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말 때 CJ의 tvN이 패기롭게 수입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Saturday Night Live>(이하 <SNL>)다. 한국에서 하는 <SNL>이니 <SNL KOREA>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미국의<SNL>을 <SNL The US>라고 하지는 않으니 참고 바란다.
권력을 풍자했던 장진의 SNL KOREA처음에 <SNL>을 수입해왔을 때 이 쇼의 총괄을 맡았던 사람은 장진이다. 장진은 그의 독특한 위트와 센스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장진은 <SNL>에서 자신의 인맥을 폭풍 자랑하는 것에도 여념이 없었는데 이는 <SNL>에 긍정적인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맥 자랑질을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도 해서 를 터뜨렸었다. 한류의 아이콘인 김수현, 이영애, 장동건은 뜬금없이 왜 튀어나온 건가? 인맥 자랑은 <SNL>에서는 유효했지만 개막식에선 전혀 아니었다. 내가 이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내가 장진을 우상화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진은 권력자들을 풍자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기도 했고, 차기 대권을 거머쥘 것이라 예상되었던 문재인 의원과 박근혜 의원에 대해서도 풍자를 멈추지 않았다. 딱히 지지율이 높지도 않았던 이정희 의원까지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때 히트를 쳤던 게 여의도 텔레토비다. 여의도 텔레토비 외에도 문재인, 박근혜, 이정희 의원에 관한 풍자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장진은 대선 후보들의 대선 토론을 풍자했고, 그들의 정치적 포지션에 대해서도 풍자의 칼날을 거두지 않았다.
정치적 스탠스를 딱히 정하지 않은 장진그렇다고 딱히 장진이 어느 한쪽의 편을 들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는 풍자 삼을 만한 것을 풍자했을 뿐이다. 여기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이건 마치 공정한 언론인의 태도와 유사하다. 뇌물을 받은 정치인을 다루는데 여기에 좌우가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장진의 <SNL>을 두고 요즘 흔히 쓰이는 용례대로 장진에게 “정치적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보통 이 말은 “너 왜 이리 한 쪽 편만 드냐!”라는 의미로 쓰이는 데 장진은 딱히 편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특정 정치적 성향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장진은 딱히 그것을 <SNL>을 통해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는 SBS <웃찾사>의 <LTE 뉴스>나 KBS2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과 동일하다. 이들은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이슈들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꽁트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을 좌파나 우파로 몰 수는 없다. <LTE 뉴스>는 자주 대통령을 풍자하지만, 그것은 그가 여당의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이어서다. <민상토론>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치적인 사안을 결벽증이 걸린 것처럼 기피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풍토다. 그래서 <민상토론>의 풍자는 필연적으로 <장진의 SNL>이 아닌 <요즘의 SNL>도 비꼬게 된다. 대체 요즘의 SNL은 어떤가?
SNL KOREA에서 장진이 떠난다
장진은 2012년 12월 1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SNL>을 떠난다. 여기에는 그가 윗분들을 거슬리게 해서 결국 하차하게 되었다는 루머가 있다. 이 루머가 진실인지 여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장진 본인과 tvN만이 진실을 알 게다. 하지만 저 루머를 믿거나 말거나 그의 방식이 윗분들의 기분을 그리 좋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분명하다.
2012년 12월에 장진이 떠나고, 2012년 12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다. 최근 국정원의 대선 개입까지 고려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대권을 빚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근혜가 이명박을 호의롭게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 이재현 CJ 회장tvN은 CJ E&M에 속한다. 그리고 CJ E&M은 CJ에 속한다. CJ의 회장인 이재현은 이명박과 꽤나 친한 사이다. 경찰 내사문건에 따르면 이재현 회장은 이명박이 대통령일 때인 2009년 6월부터 8월까지 6~7회가량 이명박의 최측근인 미래기획부장 곽승준에게 연예인 접대부가 있는 최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한 적이 있다. (CJ에 소속되어있는 연예인을 접대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현이 딱히 이명박과 친한 게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그와 같은 접대를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이재현과 이명박을 친한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재현은 그저 2009년에 한국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이의 측근에게 접대를 했을 뿐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측에선 이재현의 친이명박 스탠스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을 게다.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면 누군가와 친한 사람도 싫어하게 되지 않던가? 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CJ에는 비상벨이 울렸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이 난장판에는 삼성도 빠질 수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2012년 12월 19일 이후로 CJ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시작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배후에 삼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삼성으로선 관계를 잘 다져오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게 아닐까?
