— 별 것 아니다. 보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 상인들 말 들어보니 중국에서 건너온 다른 방물점도 많다든디요?

— 이리도 귀한 색이 많지 않은가. 조금만 더 보고 가세.




살구색 비단 치마에 노리개와 장식품을 대어 구색을 갖춘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다 가져가고 싶구나. 하지만 과소비는 금물, 절제할 줄 아는 사람만이 물건의 귀중함을 아는 법이지. 손가락에 다섯 개씩 노리개를 매달고 하는 말이기에 상당히 반어적이었지만, 어쨌거나 단 하나만 고를 것이다. 풍남은 팔짱을 끼고 노리개를 구경하다 약방길로 잠시 사라졌다.




— 선비님이 어쩐 일로 이런 데를 다 오슈?

— 누이에게 줄 선물이 있을지.

— 요새 선홍색 노리개가 인기 절정이라우.

— 그건 제 누이가 이미 가지고 있다 하여…….

— 오늘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색도 있다우.

— 그럼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어여쁘지 아니 한지.




















— 이건 어떻습니까. 어여쁘지 아니합니까.




















제비꽃 노리개에 손이 겹친다. 사내의 손등에 올라탄 손은 화들짝 놀라 등 뒤로 숨었다. 말총으로 엮은 갓을 쓴 사내가 그것을 집어 내게 건넸다. 개의치 마시지요.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에 노리개가 쥐어진다. 구색 맞추길 좋아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어제 본 여인과 영락없이 또옥 닮은 사내를 만났기에. 아니, 또옥 닮은 손가락과 얄쌍한 턱선과 봉숭아 연지를 발라주고 싶은 얇은 입술을 가진 사내를 보았으니.




— 괜찮으십니까.

— …….

—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더 명확해짐이라. 완전한 사내 복장이라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맞다는 것을. 만약 내가 전형적인 양반집 여식이었다면, 사내를 어제 만난 여인의 오라비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율법에 어긋난 남장을 하고 한양 문밖을 넘어 다녔으니 그 내공이 어디 가겠는가. 이 사내는 필히 어제 만난 여인이 맞다. 굳이 말하자면 여인인 척 장터를 누비던 사내였겠지. 어제는 진주색 도포, 오늘은 살구색 치마를 입고 노리개 따위를 맞춰보고 있는 나처럼 그도 분명 사연이 있음에 오른쪽 손에 달린 제비꽃 노리개를 걸지.

제비꽃 색은 하나밖에 없는데 어쩌실라우? 선비님이 가져가실런가, 아님 우리 규수 댁 양반이 사실런가? 방물점 주인은 담뱃대를 폴폴 피우며 흥정을 걸었다. 저는 괜찮으니 선비님께 주시지요. 기회는 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쓰게 치마를 벗어 사내와 눈을 맞추고 미소 짓는다.

제 누이가 많이 기뻐할 겁니다. 포장을 기다리며 방물점 문 앞에 오도카니 선 사내가 가볍게 묵례했다. 갓을 고쳐 쓰며 햇살을 피하는 사내의 옆모습을 관찰하다 손바닥으로 사내의 눈을 가렸다. 뽀얀 입술이 남는다. 얄쌍한 저것. 찾았다, 네 입술.




— 혹, 연꽃 향을 기억하십니까?

— …….

— 어젯밤부터 품에 안고 잠에 들었더니 이리 향이 배었지 뭡니까.

— …….

— 이제야 돌려드립니다. 그대.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옅게 조소하는 날 따라 그대 또한 알아본 것이지. 방물점 주인이 포장한 노리개를 옆구리에 낀 사내는 눈을 피한 채 자꾸만 입술을 축였다. 그래, 목이 마를 것이다. 우린 서로 비밀을 들킨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 탁주와 국밥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 …….

— 그렇다면 점심은 둘 다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제의 여인처럼 쓰게 치마를 둘러 입술만 남긴 채 뒤를 돌았다. 약에 올라 동틀 녘까지 잠에 들지 못했으니 이 정도 복수는 귀엽지 아니한가.










