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David Shire - All The President's Men(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OST: CREEP List/Sequence
미국 역사 시리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 23편에 해당되며 시기적으로 1970년대를 다룰 텐데요.
미국의 역사학자인 앨런 브링클리는
자신의 나라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고 모방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세계가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핔플들은 미국을 떠올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실 것 같은데요.
하지만 1970년대 초, 미국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승승가도를 달릴 것 같던 미국의 성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임기 중에 스스로 사임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죠.
닉슨 집권 시절, 미국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또한 그는 왜 불명예스러운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러 같이 가보실까요
Let's Go!
아마도 196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시대였을 겁니다.
불과 십 수년 전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끝없는 성공가도를 달릴 것 같던 미국에게 1960년대는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죠.
유능한 젊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련과 핵전쟁을 할 뻔한 피그만 침공 사건과 사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저항운동들..
무엇보다 치명타였던 것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였어요.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며 '1,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며
무려 10년 넘게 이 전쟁에 매달렸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5만 7천명의 자국인 사망자와 3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전부였죠.
더 심각한 사실은, 미국인들이 더 이상 연방 정부를 예전처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1970년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었죠.
닉슨은 1968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미국인들은 닉슨이 구렁텅이에 빠진 미국을 구해줄 것이라 굳게 믿었죠.
닉슨은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1970년대 초, 미국은 나라 안팎으로 여러 문제에 시달려야 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휘청거리는 미국 경제'였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로 약 30년 동안, 미국 경제는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그야말로 경쟁자가 없는 독주였죠.
그런데 1970년대 초 미국 경제에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칩니다. 그 위기의 원천은 바로 '석유'였어요.
미국 왈
: "어라? 아랍 애들이 석유 가격을 또 올렸다능~ 미치겠네 ㅠ.ㅠ"
인류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석탄과 증기기관을 에너지로 이용하다가, 20세기에 들어 '석유'에 의존하는 산업을 구축했습니다.
석유는 우리에게 친숙한 자동차의 연료였고, 플라스틱이나 페인트 같은 화학 제품을 만드는 원료로도 쓰였어요. 즉 20세기의 '만능 에너지'였던 셈이었죠.
미국은 세계 전체 석유 소비량의 약 절반을 수입했는데, 대부분은 중동 지역의 산유국에서 수입했습니다.
그런데 1973년 중동 내에는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뺏고자 하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우주인 왈
: "미국은 이스라엘의 든든한 우방이잖아.. 그렇다면??"
박사 왈
: "그래. 주인이 똑똑하네 ㅋㅋ. 이스라엘과 친한 미국을 아랍인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겠지!"
중동 전쟁이 시작되자,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아랍권 국가들이 미국에 석유를 수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OPEC의 아랍권 국가들은 석유 가격을 무려 500%나 인상하죠(배럴 당 3달러->15달러).
일례로 1973년 원류 1배럴의 가격은 1.73달러였는데, 1975년에는 10.46달러로 올랐고, 1980년대가 되자 30달러까지 치솟았죠.
때문에 미국은 심한 멘붕을 겪게 됩니다. 석유에 크게 의존하던 미국에게 이러한 '석유 파동'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어요.
모든 산업의 원료인 석유 가격이 치솟자,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완제품의 가격이 오릅니다. 그래서 물가가 크게 상승하고,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맞이하게 되죠.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약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자가 없는 '독주 체제'였죠.
그러나 1960년대 말이 되자, 제조업이 크게 발전한 서유럽과 일본 등이 미국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1970년 대, 일본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쫓아갔습니다.
다시 말해, 1970년대에 들어 그 동안 미국의 보증수표였던 '높은 임금'과 '고용률'은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던 것이죠.
이런 경제적 문제를 떠안은 채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리처드 닉슨. 그러던 1973년, 미국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 스캔들
: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
1972년 6월 17일 아침,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 위원회' 사무실에서 괴한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됩니다.
이들은 불법으로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가 체포된 것이었죠.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사건이 미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괴한 왈
: "아~ 우린 그냥 훔쳐갈 것이 있나 해서 들어와 본 거예요"
수사 초기에 피의자들은 단순 절도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이 이들을 조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죠.
워싱턴 포스트 기자 왈
: "킁킁!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왜 수첩에 백악관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
경찰이 심문해보니, 이들 중 한 명인 '버나드 버커'가 과거에 백악관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은 전미에 폭로됩니다.