검찰의 배후에 삼성이 있다면 CJ와 법정 다툼을 하는 삼성이 검찰을 통해 옆구리를 치는 격이라고 볼 수 있다. 민사로 얼굴을 때리고, 형사로 옆구리를 때리는 격. 누군가가 CJ가 마음에 안 들어서 칼을 휘두르고 있다면, 누군가가 칼을 휘둘러서 장진을 쳐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CJ를 잡기 위해선 소 잡는 칼이 필요한데, 장진을 잡기 위해선… (이하 생략)
구속된 이재현 회장 그리고 창고경제를 찬양하기 시작하는 CJ E&M 그리고 사라진 풍자박근혜 대통령의 아이템 중 하나는 ‘창조경제’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창조경제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튼 박근혜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창조경제다. 그런데 이재현 회장이 검찰의 공격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CJ E&M은 창조경제를 갑자기 찬양하기 시작한다.
△ “CJ E&M이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
딱 봐도 “한 번만 봐주떼요ㅠㅠ”다.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장진이 떠나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면서 SNL KOREA에서 정치권 풍자는 완전히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진 정치권 풍자나는 지금 개그맨들이 의무적으로 정치권을 풍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멀쩡하게 존재했으며 꽤나 인기가 있던 콘텐츠가 사라진 ‘현상’에 대해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정치권 풍자는 <SNL>의 <Weekend Update>의 주요 토픽이다. 이건 오리지날인 미국 <SNL>의 전통이며 장진이 <SNL>을 총괄할 때도 그런 전통을 이어 갔다.
△미국 <SNL>의 <Weekend Update>
하지만 요즘 한국의 <SNL>에 <여의도 텔레토비>는 간 곳 없고, 정치인을 풍자하던 <SNL KOREA>도 사라졌다. 참고로 미국 <SNL>에선 <Weekend Update> 코너가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아래의 두 영상을 참고하자.
△티나 페이가 공화당 지지자인 사라 페일린을 연기하고 있다
△티나 페이가 사라 페일린을, 에이미 폴러가 힐러리를 연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요즘 한국 <SNL>이 정치, 시사 이슈를 완전히 안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최근 <Weekend Update>에서 FIFA 관료들의 뇌물 의혹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게 코미디인 이유는 한국 바깥의 뇌물 이슈에 대해서는 다루면서 정작 한국의 성완종 뇌물 비리 사건에 대해선 입을 닫기 때문이다. 그 점이 <SNL>을 재밌게 하며 바로 그 점이 한국 <SNL>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왜 한국의 정치 상황과 사실상 무관한 FIFA에 대해서는 다루면서 한국의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성완종 이슈에서는 입을 닫는가? 장진이 떠난 뒤에 <SNL>은 확실히 쫄아있다.


사례는 또 있다. 시즌6 8회 때 양코치엔 칭따오는 중국 정치인들의 비리뉴스를 다룬다. 뭐, 좋다. 해외의 비리 뉴스도 다룰 수 있는 게다. 그런데 왜 한국의 정치권 비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한국의 시청자들은 한국의 정치권 이슈보다 중국의 정치권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전파의 역할인가? 아니면, 중국의 정치권 비리를 많이 말하면 말할수록 상대적으로 한국이 더 우아한 국가가 된다고 판단하는 걸까? 장진이 떠난 뒤에 <SNL>은 확실히 쫄아있다.



사례는 또 있다. <SNL KOREA> 시즌6 14회 때 <Weekend Update>는 뉴욕타임스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 다룬다. 그들이 왜곡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까진 뭐 좋다. 그런데 왜 한국 언론의 수많은 왜곡보도에 대해서는 침묵할까? 장진이 떠난 뒤에 <SNL>은 많이 쫄아있다. 그리고 <SNL>은 선택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SNL KOREA>의 이중잣대 및 선택적 풍자위에서는 정치·시사 분야에 대해서 해외 이슈만 다루는 이상한 기준의 <SNL>을 다뤘다. 이번에는 연예인 이야기를 해보자. <SNL>은 전통적으로 정치인뿐만 아니라 연예인도 풍자한다. 미국 <SNL>도 마찬가지고, 한국의 <SNL>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살짝 달라졌다. 오히려 <SNL KOREA>는 연예인들을 풍자하기보다는 연예인들의 죄를 사하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시크릿의 전효성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여민정이라는 영화배우에 대해 알아보자. 2013년 7월 18일에 레드카펫에서 가슴과 속옷을 노출한 해프닝이 있었다. 당사자는 여민정이라는 배우.
△ 여민정의 레드카펫 노출 해프닝
그리고 2013년 8월에는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 <가자 장미여관으로>가 ‘우연히도’ 개봉을 하게 되는데 ‘우연히도’ 해당 영화는 섹스에 관한 영화이며 ‘우연히도’ 그 영화에는 배드신이 있다. 레드카펫에서의 그녀의 노출이 실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판단은 각자 하시라.