— 제 입술은 어떠합니까.

— …….

— 그대 누이가 가지고 있는 봉숭아 연지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




















제나라 임금의 왕자가 물어 말하기를,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합니까? 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왕자가 말하기를,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인의(仁義)뿐이지요 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어질고 자비로운, 그리고 의리를 높게 잡는 선비야말로 진정하고 참된 선비가 아니겠냐는 말에 극히 공감하였으나, 여기서 제 누이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갈등을 내어야 했습니다.

누이가 말하길, 선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문적 수행이 아닌, 관직에 올라 실무를 담당하고 왕과 백성과의 마찰을 줄이는 역할이니 어짊과 자비로움보다는 사리 분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명석한 두뇌, 의리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 실리를 따져 곁에 사람을 두어야 한다 합니다.

이후 아버지께 여쭤보니 아버지 또한 누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일로 내기를 했던 저는 누이의 소원대로 여장을 하고 장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단 한 바퀴만 돌다 오면 다른 주제로 다시 토론을 펼치겠다 약주를 받아냈고요.










— 그런데 누이께서는 굳이 선비님에게 여장을 시킨 연유가 무엇인지요?

— 누이는 어릴 적 자신과 닮은 매(妹)를 얻길 바랐으나, 눈치껏 태어나지 못한 제가 미워 여태까지 벼르고 있다 하였습니다.

— 그럼 어제 연지 입술도…….

— 누이의 작품입니다.




사내는 국밥과 탁주를 심드렁하게 먹는 날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채에서 다과를 즐기며 자수나 놓고 있어야 할 양반댁 여식이 치마에 밥풀을 흘려가며 먹는 꼴은 난생처음 보았을 것이다. 가끔 풍남이와 장터에 나올 때면 늘 하던 짓을 낯선 사내와 마주하니 국물은 다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 그대의 남장 연유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 정당한 야바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노름을 좋아하기라도 한 겁니까.

— 맞추기라도 하면 여자에게는 호통을, 남자에게는 다음 판으로 회유하는 못난 습성이 싫어서라고 해두죠.




제가 이래 봬도 불공평에 치를 떠는 사람이라. 바닥을 보인 국밥 그릇을 슬쩍 숨기며 탁주로 입을 털었다. 사내는 입을 들썩이다 이내 다물었다. 술에 취한 주막 손님들이 죄다 한 번씩은 허우대 멀쩡한 사내의 어깨를 쳐가며 가게를 빠져나갔으니 열이 받지 않고서야 물러설 수 없음이라.




— 이곳은 매우 재밌는 곳이겠습니다.

— 누가 보면 처음 온 듯합니다.

— 처음, 입니다.

— 진심이십니까?

— 지나친 적은 있어도 직접 들어와 음식을 마주한 건 이번이 그대와 처음입니다.




국밥에 나무 숟가락을 첨벙대며 다른 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 사내가 마침내 첫입을 댄다. 은연중 비린내가 올라오는 국물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내 꿀떡꿀떡 잘 넘겼더랬다. 국밥에 코라도 빠지겠습니다. 농담 섞인 말에도 사내는 탁주까지 탈탈 털어내 막잔을 채웠다. 하지만 도통 술과 인연이 닿지 않은 사내는 탁주 몇 잔에 홀라당 맛이 가 볼을 씰룩였다.




— 어제 얼마나 웃겼는지 압니까?

— 어딜 보고 제가 사내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역시 향 때문입니까?

— 양반들은 옷을 맞춰 입습니다. 고로 품이 남아도 그대처럼 어설프게 남지 않는단 말입니다.

— 사실 제 오라비의 옷을…….

— 그리고 얼굴.

— ……예?

— 내 입술만 보면서 색을 묻던 그 얼굴.

— 그건…….