1972년 6월 이후, 피의자 5명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판을 받으며 끈질긴 추궁을 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엄청난 사실이 드러나죠.
워터게이트 사건이 백악관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닉슨 선거 위원회'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악관 왈
: "무슨 일 났어? 우린 모르는 일이라능.. 평범한 절도 사건 같은데 뭐가 이리 소란이야?"
백악관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3류 절도 사건'으로 치부하며, 이 사건이 백악관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워터게이트 진상조사 특별 위원회 왈
: "음.. 아닌 것 같은데?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는데 좀 더 알아봐야겠어.."
닉슨 대통령 왈
: "다시 말하지만, 백악관과 나는 이 사건과 아무 상관 없다니까 왜들 이러는가?"
닉슨은 이 사건을 어떻게든 은폐하려 노력했죠. 그리고 그 수단으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했습니다.
닉슨 대통령 왈
: "국민 여러분. 지금 이런 사소한 사건에 얽매일 때가 아닙니다. 베트남 전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
.....................
닉슨이 진심으로 걱정했던 것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자신의 '정권 안보'였죠. 닉슨은 국가 안보가 위험하다며 CIA를 시켜 FBI의 수사를 방해할 것을 지시합니다.
방해 공작은 꽤 다양한 루트(부하들에게 거짓 증언을 하게 유도하고, 비밀 기록을 훔치는 등등)로 실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정의의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특별위원회는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자동 녹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녹음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죠.
닉슨 대통령 왈
: "아 큰일났네. 특별위원회 안되겠다.. 얘네 해체하지 않으면 내가 해체될 듯"
닉슨은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은 특별위원회 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하려 합니다. 콕스는 당시 하버드 법대 교수였죠.
콕스 왈
: "나 자른다고? 그래. 잘릴 때 잘리더라도 테이프는 내놔야지?"
콕스가 뚝심 있게 버티자, 닉슨은 법무장관에게 콕스를 해임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러나 법무장관은 닉슨의 지시를 쌩까고 사임해 버리죠.
같은 시간, 닉슨은 기자 회견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I'm not a crook)"
이라는 희대의 어록을 남기죠.
결국 똥줄이 탄 닉슨은 결국 테이프를 제출했는데, 문제는 테이프의 일부분이 '삭제'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 왈
: "아놔~ 이게 왜 삭제되어 있음? 내 비서 로즈 메리에게 한번 물어봐. 뭔가 로즈가 실수한 것 같다"
닉슨 측의 말에 따르면, 비서가 전화를 받으면서 녹음기의 페달을 모르고 눌러 버려 테이프가 삭제되었다는 것.
그러나 전화를 받으면서 페달을 밟으려면, 그녀가 현역 NBA선수 정도의 신체 조건을 가졌다면 가능했죠. 즉 이번에도 닉슨은 증거물을 훼손하려 했던 겁니다.
1974년 8월이 되자, 닉슨을 지지하던 보수 세력도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더 이상 닉슨은 어떤 핑계를 댈 기력도 능력도 없었죠. 그리고..
마침내 1974년 8월 8일, 미국 역사상 최초로 사임을 발표한 대통령이 등장합니다. 이미 그 전부터 '탄핵 권고'가 이루어졌지만, 닉슨이 탄핵되기 전에 미리 자진 사퇴를 한 것이죠.
닉슨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는 취임 선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제럴드 포드 왈
: "우리의 오랜 국가적 악몽이 끝이 났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현역 미국 대통령의 사퇴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닉슨이 퇴진한 이유는 단순히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은 아니었어요.
그것은 닉슨이 이 사건을 끊임없이 은폐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소 사유가 된 것이고, 그의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려 끝내는 자진 사퇴를 맞이한 것이었죠.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특별위원회가 아니라 다름아닌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3년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결국 닉슨을 사임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 이후로 '탐사 보도 저널리즘'이 생기기도 했죠.
< 24편 예고 >
지금까지 미국의 1970년대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2차 대전이 끝난 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미국은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죠.
또한 이러한 혼란한 시기에 '닉슨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매우 불명예스럽게 하야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도 넘었지만, 이 사건은 아직도 그 중요성과 여파가 매우 큰 편인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 스캔들에 '~게이트'란 단어가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국민들이 국가 기관이나 권력자들을 불신하고 감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거대 권력에 '언론'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주 잘 보여줬던 역사적 사례인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권력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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