△<SNL>의 여민정 풍자
노출이 있던 건 7월 18일이었지만 2일 뒤인 7월 20일에 <SNL>은 이를 풍자한다. 레드카펫에서 서유리의 드레스 끈이 풀리는데, 서유리는 마치 그게 의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당황하는 연기를 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게 다 계획이었다는 듯이 유연하게 레드카펫을 벗어난다. 레드카펫에서 우연인 양 노출한 여민정을 비꼰 것.
아이스버킷 챌린지라고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한다. 그때 미국의 많은 기업가들이 참여를 했으며, 많은 정치인들도 참여했다. 우리나라의 기업가들과 정치인사들도 참여했다. 연예인들도 이 대세에 빠지지 않았는데 그때 아이돌 시크릿의 멤버인 전효성도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녀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비난을 샀다. 그녀의 의도가 불순해 보였기 때문이다.
△전효성의 아이스버킷 챌린지
그녀는 흰 티에다가 검은색 속옷을 입은 뒤에 물을 끼얹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일 수도 있다. 전효성은 흰 티에 검은색 속옷을 입은 뒤에 물을 끼얹으면 속옷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려 깊은 이해(?)는 여민정에게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여민정 속옷 노출 역시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그런 노출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SNL>은 그런 이해심(?)을 여민정에게 들이대지 않았고 여민정을 풍자한다.
그런데 여민정에게는 야박하던 혹은 ‘적절하게’ 풍자하던 <SNL>이 전효성에게는 관대했다. 여민정과 거의 똑같은 행위를 했던 전효성을 풍자하지도 않았으며 유희열은 전효성에게 “아이스 버킷 때문에 악플도 많이 달리고 그랬을 텐데 힘들지 않았냐”라며 전효성의 인간적인 부분을 부각시킨다.
이 지점이 이상한 이유는 여민정에게는 딱히 인간적인 부분을 부각시킬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상 여민정과 다를 것도 없이 속옷 노출을 했던 전효성이기에 <SNL>은 여민정에게 했듯이 전효성도 풍자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전효성을 풍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효성을 비판하는 자들이 마치 밑도 끝도 없이 비판을 하는 자들인 양 만들며 전효성에게 면죄부를 쥐여줬다. 전효성에게 면죄부를 준 뒤에, 나중에는 불법도박을 했던 이수근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 신동엽은 이수근에게 발언기회를 주며 동시에 박수 받을 기회를 준다불법도박을 한 이수근을 마치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억울하게도 방송에 나오지 못한 것인 양 연출했다. 이수근 본인은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니 방송에 나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SNL>이 굳이 이수근을 섭외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이수근이 없어도 방송은 진행될 수 있으며 이수근을 대체할 인물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범죄를 저질렀던 이도 여전히 방송에 나올 수 있다는 교훈을 전파하는가? 이수근은 김병만이 게스트였던 시즌6 14화에 등장했는데, 이는 신동엽과 이수근 간의 친분과 관련이 깊지 않을까 싶다. 신동엽의 소속사는 SM C&C인데 ‘우연히도’ 이수근의 소속사도 SM C&C이다.
<SNL KOREA>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정치 풍자는 이미 옛말이 되었으며, 섭외되는 게스트들을 보아 하면 <SNL>에 소속된 개그맨들의 인맥이 영향을 발휘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이수근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게다. 이수근과 친한 누군가-아마도 같은 소속사인 신동엽이 <SNL>을 통해 이수근을 살려내려 했고, <SNL>은 그것을 허용했고, 전폭 지지했다.
<SNL>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내 친구가 하면 로맨스, 딴 놈이 하면 불륜. 이렇게 마인드가 세팅되어 있으니 선택적으로 풍자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풍자를 안 할 때는 섹드립으로 시간을 때운다. 클라라가 나오면 가슴으로, 아이비가 나와도 가슴으로, 전효성이 나와도 가슴으로 시간을 때우고, 가인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재밌다. 하지만 예전에는 섹드립을 제외하고도 <SNL KOREA>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섹드립을 빼면 <SNL KOREA>에 남는 건 별로 없다. 아, 일본 드라마 풍자가 재밌긴 하더라. 심지어 드라마를 풍자할 때도 해외에만 잣대를 들이대는 게 일관적이긴 하다.

<SNL KOREA>의 투톱이 장진과 신동엽이었을 때는 풍자와 섹드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었다. 그런데 장진이 빠지고 나서, 즉 풍자를 담당하던 머리가 빠지고 나서 <SNL>엔 섹드립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섹드립이 비정치적이라 <요즘의 SNL>의 구미에 맞는다는 점은 두 번 말해 입 아프다.
원문: Director Park’s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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