— 여인의 얼굴이 아니고서야 뭐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장터 밖으로 빠져나온 사내가 한적한 갈대밭에 서서 뒷짐을 지었다. 술에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얼굴만 발그레해져서는 도포가 둥글게 휘날리도록 뒤를 돈다. 맹자 왈, 공자 왈 외치던 사내는 주막집에 버리고 온 지 오래다. 도포를 구깃하게 쥐고 다가온 사내가 비단신을 내려다본다. 주막에서 들썩이기만 했던 입술이 열렸다.




— 어제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저도 보통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빨리 벗어나고자 했을 뿐입니다. 주막에서 했던 말은 농이었으니 부디 괘념치 마셨으면 합니다.

— 왜 관아에 가서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 알린다고 하여 제가 얻는 건 무엇입니까. 이리 가만히 있으니 점심도 함께하고 그대의 남장 연유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대를 이해할 수 있으니 어떠한 것이 좋지 않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이해하여 좋지 아니할 수 없겠다라. 미묘한 말끝으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 진주색 도포가 어울리는 사람은 그대가 처음입니다.

— 선비님은 뭐가 그리 다 처음이시란 말입니까?

—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지날 날을 반성하고 있으니 타박은…….




술주정치고는 귀여운 진담이 아니던가. 가로수가 뻗어 있는 갈대밭이라, 없던 마음도 생기는 장소가 아닐런지.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는 핑계로, 탁주의 연한 취기를 핑계로 다가가 사내의 흐트러진 옷깃을 여민다.




— 조정 실무를 담당하는 것도, 왕의 명령을 받들고 백성을 지도하는 것도 선비의 현실적인 일입니다. 누이의 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 …….

— 허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받들지 못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굽어살피지 못한다면, 사대부의 그 어떤 명신(名臣)이 와도 국가의 태평성대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 …….

— 그러니 전 그대의 편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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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칠석(七夕)입니다
운(雲)에서 희작(喜鵲)이 운명을 도와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술시(戌時)에 수영교(水營橋)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勳]
*희작(喜鵲): 까치
*술시(戌時) 19시~21시




















밤늦게 도착한 사내의 연서였다.




















*




















오전부터 조정에 나간 아버지의 그림자를 배웅한 후 몰래 오라비 방으로 숨어들었다. 과거 급제 후 오랜만에 맞이한 휴식에 친구들과 연거푸 술을 먹고 있을 참이니 평소보다 늦장 부리며 도포를 골라도 되었다.




— 애기씨! 빨리 나오랑께요!

— 무엇이 그리 급해.

— 도련님 오셨어라아아!




풍남이가 숨을 참는다. 뒤늦게 병풍 뒤로 몸을 감춰보지만, 오라비는 매꼬롬한 얼굴로 가여운 듯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의 것뿐만 아니라 혈육의 것을 탐할 때도 경계를 늦추지 말라 그리 말했거늘. 방에 들어선 오라비는 진주색 도포를 풀며 자리에 앉았다.




— 네 발로 걸어온다더니 용케 두 발이네?

— 누가 쥐새끼마냥 도포를 훔쳐 가니 술이 넘어가야 말이지.

— 쥐새끼라니. 엄연히 빌리는 건데.

— 빌리는 것 치고는 너무 숨을 안 쉬는 것 아니냐?




등을 퍽퍽 갈기며 지난날 무료 대여한 도포 값을 톡톡히 치르는 오라비였다. 한쪽 벽에 걸린 진주색 도포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린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만큼은 저것을 빌렸으면 좋겠는데. 값은 몇 배를 얹더라도 치를 테니 말이야. 이내 서책을 읽는 오라비 눈앞에 알짱대며 거듭 회유를 시작했다.




— 진주색이 글쎄 나한테 제일 잘 어울린다지 뭐야?

— 누가 그런 끔찍한 망언을.

— 이번만 입고 다음번엔 손도 안 댈게.

— 어디 놀러라도 가느냐?

— ……수영교. 풍등.
*풍등: 공중에 풍선처럼 띄우는 등. 초롱 쌈이라고도 함.




오라비의 눈이 번쩍인다. 네가 남자가 생겼나 보구나? 별 관심도 없던 오라비가 되려 손을 부여잡고 시시콜콜 캐물었다. 어느 집 사람이냐? 나보다 괜찮더냐? 이 한양 땅에 그런 인물은 보지 못했지만 하하하. 자화자찬이 길어지기 전에 방을 벗어나야 한다. 오라비의 손을 뿌리치며 벽에 걸린 도포를 집었다.




— 입고 간다? 무르기 없기?

— 상관은 없다만, 저고리를 놔두고 왜 도포를 왜 입으려 해?

— …….

— 아버지 때문이냐?




홍문관 대제학 여식이 남자나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라도 깔리면 한양에서 얼굴도 못 들고 아버지 명성에 금이 갈 것이 뻔하니까. 그래서 하루에도 삼시 세끼 꼬빡 들어오는 혼처가 끊겨버리면 스스로 집안의 대를 잘라내는 것과 같으니까. 부모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을 안기는 자식이 어딨겠어. 도포를 매만지며 남자 행세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상기한다. 보는 눈이 많고 규제가 많은 조선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감추는 것뿐, 그 이상은 더더욱 바라지 아니해야 하며 절대 입 밖으로는 꺼내서는 안 될 불문율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연모하는 사내에게 너를 감출 필요는 없지 싶은데.

— 오라버니 말이라도 고마워하려고.

— 정말 도포를 입고 갈 셈이냐?

— 못할 건 또 없지.




엉성한 머리 올림에 오라비가 혀를 차며 갓을 챙긴다. 그 사내는 도포 입은 네가 좋다더냐. 취향도 특이한 것이 꼭 너와 어울릴 듯싶구나. 새로 산 끈으로 묶은 갓이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옥 줄을 매고 거울 앞에 서자 오라비와 닮은 얼굴이 하나 더 있다. 여자들이 그토록 추파를 던진 까닭이 있었네. 근심 많은 오라비는 요상한 표정으로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누이의 볼을 꼬집었다. 사랑하는 이를 보러 가는데도 변장이 필요하다니. 망할 세상이구나.




— 네 모습이 어떻든 진실로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꼭 데려오너라.

— …….

— 아버지는 어떻게든 내가 해볼게.




















*




















술시(戌時)가 다 되도록 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리는 건 굉장히 지루한 일이었다. 좁다란 다리에 모여 저마다 짝을 만나는데 홀로 옥 줄을 매만지며 달을 쳐다보고 있는 외로운 선비의 모습이라. 야바위꾼이라도 보이면 시간이라도 죽이겠건만, 오로지 풍등에 소원을 적고 술시만을 기다리는 원앙들만 있을 뿐이다.

어젯밤 받은 연서는 진심이 아니라 술김에 보낸 행운의 편지는 아니었는가? 다른 집 낭자에게 보냈어야 할 연서가 주소 한 끗 차이로 우리 집으로 온 것은 아니었는지? 아예 그 사내의 존재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 뭐하십니까.

— 으아아아악!




사내가 뒤로 넘어가는 허리를 받친다. 고뿔에 걸리기라도 한 것입니까. 새빨간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내의 옥 줄이 찰랑거렸다. 그대, 나와 같은 옥 줄을 매다셨습니까? 혹 이건 하늘에서 운명처럼 맺어준다는 까치의 계략은 아닐런지요. 품은 연심이 달빛에 흔들린다. 하지만 사내는 야속하게도 도포에만 관심을 가졌다.




— 제가 본 진주색입니까.

— 그렇습니다만.

— 밤에 보니 더 멋집니다.

— ……그대도.

— 예?

— 아닙니다.




몰래 연심을 넣어둔 달빛을 켜켜이 눈에 담는 사내가 웃는다.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어쩐담. 그땐 먼저 혼처를 넣어볼까. 남녀가 유별한 조선에서 돌연변이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으니.




— 무엇을 소원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 다 같은 마음 아닐런지요.




풍등을 나누는 상인에게 사내가 손짓한다. 적을 곳이 워낙 넓으니 이곳에 각자 소원을 풀면 될 것 같습니다. 풍등 하나에 사람은 두 명. 사내와 내가 적는 소원은 만수무강과 온 가족의 안녕과 안위, 자신에 대한 미래와 성공이었다. 뻔한 글귀와 지겨운 획순에 입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도 모른 채 점화 시간을 기다리자, 사내는 조심스레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 무엇이라 적으셨습니까.

— 소원이니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만 너무 궁금하여…….

— 먼저 말씀하시면 제 것도 내어드리지요.




사내는 또렷한 눈으로 응시하며 상인처럼 흥정을 걸었다. 억지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놀리는 것이 취미인 듯한 사내였다. 골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날이 날인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진실로 답한다. 그대가 날 이해하고 내가 그대를 이해한 것처럼.










—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 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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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이 떠오른다. 그것들은 조선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수가 되어 산 중턱을 넘었다. 이제 그대 차례입니다. 미처 듣지 못한 사내의 소원에 귀를 기울인다. 환호하는 사람들 위로 멀리 흩어지는 풍등을 쫓던 사내가 말한다. 역시나 우린 같은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 특정한 의복으로 판별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

— …….

— 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 …….

— 그대와 나처럼.























+

— 어딜 그리 바삐 둘러 가느냐.

— 잠시 풍등에 다녀왔습니다.

— 잠행에 재미를 붙인 것이냐.

— 민심을 굽어살피는 것이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아직도 누이와의 일을 잊지 못한 것이냐.

— 아닙니다. 누이의 말이 그르다 생각하지 않고 저 또한 그르다 생각지 않습니다.

— 세자.

— 모두의 생각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제 생각과 다르다 한들 어찌 그들을 미워하겠습니까.

— 요즘 세자의 관심사는 무엇인고?

— 공평입니다.

— 공평?




















—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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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께선 연꽃을 품은 사내를 보신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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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세상에 마지막에 깜짝 놀랐어요!!!!!! 대박....
5년 전
독자2
지훈이가 세자....세자.... 작가님 저 울어요....... ㅛㅔ자저하 완전 잘어울리고....... 여주는 세자랑 결혼해라아아아아아아아ㅏ
5년 전
비회원84.162
사람 홀리는 귓속말과 얇은 입술에 읽으며 누군지 눈치 챘습니다. 세자인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그걸 알고 나니 누이와 나눈 대화와 아버지의 대답까지 이해하였고요. 올리시는 글 잘 읽고
있어요. 다양한 느낌의 글 감사합니다. 자주 봬요.

+) 찬이에게 자신한테 연꽃 향이 나냐고 묻는 부분에 의도하신 건 '체취' 같습니다.

5년 전
비회원84.162
글 다시 읽는데 오타 발견해서요. 연꽃 향 기억하냐는 장면 향이 '배다'가 맞아요. 이거 뭐 지적만 하는 것 같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쁜 꿈 꾸는 포근한 밤 보내시길.
5년 전
독자3
ㅠㅠㅠㅠㅠㅠㅠㅠ제 신알신은 왜 일을안하죠......근데 생각없이 들어와서 작가님 새 글이 올라온걸 보는것도 쟈근행복🌸🌸...무명이라니 누군지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어 좋네요 처음에 읽으면서 이지훈생각했는데 짤에 짠 등장해서 넘 놀라버린~~!~!~!장르불문하고 다 너무 쩔게 작가님 스타일대로 소화하시는게 넘 대단하신 것 같아요 글에서 작가님 향기가 나!!! ! ! ! !!!! ! ! ! ! ! !!!😭 다음 글도....완전완전 기다리구잇슺니다,,, , , , 추석행복하게 보내세요..💖
5년 전
독자4
지훈이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맞았군요퓨ㅠㅠㅠㅠㅠ세자지훈 짱
5년 전
독자5
와 대박이다 아니 대박ㅠㅠㅠㅠㅠ작가님 이거 진짜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bgm도 너무 잘어울리고...진짜 작가님 만수무강하세요..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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